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8월 통권 제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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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마음 온도(溫度)를 높여주는 그곳, 온도(溫島)

이지혜 | 2012년 08월

“어제부터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선상님, 너무 빠르구만유. 지가 받아적기가 힘든디유.”
“감낭구, 헷갈리니께 조용히 좀 혀.”
“가겟방은 다율이한테 배웠다고 쉬운가보네. 난 도통 받아쓰기가 어려워서 그려.”

선생님이 또박또박 한 문장씩 불러줄 때마다 학생들은 받아쓰기를 하기에 바쁩니다. 그런데 조막만한 손으로 꼬물꼬물 받아쓰기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들만 있는 건 왜일까요? 바로 온도 분교의 학생들은 온도의 할머니들이기 때문이지요. 초등학생이라고 꼭 8살부터 13살이어야 한다는 법 있나요.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하잖아요.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할머니 초등학생들의 열정이 가득한 이곳은 사연도 많고 추억도 많은 온도 분교입니다.

온도 분교는 다시 살아난 학교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다율이와 기철이, 병우, 이렇게 세 명의 학생만 덩그러니 남아있어 학교가 지속되는 건 무의미하다고 여겨져 폐교 처분이 내려졌었지요. 그렇게 결정되고 난 후,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분교를 떠나는 것은 그렇게 큰 일이 아니었어요. 어차피 병우는 큰 도시의 학교에 갈 계획이었고, 기철이는 동생 기수와 함께 섬을 떠나 아빠와 살기로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다율이는 잠시 동안만 온도에 머물며 지내기로 했던 터라 다시 아빠 엄마에게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율인 이렇게 허무하게 온도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온도에 머무는 동안, 새 외할머니와 정이 푹 들어버렸거든요.

새 외할머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네요. 다율이의 아빠가 새 엄마와 결혼을 하면서 생긴 외할머니이니, 표현 그대로 새(新) 외할머니입니다. 외할머니와의 첫 만남부터 그렇게 유쾌하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새 엄마와의 서먹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만난 새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가 다율이 입장에서 썩 좋을 수만은 없었지요. 하지만 외할머니와의 생활은 다율이의 모든 것을 바꿔놓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는, 외할머니의 사랑이 스며들며 다율이의 마음을 빠알간 온기로 물들이고, 쌓아놓았던 벽을 와르르 무너뜨린 것입니다. 거기다가 감나무집 할머니와 낚싯배 할머니, 백살공주 할머니, 민박집 할머니를 비롯한 온도의 이웃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할 친구 기철이까지, 다율이는 온도가 선사하는 행복의 둘레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율이는 온도를 떠난 삶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 다율이가 온도에 계속 머물기 위해 필요
한 것은 온도 분교의 존속이었지요. 하지만 어린 학생 수는 턱없이 부족하니 무언가 꼼수가 필요했고, 그때 다율이의 머릿속에 반짝하고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로 온도 할머니들의 초등학교 입학이지요.

“할머님, 어떻게 할머님이 초등학교를 다니세요.”
직원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농담은 하지 말라는 듯이 웃었다. (……)
“할머님들, 학교에 다니고 싶으세요?” 코골이 아저씨가 정중하게 물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학생인 적이 없었어. 학생으로 살아 보고 싶어.”
백살공주 할머니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도 살아 있다면 꼭 핵교에 가고 싶어유.” (『섬마을 스캔들』 177~180쪽)

어릴 적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느라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할머니들은 배움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온도 분교 학생들과 선생님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었지요. 그렇게 학교에 입학하게 된 온도 할머니들에게도 곧 여름 방학이 다가옵니다. 설레는 맘으로 방학을 기다리며 오늘도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계시겠지요?

따뜻할 온(溫)과 섬 도(島), ‘온도’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음에 차가운 응어리를 지니고 있는 그 누구든지 온도에서는 따스한 기운에 휩싸여 스르르 녹아내리고 맙니다. 『섬마을 스캔들』 덕분에 온도(溫島)를 만난 제 마음의 온도(溫度) 역시 주욱 올라갔습니다. 참으로 ‘마음’ 따뜻한 8월입니다.
이지혜│오픈키드 컨텐츠팀. 2012년 8월엔 내 마음의 온도를 더욱 쑥 올려 줄 사랑 가득한 나만의 스캔들을 하나 만들어봐야겠습니다.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