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5월 통권 제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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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상 이야기]
한국 과학사 9 ─ 불교의 세상을 이 땅에 보이다, 첨성대

김연희 | 2013년 05월

신라에서 하늘을 보다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보다 늦게 국가의 모양새를 갖추었습니다. 6세기에 들어서서 비로소 연맹 왕국을 벗어나 중앙집권의 나라가 되었고, 군사 일을 전담하는 병부가 설치되었지요. 담당하는 일에 따라 관청 조직이 나뉘어 국가를 다스리기 시작했고 나랏일을 보는 관리들의 서열도 정해졌지요. 이제 최고 지도자도 이전 호칭인 ‘마립간’ 대신 중국식 ‘왕’으로 고쳐 불렀습니다. 나라의 중요한 일들은 화백회의라는 귀족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정해졌지요. 이 화백회의는 20명의 최고 귀족이 모여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정하는 제도로, 왕은 이를 통해 귀족들을 통솔할 수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견제를 받기도 했어요.

신라에서 6세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중앙집권 국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불교가 공인되었기 때문이지요. 불교의 공인은 각기 다른 조상신과 자연신을 섬겼던 연맹 국가가 전통의 종교를 버리고 불교를 종교로 채택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이 중앙집권국가 구축과 같이 일어난 것은, 불교를 중심으로 국가가 통합되었음을 웅변하기도 합니다. 불교의 가르침 가운데 사람의 짓는 업에 따라 자연의 필연적인 보(報)가 나타나고, 내세에 다시 태어나도 이 업의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은 현재의 삶을 죽어서도 유지할 것이라는 토속 신앙과는 많이 달랐어요. 신라의 왕들은 윤회, 인과응보와 같은 불교의 가르침으로 귀족들을 회유해 왕권을 강화시키려 했고, 그 과정에서 왕이 곧 부처라는 생각과 더불어 부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다는 호국불교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어요. 하지만 시작은 쉽지 않아서 불교 수용을 반대하는 귀족들을 물리치기 위해 이차돈의 순교와 이를 둘러싼 갖가지 기이한 일이 필요했답니다.

하지만 신라의 불교는 토속 신앙과 조화를 이루어야 했어요. 그래서 신라 토속 신앙에서 자연을 섬기듯 부처님을 섬겼고, 윤회를 벗어나려는 노력과 동시에 건강과 출세와 득남과 같은 현세의 복을 기원하게 되었지요. 절집에는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사당이 포함되었고 새 생명을 점지하는 영험을 가진 사당 역시 포함되었어요.

토속 신앙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불교를 더 잘 알고 수용하기 위한 갖가지 사업들이 벌어졌지요. 불경 공부를 위해 중국으로 유학하는 일은 물론이고 왕의 이름으로 큰 절을 짓고 사리를 모시는 등의 각종 불사가 이어졌어요. 동시에 왕의 권력을 크게 하고 국가 통치에 필요한 일들이 함께 이어졌고, 중앙집권 국가의 왕이 해야 하는 일로 전해진 하늘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도 함께 이루어졌지요.

동양에서 가장 오래 된 관측대ㅡ첨성대의 여러 상징들

신라에서 하늘을 관측하려 만들어진 것 가운데 우리에게 남은 것은 첨성대입니다. 첨성대는 경주에 1300년 동안 서 있었습니다. 궁궐 안에 두어졌다고 했지만 지금은 비두골이라는 옛 이름을 가진 곳에 있습니다. 비두골은 이 돌로 쌓은 구조물이 하늘과 관련 있음을 나타냅니다. 북두칠성과 비교해 별의 움직임을 본다는 뜻이지요.

첨성대는 하늘과 관련된 갖가지 상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첨성대 몸통은 둥근 원통 모양입니다. 그리고 꼭대기는 우물 정자 모양의 네모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그대로 첨성대에 담았습니다. 이 둥근 몸통을 만들기 위해 화강암을 반달모양으로 깎아 쌓았습니다. 그냥 되는 대로 쌓은 것이 아니라 받침대인 아래 기단의 돌들과 합해 365개가 되게 했습니다. 또 기단에서 둥근 몸통부에서 꼭대기 네모진 머리까지는 29층, 30층으로 음력 한 달의 날수, 즉 초승달에서 다음 초승달까지의 날수(29.5일)입니다.

