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5월 통권 제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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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푸른 하늘을, 달려라 푸른 벌판을

이득헌 | 2013년 05월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윤석중, 「어린이날 노래」) 어린이날은 대한민국의 모든 어린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어린이들이 생일 다음으로 좋아하는 날이 어린이날이라는 통계를 본 기억도 있다. 선물도 받을 수 있고 게다가 학교도 학원도 안 가도 되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어린이날을 좋아하는 것은 어린이만은 아니다. 어른인 나도 어린이날이 기쁘다. 그 이유는 당연하다. 출근을 안 해도 되니까.

어느 날 국어 시간에 대뜸 운동회가 언제냐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답을 해주기 위해 달력을 넘겨보다 이번 어린이날이 일요일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얘기했더니 아이들은 한숨을 내쉬며 괴로워했다. 왜 하필 어린이날이 일요일이냐며 월요일에 대신 쉴 수 있게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려 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나는 학사 일정을 보여주며 더 이상 어린이날 타령 그만하고 공부나 하자고 했더니 아이들은 입에 삐죽 내밀며 책을 펼쳤다.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수업을 마칠 즈음 한 아이가 이번에는 나에게 어린이날 선물은 무얼 해 줄 거냐고 물었다. 나는 6학년이 무슨 선물이냐며 퉁을 주었으나 아이들은 자신들이 선물을 받아야 할 101가지 이유를 들어 나에게 선물을 내놓으라고 아우성 쳤다.

1947년 몽실이의 가난 그리고 2013년 어린이들의 가난

다음 날, 나는 고심 끝에 아이들에게 줄 선물로 『몽실 언니』라는 동화책을 준비했다.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한국현대사의 어려운 현실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몽실이 이야기 『몽실 언니』에 대해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려는 생각에서였다. 워낙 유명한 동화이기에 많은 아이들이 읽었을 거란 기대와 달리 『몽실 언니』를 읽어 본 아이들은 고작 대여섯 명 정도였다. 학원 다니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아이들의 푸념에 하는 수 없이 읽어 본 몇몇 아이들이 이야기의 대강을 친구들에게 설명해 주었고 비로소 『몽실 언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 난 앞으로도 이 절름발이 다리로 버틸 거야. 영득이랑 영순이랑 그리고 난남이를 보살펴야 해. 영득이, 영순이를 찾아갈 거야. 꼭 찾아갈 거야.’ (『몽실 언니』 274쪽)

친구들에게 이야기의 대강을 전해들은 대다수의 반응은 “헐~”이었다. 불과 수십 년 전 우리 땅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임에도 아이들은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절름발이로 살아가야 하는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동생들을 찾아 보살피겠다는 몽실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도망치면 되지 왜 그렇게 불쌍하게 사냐,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임길택 선생님의 『재중이네』를 읽고 ‘밥이 없으면 라면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묻더라는, 아내네 반 아이 이야기도 떠올랐다.

나는 몽실이가 살던 시대에 어린이들은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경제적 가난을 겪었지만 지금의 어린이들은 또 다른 의미의 가난이 있을 것이므로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고 말했다. 자신들의 고민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저마다 느끼는 가난의 의미를 털어 놓았다. 그리고는 각자의 글쓰기 공책에 다음과 같은 글들을 써놓았다.

밖에서 엄마가 열심히 일하고 돈을 아끼시고 하시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 집은 가난한가?? 라고 느껴졌고 마음이 조금 쓰라렸다. 또 아빠가 저녁에 춥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꼭!! 일을 가시고 밤 12시나 새벽 2시쯤에 들어오셔서 또 낮과 아침에 할 일을 구하러 다니시는 것을 보면 우리 집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으니 이제 나도 돈과 먹을 것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하였다.(박지은)

꿈이 없고 돈이 없다. 나는 꿈이 있다면 사는 것이 지겹진 않을 것 같다. 나는 돈이 있다면 엄마와 아빠가 싸우지 않고 불행하지 않았을 것 같고 먹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것을 아무 거리낌 없이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 있었을 것 같다.(이수현)

1947년의 어린이 몽실이를 이해할 수 없다던 2013년 우리 반 아이들도 막상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하자 몽실이가 겪었던 경제적 가난을 주로 떠올렸다. 부모님의 다툼은 언제나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고 일기장을 비롯해서 아이들이 쓴 여러 글들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고민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이다. 열심히 일해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 때문에 아이들이 꿈까지 잃어 가는 것을 아닌지 수현이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내 마음은 지금 무지 가난하다. 난 사교성이 없고 밝은 것도 아니고, 너무 소심하다. 나도 밝아지고 친구가 많아지면 내 마음 속에 가난을 채울 수 있을까? 그랬음 좋겠다.(유성은)

