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8월 통권 제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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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어가는 여행]
홍길동이 꿈꾸었던 유토피아
―――전북 부안 위도

박성원 | 2012년 08월

요즘 아이들도 『홍길동전』을 읽는지? 아니 홍길동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방학이면 TV에서 「영웅 홍길동」, 「소년 홍길동」 같은 만화영화들을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나 역시 홍길동은 만화영화로 만난 셈이다.

조선 시대, 홍판서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총명하고 학식도 뛰어났지만 서자라는 이유로 멸시를 받는다. 울분을 삭이며 집을 떠난 홍길동은 활빈당을 만들어 악행을 저지르는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빼내 힘없는 양민들을 돕는다. 그의 이름이 전국 팔도에 알려지고 조정에서는 홍길동을 회유하기 위해 관직까지 내려준다. 그러나 홍길동은 율도국으로 떠나 그곳의 왕이 되어 행복하게 살다 죽는다. 허균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홍길동전』의 줄거리다.

홍길동이 다스린 율도국은 어떤 나라일까? 전북 부안의 섬 위도가 율도국의 실제 모델이다.

허균, 부안에서 홍길동전을 쓰다

허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광해군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빼어난 총기를 보였던 허균은 관직에 등용되었다가 파직 당하고 재등용되었다가 탄핵을 받아 유배길에 오르는 등, 수난의 삶을 살았다. 아끼던 누이 허난설헌의 요절과 임진왜란으로 인해 아내와 아들을 동시에 잃는 슬픔도 겪어야 했다. 뛰어난 학문적 기량을 갖추었으면서 동시에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허균은 끝내 역모 혐의로 사형을 당하고 만다.

이상적 혁명가로서의 허균을 그린 김탁환의 소설 『허균, 최후의 19일』의 첫 장면은 부안의 변산반도에서 시작한다.

“세상은 또 한 번의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었다. 까마득하게 펼쳐진 갯벌이 붉은 울음을 토하기 시작하면, 변산의 백성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바닷가 언덕으로 나왔다. 조화옹(造化翁, 조물주)이 선물한 장엄한 낙조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허균, 최후의 19일』 속 허균은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혁명가로 그려진다. 홍길동이 서자의 신분을 벗어나 관직까지 하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향 율도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듯, 소설 속 허균 역시 혁명만이 세상을 바꿀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허균은 변산 바닷가에 서서 위도를 바라본다. 변산의 격포항에서 뱃길로 약 15km, 50여분 남짓 바닷길을 달려가면 이상향 율도국이 있다.

꿈에 그리던 해안 드라이브길, 위도가 품었네

짧지 않은 뱃길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갈매기들 덕분이다. 격포항에서 출발할 때부터 따라 붙은 갈매기들이 위도가 가까워지는 순간까지 여행객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먹으며 뱃길에 동행한다. 그러나 갈매기들은 곧 격포항으로 돌아간다. 위도에서 격포항으로 나가는 손님들은 과자를 던져주지 않는다는 걸 직접 체득한 까닭이다.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기분이 다르다는 것까지 혹 알고 있는 건 아닐까?

갈매기들을 뒤로 하고 만나는 위도의 첫 인상은 한적함이다. 항구 가까이 일렬로 늘어선 식당이나 민박집, 슈퍼마켓을 찾아보기 힘들다. 위도여객터미널을 지나 한걸음 물러선 파장금항에 서너 개의 식당과 민박집이 얼굴을 보인다.

여섯 개의 유인도와 스물네 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위도는 춘천의 위도와 마찬가지로 섬의 생긴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았다 해서 고슴도치 ‘위’자를 쓴다. 천혜의 조건을 갖춘 황금어장으로 이름났고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풍어제는 ‘위도 띠뱃놀이’라 하여 중요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되어 있다.

격포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닿는 파장금을 비롯해 논금, 정금, 벌금, 깊은금 등 모두 이름 뒤에 ‘금’자를 붙인 12개의 포구마을이 위도를 빙 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해안선 굴곡 마다 둥그렇게 패인 자리에는 어김없이 작은 마을들이 정겹게 앉아있다. 섬 전체를 빙 둘러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해안드라이브를 즐기기에는 최고의 섬이다.

