2012년 08월 통권 제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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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깊이 들여다보기]
어린이의 본성을 긍정하는 아동문학 (2)

권혁준 | 2012년 08월

어린이의 본성을 긍정하기 시작한 아동소설

한국의 동화나 아동소설에서는 어린이의 본성에 주목한 작품이나, 어린이 자신의 간절한 욕망과 내밀한 심리적 문제를 그려낸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다. 1920~30년대의 생활동화에서는 현실 속에서 고난을 겪는 어린이들이 주인공이 되었고, 1960년대의 예술동화에서는 어른 작가의 심미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동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1990년대의 IMF 시대에는 해고 노동자의 자녀들이 겪는 아픔이 아동소설의 주제가 되었으며(박기범의 『문제아』), 2010년대에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철저히 고통 받는 가정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김남중의 『동화 없는 동화책』) 한국 아동문학 100년의 역사에서 어린이 자신의 순수한 욕망과 내면의 고민이나 갈등은 이렇게 작가에게 외면을 받아왔다.

사회와 현실 속의 어린이를 그려내는 데 치중했던 한국의 아동소설계에 최근에는 어린이의 본성을 긍정하고 그들의 욕망에 주목하는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의 자연스런 본성을 고양시켜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 대표적인 작가는 김기정이다. 『박뛰엄이 노는 법』과 『뭐하니, 놀기 딱 좋은 날인데』에서 그가 창조한 주인공은 학교 공부도 모자라 학원에 갇혀 지내며, 여가 시간에는 컴퓨터 게임밖에 모르는 요즘의 어린이들에게 ‘놀기 본능’을 되찾아주고 있다. 이 주인공들은 경쟁과 공부만이 최선의 삶이라고 믿고 있는 어른들의 고정관념까지 흔들어 진정으로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범과 뛰어놀고, 새의 말을 알아듣는 뛰엄이 이야기

“한평생 신나게 놀다 행복하게 백 살을 맞이하는 뛰엄 할아버지가 증손자 주먹이에게 보내는 편지. 주먹이는 집 안에서는 요상한 컴퓨터 놀이에만 빠져 있고, 집 밖에서는 여러 동무한테 못된 짓만 일삼는데……. 뛰엄 할아버지는 그런 주먹이를 걱정하며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 뛰어놀았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박뛰엄이 노는 법』 뒤표지의 소개 글로 미루어보면 이 동화의 기둥 줄거리는, 재미있고 신나게 뛰어놀았던 박뛰엄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뛰엄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을 어떤 놀이를 하며 지냈을까. 공부와 경쟁에 찌든 요즘 아이들의 마음의 병을 치유해줄 만큼 통쾌하고 신나는 놀이를 하며 지냈을까.

깊고 깊은 산골에 살던 일곱 살 난 아이 박뛰엄은 너무 심심하고 지루해서 “아이구, 심심해!” 하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가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온 범과 죽기 살기로 달리기를 한다. 처음에는 범이 자기를 잡아먹는 줄 알고 도망을 하다가 나중에는 범과 장난을 하면서 108가지 뛰엄을 익혀 가지가지로 뜀박질을 하며 삼 년을 논다. 그러나 어른들은 범과 뛰어다니는 짜릿한 놀이를 위험한 짓으로 오해하여 이사를 가고 뛰엄이는 애써 사귄 첫 동무와 헤어지게 된다. 범과는 헤어졌지만 몸에 배어버린 뜀박질 때문에 또래 동무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밭일도 못하게 되자 어른들은 뛰엄이의 다리를 묶어 집안에 가두어버린다. 뜀박질이 병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심심해진 뛰엄이는 이번에는 자연의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가 온갖 새와 짐승, 벌레의 말소리를 알아듣게 된다. 가만 귀를 기울이고 요리조리 살피면 자연에는 온갖 재미가 숨어있다. 더 자라서 뛰엄이는 도깨비와 만나 자기의 뜀 재주를 백 년이라는 수명과 바꾸기도 하고, 열일곱 나이가 되어서는 일하는 재미를 알게 되기도 한다. 장가 갈 때가 되어서는 금강산으로 여행 갔다가 신선놀음에 끼어들어 십수 년을 허송하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전쟁 놀음(6·25전쟁)이라는 못된 장난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무사히 집에 돌아와서 자기를 기다려준 예쁜이와 혼인하여 자식 키우는 재미, 재산 불리는 재미, 손자 보는 재미를 느끼며 산다.