성은이는 우리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아이 중 한명이다. 중학교에서 공부로 전교 1,2등을 다투는 언니 덕에 어렸을 때부터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성은이 부모님은 따로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성은이를 대견해 하시지만 성은이는 언제나 비교대상을 언니로 삼고 그에 미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조바심을 낸다. 게다가 사교성까지 좋은 언니와 달리 친구 관계가 넓지 못한 성은이는 언제나 무리지어 있는 친구들 주위를 서성이기만 한다. 친구들을 따라 시내에 나가 문구점에서 쇼핑도 하고 싶고 노래방도 가고 싶은 성은이지만 부모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혹여나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나쁜 물이 들 것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그러신다고 했다. 하지만 성은이 마음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것만 같았다. 성은이의 마음속 가난을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2013년을 힘들게 살아가는 재훈이

재훈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우리 반이 된 아이이다. 욕심 많은 담임 때문에 하루 종일 바쁜 우리 반 교실에서 재훈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몇 배는 더 바쁘다. 전날 학원에서 내준 숙제도 해야 하고 학원에 다녀오느라 못한 학교 숙제도 해야 한다. 쉬는 시간은 물론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 후에 학원가기 전 시간까지 온종일 바쁘다. 해야 할 숙제는 많고 시간은 부족하다보니 5학년 초에는 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를 몰래 하다 나에게 걸려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학교 숙제를 해오지 않아 혼나는 것도 모자라 학교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는 재훈이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5학년 1학기 중간고사 점수가 발표되던 날. 역시 학교 숙제를 해오지 않은 재훈이는 방과 후에 남아서 벌칙으로 경필을 쓰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예상치 못한 재훈이의 눈물에 당황한 나는 다가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물었다. 재훈이는 대답은 하지 않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때 청소당번이던 우리 반 아이가 대신 재훈이가 흘리는 눈물의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재훈이 부모님께서 이번 중간고사에서 올백을 맞지 못하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는데 올백을 맞지 못한 재훈이가 부모님을 만날 걱정에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재훈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다니는지 모르는 학원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재훈이에게 시험 점수가 너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면서 내가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다고 재훈이를 다독였다. 하지만 재훈이는 완강히 거부했다. 4학년 때 선생님도 같은 이유로 부모님과 전화 상담을 했는데, 선생님께 괜한 이야기를 했다며 부모님께 혼만 났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눈물을 멈춘 재훈이는 학원 늦으면 학원 선생님께 혼난다며 바쁘게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섰다.

재훈이는 학교 수업 중 미술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만들기를 좋아한다. 띠골판지로 액자 만들기를 하는 시간에 다른 친구들이 띠골판지만을 이용해 액자를 만들고 있으면 조용히 교실 재활용 상자에 들어있는 우드락을 가져다 액자틀을 만들고 그 위에 띠골판지를 이용해 꾸며 그럴듯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 또한 과학 시간에 고무동력 수레를 만들고 나면, 남은 나무젓가락과 양초 그리고 고무줄을 이용해 멋진 기관총을 만든다. 이렇게 공학적인 면에 탁월한 감각을 보이는 재훈인데 하루의 온종일을 보습학원과 학원 숙제에 얽매여 있어야 한다. 맞벌이로 인해 가정을 비워야 하는 재훈이 부모님은 재훈이를 학원에 묶어둘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험 점수 때문에 손바닥을 맞으며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재훈이는 좋아하는 것도 잊은 채, 목표도 잊은 채,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어린이들은 다음 세상의 주인이니 세상을 향해 큰 꿈을 키우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쳇바퀴 속에 아이들을 가두고 어른들이 정해놓은 바른 어린이의 모습을 덧씌우고 있지는 않는가. 1947년의 몽실이가 전쟁과 분단이라는 현실 때문에 힘들어 했다면 2013년의 재훈이와 수현이는 학원과 시험, 친구관계 등의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다. 7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이들이 감내해야 할 현실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았다. 어린이날의 노래 가사처럼 우리 아이들이 푸른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고 푸른 벌판을 내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 몸도 마음도 가난하지 않고 행복하면 좋겠다.
이득헌 |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즐겁게 뒹굴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삼겹살에 음료 한 잔을 함께 기울일 날도 간절히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