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4월 통권 제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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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우리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
머슴
――일하는 사람, 꿈꾸는 사람

서정오 | 2013년 04월

옛이야기에 심심찮게 나오는 인물 가운데 머슴이 있다. “옛날에 한 머슴이 살았는데…”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흔한 만큼 낯설지도 별스럽지도 않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이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대강 짐작한 채 편안한 상상 속으로 빠져든다. 그 짐작이란 주인공이 고생 끝에 반드시 행운을 얻으리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결코 그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다.

머슴은 일하는 사람이다. 가난하여 자기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남의 집 일을 해 주고 그 대가로 삯을 받아 먹고살면 머슴이 된다. 드물게는 제 집에서 드나들기도 하나 대개는 주인집에 얹혀 먹고 자며 일을 해 준다. 일 가운데는 농사일이 으뜸이고, 그밖에 자질구레한 집안일 허드렛일도 머슴 몫이다. 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머슴은 새경을 받는데, 이로써 주인과 고용 관계가 이루어진다.

머슴이 받는 새경은 말 그대로 가지가지다. 일 잘하는 상머슴일 경우 꽤 많은 돈이나 곡식을 받기도 하지만, 일에 서툴거나 나이 어린 머슴은 끼니와 잠자리를 얻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했다. 이 모든 계약이 몇 마디 말로 이루어짐은 물론이다. 그러다 보니 머슴에게는 고용주와 관계 맺음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주인이 권세 있는 양반이거나 돈 많은 부자일수록 상하 관계가 굳어졌는데, 이렇게 되면 머슴 처지에서는 억울한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욕심 많고 심술궂은 주인을 만나면 머슴으로서는 참 신세가 고달파진다. 만약에 주인이 경위에 어긋나는 짓이라도 하면 속은 새카맣게 타 먹장이 된다. 이 경우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말발이나 서는 다른 양반이나 벼슬아치들은 죄다 주인 편이기 때문이다. 이때 머슴이 주인에게 바로 대드는 것은 슬기롭지 못하다. 일을 바로잡기는커녕 치도곤이나 먹기 십상일 테니까. 그래서 꾀를 써야 한다. 꾀를 쓰되 묘하게 써서 상대가 옴짝달싹도 못 하도록 만드는 게 상책이다.

‘먹여 주고 재워 주고’라는 이야기를 보자. 옛날 어느 가난한 집 외아들이 보리쌀 한 말 값에 부잣집에 젖머슴으로 끌려갔다. 그 아들을 구하려고 이웃집 총각이 나섰다. 부잣집에 가서 ‘먹여 주고 재워 주는’ 조건으로 머슴살이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집주인은 횡재했다고 좋아라하며 총각을 머슴으로 들였다. 그런데 총각은 밥을 줘도 안 먹고 가만히 앉아 있다. 주인이 호통을 치자 “먹여 줘야 먹을 것 아니냐?”고 한다. 밤이 돼서도 잠을 안 잔다. 또 호통을 치니 “재워 줘야 잘 것 아니냐?”고 한다. 진저리가 난 주인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제발 나가 달라고 애원하는 바람에 총각은 젖머슴을 구해서 그 집을 나왔다는 얘기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 부잣집 주인이 머슴 푸대접을 도가 넘치게 했다. 생선을 사서 저희들끼리 가운데 토막을 다 먹고 머슴한테는 달랑 고등어 대가리 하나만 줬다. 머슴이 그 고등어 대가리를 물두멍에 담가 놨다. 노발대발하는 주인에게 머슴이 말한다. “그걸 길러서 자라면 가운데 토막을 좀 먹어볼까 하고 그랬지요.” 또 주인집에서 빨래를 제때 안 해 주자 머슴은 모내기하는 날 자기 옷을 죄다 지게에 짊어지고 나선다. 주인이 펄펄 뛰자 이렇게 말한다. “오늘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날 옷이 이렇게 더러워서야 내 체면은 둘째 치고 주인 체면이 어디 서겠습니까?” 그 뒤로 주인 태도가 달라졌음은 물론이다.(의뭉스런 머슴)

