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8월 통권 제1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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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책·그림책 이야기]
나를 위해 흘리는 땀

신수진 | 2013년 08월

제주도에서는 6월말에 해수욕장이 문을 열었다. 정식으로 열기 전에도 이미 날은 더워서, 5월말부터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푸른 바다에 풍덩풍덩 뛰어들었다. 나는? 그늘에서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좋을 때다.’ 하고 부러워하는 중년 여인, 하하하.

해변에서는 다들 자기 놀기 바빠 남 쳐다볼 겨를이 없지만, 수영복을 입으려면 괜히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이번엔 진짜로 비키니 수영복 입어야지. 놀기에도 더 편하잖아.’ 생각하다가도 막상 바닷가에 갈 때는 늘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이다. 실내 수영장에 갈 때도 ‘아, 쑥스러운데….’ 하면서 결국 원피스 수영복을 챙긴다. 남들은 나에게 아무 관심 없을 텐데, 뭐가 그렇게 신경 쓰이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 자신 없는 사람이었나? 여름은 이런 식으로 나를 돌아보게 한다.

예쁘게 생긴 방송인이 눈물겨운 살빼기에 대해 얘기하는 걸 보았다. “타고난 하체 비만이어서, 한여름에도 반바지를 입지 못했다. 특별한 운동 요법으로 살을 빼고 나서야 입어 봤는데, 너무나 시원했다.”면서. 항상 남들의 시선을 받는 입장에서, 빠지지 않는 살이 얼마나 스트레스였을까. 게다가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은 조금만 살이 붙어도 후덕해졌네, 게을러 보이네, 수군대기 마련이다. 문득 영화 「노팅힐」에서 ‘우리 중 가장 불행한 사람이 브라우니를 먹는 거다’ 하고는 각자 신세 한탄을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은 인기 절정의 여배우 안나가 말한다. “나는 열아홉 살 때부터 계속 다이어트를 했어요. 그러니까, 10년 넘게 계속 배고픈 상태라는 거죠. 그리고 이 모습이 되기 위해 두 번이나 무척 아픈 수술을 했어요.” 브라우니는 안나에게 돌아갔다.

남들에게 멋져 보이기 위해서든, 자기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든, 노출의 계절인 여름을 맘 편히 나기 위해 식사를 줄이고 운동으로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후덕하다’는 단어조차 이제 ‘뚱뚱하다’를 뜻하는 부정적인 말로 쓰이는 시대. 그저 통통한 정도인 사람조차 자기 몸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겨 내기 힘들다. 온갖 종류의 다이어트, 생소한 운동 요법들이 유행을 만들며 빨리 이 방법을 실행해 보라고 등을 떠민다.

동화 속 뚱뚱한 아이들의 고민

『으랏차차 뚱보 클럽』의 주인공인 12세 고은찬 군은 키 159센티미터에 몸무게 79킬로그램, 별명은 ‘십인분’이다. 엄마 역시 몸집이 좋아서 홈쇼핑 채널의 비만 전문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은찬이는 뚱뚱하다는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 다만, 엄마가 살을 빼라고 강요하면서 고되기 짝이 없는 ‘비만 교실’에 보내고, 집에서도 먹고 싶은 걸 못 먹게 하는 것이 괴로울 뿐. 이런 은찬이에게 학교 역도부 코치님이 입단을 제안한다. 날마다 아이스크림과 특별 간식도 먹을 수 있다면서. 안 그래도 그 제안이 솔깃한 은찬이는 결정적으로 분식점에서 장미란 선수의 인터뷰 장면을 보게 된다.

“역도라는 운동이 워낙 에너지 소모가 많은 운동이라서 여간 먹어서는 체중이 잘 불어나지 않아요. 대회 때까지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힘들었어요.”(『으랏차차 뚱보 클럽』, 45쪽)

아니, 살을 빼는 게 아니라 찌워야 한다는 말이잖아? 은찬이는 단번에 역도를 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리고 역도에서 뜻밖의 쾌감을 느끼며 선수가 되고 싶어 하지만, 엄마는 살이나 빼라고 한다. 격투기 선수로 활동하다가 경기 도중 사고로 숨진 남편이 생각나고, 아들이 뚱뚱한 사람으로 계속 살아가는 것도 싫은 것이다. 은찬이는 엄마도 뚱뚱하니 자기가 뚱뚱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엄마는 비만 전문 모델의 체격을 유지하기 위해 밤마다 음식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들을 꾸역꾸역 삼키고 다음날이면 토해 내는 생활을 해왔다. 은찬이는 이것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프랑스 동화 『어디, 뚱보 맛 좀 볼래?』의 주인공 앙리는 부모님이 먹을 걸 가지고 뭐라 하지 않지만, 학교에서 받는 놀림에 항상 주눅이 들어 있다. 앙리는 스스로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엄마를 설득해 식단을 바꾼다. 하지만 살은 쉽게 빠지지는 않는다. 앙리는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똥배 보래요! 똥배 보래요!” 하고 놀리자, 그 소리가 자신을 휩쓸고 집어삼키고 물에 빠뜨리는 것 같은 느낌에 스르륵 바닥에 쓰러지고 말 정도로 여린 아이다.

