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8월 통권 제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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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참으로 장한 너에게

윤나래 | 2012년 08월

학교 다닐 때 유난히 수학을 못했던 저는 선생님이 칠판 가득 어려운 수학 문제를 적어 놓고 “누구 나와서 풀어볼 사람?” 하실 때면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이 일제히 교과서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오늘이 3일이니까, 3번! 13번! 23번! 33번! 나와서 풀어 봐.” 비척비척 실내화를 끌며 칠판 앞에 서면 식은땀이 송송 맺히고 일 분이 일 년처럼 길었어요. 팔짱을 낀 선생님의 매서운 시선이 여기저기 아프게 꽂히는 게 느껴졌어요. “…… 잘 모르겠어요.”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자리로 돌아가 앉으면 귀까지 빨개진 내 얼굴이, 쪼그라든 내 마음이 오래오래 부끄러웠지요.

이번에 서평을 쓰게 된 그림책 『날아라 현수야』의 주인공인 현수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아이예요. 짓궂은 친구들은 현수의 몸만 보고 만날 뚱땡이니, 돼지니 놀려대지만 현수는 남들보다 큰 덩치만큼 마음의 크기도 넉넉한 아이예요. 친구들은 현수더러 돼지라고 하지만 현수의 눈에는 촐싹거리는 동욱이가 원숭이처럼 보여요. 맘씨 착한 새별이는 토끼처럼 보이고요.

그림책을 한 장 넘기면 상을 펴고 숙제를 하는 현수가 보여요. 엄마가 이번 참관 수업 때는 꼭 온다고 약속했거든요. 현수는 매미의 한살이를 멋지게 그려서 모두를 놀라게 해주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정작 참관 수업이 있는 날, 꼭 오겠다던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다른 친구들 엄마는 다 뒤에 서 있는데 말이에요. 엄마가 뒤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현수는 너무 떨려서 발표를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얼마나 열심히 한 숙제인데, 발표만 들어서는 모두 현수가 숙제를 안 해왔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엄마만 뒤에 서 있었어도 이러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침까지만 해도 빳빳하게 풀이 서 있던 현수의 마음은 금세 시무룩해졌어요. 게다가 다음 시간은 체육 시간,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옆 반 담임선생님이 반 대항 매트시합을 하자고 해요. 매트 구르기는 현수가 제일 못하는 건데 이를 어쩌지요? 결국 매트 시합에 지고 말자 동욱이는 반 애들 다 보는 앞에서 “뚱땡이 너 때문이야”라며 망신을 주었어요. 현수의 마음은 꼬깃꼬깃 구겨지고 말았지요. 그런데 현수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네요. 급식을 먹으려고 줄을 섰는데 당번이 “야! 너 조금만 먹어.” 하며 이죽거리고 얄미운 동욱이는 현수의 보물 1호인 그림 공책을 낚아채더니 현수가 그린 새별이 그림을 보고 놀려댔어요. 새별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울음을 터뜨렸고요.

긴 하루를 겨우겨우 마친 현수는 터벅터벅 걷다 문득 헛헛한 생각이 들어 동네 분식집에 들어가지요. 떡볶이를 한 접시 시켜 우걱우걱 먹어도 허전한 속은 채워지지 않았어요. 많이 먹는다고 놀리는 친구들이 옆에 없으니 긴장이 누그러져 어묵도 먹고 닭 꼬치에 튀김, 핫도그, 김밥까지 잔뜩 먹었어요. 배가 부르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허한 속은 여전히 그대로였지요. 떡볶이를 입에 한가득 욱여넣은 현수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최고의 날이 될 줄 알았는데, 최악의 날이 되고 말았어요. 아마 현수는 어른이 되어서도 오늘의 눈물 젖은 떡볶이를 잊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는 법. 다음 날 학교에서 선생님은 뒤늦게 현수의 숙제를 칭찬해주었어요. 교실 뒤에 걸린 현수의 그림은 정말 멋져 보였지요. 현수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눈이 어제와는 다르다는 걸 느껴요. 새별이도 현수를 보고 살짝 웃어주었어요. 현수의 기분이 구름 위로 둥실 떠올라요. 어제의 뚱보는 이제야 비로소 자기만의 날개를 찾은 거예요.

현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현수를 보고 그저 뚱뚱한 아이구나, 하고 지나칠지도 몰라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차 알게 되겠지요. 현수가 얼마나 그림을 잘 그리는지 얼마나 의젓한 아이인지 말이에요. 책 뒤표지에 열심히 줄넘기하는 현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폴짝폴짝 뛰느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사랑스러워요. 뚱보 현수의 등 뒤로 보송보송한 날개가 보이는 것 같아요.

윤나래│오픈키드 컨텐츠팀. 이름부터 ‘날개’인 저는 장차 어떤 세상을 날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