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3월 통권 제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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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락, 우리 음악가]
송경운의 비파 솜씨에 견주어 어떠한가?

남화정 | 2013년 03월

조선 시대, 전라북도 전주의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새벽달이 어슴푸레 빛나고 있는 이른 아침, 상여 하나가 강을 건너 산으로 올라갑니다. 상여는 죽은 사람을 태우고 묘지로 갈 때 사용하는 꽃가마입니다. 마지막 가는 길이 평안하고 즐거우시라고 알록달록 아름답게 치장한 꽃가마를 태우고, 따르는 사람들은 돌아가신 분이 저승에서도 복을 받고 행복하시라는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 노래를 상여 소리라고 하지요. 아무리 예쁜 가마에 태우고, 좋은 노래를 불러도, 마지막 이별이기 때문에 슬플 수밖에 없는데요, 이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울음소리와 노랫소리 말고도 비파라는 악기 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상여 행렬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세상에 저런 사람이 또 있을까…” 하면서 울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는 겁니다. 누구의 장례식인데 이런 광경이 펼쳐진 걸까요?

이날 장례식의 주인공은 비파 연주자였던 송경운 선생님이었습니다. 송경운 선생님은 죽음을 예감하고는 제자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답니다. “나는 음악을 직업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내가 죽거든 나를 아무산 양지 쪽에 묻어 다오. 그리고 도리로 보아, 너희들은 다 내가 가르친 악기를 가지고 와서 나의 혼령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혹시라도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여라.” 제자들은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을 지키기 위해, 슬픈 중에도 저마다 비파를 가지고 와 자기가 배운 음악을 정성껏 들려드린 게지요.

송경운 선생님은 원래 서울 어느 양반집의 하인이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주가 있어서 9살 때 비파를 배우기 시작했고요, 13살 때는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질 정도였다고 해요. 그래서 하인 명단에서 이름을 빼고, 작은 벼슬도 얻게 되었습니다. 얼굴은 깔끔하고 눈에는 총기가 있고, 말도 잘하는 데다 비파 연주까지 잘 했으니, 선생님의 집에는 날마다 그를 초청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비파는 지금은 연주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옛날에는 선비들이 즐겨 연주하던 악기였습니다. 요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먼저 피아노를 배우는 것처럼, 옛날 사람들은 비파부터 배웠다고 해요. 그리고, 궁중에서 악공을 뽑을 때도 비파로 시험을 봤다고 하니까 옛날 사람들이 비파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짐작이 되지요?

비파는 서양 악기인 기타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몸통은 나무로 만들었는데, 이제 막 떨어지려고 하는 물방울처럼 둥글게 깎고요, 한쪽 끝으로 목을 길게 뺍니다. 목에는 ‘괘’라고 하는 막대기가 가로 놓여 있구요, 그 위로 줄이 놓이지요. 기타를 치는 것처럼 왼손으로 줄을 괘 위로 누르고, 오른손으로 줄을 쳐서 소리를 내는데, 손을 밖으로 밀어서 소리 내는 걸 비(琵), 안으로 끌어들여서 소리 내는 것을 파(琶)라고 한답니다. 이렇게 연주하는 모습에서 ‘비파’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연주되던 비파로는 향비파(鄕琵琶)와 당비파(唐琵琶),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향비파는 줄이 다섯 개에 목이 곧게 뻗어 있어서 직경비파라고도 하구요, 오른손에 얇은 대나무를 깎아 만든 ‘술대’라는 막대기로 줄을 뜯습니다. 당비파는 줄이 네 개, 목은 굽어 있어서 곡경비파라고도 하는데, 술대 대신 오른손에 가짜 손톱인 가조각(假爪角)을 끼거나 ‘발목(撥木)’이라고 하는 나무조각으로 줄을 쳐서 소리를 냅니다.

향비파의 향(鄕)은 우리나라를 말하는데,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악기는 아니고요, 서역, 그러니까 지금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고구려를 거쳐 신라로 전래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당비파가 들어오게 되자, 당비파와 구분하기 위해 원래 우리나라에 있던 악기라는 의미에서 향비파라고 이름을 붙이게 된 거죠. 통일신라 때에는 가야금, 거문고와 함께 가장 중요한 현악기로 꼽혔습니다.
당비파의 당(唐)은 중국을 의미합니다. 통일신라 시대 때 만들어진 감은사 탑 속 사리함에 당비파를 연주하는 천녀(天女)의 모습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 무렵에 중국을 통해 전래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요. 향비파는 원래 우리나라에서 연주하던 음악인 향악(鄕樂), 당비파는 중국에서 전래된 음악인 당악(唐樂)을 연주했었지만, 조선 시대부터는 향악에도 당비파를 연주했다고 해요.