자, 처음으로 되돌아가보자. 뛰엄이가 어린 시절 어떤 놀이를 하였는지. 이 동화에서 뛰엄이의 놀이는 ‘범과 108가지 뜀을 뛰며 논 것’과 ‘새와 짐승의 말소리를 들으며 논 것’이다. ‘도깨비를 만나 뜀 재주를 판 것’은 놀이일까. 어쨌든 뛰엄이가 범과 어울려 뛰어 논 것은 원도 한도 없는 놀이였다고 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놀이지만, 범과도 동무가 되고, 새와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 삶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유토피아의 세계이다. 이런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경쟁적인 공부와 컴퓨터 게임밖에 모르는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매혹적인 상상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범과 어울려 논 일이나 새와 짐승과 소통하는 놀이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저 이야기 속의 세계일 뿐이다. 놀 줄 모르는 현대의 아이들이 따라할 수도 흉내를 낼 수도 없으니 ‘노는 법’을 알려주고자 한 뛰엄 할아버지의 의도는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뛰엄이가 뜀박질 재주를 도깨비에게 팔아버린 후 또래 동무들과 어울려 신나게 노는 이야기를 펼쳐놓았더라면 요즘의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면서, 놀고 싶은 본능을 자극하는 바가 있었을 것 같다. 작가는 뛰엄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중도에서 그치고 어른의 삶으로 건너가 버렸다.

청년 시절 이후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아니고 그리 즐거운 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일하는 재미를 안 것’은 ‘재미’가 있으니 일 자체가 놀이가 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의 놀이는 아니다. 신선놀음, 전쟁 놀음은 박뛰엄 할아버지의 입으로 바람직한 놀이가 아니라고 했으니 말할 것도 없고, 재산 불리며, 자손 보는 재미도 어린 시절의 놀이는 아니다. 물론 어른이 되었을 때의 이러저러한 재미도 넓은 의미로 보면 ‘놀이’가 될 수 있다. 뛰엄 할아버지는 사는 것 자체가 ‘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직업이 오로지 노동이 되어버린 현대의 어른들과 공부의 즐거움을 모르고 출세와 경쟁을 위한 싸움으로만 여기는 현대의 어린이들에게 뛰엄 할아버지의 경험은 인생의 본질을 통찰하게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노는 법’을 알려주려는 애초의 의도는 뒷부분으로 갈수록 희미해져버렸다.

아이들의 본성을 ‘놀이’라고 생각하고, 훌륭하게 그럴 듯하게 노는 아이를 찾아 헤매다가 작가는 ‘박뛰엄’이라는 주인공을 창조했다. 어린이의 생명력을 고양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는 매우 바람직했지만 그것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작가도 박뛰엄이 논 이야기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나 보다. 그래서 ‘놀이’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사는 아이, ‘오로지 놀기 하나로만 태어난 듯한 아이’로 창조해낸 주인공이 『뭐하니, 놀기 딱 좋은 날인데』의 곡두이다.

놀이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놀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곡두 이야기

『뭐하니? 놀기 딱 좋은 날인데!』의 속지에는 “‘너희들의 시간’을 의심하는 어른들과 ‘너희들의 시간’을 지키려는 아이들에게”라는 헌사가 들어있다. 작가가 이 작품을 헌정하는 대상은 이 시대의 ‘어른들’과 ‘아이들’이다. 어린이의 본성은 노는 일인데, 어른들은 이것을 믿지 못한다. 이 시대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잘 놀면 불안해한다. 그래서 아이들도 놀 줄을 모른다. 작가는 아이들의 시간을 의심하는 어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어린 시절을 지켜내려는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

이야기는 곡두와 버버할미, 눈뜰영감이 덩굴아파트로 이사 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눈뜰영감은 곡두의 아빠인데 장님 악사이다. 어서 눈뜨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 버버할미는 곡두의 엄마. 말을 못하고 버버버만 해서 버버할미이다. 곡두는 등이 굽은 데다 한쪽 다리를 절룩이고 한 손을 휘휘 저으며 걸어서, 그 모습이 마치 덩실거리며 춤이라도 추는 것 같다.

