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9월 통권 제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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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시가 있는 풍경]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어린이시교육연구회 | 2012년 09월

우리 반 아이의 시— 저녁이 있는 삶

얼마 전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가 되기 전과 후,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저녁시간이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먼저 아이의 목욕을 시킨다. 아내가 무거운 아이를 안고 씻기에 버거운 것 같아 내가 자청한 일이다. 아이를 재운 후에는 아내와 함께 저녁 준비를 하고 늦은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고 날 때쯤 아이가 잠에서 깨어난다. 아직 백일도 안 된 녀석이라 두 시간마다 젖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젖을 먹고 난 아이를 다시 재우고 나면 10시. 아이는 그때부터는 조금 긴 밤잠을 잔다.

학교 일이 많은 학기말 즈음이라 조금 버거울 때도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스킨십을 많이 한 아이가 성장과정에서 부모와 좀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어느 책의 한 구절을 기억하고 있는 아내의 육아방침에 그저 따를 뿐이다.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          김동하(경기광주 경안초 5년)

우리 아버지는 쉬는 날이
2주에 딱 한번 있다.
아빠는 나갈땐 씩씩하게 나가셔서
돌아오시면 녹초가 되어있다.
아빠는 일을 18시간 정도 한다.

나는 아빠보고 “아빠 않 힘들어?” 하면
아빠는
“하나도 않 힘들어. 그리고 등어리 좀 밟아라”
이렇게 말하신다.
아빠는 우리집 보물인 것 같다.                    (2012. 6. 15)

우리 반 동하의 아버지는 하루에 18시간 정도 일을 하신다. 출퇴근시간을 포함한 것일 테니 아침 6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퇴근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휴일은 한 달에 두 번뿐이다. 주 5일제가 정착되었다는 요즘에도 동하 아버지는 주 7일 근무를 하신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신 동하 아버지가 그만큼 정당한 보상이라도 받으시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돈을 벌고 싶다          김동하

우리는 돈이 없다.
나는 돈을 벌고 싶다.
돈을 벌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2012. 5. 18)

엄마          김동하

엄마는 나에 대해 모른다.
그래서 화를 낸다.
방에 들어가 흑흑 울다가
밥냄새 나면 나온다.                    (2012. 4. 13)


동하네 형편은 썩 좋지 못하다. 동하 어머님도 부족한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함께 일을 하신다. 그렇게 부부가 쉬지 않고 일을 해도 형편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아니 더 어려워질 뿐이다. 열심히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손에 쥐지 못한 동하 아버지의 손에는 소주병이 떨어질 날이 없다. 그 때문에 어머니와 싸움은 더욱 잦아진다.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하는 환경을 살펴보았을 때 책을 통한 습득보다는 부모와의 식사 시간 대화를 통한 습득이 양과 질 모두 뛰어나다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동하 가족의 저녁 시간은 동하와 동생, 둘뿐일 때가 많다. 부모님께서 모두 늦게 집에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동하는 저녁에 주로 게임을 하며 부모님을 기다린다. 자녀교육을 통해서라도 계층 상승의 욕구를 실현시키고 싶은 동하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게임에 빠진 동하는 자연히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돈이 없어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기 전의 이야기이거나 돈이 정말 아주 조금 부족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결혼과 동시에 빚쟁이로 전락하는 수많은 신혼부부들이 있고, 육아 비용 부담으로 출산을 미루는 가정이 있으며, 생계를 잇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장들이 있다. 그들의 저녁 시간은 어떠할까?

‘저녁이 있는 삶.’ 올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 한 예비 후보자의 슬로건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의 최대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복지에 대해 잘 표현한 문구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터에서 땀 흘려 일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으며, 저녁 시간은 가족과 함께하는 삶. 동하 가족이 행복한 저녁 식사를 원하는 건 욕심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이다. (이득헌, 경기광주 경안초)


우리 반 시쓰기 수업 - 말 좀 해 주세요

다은이 전학을 가고 싶단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 방과후 교실 코디인 다은 엄마가 나를 찾아 왔다. 다은이 일주일 전부터 밤마다 울면서 전학을 보내달라고 한단다. 옆 학교에 유치원 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다고 그 학교로 전학을 보내달라고 밤마다 보챈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교직 경력 십오 년 만에 처음 듣는 말이다. 내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보내고 싶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학급 생활에 불만을 품어 전학을 보내 달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일단 다은 어머님께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은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은은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왜 전학을 가고 싶냐 물어보니 옆 학교에 유치원 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어서 전학을 가고 싶단다. 우리 학교에는 자기와 마음 맞는 친구가 없단다. 특히 여자 친구들이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단다. 자기들끼리만 놀아서 학교 오고 싶은 생각이 없단다. 엄마가 전학 보내준다고 했다며 더 이상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무덤덤하게 말하는 다은이를 보고 있는데 화가 났다. 사실 다은에게도 문제가 있다. 친구들과 있을 때 자기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때가 많다. 그리고 자기 마음 속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하지 않아 친구들은 다은이 마음을 잘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다은이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입학을 하고 모든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재미를 느끼며 즐겁게 생활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1학기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데 안타까웠다. 할 수 없다. 이럴 때는 정면 돌파를 하는 수밖에. 1학년 아이들이라 자기의 행동이나 말이 다른 친구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자기 위주로 행동하기 때문에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모두가 다 같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반 노래도 이원수 선생님의 시 「햇볕」으로 정해서 하루에 한 번씩 꼭 불렀는데.

목요일 시쓰기 시간에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할 생각으로 아이들한테 시 한 편을 보였다.

