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8월 통권 제117호
여름 방학 권장 도서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 어린이 문화 다시 읽기]
조선시대의 생애 가치와 어린이 삶의 기록 1
―――조선시대 중인 전기집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을 통해 생각해 본다(1)

최기숙 | 2012년 08월

생애 가치, 역사와 사회를 보는 인문적 거울

생애 가치란 삶의 의미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대문화적 동의를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문화권, 시대와 역사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어떤 사회의 인문적 특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한 생애 가치란 무엇이었는가, 역으로 각 개인들이 자신의 생애 가치를 성취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였으며, 이것을 사회에 설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신자유주의의 현대사회에서 소위 ‘스펙’으로 표상되는 출세주의, 능력주의, 학벌주의, 가시화된 부와 물질주의, 안티 에이징 등은 자본주의와 성공 지상주의의 현대 사회의 성격을 드러내는 생애 가치들이다. 반면에 느림의 미학, 내면과 영성의 추구, 돌봄과 더불어 살기, 만족과 행복에 대한 지향성, 잘 나이들기에 대한 성찰 등은 이러한 현대사회의 문제점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가치와 삶의 태도를 사회적으로 제안하고 실천하려는 움직임의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한 시대와 사회의 생애 가치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그 시대 사람들이 ‘일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에 추구하고 지향해야 할 것을 어떻게 성찰했으며, 이에 관해 사회적으로 합의하기 위해 노력해 왔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인문적 과제다.

조선시대 생애 가치란 무엇이었는가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애 가치를 살펴보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가장 일차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를 적은 ‘전(傳. biography)’을 읽는 것이다. ‘전’이란 한 개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사람의 일생을 기념하고 기리기 위해 타인이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물론 예외적으로 살아생전에 본인이 직접 전을 쓰기도 했는데, 전체적인 성향에 비하면 드문 경우다). 따라서 여기에는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기록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이고도 역사적인 성찰과 합의가 담겨 있다.

‘전’이라는 것은 조선시대 문집에도 수록되어 있는 본격적인 문학 양식의 하나다. 말하자면 제도권 문학에서 공인되던 글쓰기 양식에 속한다. 따라서 ‘전’의 양식은 패턴화되어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점에서 글로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이라는 글쓰기 양식을 통해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

‘전’의 대체적인 형식은 대상자의 가계, 성품과 인격, 사회적 공적, 학문적 성취, 인간관계, 혼인과 자녀, 자손에 관한 정보 등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한 사람의 생애에 걸쳐 기록한 만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당대 사회의 입장과 시선을 보여준다. 학문을 입신양명을 위한 방법으로 간주하던 조선시대에는 소위 ‘출세’가 자신의 능력과 소양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입신하여 어떠한 사회적 공적을 남겼는지를 주요한 생애 가치로 여기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주로 과거를 통해 입신할 수 있었던 사대부 남성으로 제한되었다. 여성이나 신분이 낮은 이들은 ‘전’ 자체가 쓰인 경우가 드물었지만, 쓴다고 해도 사회 공적을 기록할 여지는 많이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풍토 속에서도 개인의 수양이나 인격, 인간관계, 타인에 대한 배려나 희생 등을 주요한 서술의 항목으로 간주함으로써 인문성을 존중했던 사회적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중인들의 전기집 『이향견문록』

조선시대에 창작된 전의 대부분이 사대부 남성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지만, 드물게는 그들의 어머니나 아내에 관해 쓴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신분이 낮은 사람들, 중인, 천민, 화가와 악공, 기술자 등에 관한 전도 쓰이기 시작했다. 이는 조선후기에 나타난 현상인데,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오직 신분이 높고 출세하여 사회적 공헌을 많이 한(엄밀히 말하자면 사회적 공헌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를 타고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이던 ‘전’이, 여성과 중인, 나아가 천민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러한 것은 분명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생애 가치란 신분이나 성별 등 ‘타고난 요소’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서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았으며, 무엇을 추구했는가라는 ‘행위’와 ‘실천’ 등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유재건(劉在建, 1793~1880년)이 편술한 중인 전기집 『이향견문록』1)이다.

유재건은 정조대에 태어나 고종 대까지 살았던 조선 말기의 중인 학자다. 그는 자신과 같은 중인들과 일종의 문단 모임인 직하시사(稷下詩社)를 조직하여 문단 활동을 선도했다. 그와 교류하던 중인 출신 문인인 조희룡(趙熙龍, 1789~1866년)은 또 다른 중인 전기집인 『호산외기(壺山外記)』를 펴내기도 했으니, 당시 중인들의 문단 활동이나 문학적 소양, 문화적 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화가로 널리 알려진 조희룡(필자는 삼성리움 미술관에 전시된 조희룡의 작품과 동시대의 중인 화가 고람(古藍) 전기(田琦, 1825~1854년)의 일부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조희룡은 전기에 관한 전을 『호산외기』에 남겼다.)은 『이향견문록』에 1862년에 서문을 썼다. 이를 통해 그가 중인문화에 깊이 관여한 문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향견문록』은 유재건이 혼자서 쓴 책이 아니라, 여러 책에 흩어져 전하는 중인들의 전을 한데 모아 엮은 책이다. 이들이 중인들의 전기를 편찬하고 저술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사람의 생애 가치를, 단지 타고난 신분을 중심으로 사유하던 지배 문화의 시선에 대해 저항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에서 나아가 그러한 저항을 구체화하는 대안적 방법으로서 글쓰기를 택하는 능동적 실천을 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중인들의 생애 가치

그렇다면 중인들의 생애 가치는 어떻게 사유되었는가? 이는 『이향견문록』의 편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총 10권으로 이루어졌으며, 모두 287편에 총 309명의 중인 전기가 실려 있다.


