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9월 통권 제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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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상 이야기]
한국 과학사 5 ─ 자연을 바라보는 백제의 시선

김연희 | 2012년 09월

백제, 너른 평야에 터 잡다

고구려를 나온 온조와 비류는 한강 남쪽의 너른 평야 지역에 도읍을 정하고 자리를 잡았지요. 그곳에는 이미 마한이라는 50여개 부족의 연맹체가 있었어요. 3세기경 작은 나라들이 서로 세력 키우기 싸움을 하느라 힘이 약해진 틈에 백제는 연맹체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나라가 되었어요.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다른 부족들을 흡수하여 가장 큰 나라가 되었답니다. 이는 백제의 문화가, 고구려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바탕에 마한 사람들이 가진 것이 섞여 종전의 고구려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또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고구려와는 다른 곳을 향했음을 의미합니다.

마한 사람들은 너른 평야에서 오래 전부터 농사를 지었어요. 아무리 자연 환경이 좋아도 비, 바람, 구름이 제때 오지 않으면 한 해 농사는 망치게 됩니다. 또 전염병이라도 돌면 가족들은 물론 마을 전체가 병에 걸리게 되니 큰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사람이 죽는 것도 무섭거니와 병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도 무섭긴 매한가지죠. 전염병으로 한 번 공동체가 허물어지고 난 다음, 살아남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먹을 것을 찾아 헤매게 되지요. 옛날에 병마가 한 번 할퀴고 간 마을에서 다시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무서운 자연으로부터 삶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서 옛날 사람들은 태양이나, 달, 또는 힘 있어 보이는 동물이나 커다란 나무 같은 것들에 의지했어요. 제사도 지내고, 희생을 바치기도 하면서요.

마한 사람들은 사슴, 매, 봉황과 같은 동물과 자작나무나 회화나무처럼 오래 사는 식물들이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어 그들을 지켜준다고 생각했어요. 부족들마다 신성한 것들에게 제사도 지내고, 희생도 바치면서 자기 부족들과의 연결을 강하게 하려고 했지요. 물론 마한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니에요. 당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살고 있는 곳이 어디든 간에 이런 생각을 했지요. 고구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요. 단군왕검이 곰과 환웅의 아들이라는 것, 기억하지요? 백제가 마한을 통합하면서 자연에 대한 생각들이 섞이기 시작했어요. 더불어 중국에서 유행했던 생각들도 들어왔지요. 백제 사람들을 지배했던 생각은 도교와 불교, 그리고 마한과 고구려의 토템입니다.

백제는 한성, 사비, 그리고 공주의 시대를 거치며 성장하기도 하고 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비옥한 평야에 자리 잡았기에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웠어요. 그리고 서해로 열린 뱃길로 중국이나 일본과도 끊임없이 오고가며 생각과 문화를 주고받았어요. 그런 만큼, 문화는 다양했고 생각의 폭이 넓었답니다. 특히, 단순히 중국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백제 나름의 틀에서 소화했기에 문화가 매우 발달할 수 있었지요.

자연은 음양오행으로 이루어졌다

백제 사람들이 바라본 자연을 살펴볼까요? 그들은 자연이 음양오행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백제 사람들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앞에서 살펴본 대로 고구려 사람들도 그랬지요. 고분에 잘 표현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백제 사람들은 더 넓고 더 많은 자연을 음양오행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물론 음양설은 중국에서 발전했어요.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지니는 궁금증 가운데 하나였지요. 음양오행설은 그 질문에 대한 중국의 그럴 듯한 대답이었습니다. 음양오행설은 “태초 엄청나게 커다랗고 넓은 공간에 최초의 기가 있었고, 그 기의 움직임이 음양을 낳았다. 음양 가운데 가볍고 맑은 기운이 모여 하늘을, 탁하고 무거운 기운이 모여 땅을 이루었다. 양기가 모여 열의 성질을 가지게 되면서 불이 생기고, 불 가운데 가장 순수한 것이 태양을 이룬다. 음기가 모여 물의 성질을 가지게 되면서 물 가운데 가장 순수한 기가 모여 달을 이루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오행은,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는 목의 기운, 왕성한 생명활동을 의미하는 화의 기운, 각종 기운들을 종합하고 제어하고 중화하는 토의 기운, 모여 결정을 이루는 금의 기운, 힘을 모으고 저장하는 수의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오행은 음양이 낳은 것으로 설명됩니다.

옛사람들은 음양오행으로 자연 만물이 생겨나고 자라고 죽어가고 변하는 모습을 이해하려 했어요. 그들이 생각하기에 하늘의 동서남북에 따라 오행이 있습니다. 고구려 고분에서처럼 말입니다. 땅에도 방향에 따라 오행이 있지요. 그리고 하늘의 별에도 오행이 있어요. 사람의 오장 육부에도,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싫어하고 욕심내는 인간의 성격에도 오행이 있습니다. 파랗고 빨간 색깔에도, 하루의 시간에도, 일 년의 계절에도 오행이 있지요. 쌀, 보리, 좁쌀, 수수와 같은 곡식과 자두, 복숭아 같은 과일에도, 그리고 벌레와 동물들에도 있다고 여겼습니다. 자연 오만 가지에 음양오행이 있는 셈이지요. 이렇게 하늘과 땅과 사람과 자연을 연결시켜 자연을 설명했지요.

