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4월 통권 제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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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락, 우리 음악가]
거렁뱅이의 깡깡이 소리라구요?

남화정 | 2013년 04월

유득공 선생님은 조선 후기, 정조 임금 때의 학자이자 시인이었습니다. 역사에 관심이 깊어서, 사신으로 중국에 다녀온 후에는 발해의 역사를 기록한 『발해고』라는 책을 쓰기도 했는데요, 우리나라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지요. 이 분이 음악에도 관심이 있었나 봅니다. 어느 날, 역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이웃 어른을 찾아가서는 해금을 얻어다가 연주를 했답니다. 해금으로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다양한 동물의 울음소리나 날갯짓 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데요, 신기하고 재미있는 소리가 납니다. 유득공 선생님은 해금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벌레와 새들의 울음소리를 내었지요. 그런데, 그 어른이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고 해요. “좁쌀이나 한 그릇 퍼 주면 딱 좋겠군. 이건 음악이 아니라 거렁뱅이의 깡깡이 소리야.”라고요.

해금은 약간 코맹맹이 소리가 나기 때문에 ‘깡깡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거지들이 구걸을 할 때 해금을 연주하곤 했다네요. 그러니까 유득공 선생님은 괜히 해금을 연주하는 바람에 칭찬은커녕, 거지 취급을 받게 생긴 거지요. 얼마나 무안했을까요? 어른이 말했습니다. “자네는 음악을 통 모르는군. 우리나라에는 아악(雅樂)과 속악이 있네. 아악은 공자님 사당에서 제사 지낼 때 연주하는 음악이고, 우리나라 옛 임금님들의 제사를 지낼 때는 속악(俗樂)을 연주하지. 그리고 연희에서는 세악(細樂)을 연주하는데, 유우춘과 호궁기라는 사람이 해금을 잘 연주하기로 유명하다네. 자네는 왜 이들에게서 배우지 않고, 거지의 깡깡이를 배워왔단 말인가? 거지들이 대개 해금을 들고, 남의 집 문 앞에서 영감, 할미, 어린애와 온갖 짐승, 닭, 오리, 풀벌레 소리를 내다가 곡식 몇 줌을 받아들고 가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자네의 해금이 바로 그런 걸세.”