또 있다. 어떤 부잣집 주인이 어찌나 인색한지 머슴밥을 종지에 담아 줬다. 그걸 본 머슴이 밥상을 받아 놓고 서럽게 운다. 까닭을 묻는 주인에게 머슴은 이렇게 말한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작은아버지도 꼭 요만한 종지에 밥을 담아 드시다가 그만 종지가 목구멍에 넘어가는 바람에 숨이 막혀 돌아가시지 않았겠습니까? 밥그릇을 보니 문득 그 생각이 나서 말이지요.” 또 주인이 기름이 아까워 머슴방에 등잔을 안 넣어 주자 한쪽 눈을 감고 온데를 돌아다닌다. 주인이 까닭을 묻자 그 대답이 이렇다. “글쎄 저녁 먹다가 어디가 입이고 어디가 눈인지 가릴 수 없어 눈이 입인 줄 알고 장을 떠 넣었더니 한쪽 눈이 안 보입니다.” 이러는데도 버릇을 고치지 않을 주인은 없을 것이다.(주인 버릇 고친 머슴)
머슴이 겪는 설움은 비단 ‘노동 조건’이나 ‘복지’에만 머물지 않았다. 때로는 하층민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수모도 겪었으니, 바로 그런 설움을 통쾌하게 되갚아 주는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한 머슴이 주인을 따라 사냥을 갔다. 하루 종일 돌아다닌 끝에 꿩 한 마리를 잡았다. 그걸 모닥불에 구워 놓고서 주인이 시 짓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고’자 운을 네 번 넣어 시를 먼저 짓는 사람이 꿩고기를 먹기로 하자는 것이다. 글을 배우지 못한 머슴을 곯리려는 수작임이 분명하다. 머슴은 냉큼 꿩고기를 집어먹으며 이렇게 말한다. “익었고 설었고 배고프니 먹고 보자.” 펄펄 뛰는 주인에게 머슴이 대꾸한다. “틀림없이 ‘고’자를 네 번 넣어 시를 지었는데 왜 그러십니까?”(배고프니 먹고 보자)

머슴을 괴롭히는 건 주인만이 아니었다. 권력 또한 그러했다. 머슴 노릇으로 억척같이 일해서 돈깨나 조금 모아 놓으면 탐관오리들이 가만두지 않았다. 이럴 때도 꾀가 필요하다. 옛날에 남의 집 머슴살이 끝에 살림을 좀 일군 사람이 있었는데 고을 원이 불러다 생트집을 잡았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날에 옷도 아닌 옷을 입고 말도 아닌 말을 타고 선물도 아닌 선물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다. 이불을 쓰고 누워 있으니 여남은 살 먹은 딸이 방책을 가르쳐 준다. 이튿날 딸이 시킨 대로 누더기를 걸치고 당나귀를 타고 참새를 소매 속에 넣고 어스름 저물 때에 원 앞에 가서 아뢰었다. “낮은 다 가고 밤은 아직 오지 않으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날이요, 누더기를 걸쳤으니 옷도 아닌 옷이요, 당나귀를 타고 왔으니 말도 아닌 말이 아닙니까?” 원이 선물도 아닌 선물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소매 속에서 참새를 날려 보내며 말한다. “여기 있지요.”(말도 아닌 말)

가난과 차별에 시달리며 살다 보면 꿈을 꾸게 마련이다. 꿈은 가난한 사람, 힘겨운 사람이 그 삶을 이어갈 힘을 얻는 마지막 끈이다. 머슴은 어떤 꿈을 꿀까? 우선 소박하게는 가난을 면하는 꿈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큰 부자가 된다기보다는 그저 일한 대가나 제대로 쳐 받았으면 하는 것이 다다. ‘호랑이를 세 번 만나다’는 바로 그런 소박한 꿈이 만든 이야기다.

