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통권 제1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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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만드는 이야기]
사람 사는 세상에서 꿈 꾸기

안성호 | 2012년 10월

내가 태어난 곳은 요즘 ‘함안보’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바로 그 함안이다. 함안은 주변 낙동강과 남강의 지류가 흐르는데, 지대가 낮아 여름만 되면 홍수가 났다. 그래서 강 양쪽으로 둑이 있었고, 거기에 소를 방목시키곤 했다. 이런 시골에서 자란 나는 꿈이 목장주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길에서 만나는 건 소와 염소, 우체부, 면서기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하여 어찌 어찌 2005년에 출판사를 열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어린이가 꿈을 설계하도록 도와주는 일이었다. 어린이가 장래 희망을 설계하고, 그 희망을 완성시켜 가는 이야기들을 책으로 묶어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 이렇게 해서 출발한 시리즈가 도서출판 리젬의 ‘꿈을 주는 현대인물선’이다.

네 꿈이 뭐냐고 묻기 전에 꿈 꿀 권리를

그러나 이게 쉬울 리 없었다. 나름 크게 소문난 인물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었고, 그들 중 몇몇은 직업이 중첩되는 IT분야 인물이었다. 어린이들이 읽기 쉬운 말로 된 것도 아니었고, 그중 괜찮은 인물 책을 구입하려니 시리즈 전체를 계약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기도 했다. 한국에서 좋은 인물을 찾는 게 중요했다. 물질적으로 성공하지 못 했더라도 모범이 되는 사람,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해 삶을 살아온 사람, 나름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스토리 또한 많은 사람.

이렇게 정하고, 우선 생각난 몇 분에게 연락을 해보니 신생 출판사라 그런지 쉽게 거절당했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출판사는 영업 이익을 남기는 사적 경영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고, 나 역시 이 부분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는 수 없이 『거위의 꿈 폴 포츠』라는 도서를 만들기로 했다. 휴대폰 판매 점원에서 성악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그를 통해 하면 된다는, 그리고 인생은 도전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진행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뜻밖에도 오바마가 당선되었고, 나는 이때 오바마를 두 번째 인물로 선정하여 만지고 있는 중이었다.

하여 순서를 바꿔 『오바마 대통령의 꿈』을 첫 번째 책으로 출간하였고, 연이어 『거위의 꿈 폴 포츠』를 펴냈다. 여기서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같았다. 원래 계획은 3권으로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4권은 그라민 뱅크 유누스, 5권은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박원순이었다. 이 중 특히 안철수 교수는 변방의 작은 출판사에 눈길이라도 줄까 싶었다.

희망도 좌절도 없던 순간

당시까지 출판사는 이십여 종 출판을 했지만 직원들 급여를 줄 여력도 없었다. 출간 책 수가 늘어 갈수록 매출이 오르기는커녕 부채만 점점 쌓여갔다. 산술적으로 출판을 하다가는 쪽박 찬다는 출판 선배의 말이 엉터리가 아니었다. 지업사, 인쇄소, 작가 고료에 2억 가까운 빚만 진 채 한 달 한 달 돈 구하기에 급급하던 2009년 상반기, 직원들이 퇴근하고 난 뒤 안철수연구소에 메일 한 통을 보냈다.

어떤 희망도 좌절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답신이 왔다. 구체적인 제안서를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내 물꼬로 스며들면 언젠가 넓은 논도 다 적실 것이라던 빈농 부모님 말대로, 없던 희망이 살짝 보인 순간이었다. 그날 바로 제안서를 보내고 며칠 뒤, 안철수연구소에서 답장이 왔다. 안철수 씨 본인이 시간을 봐서 원고를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필자가 원고를 보내오고, 우리는 그림을 그렸다. 최대한 사실적인 그림으로 질감을 높이려고 했다. 그런데 번번이 표지 그림에서 의견이 갈렸다. 우리는 필자가 책을 들고 있는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서 표지에 앉히려고 했는데, 필자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며 재미있는 일러스트로 표지를 해보자고 말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생각이었다.

우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 교수를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게 왠지 희화화하는 것 같아 무게감 있게 사실화로 그렸는데, 정작 그는 어린이의 눈높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원고가 편집 과정에 있을 때는 필자가 미국에 있었다. 메일로 필자가 원하던 일러스트로 표지 작업을 해서 보내니, 마침내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그러면서 비서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가슴을 쳤다. “그렇게 하는 게 출판사를 위해서도 좋을 겁니다.”

그랬다. 어린이들은 안철수가 책상에 앉아 있는 일러스트 그림을 더 좋아했다. 독자를 생각하는 시각이 출판사 사장보다 넓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곡절 끝에 만들어진 책이 『행복바이러스 안철수』이다. 그 후, 연구소로 필자를 만나러 갔다.