그러니까, 글공부깨나 한 점잖은 선비라면 궁중이나 양반들이 듣는 고상한 음악을 연주할 것이지, 못 배운 백성들이 우스개로 연주하는 품위 없는 소리나 냈다고 야단을 친 겁니다. 유득공 선생님은 그날 이후, 너무나 부끄러워서 해금을 싸서 치워버리고는 여러 달 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해요. 요즘도 어린이들이 대중가요를 부르면 ‘그것도 노래냐?’ 하는 어른들이 있지요? 그 노래가 어른 취향에 맞지 않아서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클래식만 정말 귀한 음악이고, 가요는 품격이 낮아서 같은 음악으로 볼 수 없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정말 음악에도 귀하고 천한 구분이 있는 걸까요? 당대 해금의 이름난 연주자였다는 유우춘 선생님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그럼 유우춘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우선 해금이 어떤 악기인지부터 알아보기로 하지요. 해금은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졌는데요, 원래는 북쪽의 기마 민족이 연주하던 악기라고 합니다. 말을 타면서도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작고 가벼운 것이 특징인데요, 아시아 일대에는 해금과 비슷하게 생긴 악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국의 얼후나 몽골의 마두금, 네팔의 사랑기 같은 악기들이 다 해금의 친척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국악 연주회
해금은 줄이 두 개밖에 없지만, 아주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굵은 대나무 뿌리를 옆으로 뉘어서 울림통 역할을 하게 하고, 그 위에 얇은 대나무를 세우는데, 서 있는 대나무라고 해서 ‘입죽(立竹)’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입죽의 끝부분에 구멍을 두 개 뚫어서, 줄을 감아 걸 수 있도록 ‘주아’라는 걸 끼우고요, 이 주아와 아래 울림통 사이에 명주실을 꼬아 만든 줄을 연결합니다. 하나는 굵고, 또 다른 하나는 얇아서 음색에 차이가 나도록 하는데요, 그 두 개의 줄 사이에 활을 끼웁니다. 이 활은 화살을 쏘는 활이 아니라, 줄을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도구인데요, 말의 갈기나 꼬리털을 여러 개 묶어서 만들지요.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연주할 때 사용하는 활은 언제나 팽팽하게 당겨져 있고, 줄 밖에서 자유롭게 연주를 하지만, 해금에서 사용하는 활은 연주자가 자기 손에 맞게 조절할 수 있도록 느슨하게 만들어져 있는 데다 줄 사이에 끼워져 있는 점이 다릅니다.
연주를 할 때는 왼손으로 입죽에 의지해서 줄을 감싸 쥐고요, 오른손으로 활대를 줄에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데, 줄의 어느 부분을 잡느냐, 혹은 줄을 얼마나 세게 당기느냐에 따라서 음의 높낮이가 달라집니다. 울림통과 가까울수록, 그리고 줄을 세게 당길수록 높은 음이 나지요. 그런데 줄에는 정확한 음정을 낼 수 있는 자리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연주자는 그때 그때 달라지는 줄 상태를 잘 파악하고, 오로지 자신의 감각에 의지해서 정확한 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배우기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일단 그 방법을 잘 익히고 나면, 다른 어느 악기보다 다채로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해금만의 매력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현악기는 가야금이나 거문고, 비파처럼 줄을 뜯거나 튕겨서 소리를 내는 것이 대부분인데요, 그러면 한 번에 한 음밖에 낼 수가 없고, 게다가 소리가 크지 않기 때문에 한 번 낸 소리는 금방 사라지고 말지요. 하지만 해금은 활대로 줄을 문질러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얼마든지 길게 소리를 뻗어 낼 수 있고요, 그 동안에 왼손으로는 자유자재로 음정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해금을 가리켜 현악기지만 관악기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해서 비사비죽(非絲非竹)이라고 했답니다. 실을 의미하는 사(絲)자는 현악기구요, 우리나라 관악기는 모두 대나무로 만들기 때문에 대나무 죽(竹)은 관악기를 의미하지요. 비사비죽이란 현악기도, 관악기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조금 부정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관악기와 현악기 사이의 음색의 차이를 메워주는가 하면, 현악합주나 관악합주 어디에도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약방의 감초 같은 악기이기도 합니다.

간혹 해금과 아쟁을 혼동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아쟁도 활로 연주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잘 모르고 소리만 들으면 헷갈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쟁은 얼핏 보면 가야금처럼 보이는 큰 현악기구요, 두꺼운 줄을 사용하기 때문에 해금에 비해서 훨씬 낮고 깊은 소리가 난답니다.

자, 그럼 이제 유우춘 명인을 만나러 가 볼까요? 그 일이 있은 지 한참이 지나서 유득공 선생님은 우연히 금대거사라고 하는 먼 친척을 만났는데, 뜻밖에 이 사람의 아우가 바로 유우춘 명인인 것을 알게 되지요. 유우춘 명인은 원래 무사로서 공을 세우고 현감을 지낸 유운경이라는 분의 아들이었는데요, 어머니는 그 댁의 노비였다고 해요. 옛날에는 아버지가 양반이라도 어머니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로 살아야 했답니다. 하지만 다행히 양반이었던 형 금대거사가 몸값을 내주어 노비 신세를 면했고요, 이후 궁궐을 수비하는 군대에 들어가 해금을 배워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겁니다.
유득공 선생님은 금대거사와의 인연으로 유우춘 명인을 만나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밤에 글을 읽고 있을 때면, 유우춘 명인이 동료 음악인들과 함께 술과 고기를 장만해 와서는 먹고 마시다가 각자 대금과 해금, 피리를 꺼내서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고요, 선생님이 직접 찾아가서 음악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의 해금 연주는 능란한 솜씨에, 가락이 매우 처절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옆에서 좋은 음악을 연주하면, 나도 한번쯤 배워보고 싶어지지요. 유득공 선생님은 치워놨던 해금 생각이 났습니다. 슬며시 해금을 꺼내들고 유우춘 명인에게 가서 물었지요. “이 해금, 어떤가? 나도 전에 해금을 배워 보려고 했는데, 무턱대고 벌레나 새 울음소리를 내다가 남들에게서 ‘거렁뱅이의 깡깡이’라고 비웃음을 샀다네. 어떻게 하면 거렁뱅이의 깡깡이를 면할 수 있을까?” 사실은, ‘자네가 나한테 좋은 연주 좀 가르쳐 주지 않겠나?’ 하고, 요청하는 의미였겠지요? 그런데, 유우춘 명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님은 참 한심하십니다, 그려. 내가 타는 해금이나 거지가 타는 해금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라고 말이지요. 기껏 좋은 선생님이라고 찾아가서 배우려는데, 이건 또 무슨 얘기일까요?