남쪽으로 나 있는 창문 아래는 12개, 윗부분 역시 12개로 1년 12개월 24절기를 나타냈습니다. 몸통의 아래쪽 여섯 층을 이루고 있는 돌 수는 각각 16, 15, 15, 16, 16, 15 개로 동지~소한, 소한~대한, 대한~입춘, 입춘~우수, 우수~경칩, 경칩~춘분 사이의 날수와 같습니다. 창의 세 단과 맨 위 정자석의 한 단을 합하면 28단으로 하늘의 중요 별자리 28수와 일치시켰어요. 이처럼 첨성대를 이루는 각각은 하늘의 일과 일치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해와 달의 움직임을 옮겨놓다

이렇게, 해와 달의 움직임을 관찰해 첨성대의 돌과 층수가 맞추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첨성대 자체가 일식과 월식을 알 수 있는 도구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첨성대 위쪽, 동편과 서편 각각 볼록하게 돋아 있는 네 개의 돌과 맨 위 정자석의 끝이 이루는 각이 각각 해와 달의 춘추분, 동하지 때의 움직임과 일치하게 함으로써 일식과 월식을 적어도 7일 전에는 예측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맨 위의 정자석이 맨 아래의 기단이 나란하지 않고 틀어진 것은 설계자의 실수가 아니라 오히려 아래의 기단부는 동짓날 달이 뜨는 위치를, 위 정자석은 해가 뜨는 위치를 보여주기 위한 치밀한 계산 결과라는 것입니다. 또 남쪽으로 나 있는 창문은 드나드는 출입구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춘분과 추분의 해 그림자가 첨성대의 맨 밑바닥에 닿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당시 신라 사람들이 알고 있던 하늘이 첨성대에 담겼습니다.

첨성대 건축을 전후해 하늘의 변화를 관측한 자료들도 늘어났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남겨 놓은 자료들이 모두 남아 있지 않지만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서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기록들은 첨성대 건립을 이후 천문관측이 늘어났음을 보여줍니다. 신라 건국 이래 멸망까지 약 천 년 동안 관측기록은 141건으로 그 가운데 전체 기록의 65% 즉 91건이 첨성대가 건립된 이래 약 300년에 이루어졌으니까요. 이 기록들을 20년 단위로 끊어보면 첨성대가 세워진 이래 늘어났음이 더 확연합니다. 이런 기록들로 첨성대가 활발한 천문활동을 이끄는 중요 동력이 되었음을 알 수 있지요.

하늘의 움직임에만 관심이 있었을까?

요즘 첨성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관심들 가운데는 첨성대가 하늘을 관측하지 않는 곳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첨성대가 별을 관측하러 오르내리기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고작 9미터 더 올라간다고 얼마나 하늘을 더 잘 관측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평지에, 그것도 궁궐 안에 있는 것도 이상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의문에 대해 천문관측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쪽 창에 사다리를 놓을 수 있게 홈이 파여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천정 오르기를 돕는 가로지른 돌들이 있어 오르내리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또 고작 그 9미터가 첨성대 옆의 신성한 숲 계림의 나무에 가리지 않고 별을 보기 위해 필요하다고 답합니다. 따라서 첨성대의 높이는 단지 ‘고작’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요. 또 옛날 천문은 왕의 학문이었기에 궁궐에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첨성대가 하늘을 관측하는 일이 나라의 제도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불교 수미산을 닮다ㅡ성불한 선덕여왕의 세계

그러저러한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흥미 로운 이야기는 첨성대의 모습과 관련된 것입니다. 첨성대가 수미산을 닮았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수미산은 불교의 세계에서 중요한 산입니다. 불교에서는 세상을 세 가지 계로 나누고 가장 낮은 단계로 중생들이 사천왕과 함께 하는 세상을 욕계라 일컫는데 이 욕계의 하늘이 수미산 중턱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욕계의 중생들이 수미산을 중심으로 겹겹이 쌓여 있고 둘러쳐 있는 33개의 도리천(도리는 인도어로 33이라고 합니다)을 올라야 비로소 부처의 나라에 도달한다고 보았습니다. 수미산은 바로 부처의 나라로 오를 수 있는 산인 셈입니다.

첨성대가 수미산을 닮은 것은 이를 축조한 선덕여왕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선덕여왕은 최초의 여왕이었기에 당나라로부터 수모를 겪었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귀족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런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여성이 아니라 성불했음을 보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자신의 죽을 날도 정확하게 맞추었고 불교의 도리천에 묻으라 했다고 전해지지요. 황룡사와 분황사와 더불어 수미산을 닮은 첨성대를 축조함으로써 선덕여왕은 스스로 성불했음을 드러내려 한 것입니다.

첨성대가 불교적 상징을 지녔다고 해서 천문대가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첨성대에 대한 관심이 많아질수록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오고 이에 따라 신라의 자연관과 과학을 더 많이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더 풍부하게 신라를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첨성대는 신라의 불교와 천문학 수준과 시대의 염원을 담은 천문대입니다.
김연희 | 서울대학교에서 한국과학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 역사 속에서의 자연 이해와 자연 이용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양 과학과 우리 전통 과학이 만났을 때의 이해 방식에 관해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과 『강은 어떻게 흘러가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