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8월 통권 제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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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시가 있는 풍경]
아직 갈 길이 먼가

어린이시교육연구회 | 2012년 08월

시를 보면 아이가 보인다 ― 지빈이의 맑음, 흐림, 갬

우리 반에는 한없이 밝은 여자아이가 있다. 내게 얼굴을 들이민 채 이야기를 건넨다. 표현도 얼마나 솔직한지 모른다. 음악이 나오면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친구들의 장난에 유난히 ‘꺄르르’ 넘어간다. 가끔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싶을 정도다. 사람을 어려워하지 않고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많이 웃고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다.
정반대로 한없이 어두운 여자아이도 있다. 3학년인데도 일기장에는 ‘왜 사는지 모르겠다.’ ‘죽고 싶다.’는 글들이 즐비하다. 또한 자신은 공부도 못하며, 성격도 안 좋다고 단정한다. 본인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한 바닥 가득 편지를 써 줘도 내면에 자리 잡은 자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우 관계도 삐걱거린다. 뒷담화로 친구들을 이간질하며, 마찰이 잦다. 정리하면 사람을 진정성 있게 대하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있으며, 비관적 표현을 일삼는다. 이 두 아이는 동일 인물이다.

1. 맑음
시 수업을 하고나면, 지빈이는 “정말 재미있어요.”, “또 언제 써요?” 했다. 내게서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 하자, 저 혼자 일기에 써 오기 시작했다.


수영
                    안지빈 (서울 둔촌초 3년)

오늘은 엄청 화가 난다.
자유형 발차기는 5바퀴 똑같이 했는데,
저병 10바퀴는 나는 다 하고,
남자(또래), 남자(1살 많은), 두 명은 8바퀴만 했다.
나는 못하는 사람이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수영 선생님은 잘하는 사람이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한다.
너무 불공평하다.
                   (2012. 7. 1)



수영을 배우는 지빈이는 불만이 생겼다. 두 남자아이보다 수영을 잘하는데 연습을 두 바퀴나 더 했기 때문이다. 잘 하는 사람이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는 시를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평소 성실하지 못한 지빈이가 생각나서다. 시에 드러난 아이의 불만에서 착실함보다는 다소 나태함을, 지루함보다는 유쾌함을 추구하는 지빈이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평소 지빈이라면, 수영 선생님에게 직접 말하기도 했을 것이다. “선생님, 불공평해요!”

2. 흐림

피구
                    안지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운동
하지만
신영이가 날 마첬다.
오마~갓

나는 시작하자마자 아웃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신영이를 욕했다.
왜 나만 마치지?
나는 정말 운도 없다. 
                     (2012. 6. 26)


피구 경기에서 시작과 동시에 아웃된 상황을 묘사했다. 여기엔 복잡 미묘한 지빈이의 심경이 드러난다. 피구 경기를 단순한 체육 경기로 보지 못 하고 감정을 소모하고 있다. 그러다 왜 나만 맞히는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이제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로 전환한다.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 귀결시켜 나를 탓한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 저를 맞혔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지막 연의 ‘운이 없다’는 단순히 공 맞고 아웃된 상황이라기보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미움을 받은 자신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표현이다. 왜 이렇게 감정이 예민하며,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 돌리는 것일까?

지빈이는 편모 가정의 아이이다. 편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받는 애정이 충분치 않다. 더군다나 아이가 덤벙대니, 제 일을 스스로 꼼꼼하게 하지는 못 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더욱 엄격해진 엄마의 그늘에 있다. 시의 표현처럼 엄마는 잔소리가 잦고 툭하면 화를 낸다. 아이는 이런 상황에서 점차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보
                    안지빈
나는 바보
시험도 못 보고
공부도 못 하는
나는 바보
울 부모님 말씀 안 듣는 나는 예의 없는 바보
내 머리 속은 온통 바보
우리 반에서 나는 바보

운동도 못하고 글쓰는 것도 싫고
부끄러워서 앞에 서지 못 하고
발표도 못하는
나는야 최고의 바보
이름도 못 물어보는 바보
내가 제일 유명한
나는야 바보입니다.