낯붉히던 책상

그는 비서를 통해 내 이야기를 조금 들은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슬슬 낯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오랫동안 문학도로, 문학청년으로 책을 알 만큼 안다고 자부했는데, 그 앞에서는 꼬리 내린 생쥐 꼴이었다. 그는 책상 가득 신간 소설과 인문서, 자연과학, 사회과학 도서를 쌓아놓고 탐독한 흔적이 역력했고, 아마존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외서들까지 원서로 일람하고 있었다. 의학 박사이자 IT분야 전문가, 경영자, 교육자로서 저렇게 열심히 책을 읽는구나, 싶었다.

“내 인세 중 1%를 희망제작소에 기부했으면 합니다.” 나중에 필자 안철수는 이렇게 말했다. 듣기 좋고 보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초판 인쇄 3,000부의 인세 중 1%는 금액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하자, 그는 자신이 미리 기부할 수는 없는지 옆에 있던 비서에게 묻기도 했다.

그동안 만나왔던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국 사회의 고착화된 공부의 원리가 가르치는 것도 그렇듯, 어느 정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오르면 책 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람 대하는 방식도 수직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안철수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삶의 농축

안철수 다음으로 출간을 기다리는 인물은 그라민 뱅크 유누스였다. 어렵게 어렵게 『희망을 나누어 주는 은행가 유누스』를 출간하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외국 인물들로 시리즈를 다 채울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행복바이러스 안철수』를 출간하면서 얻은 감동이 너무나 뜨거웠기에 이 필자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이 국내에 누가 있을까, 고민 끝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만나기로 했다.

어렵게 노크를 한 박원순 상임이사 방은 그야말로 헌책방이었다. 손가락 하나 툭 건들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방. 별의별 자료들과 이 자료들 속에 일부처럼 보이는 박원순. 이 방에서 우리는 그 분의 농축된 삶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스무네 살에 등기소장이 되어 강원도 정선으로 갔던 이야기는 웃음을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모심기 실적을 보고 하라고 해 사실대로 보고하면 그날부로 잘리니, 다들 부풀려 상부에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매일같이 낚시나 하며 시간을 보내니, 젊은 박원순으로서는 통탄할 노릇이었다고 한다.

자료를 건네받아 원고와 그림 작업을 다 마치고 찾아갔을 때, 박원순은 책의 저자 이름을 바꿔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 원고는 내 원고지만 그것을 만지고 쓴 사람은 따로 있지 않습니까? 그 분이 이 책의 주인입니다.”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희망제작소에 기부한다는 말을 넣어주세요.”

이렇게 하여 『아름다운 사람 박원순』에는 필자로 박원순이 아니라 이 원고를 추리고 윤문한 작가의 이름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수익금 중 5%는 희망제작소에 기부한다’는 문구가 들어가게 되었다.

사람 사는 세상

어린 아이들에게 성공한 사람이라며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 고민이 깊을수록 범위는 좁아지고,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실제 몇 명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가 금세 포기하기도 했다. 어렵게 시작해서 크게 성공했는데, 그것은 자신이 틈틈이 사둔 땅 옆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을 출간했다. 그 즈음,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는 참담한 일이 발생했다. 그 분 살아 계실 때 몇 번 방문객으로 감나무 아래에서 뵌 적이 있었다. 또 부산 서면 길거리에서 본 적도 있었다.

이 인연을 놓치기 싫었다. 그래서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림은 손문상 화백이 맡겠다고 나섰고, 글은 봉하마을 근처에서 자활 운동을 벌이던 후배 작가가 맡았다. 그리고 노무현 서거 2주기에 맞춰 『노무현 대통령의 꿈과 도전』을 출간하게 되었다. 글과 그림이 좋아 2주기에 맞춰 봉하마을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우리 출판사는 사람들을 감별하거나 재단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선택의 기준은 나름 위민정신과 노력이 뒷받침된 창의력에 두었고, 그 정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책을 출간할 때마다 살짝 긴장된다. 가장 최근에 낸 책이 『희망을 노래한 밥 말리』와 『세상의 큰 별 스티브 잡스』이다. 이들 역시 세상을 향해 투포환을 던지던 사람들이었다.

앞으로 출간 예정인 인물로 권정생, 만델라, 뒤샹이 있다. 이들 역시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작은 버팀목임에 분명하다. 이들이 지나간 길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안성호 | 2002년 『실천문학』 신인상(단편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경향신문』에 시가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 『때론 아내의 방에 나와 닮은 도둑이 든다』 『누가 말렝을 죽였는가』, 장편소설 『마리, 사육사, 그리고 신부』가 있다. 현재 도서출판 리젬 발행인이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