우유 당번          5학년 박연실

광복이가 나한테 화내면서
“우유 갖고 와!” 그랬다.
내가
“근데 왜 화내면서 말해!” 그랬다.
원래 내가 우유 당번이었는데
광복이가 나한테 화냈으니까
내가 우유를 안 갖고 왔다.          (『까만손』, 탁동철 엮음, 보리, 2002)

시 공책에 시를 따라 쓰게 하고는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 내용이 어렵지 않고 읽으면 바로 이해가 되기에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기가 참 좋았다. 사실 이 시를 고르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다은처럼 친구랑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가 나오는 시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 대부분이 친구를 따돌리는 행동은 나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기 마음 속 이야기를 편하게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 생활 속에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가벼운 시를 찾다가 이 시를 골랐다.

광복이 말을 들은 연실이 기분이 어땠을지 먼저 이야기 나누었다. 광복이 말을 함부로 해서 연실도 화가 났을 것 같다고, 또 연실이 많이 속상했을 것 같다고 한다. 연실이 말을 듣고 광복은 어땠을지 다시 이야기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순식간에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두 편으로 나뉘었다. 다은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시를 공부했는데 갑자기 남자와 여자 편 가르기가 되어 버렸다. 순간 다은이 생각이 나서 다은이를 바라보니 다은이도 여자 편에 끼어서 막 남자 아이들한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싶어 다시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광복이 화를 내 연실이 우유를 가지고 오지 않아 반 친구들이 우유를 먹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다. 더 말을 이어갔다가는 또 싸움이 될 것 같아 그만 두고 마지막으로 아이들한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연실이 반은 그날 우유를 먹었을까요? 아니면 먹지 못하였을까요?” 아이들이 모둠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이들을 다시 바르게 앉히고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유 당번」 시가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입학하자마자 부산에서 전학을 온 혜민이 참 좋았다고 말했다. 자기가 전학을 왔을 때 친구들이 자기한테 말도 함부로 하고 잘 놀아주지 않아 힘들었다며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울고 있는 혜민이한테 가서는 어깨를 도닥거리며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지금은 친구들과 즐겁게 잘 지낸다며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다시 웃었다. 다른 아이들도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대부분 말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다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은이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해 주기를 바랐는데 다은은 얌전히 앉아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다은한테 말을 걸었다.

“다은님! 요즘 학교생활 어때요? 친구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아서 많이 힘들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은이 바로 울기 시작했다. 다은이 왜 우는지 아이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울고 있는 다은이 옆에 다가가서 다은이 왜 울고 있는지를 물었다. 아무도 자기하고 안 놀아줘서 유치원 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는 학교로 전학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여자 아이들 몇몇이 같이 울었다. 울고 있는 다은에게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여자 아이들이 나하고는 아무도 안 놀아줘요. 나도 같이 놀고 싶은데 아무도 같이 안 놀아줘서 혼자 줄넘기 하고 놀아요.” 다은이 말이 끝나자 다솔이가 미안하다며 먼저 다은한테 다가갔다. 자기는 다은이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다은을 위해서 그랬단다. 다른 여자 아이들도 다은이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며 이제는 같이 놀자고 손을 잡았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내가 참 고마웠다. 이럴 때 내가 아이들한테 해 줄 수 있는 말이 딱 하나 있다. “자, 그만 울고 이제 우리 시 쓰자.”

전학          이다은(거제 사등초 1년)

내가 전학을 가려고해서 마음이 아팠다.
잘 때 전학 가는 꿈을 꿨다.
친구들이 이제 재밌게 놀아준다.                    (2012. 7. 24)

이다은          김지윤(거제 사등초 1년)

다은이하고 안 놀아 주니깐
다은이 얼굴이 슬퍼서
내가 슬픈 것 같다.                   (2012. 7. 24)

김효진          이동호(거제 사등초 1년)

내가 효진이를 때리면
효진이도 나를 때린다.
근데 평소보다
살살 때린다.
효진이에 진짜 마음을
알겠다.                    (2012. 7. 24)

점심시간에 다은 엄마가 찾아왔다. 이제 전학 안 가도 된다고 다은이 말했다며 고마워했다. 고맙다는 인사 받기가 참 쑥스러웠다. 내가 좀 더 다은이 마음을 일찍 읽었다면 다은이 고통 받으며 학교생활을 하지 않아도 됐는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 다은이는 행복한 얼굴로 학교생활을 한다. 쉬는 종이 치면 여자 아이들은 다은한테 같이 놀자며 손을 잡고 나간다. 다은이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친구 문제로 힘들어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친구들에게, 아니면 나한테 먼저 말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우유 당번」이라는 시 덕분에 다은이 마음을 열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솔직히 말하면 못난 담임을 믿고 마음을 열어 준 아이들한테 고맙다. 자기의 아픈 상처를 당당하게 말해준 혜민이 없었다면 이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졌을지 의문이다. 혜민이 덕분에 수업에서 가장 힘든 부분을 물 흘러가듯이 쉽게 이끌어 갈 수 있었다. 만약 혜민이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난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하고 철저하게 수업 준비를 해도 수업을 하다보면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수업에서는 더 그렇다. 그럴 때면 난 아이들 눈치를 살핀다. 아이들한테 제발 좀 도와 달라는 눈빛을 보낸다. 그러면 아이들이 나에게 답을 준다. 아이들이 진짜 행복해하며 웃는데 나는 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최종득, 거제 사등초)
어린이시교육연구회 | 어린이시를 함께 공부하며,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시쓰기 수업도 하는 교사들의 연구모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