                    (2012. 6. 16)


겨우 10살 된 자그마한 아이가 스스로를 이렇게 내모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겉으로 보기에 지빈이는 늘 당차고 밝은 아이다. 하지만 속은 이렇게나 문드러져 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부족하다. 자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다분히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상황을 비관적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3. 갬

아이는 이중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밝은 성격은 유전적 영향이 크며, 어두운 성격은 환경 탓이 커 보인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부모님의 이혼이 아이의 어두운 성격 형성에 한 몫 하고 있다.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다소 불필요하게 엄격해진 면이 있고, 이를 보완할 자애로움을 가진 한 쪽 부모가 없는 것도 문제다. 시를 보며 아이가 보일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밝고 유쾌하여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는 아이인데, 어른과 사회가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바로잡는 것도 어른과 사회의 몫이다. 무엇보다 지빈이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기존의 관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아이를 판단하고 구속하지 않음으로 자아 존중감과 자신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시 쓰기 교육이 한 몫 하리라 믿는다. 지빈이가 시를 쓰면서 감정을 정화했으면 한다. 부차적으로 어른들은 시를 통해 아이를 보고 제 역할을 인지했으면 한다. 그러나 현실에는 시 쓰기가 정말 재미있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교과 진도 때문에 시 쓰기 수업을 한참이나 못 해준 교사가 있고, 일기에 5편을 연달아 시를 쓰는 아이에게 내용이 부실하다며 이젠 시를 쓰지 말라는 엄마가 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강민경, 서울 둔촌초)

우리 반 아이의 시 ― 민주와 내가 ‘통(通)’한 이야기

우리 4학년 2반 아이들은 모두 17명이다. 그 중에 여자아이는 딱 여섯 명 뿐이다. 성비로 따지자면 당연히 여자아이들이 열세다. 하지만 우리 반 여자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우먼파워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반은 여자아이들이 장악하고 있다. 모둠 활동을 할 때도 여자아이들이 대부분 이끔이를 맡는다. 이끔이를 맡은 여자아이들은 정말 모둠을 잘 이끈다. 모둠을 진두지휘하면서도 활동에서 뒤처지는 아이들을 살뜰히 챙긴다. 우리 민주도 그런 아이 중 한 명이다.

민주는 무엇이든 잘하고 싶어 하는 아이다. 그러니까, 칭찬이나 관심에 대한 욕심이 많은 아이다. 예를 들어, 민주가 공부시간에 하고 싶은 만큼 발표를 못 했다하면 꼭 쉬는 시간에 내게 와서 “선생님, 이번 시간에 발표를 못했어요. 다음에 꼭 시켜주세요.” 하고 말한다. 발표를 여러 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기대한 이만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아이다. 또 시 쓰기를 하고나면 민주는 내게 신신당부를 한다. “선생님, 제 시 꼭 읽어주세요! 꼭이요!” 민주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아이들이 쓴 시를 최대한 정성껏 읽어준다. 그런데 민주 시는 어쩐지 더 신경써서 읽게 된다. 조금이라도 잘못 읽은 부분이 있으면 민주가 쪼르르 달려와서 내게 잔소리를 해 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이, 선생님. 왜 그랬어요. 치, 내 시만 이상하게 읽어주시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난 정말 억울해진다.

생각해보면 민주는 내가 관심을 듬뿍 쏟아주어야 하는 아이다. 위로 언니가 한 명 있고 아래로 여동생이 한 명 있다. 민주 말을 들어보면 언니는 언니라고, 막내는 막내라고 사랑을 받는데 저는 중간에 끼여 부모님께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항상 칭찬과 관심에 목말라한다.

민주의 사랑 문해원 선생님

아이들이 가끔 내게 와서 “선생님, 누구랑 누구랑 사귀어요. 이거 진짜 비밀이에요.” 하고 말하고 간다. 비밀이라고 말하기 무색할 만큼 알 만한 아이들은 모두 아는 그 사실을 왜 꼭 비밀이라고 하는지, 참 귀여운 아이들이다. 민주도 당연히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바로 6학년 1반의 담임 문해원 선생님이다.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는데다가 자상하고 부드러운 말투와 준수한 외모까지,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선생님이다. 그래서 저학년 사이에서도 문해원 선생님은 인기 만점이다. 민주와 문해원 선생님에 얽힌 일화를 한 가지 소개하겠다. 언젠가 내가 그 선생님에게 손목시계를 빌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민주에게 문해원 선생님께 빌린 손목시계를 돌려주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그런데 그 날, 그 선생님이 내게 와서 박장대소를 하며 민주 이야기를 해주었다. 민주가 문해원 선생님에게 손목시계를 돌려주면서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더라는 것이었다. “선생님, 선물을 받았다고 해서 마음까지 빼앗기면 안 돼요.”
하지만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라이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민주의 라이벌이 우리 반에 한 명 있다. 유정이라는 아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정이와 민주는 서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하루는 민주와 유정이가 내게 와서 말했다. “선생님, 문해원 선생님한테 꼭 좀 물어봐주세요. 제가 더 좋은지, 유정이가 더 좋은지요.” 하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유정이의 사랑이 더 진실해 보인다. 유정이에겐 오로지 문해원 선생님뿐인데, 민주는 우리 학교에 있는 미혼의 남선생님들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는 내가 물었다. “민주야, 한 사람만 좋아해야지. 여러 사람을 좋아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문해원 선생님만 좋아하면 다른 선생님들이 불쌍해요.” 하루는 체육 선생님이 더 좋았다가, 또 하루는 문해원 선생님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가, 또 그 다음날은 문해원 선생님은 자신이 크면 늙을 테니 이제 포기해야겠다고 했다가……. 오늘도 민주의 사랑은 갈팡질팡이다.