줄거리인즉 이렇다. 옛날 남의 집 머슴 사는 사람이 주인을 잘못 만나 10년 새경을 못 받았다. 하루는 고개를 넘어 나무를 하러 가다가 첫째 고개에서 호랑이한테 잡아먹혔다. 그런데 죽지 않고 호랑이 뱃속에서 담뱃대로 호랑이 똥구멍을 걸고 잡아당겨 밖으로 나왔다. 둘째 고개에서 또 호랑이를 만나 옷깃을 물린 채 호랑이굴에 끌려갔는데, 이번엔 목에 뼈다귀가 걸린 새끼호랑이를 구해 주고 무사히 나왔다. 셋째 고개에서 호랑이를 또 만나 이번엔 의형제를 맺었다. 형이 된 호랑이가 소원을 묻기에 밀린 새경이나 받게 해 달랬더니 호랑이가 머슴을 등에 태우고 주인집에 가서 새경을 받게 해 주더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꿈이라고 늘 소박하게만 꾸란 법은 없다. 가난을 면했으면 큰 부자도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석숭의 복’은 그런 꿈을 보여 준다. 남의 집 머슴 살던 석숭이 팔자 한 번 고쳐 보려고 염라대왕을 찾아갔다. 가다가 젊은 색시, 늙은 영감, 산지기, 이무기를 차례로 만나 부탁을 받고 드디어 염라대왕을 찾아 복을 받아 온다. 돌아오는 길에 부탁 받은 것을 전해 주고, 색시랑 결혼해서 큰 부자 되어 잘 산다는 이야기다.

머슴 하면 곧 총각이 떠오른다. 그만큼 총각과 머슴은 잘 어울린다. 너무 어리거나 나이 들면 머슴 노릇하기 힘드니까 총각이 딱 좋은 것이다. 장가 못 간 총각이 꿀만한 꿈은 뻔하다. 꽃 같은 색시 얻어 장가가는 것일 테지. 결혼 상대로는 누가 좋을까? 주인집 딸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래서 옛이야기 속 총각머슴들은 대개 주인집 딸과 결혼한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 원님 딸이나 임금 딸과 결혼하기도 한다. ‘해몽 못할 꿈’에는 머슴이 꿈 한 자리를 꾸고 나서 그 꿈 해몽하러 다니다가 끝내 공주 둘을 색시로 얻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주 색시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라니, 이쯤 되면 좀 지나치다는 느낌도 들지만 어차피 꿈인데 무슨 탈이 있을까.

통 크게 꾸는 꿈으로 말하면 ‘중국임금이 된 머슴’을 따라갈 이야기는 없을 듯하다. 머슴이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좌수, 원님, 임금한테 차례로 불려 다니다가 중국 임금까지 만나고, 끝내 그이 대신 중국 임금이 된다는 줄거리다. 이만하면 세상이 180도로 뒤집히는 사건인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왜 하필 중국 임금일까? 백성들이 보기에 중국 임금은 권력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어서 그럴 것이다. 예나 이제나 제 나라 백성보다 큰 나라 쳐다보며 머리 조아리는 권력자들 모습이 백성들 눈에 잡히지 않을 리 없다.

옛이야기 속에 친숙하게 자리 잡은 머슴, 고된 일에 파묻혀 살면서 꿈 한 자락 놓치지 않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우리 같은 서민이야말로 일하며 꿈꾸며 살아가는 진정한 이 땅의 주인이 아닐까.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붙어라 떨어져라』(송교성 그림, 박영만 원작, 이미애 엮음, 권혁래 감수, 사파리, 2012)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서정오 |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984년 『이 땅의 어린이 문학』에 소년소설을 발표하면서 동화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특히 옛이야기를 다시 쓰고 들려주는 일에 애쓰고 있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글쓰기연구회,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회원이며 대구에서 ‘옛이야기연구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동안 쓴 책으로 『교과서 옛이야기 살펴보기』 『옛이야기 세상 이야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이야기 1, 2』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