백제 사람들은 음양오행을 중국의 도교와 유학을 통해 받아들였어요. 백제가 매우 학구적인 문화를 가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유학 서적들을 공부했고, 일본에까지 그들이 공부한 바를 알렸지요. 열심히 공부한 덕에 자연의 이치를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는 이론들을 터득할 수 있게 되었지요. 백제 사람들은 자연의 질서와 순리를 보이는 음양오행이 균형을 이루면 사람 사는 것도 평안해진다고 생각했고, 이런 생각들을 기록에 남겼어요. 그저 생활에 묻어 전해 내려오던 토속신앙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자연의 변화를 단지 해나 달, 몇몇 동물과 식물들의 신령스러운 기운으로만 여기던 시절보다는 설명에 질서가 잡히고 정교해지고 세련되어졌지요?

괴이한 일이 있으니 뭔 일이 일어나겠소이다

백제 사람들은 음양오행으로 자연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늘을 두려워하기도 했어요. 음양오행은 하늘에서 나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변화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무서운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비가 많이 내리면 많이 내려서 걱정이고, 적게 오면 적게 와서 걱정이며, 더울 때 추워도 문제고, 추워야 할 때 따뜻하다면 염려 되지요. 바람이 안 불어도 문제고, 너무 많이 세게 불어도 문제였어요. 이렇게 자연이 어그러지는 것은 곧 농사의 풍흉과 연결되고, 풍흉은 생명의 영위와 연결되지요.

그래서 백제 사람들은 이런 자연의 이상스러운 변화를 지배자와 연결하곤 했어요. 자연에서 보이는 자연스럽지 못한 일은 하늘이 그들의 지배자에게 암시를 내리는 일이라고 본 거예요. 예를 들면 “왕이 거만하면 장마가 지고, 무질서하면 가뭄이 들고, 안락만 하면 덥기만 하고, 조급하게 처리하면 춥기만 하고 도리를 분별하지 않으면 바람이 부는 것”이라고요. 이 예는 비록 중국 경전 가운데 하나인 서경에 쓰인 말이지만 백제 사람들도 이를 따랐답니다.

그 증거들을 찾아볼까요? 백제를 연 온조왕 때에 벌어진 괴이한 일이 벌어졌어요. 흰 사슴이 나타난 거예요. 이 흰 사슴은 왕의 밝은 지혜가 백성에게까지 이를 것을 의미하는 일이라고 설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물이 넘치고 말이 머리가 둘 달린 소를 낳았습니다. 이는 왕의 세력이 크게 떨칠 일로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라 여겨 마한과 진한을 합병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큰 기러기(鴻雁)가 나타난 일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저절로 항복할 조짐으로 해석되었지요. 온조왕 때에는 새로 나라를 만든 만큼, 자연의 많은 일들이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일로 읽힌 거지요.

나쁜 일을 암시하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징조들은 대부분 왕의 죽음을 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햇무리가 세 겹으로 둘러졌고, 대궐 안 큰 나무가 저절로 뽑혔어요. 이 일이 있은 지 2달 만에 13대 왕인 근수구왕이 죽었습니다. 왕궁 서쪽에 흰 기운이 마치 비단을 쳐 놓은 것처럼, 나타난 지 6개월이 되던 날 16대 아신왕이 죽었고요, 검은 용이 한강에 나타났다가 날아간 달에 19대 비유왕이 죽었습니다. 노파가 여우로 변하고 사라지고 남산에서 호랑이가 서로 싸웠으며, 봄에 서리가 내려 보리농사를 망친 해 겨울, 동성왕이 살해당했지요. 이런 일들이 『삼국사기 백제편』에 종종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괴이한 일을 해석하는 것에 백제 특유의 생각이 드러나기도 한답니다. 말이 소를 낳거나, 머리 둘 달린 송아지가 태어난 일 같은 경우는 음양오행의 원조인 중국에서는 나쁜 일로 여겼습니다. 중국과 다른 해석은 백제가 중국의 음양오행을 백제의 전통 속에서 다시 해석하는 자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이런 자연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이 정치 변화를 미리 알리는 일이라는 생각은 비단 백제 사람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인간을 다스리는 권력이 하늘을 포함한 자연으로부터 잠시 얻은 것이라는 생각과 그만큼 자연의 힘을 두려워한 흔적은 많이 발견된 것이지요. 당시 사람들의 공통된 감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예요. 하지만 백제 사람들은 중국으로부터 음양오행을 수용하면서도 중국과는 다르게 자연의 변화를 읽어냈고, 백제의 정서에 맞게 자연의 변화를 해석했습니다. 백제는 자신만의 자연 해석 방법을 만들어 냈답니다.
김연희 | 서울대학교에서 한국과학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 역사 속에서의 자연 이해와 자연 이용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양 과학과 우리 전통 과학이 만났을 때의 이해 방식에 관해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과 『강은 어떻게 흘러가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