멋지고 착한 문헤원 선생님

                    조민주(창원 교동초 4년)

나는 오늘 문헤원 선생님을
보지 못해 우울했다.

그리고 우유를 가지고 올건데도
우유를 빨리 가져오라면서 친구들이 제촉했다.

또 체육시간에 이준영은
플라잉디스크를 빨리 안 준다고

1,2,3 이렇게 세고는
그 개수만큼 내 머리를 때렸다.

멋지고 착한
문헤원 선생님이 와서
나를 달래줄까?
라고 생각하며 계속 울었다.

                    (2012. 5. 15. 민주는 문해원 선생님을 ‘문헤원’ 이라고 썼다.)


맞장구를 치자, 열심히!

요즘 민주와 나는 통하는 것이 생겼다. 민주가 자주 하는 아부가 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 예뻐요.” 그럼 나도 한 마디 한다. “역시, 미인은 미인을 알아본다니까.” 그러면 민주는 씨익 웃으면서 그런 표정을 짓는다. ‘우린 통하네요.’ 민주가 하는 말에 아주 사소한 맞장구만 쳐주는데도 우리는 ‘통’하는 사이가 된다. 우리 반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 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을 정신이 없다. 예전에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하려면 당연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 읽기 시간에 자기 이야기만 하고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아이들을 혼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안고 어린이 시 공부 모임에 갔다가 되레 내가 혼났다. 아이들이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것인데 나는 그것을 고쳐야 할 점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가진 강점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들도 잘 못하는 ‘듣기’를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하는 이야기가 정말정말 듣고 싶어 죽겠거든. 너희들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듣고 싶어. 그런데 여러 사람이서 한꺼번에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어떻게 들리는 줄 알아? ‘우우우우’ 하면서 커다란 짐승이 막 우는 것처럼 들려. 그러면 선생님은 엄청 슬프겠지?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도 들을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선생님이 안 슬프게 한 사람씩 이야기하자.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은데 이번 시간에 못 한 사람이 있으면 쉬는 시간에 와서 해줘. 선생님은 정말 궁금하니까.”

그랬더니 요즘에는 아이들이 손을 들고 한 사람씩 말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친구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도 부쩍 늘어난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에는 오히려 내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부 못 듣는 것이 미안하고 안타깝다. 17명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지만 얼마나 할 말이 많은지, 쉬는 시간에도 귀는 절대로 쉴 수 없다. 번호표를 뽑아서 아이들 손에 쥐어주어야 할 판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정말?”, “아, 그랬구나. 그래서?”, “헐…….” 과 같이 ‘내가 너의 말을 듣고 있다’ 는 표현 하나에도 아이들은 기뻐한다.

나오며

급하게 공문을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거나, 정신없이 업무를 보다보면 아이들이 옆에 오는 것이 성가실 때가 있다. 그러면 파리를 쫓듯 손을 휘저으며, “오지 마! 선생님이 지금 엄청 바빠!” 하며 소리를 지른다. 그런 날은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과 ‘척 하면 척’이 안 된다. 그러면 내 기분까지 우울하고 힘이 쭉 빠져버린다. 그래서 드는 생각은, 내가 좋은 경청자가 되면 결국 나도 행복하고 아이들도 행복해진다는 거다.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잘 들어주기만 하면 되니까. (손유라, 창원 교동초)
어린이시교육연구회 | 어린이시를 함께 공부하며,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시쓰기 수업도 하는 교사들의 연구모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