이들은 심심한 이들의 눈에만 보인다. 눈뜰영감의 사촌형이 미국에서 청소회사 사장이 되었는데, 죽기 전에 아파트 한 채를 물려준다. 서울 한강 남쪽 금싸라기 땅의 수십 층짜리 건물들에 둘러싸인 낡은 아파트가 그것. 이 아파트 벽을 타고 어마어마하게 큰 덩굴이 자라서 멀리서 보면 이 아파트는 숲처럼 보인다.

이 덩굴 아파트에는 늘 놀고 싶지만 놀 줄 모르는 심심쟁이 도톨과 도톨을 돌보느라 고단한 고단엄마, 학원에 가기 싫어하는 짜증쟁이 자야와 그 딸 때문에 늘 걱정인 걱정엄마, 한 번도 학원에 빠진 적 없는 모범생 마똥이 산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놀기대장 곡두를 만나면서, 놀이에 흠뻑 빠져 염통소리가 쿵쿵대고, 눈에는 생기가 돌며,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도 행복과 자유를 느끼기 시작한다. 놀이가 아이들의 마음과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묘사한 대목을 읽으면, 공부만 아는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핍박했는지, 그 일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날 고단엄마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아주 달디단 낮잠을 잤다. 곡두와 도톨이 놀던 모습을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잠깐 누웠는데, 눈을 떠 보니 벌써 어둑해지는 저녁이었다. (……) 거기엔 옷이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아들 도톨이 식식거리면서 서 있었다.
도톨은 활짝 웃으면서 소리쳤다.
“엄마, 실컷 놀았어!”
도톨은 숨을 할딱이다가 엄마에게 달려와 안겼다.
“엄마, 나 무지무지 행복해요.”(『뭐하니? 놀기 딱 좋은 날인데!』 63쪽)


직장에서 밤늦게 돌아와 ‘옷은 땀에 절었고, 한껏 달아올랐던 몸은 아직도 뜨거운 기운이 식지 않’은 딸을 보면서도 공부도 안 하고 만날 놀아 댄다고 긴 한숨을 쉬던 걱정 엄마도, 학원을 빠지면 큰일 나는 것으로 알던 마똥 엄마도 차츰 곡두의 놀이를 좋아하게 된다. 그렇다고 곡두의 놀이가 기상천외할 만큼 새로운 것은 아니다. 늘 거기 있을 뿐이던 놀이터에서, 모래땅 위에 그네랑 미끄럼틀이랑, 정글짐 이런 것들 몇 개만 달랑 있는 그것들을 이용해서 곡두는 상상을 펼친다. 자야 공주가 궁궐에 갇혀 있다가 탈출하여 모험을 하고 도톨 왕자와 곡두 장군이 자야를 구해낸다. 놀이터는 울창한 숲이 되고 세 아이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놀기대장 곡두가 극복해야 할 대상은 학원과 공부이다. 학교는 하나만 다니지만 학원을 아홉 개 다니는 마똥에게 곡두는 이렇게 충고한다.

“이렇게 공부만 하는 아이가 우리 패거리에 끼면, 어른들은 욕심보, 심술보, 걱정보를 바닥에 툭 던져 놓는단다.”
“대신 이것만은 꼭 알아 둬. 지금 뒤돌아서 바로 저 지긋지긋한 감옥 같은 곳으로 간다면…… 음…… 참, 거기에 뭐 맛있는 거라도 있니?”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말들을 아주 이상하고 무섭게 배우겠지. 정말 그게 좋다면 가도 좋아. 너는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최고로 재밌게 놀 기회를 잃는 거라고. 나중에 후회해도 난 모른다.” (같은 책, 102~103쪽)

곡두가 혼내주어야 할 또 다른 존재는 물욕과 소유욕의 화신 국자여사다. 국자여사는 “이 아파트는 다 내 꺼야!” 하고 외치며 아파트를 하나둘 사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집을 사자마자, 세 들어 살던 이들을 쫓아내고 집 문짝에다 빨간 페인트로 “내 꺼!”라고 쓴다. 국자여사는 덩굴아파트를 허물고 골프장과 빌딩을 지을 예정이다. 그러면 곡두와 아이들의 놀이터가 사라진다. 이것이 곡두가 국자여사와 싸워야 하는 이유이다.
곡두는 이렇게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주어야 하며,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는 외적 조건(공부, 학원, 물질적 욕망 등)들과 투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곡두는 놀이가 왜 중요하고 의미 있는지를 어른들에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곡두는 바쁘다. 곡두의 설명을 들어보자.