유우춘 명인의 이야기 더 들어보지요. “내가 해금을 배운 것은 늙으신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솜씨가 시원찮으면 어떻게 봉양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내 해금 솜씨는 거렁뱅이보다 못합니다. 처음 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비로소 어지간한 솜씨를 이루었는데, 다섯 손가락에 다 못이 박였습니다. 하지만, 재주가 더욱 높아진다고 해도 급료는 늘지 않고, 사람들은 더욱 몰라주더군요. 거렁뱅이는 허름한 해금 한 벌을 가지고, 몇 달 만져본 것만으로도 듣는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서고, 해금을 다 켠 뒤에 돌아가면 따라 붙는 사람만도 수십 명인 데다, 하루 벌이가 곡식 한 말이 넘고 돈도 한 움큼씩 모인다고 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유우춘의 해금을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내 해금을 듣고 아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저 이름만 아는 것이지요.”

김홍도, 「무동」,「단원풍속도첩」중
한폭, 1745~1816년
옛날 궁중에서 연주하던 음악은 속도가 아주 느리고, 박자의 변화가 적은 곡들이 대부분입니다. 감정의 변화가 적을수록 좋은 음악으로 여겼지요. 하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는 느리고 지루한 음악이었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격조 높고 품위 있다고 하는 예술이 대중들에게 멀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악을 훌륭하게 연주한다고 해봤자 사람들이 알아듣지도 못하고, 가벼운 음악만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쁘냐는 겁니다.
유우춘 명인의 하소연은 계속 이어집니다. “양반들이 부르면, 우리 악공들은 저마다 악기 하나씩을 안고 가서 허리를 굽히고 대청으로 올라가 앉습니다. 연주를 시작하면, 현악과 관악이 서로 맞추지 않아도 길고 짧고, 빠르고 느린 것이 절로 맞아 돌아가는데 숨소리, 잔기침 하나 문 밖으로 새나오지 않습니다. 그럴 즈음 슬쩍 보면, 주인은 기대어 졸고 있더군요. 그러다가 기지개를 켜면서 ‘그만 두어라’하면 물러날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타는 것을 제가 듣다가 돌아온 꼴이지요. 그런데도 양반들이 시를 짓고 문장을 평론하는 고상한 모임에는 제가 끼이지 않은 적이 없답니다. 또 한량들이 물가에서 노닐 적에도 가서 연주를 하는데, 손을 재빠르게 놀려서 새로운 곡을 연주하면, 가락이 엉겼다가 녹고 목이 메었다가 다시 트입니다. 그러면 한량들은 그것이 가장 호탕하고 좋은 음악인 줄로만 알고 머리를 끄덕이는데, 오히려 보잘 것 없는 줄은 모른답니다.”

내가 온 정성을 다해 갈고 닦은 음악을 몰라 줄 때, 얼마나 섭섭했을까요? 가끔은 ‘나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겠지요. 그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또 다른 해금 명인 호궁기뿐이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종종 서로의 들어주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답니다. 유우춘 명인은 끝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은 노력을 적게 들이고도 세상 사람들이 금방 알아주는 것을 버리고, 구태여 공이 많이 들면서도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것을 배우려 하시니, 정말로 딱하십니다, 그려.”라고요.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다 좋은 음악도 아니고, 싫어한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유우춘 명인의 쓸쓸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지요. 유우춘 명인은 그 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다시는 해금을 연주하지 않았고요, 유득공 선생님을 찾아가는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남화정 | 국립국악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거문고를 전공했습니다. 국악방송과 KBS라디오에서 국악 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국악 한두 곡쯤 떠올릴 수 있기를, 전통 속에서 새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펴낸 책으로 『사람이 있는 곳에 흘러라 우리 음악』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