『이향견문록』을 통해 중인 문인 이이엄(而已) 장혼(張混, 1759~1828. 『열린어린이』 2011년 7월, 통권 104호에 필자가 소개한 바로 그 인물이다), 송석원 시사를 조직했던 천수경(千壽慶), 서예가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 화가 김홍도(金弘道)와 최북(崔北), 지도 제작자 김정호(金正浩),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許浚) 등의 생애를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전기는 개인 문집에 실려 있어서 개별적으로 전하는 데 비해, 중인의 전기는 ‘편저’라는 저술 형태로 편찬되었다. 중인의 전기가 ‘편저’의 형태로 저술된 이유는 중인 가운데는 개인 문집을 가질 정도의 문학적 소양과 문화적 역량을 갖춘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았지만 문집을 통해 가계 전승을 할 수 없었던 중인들의 기록을 한데 모아 편찬하려는 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생겨났다. 300명이 넘는 중인들의 삶을 한데 모아 편찬하려니, 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예컨대, 기록할 만한 중인들의 생애 키워드를 무엇으로 정할지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오늘날 대형 서점에 가보면 인문서적, 종교, 생활, 여행 등으로 섹션이 구분되어 있어, 필요한 사람들이 편리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중인 전기집에도 일종의 ‘편제’가 필요했다.

위의 표는 유재건이 중인의 전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분류할지에 관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당시에 ‘가치 있는 삶’ 나아기 ‘중인들의 생애 가치’에 대해 사회적인 합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유재건은 이를 총 10개 항목으로 정리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문학’ 항목이다. 총 71 편에 73명의 중인 문인의 생애 전기를 싣고 있어, 전체의 23.7%를 차지한다. 다른 항목과 달리 ‘문학’ 항목은 3부로 편집될 정도로 ‘기록할 만한’ 문인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중인들이 ‘문학’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했으며, 그들 또한 사대부 문화에 뒤지지 않는 문화적 역량을 갖추었음을 입증하고자 욕망했음을 보여준다. 중인 문화의 자부심을 ‘문학하는 중인들’에 대한 글쓰기 형식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문학’을 포함하여 비중이 높은 순서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문학의 비중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은 ‘윤리’와 ‘도덕성’을 상징하는 ‘충효’ 항목이 두 번째를 차지한다. 중인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가치와 재능으로 판단하던 ‘서화’, 즉 예술적 재능을 지닌 예인전이 세 번째 순위를 차지하는 것도 의미가 크다. 이는 조선시대 문인의 전을 쓸 때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가면서 사대부들도 예술적 재능에 관해 언급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그러나 따로 항목을 만들 정도로 내세우는 요소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예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졌던 중인들이 서화 항목을 별도로 설정한 것이 중요하다.

이와 아울러 주목할 것은 여성의 전기를 별도로 모아 ‘열녀’ 항목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열녀’란 대체로 남편을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남편을 따라 죽은 여성을 뜻한다. 『이향견문록』의 ‘열녀’ 항목에도 남편을 위해 수절하거나 정절을 지킨 여성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밖에도 의로운 여인, 정직한 여인, 효녀, 훌륭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조선시대의 문화적 특성상, ‘뛰어난 여성’을 지시하는 ‘형용사’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열녀’라는 명사를 ‘훌륭한 여성’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통용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여성’을 하나의 항목으로 배치하여 ‘기록할 만한 역사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주목할 점이다.

그런데 『이향견문록』의 첫머리에 배치한 항목은 가장 비중이 높은 ‘문학’이나 재능 있는 예술가를 다룬 ‘서화’가 아니라 바로 ‘학행’이다. ‘학행’ 항목은 실질적으로는 다른 것에 비해 그 비중이 가장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첫머리에 둔 것은, 학행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인들은 비록 타고난 신분은 낮지만 학문과 수양을 통해 사대부 가문에 못지않은 학식과 풍모, 인격을 갖추고 미덕이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기록하여, 자신들의 생애를 후손들이 의미 있게 기억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1) 이 글에서 활용한 텍스트는 실시학사 고전연구회(實是學舍 古典文學硏究會)에서 역주한 『이향견문록』(민음사, 1997)이다. 최근에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이하, 구체적인 작품 내용을 소개할 때는 여기에 실린 전을 필자가 간추려서 적었음을 밝힌다.
최기숙 | 국어국문학 연구자입니다. 고전 텍스트를 현대문화와 소통시키기 위해 고전의 현대적 번역과 비평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어린이, 넌 누구니?』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처녀귀신』 『문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거지에서 기생까지, 조선시대 마이너리티의 초상』 『환상』 등이 있습니다. 어린이, 여성, 중인, 벼슬하지 않은 선비 등 전통시기 소수자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을 썼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의 HK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