허균이 변산바다에 서서 꿈꾸었던 이상향 율도국은 어떤 모습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해안도로를 달리며 만나는 풍경은 우리가 아름다운 섬 풍광을 상상할 때 떠오르는 딱 그 모습을 보여준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해안도로에는 들꽃 무리가 흐드러지고 완만한 백사장을 쓰다듬으며 오고가는 파도의 노래가 손에 잡힐 듯하다. 푸른 바다와 해안선이 빚어내는 절경이 끊임없이 이어져 차는 도통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느리고 느리게 거북이 운행을 하게 된다. 위도 순환버스도 여행자들에게 인기다.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파장금항에서 출발해 위도의 마을들을 모두 지나 다시 파장금으로 되돌아오는 순환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해안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마치 여행객을 위해 준비된 버스 같다. 위도의 이모저모에 대해 설명하시는 기사님의 입담도 구수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단, 주의할 점은 반드시 버스의 오른쪽에 앉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바다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왼편에 앉으면 하릴없이 산 쪽만 바라보게 된다.

많은 이들에게 위도는 안타까운 이야기 두 개를 들려주는 섬이기도 하다. 1993년에 정원을 백 명이나 초과하는 인원을 싣고 위도를 출발한 배가 침몰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얼마 전까지는 위도에 핵폐기물 처리 시설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물론 지금 위도로 들어가는 뱃길은 안전하고 방폐장 건설 계획도 무산되었다.

음악의 이상향, 위도해수욕장에서 펼쳐지다

위도해수욕장에서는 2011년에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섬마을 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 작은 무대 위에는 한 대의 피아노만 놓여 있다. 하늘과 바다가 무대의 배경이 되어주고 있다. 위도 주민들이 플라스틱 의자들 500여 석을 채우기 시작한다. 어느새 빈 의자를 찾기 어렵고 언덕의 풀밭 위에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도 꽤 많다. 위도 주민 천이백여 명 중 절반이 콘서트를 보기 위해 모인 것이다. 초등학교 선생님과 함께 단체로 온 아이들은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얘들아 저기 봐라! 백건우 선생님 오셨다~~”
“와아~”


해수욕장 관리소가 연주자 대기실이었나 보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농사일을 마치고 오신 할머니들은 연주회 팸플릿을 열심히 들여다보시더니 한 마디씩 하신다.

“이미자 노래는 없나?”
“피아노만 치는 거랴. 군수님도 오시고 위도가 난리가 났네.”

드디어 해가 지기 시작하고 해안가에 노을이 번지자 잿빛 연주복을 입은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무대에 올랐다. 커다란 박수와 환호가 바닷가를 가득 채운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피아니스트의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육중한 스피커에서는 피아노 소리와 함께 파도 소리까지 흘러나온다. 피아니스트의 손은 건반 위를 흘러가지만 그의 눈은 멀리 노을 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바다도, 하늘도 그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는 듯하다.

자연과 일체되는 음악.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예술이다. 지금 바닷가는 유토피아다.
쇼팽의 「뱃노래」를 시작으로 리스트와 드뷔시, 그리고 마지막 베토벤의 「월광」 연주까지 마치자 하늘은 무대의 장막처럼 어두워진다. 밤새 그치지 않을 것 같던 박수 소리가 잦아들고 드디어 무대의 조명도 꺼진다. 꿈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조졸한 음식도 준비되었다. 이미자에 태진아 노래는 없었어도 막걸리 한 잔에 어깨가 덩실하고 외지에서 찾아온 손님들에게 음식을 권하고 받으며 한 밤의 파티장이 된다. 음악 율도국의 밤풍경이다.

아마 올해도 위도에서 섬마을 콘서트가 열릴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율도국 여행을 떠날 것이다.
박성원 | 여행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여행작가입니다. 『걷고 싶은 거리 여행-부산편』, 『생각이 깊은 아이로 키우는 걷기여행』, 『맨발의 꿈, 맨발의 여행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01곳』 등의 책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