“곡두야, 내가 뭐 도울 일 없니?”
“돕다니요. 우리끼리 노는 데는 조금도 도움이 필요 없답니다. 방해만 안 해도 어딘데요? 놀기는 그냥 두면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쑥쑥 크는 거랍니다.” (같은 책, 133쪽)

“여러분, 놀이란 그냥 노는 것이 아니랍니다. 아주 무시무시하고 엄청 신나고, 진짜라고 생각해야 참말로 놀이가 재미있어진답니다.” (같은 책, 120쪽)

곡두는 스스로 그냥, 재미있고 자유롭게 노는 것이 아니라, 노는 시범을 보여주고, 놀이의 방법과 의미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작가는 생생엄마를 통해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해준다.

아이들은 왜 뛰어놀아야 하는가?
1. 아이들의 웃음은 보약이다.
2. 잘 노는 아이는 머리가 좋아진다.
3. 놀이는 집중력을 키워 공부에 도움이 된다.
4. 음식물 소화를 돕고, 건강해진다.

놀이가 세계 평화에 끼치는 영향 연구
1. 놀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2. 놀 때 생기는 좋은 기운은 곡식을 쑥쑥 자라게 한다.
3. 아이들이 행복해지면, 공장의 기계가 더 잘 돌아간다.
4. 교육비에 쓸 돈이 자선사업에 더 많이 쓰인다. (같은 책, 134~135쪽)

작가가 이렇게 열심히 ‘놀이’의 의미를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하는 노파심 때문인가. 공부와 학원이라는 괴물에 포획된 아이들과 비본질적인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너무 크기 때문인가.

그런데, 김기정의 주인공들은 ‘잘 놀아야지! 잘 놀아야 돼!’ 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곡두는 어떤 놀이를 할 때마다 오늘은 무슨 놀이를 한다하고 선언을 하고 그 놀이를 재미있게 하려고 애쓰며, 아이들에게 놀이의 재미를 가르쳐주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작가가 놀이라는 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재미있고 신나게 놀이에 몰입을 할 때는 자기가 잘 논다는 의식 자체가 없다. 그냥 홀딱 빠져서 세상 그 무엇도 다 잊고 그냥 놀 뿐이다. 삐삐나 피노키오나 허클베리 핀은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놀았는데 어른들이 볼 때 그것이 말썽이 되기도 하고, 모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곡두의 놀이를 보면 어쩐지 놀이 자체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덩굴아파트, 놀이의 천국 만들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곡두는 이제 학교로 진출하게 된다.

학교 가는 첫날, 곡두는 덩굴아파트 최고참 문지기 코털 씨에게 방긋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코털 씨!”
“열심히 놀고 오너라?”(같은 책, 232쪽)

학교에 가서도 곡두는 신나고 재미있게 놀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놀이 바이러스를 열심히 전파할 것이다. 그런데 그냥, 마음대로, 자유롭게 놀지 못하고 ‘열심히’ 놀아야 하는 곡두가 좀 안쓰럽다. 그리고 곡두가 그렇게나 열심히 놀아주었는데도 끝까지 스스로 노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자야도 안쓰럽다.

“곡두야, 오늘은 뭐 하고 놀아?”
곡두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새 놀 게 너무 많아서 탈이야. 이것저것 다 하고 싶다니까?”
“어서 말해 줘. 얘들이 기다리잖아.”(같은 책, 232쪽)


자야는 지금까지 곡두와 신나게 놀아보았으니 이제는 스스로 노는 법을 터득했으면 좋을 텐데 마지
막까지 곡두에게 뭐 하고 노느냐고 묻는다. 이 소설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놀 줄 아는 아이는 곡두뿐인 셈이다. 우리 아이들이 무심히 노는 자유를 터득하는 길이 이토록 멀고 지난하다는 말인가.
공부와 경쟁에 지친 아이들, 땅에서 기르는 오리처럼 양계장의 닭처럼 사육당하는 오늘의 우리 아이들에게 생명력을 고양하는 ‘놀이’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놀 시간이 없고, 놀 줄도 모르는 아이들이 사는 나라, 아이들이 잘 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부모들이 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놀이 프로젝트 수행자가 더 필요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권혁준 | 공주교대에서 문학교육을 강의하는 어린이문학 평론가입니다. 저서로 『아동문학의 이해』, 『문학이론과 시교육』, 『독서교육의 이론과 방법』, 『살아있는 동화 읽기, 깊이 있는 삶 읽기』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