앙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당당함과 용기였다. 삼촌과 함께 난생 처음 스모 경기를 보고 나서, 앙리는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근육을 아주 강하게 단련하기로 결심한다. 이런 마음을 먹으니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맞설 자신이 생긴다. 학교에서 심하게 놀려대는 아이앞에서 기죽지 않고 오히려 스모 자세로 제압하자, 그 당당함에 새로운 친구들이 더 많이 생겨난다.

남들과 다른 외모를 지녔다는 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건 놀림감이 되는 일이어서, 『뚱뚱해도 넌 내 친구야』의 두 주인공 디디와 펠릭스도 날마다 놀림당하고 골탕을 먹는다. 반 아이들은 디디와 펠릭스를 수영장 사물함에 감금시키기도 하고, 등반 대회 도중 과수원 울타리 바깥으로 내보내 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게 떨어뜨리기도 한다. 뚱보로 살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펠릭스가 한동안 볼거리를 앓고 나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몰라보게 날씬해진 펠릭스는 더 이상 디디와 놀지 않는다. 충격에 휩싸인 디디는 미친 듯이 집안과 동네를 뛰어다닌다. 이제는 혼자서 지우개로 얻어맞고 휴지통을 뒤집어쓰고 사물함에 갇힐 거라고 생각하면 외롭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 디디는 며칠씩이나 학교도 가지 않고, 미친 아이처럼 종일 시내를 쏘다닌다. 여름 방학이 되자, 자기 집과 남의 집 정원에서 잡초를 모두 뽑는가 하면,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신문 배달을 하고, 백열세 번씩 수영장을 왕복하기도 한다. 이러니 살이 빠지지 않을 리가 있나. 개학 날, 펠릭스는 디디한테 다가와 묻는다. “언제 이사 왔니?”라고.

『뚱보, 내 인생』의 주인공 벵자멩은 중 3이다. 살이 쪄서 가장 힘든 것은 여자애들이 도대체 자기를 남자로 봐주지 않는다는 거다. 게다가 자기처럼 뚱뚱한 삼촌은 이렇게 못을 박는다.

“나도 네 나이 땐 뚱뚱한 여자 애들을 싫어했었지. 걔들 역시 날 거들떠도 안 봤고! 하지만 어쩌겠니. 뚱뚱한 남자, 뚱뚱한 여자는 아무도 안 좋아하는걸. 그러다 보니 저절로 뚱뚱한 애들만 남게 됐고, 자연히 우리들끼리 만나게 됐지!”(『뚱보, 내 인생』, 38쪽)

벵자멩은 좋아하는 여자 애를 수영장에서 만나도 물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 애가 호감을 갖고 있는 걸 알면서도 다가갈 자신이 없다. 그러나 벵자멩을 변화시킨 것도 디디와 마찬가지로 ‘사랑의 힘’이었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폭식을 하던 습관만 없어졌을 뿐인데, 벵자멩은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나의 몸이 기준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오늘도 엄청나게 늘씬한 아이돌 그룹들이 노래를 부르며 치킨 광고를 한다.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것 같다. 걸 그룹도 밤이면 라면과 치킨을 간식으로 먹을 것만 같다. 먹고 싶은 욕망과 저들처럼 늘씬해지고 싶은 욕망이 동시에 부딪힌다. 정 안되면 ‘시술’ 혹은 ‘수술’이라는 방법을 통해 원하는 몸을 얻을 수도 있다고 어디선가 은밀히 속삭이기까지 한다.

남의 시선으로 자기 몸을 바라보고, 타고나지 않고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몸을 원할수록 우리는 불행해진다. 은찬이도, 앙리도, 디디도, 벵자멩도, 자기 몸을 제대로 바라보며 자신감을 얻어가자 살이 찌고 안 찌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쭈뼛거리지 말고, 가장 예쁜 수영복을 입고 물에 뛰어들어 보자. 남의 기준에 맞추려고 땀 흘려 운동할 것이 아니라, 나의 몸을 위해 한껏 재미있게 놀아야 할 계절, 여름이다.
신수진 |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어린이 책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제주로 이주해 프리랜서 편집자와 자유기고가로 살고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으로 살면서, 휴식과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과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제가 가진 재주를 잘 써보려고 합니다. 여전히 제주 곳곳을 탐험하는 일이 좋고, 손님이 오시면 두 팔 벌려 환대하며 멋진 곳으로 함께 떠나자고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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