단원 김홍도 선생님이 그린 「포의풍류도」라는 그림에는 당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선비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림에는 ‘종이로 만든 창과 흙벽으로 된 집에서 평생토록 벼슬은 멀리한 채, 시나 읊조리며 살고 싶다’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비파는 그렇게 세상일에 욕심이 없는 선비의 마음을 상징하는 악기였던 거지요.

산사(山寺)에 가면, 입구에 천왕문이 있는데, 여기에는 무서운 얼굴을 한 천왕(天王)들 네 분이 서 계십니다. 나쁜 잡귀들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는데, 잘 살펴보면, 그 중 한 분이 비파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에요.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역사 시간에도 비파라는 단어를 만날 수 있는데요, 청동기 유물 중에 비파형 청동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청동으로 만든 칼인데, 그 모양이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비파랑 닮았다고 해서 비파형 청동검이라고 부른답니다. 비파형 청동검이라는 이름을 만들 때만 해도 비파는 이름만 말하면 누구나 아는 악기였던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송경운 선생님은 누구나 좋아하고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비파를 아주 잘 연주했던 분입니다. 그래서 부잣집이나 높은 벼슬에 있는 사람들이 잔치를 벌일 때면, 늘 송경운 선생님을 찾았고요, 연주가 끝난 후에는 상을 후하게 주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비파나 음악 말고도 누가 활을 잘 쏜다거나 말을 잘 탄다거나 바둑을 잘 둘 때에도 그 실력을 말할 때면 늘 이렇게 묻곤 했답니다. “송경운의 비파랑 비교해 보면 어떤가?”라고요. 동네 아이들이 우스운 농담이라도 하면 “송경운의 비파랑 비교해 보면 어때?”라고 했고요,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들마저도 “송경운의 비파랑 비교해 보면 어때?”라는 말부터 배울 정도였다고 하네요 “송경운의 비파랑 비교해 보면 어때?”라는 말은 당시 유행어였던 겁니다.

이렇게 바쁘게 활동하던 송경운 선생님은 1627년 정묘호란이라는 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을 떠나 떠돌다가 전라북도 전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집에는 온갖 꽃과 나무들을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고요, 꽃이 핀 달밤이면, 비파를 안고 꽃길을 거닐면서 연주를 했답니다. 음악에서 은은한 향기가 났을 것 같지요?

그 무렵, 전주는 아주 큰 도시였지만 백성들은 가난해서, 관청 말고는 음악을 연주하는 곳이 없었다고 해요. 그러던 참에 마을 사람들은 송경운 선생님이 연주하는 비파 소리를 듣고, 차츰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지요. 일하다가도 비파 소리가 듣고 싶으면 송경운 선생님을 찾아가 음악을 들려 달라고 청하고, 선생님은 또 선생님대로 일을 하던 중이라도 얼른 비파를 챙겨와 법도를 갖추어서 음악을 들려주었답니다. 가마를 타고 오는 귀한 손님이나 혹은 그 가마를 메던 천한 사람이라도 가리지 않고,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소인이 천한 몸인데도 귀하신 분들을 많이 뵙는 것은 소인의 손재주 때문입니다. 소인이 어찌 감히 연주하기를 마다하며,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했다는 겁니다. 자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공경하는 마음이 느껴지지요?

하지만, 송경운 선생님에게도 고민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옛날 음악이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아서 그 속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의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다 당시에 유행하는 음악만 듣고 싶어 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옛날 음악들을 조금 바꿔서, 유행하는 음악들 사이사이에 섞어 연주를 했답니다.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즐거워하는 사이에 옛 음악에도 익숙해지고 그 의미를 알았으면 했던 거였지요. 내 음악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취향까지 배려해 주고, 그러면서도 음악을 상하지 않게 하는 지혜였습니다. 이것 역시 자신의 음악을 듣는 사람에 대한 공경의 마음이었던 거지요.

송경운 선생님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약속을 지키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도 절도가 있어서 온 전주 사람들이 좋아하고 공경했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은 상여 행렬을 보고, 제자들의 비파 소리를 듣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어찌 이 같은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어쩌다 전주에 와서 전주 사람들을 기쁘게 하다가 생애를 마쳤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아아, 착하구나, 경운의 마음이여!”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비파 연주법이 잊히고 말았는데요, 요즘은 옛 악기를 복원하고, 중국에서 연주법을 익혀 오는 사람도 있어서 점차 비파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분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남화정 | 국립국악고등학교와 이화여대에서 거문고를 전공했습니다. 국악방송과 KBS라디오에서 국악 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국악 한두 곡쯤 떠올릴 수 있기를, 전통 속에서 새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펴낸 책으로 『사람이 있는 곳에 흘러라 우리 음악』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