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8월 통권 제1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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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흔의 새로 읽는 그림형제 동화]
충성스런 요하네스와 진실의 목소리

신동흔 | 2013년 08월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 그림형제 동화 이야기를 할 시간이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는 분주하고 팍팍한 날들. ‘주어진 일’에 복무하는 날들은 무력감을 남긴다. 얘깃거리가 많고도 많은 그림형제 동화지만 마음이 겉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마음을 다잡는 이야기일 테다.

『그림형제 민담집』을 이리저리 뒤적이기를 몇 번째, 마음의 걸음은 책의 여섯 번째 이야기인 「충성스런 요하네스」에 머문다. ‘충신 요하네스’로 번역되기도 하는 이 이야기의 원 제목은 ‘Der treue Johannes’이다. ‘진실함’을 뜻하는 ‘treue(true)’가 ‘충성스런’으로 번역되는 것은 이야기 속 요하네스가 워낙 충성스런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충성의 존재이기에 앞서 진실의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필요한 그 무엇, 진실의 목소리.

충성스런 요하네스

옛날에 한 늙은 왕이 깊은 병에 들자 충성스런 시종 요하네스를 불러 아들의 앞날을 부탁했다. 아들에게 성안의 모든 것을 보여주되 황금 궁전에 사는 아름다운 공주의 초상화가 숨겨진 마지막 방만은 보여주지 말라고 했다. 왕은 요하네스의 맹세를 믿고 세상을 떠났다.

요하네스는 젊은 왕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그는 왕에게 갖은 보물이 가득한 성을 구석구석 보여주었지만 마지막 방만큼은 허용하지 않았다. 방안이 궁금해진 왕은 문을 열어 달라고 사정했다. 방에 못 들어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꼼짝하지 않았다.

요하네스는 도리 없이 길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방에 들어가 공주의 초상화를 본 왕은 그 찬란한 모습에 넋을 잃어 쓰러지고 말았다.

젊은 왕의 마음은 황금 궁전의 공주로 가득 찼다. 목숨을 걸고라도 그녀를 얻고자 했다. 왕은 요하네스에게 제발 자기를 도와 달라고 매달렸다. 요하네스는 최고의 금 세공품들을 만들어 배에 실은 뒤 왕과 함께 황금 궁전을 찾아 떠났다. 요하네스가 보여주는 금붙이에 마음이 혹한 공주는 다른 물건을 보려고 배에 올랐다. 공주를 만난 왕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요하네스는 사공을 시켜 배를 출발시켰고, 왕은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해서 그 마음을 얻어냈다.

배가 바다 위를 달릴 때 세 마리 까마귀가 날아와 지저귀기 시작했다. 요하네스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왕이 마중 나온 적갈색 말을 타면 공주를 잃게 되니 총으로 쏴 죽여야 한다고 했다. 왕이 성에서 화려한 결혼 예복을 입으면 타죽게 되니 불에 던져야 한다고 했다. 또 왕비가 춤을 추다 쓰러지면 오른쪽 가슴에서 세 방울의 피를 빨아서 뱉어야 한다고 했다. 이 사실들을 누설하면 몸이 돌로 변할 것이라고 했다.

요하네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주인을 구하러 나섰다. 총으로 적갈색 말을 쏘고, 왕의 예복을 불에 던졌으며, 쓰러진 신부의 오른쪽 가슴에서 피를 빨아 내뱉었다. 두 번은 그냥 넘어갔으나 세 번째까지는 참을 수 없었던 왕은 요하네스를 옥에 가두고 사형을 언도했다. 교수대에 세워진 요하네스는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어서 자기가 그리 행동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왕이 놀라서 사면을 명했지만, 요하네스의 몸은 어느 새 돌로 변하기 시작한 뒤였다.

왕은 죽어서 석상이 된 요하네스를 곁에 두고 지내면서 그를 되살릴 수 있기를 기원했다. 세월이 흘러 아들들까지 얻은 왕은 어느 날 석상을 보면서 요하네스가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그러자 석상이 입을 열더니 왕이 쌍둥이 아들을 죽여서 그 피를 자기한테 바르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왕은 슬픔을 무릅쓰고서 아이들의 목을 잘라 그 피를 석상에 발랐다. 그러자 요하네스의 생명이 돌아왔다. 살아난 요하네스가 두 아이의 몸에 목을 얹고 피를 바르자 두 아들은 말짱하게 되살아나 뛰어다녔다. 왕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으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왕비도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요하네스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충성스런 시종? 진정한 친구? 그 이상!

이야기 속 요하네스는 말 그대로 충성스러운 존재였다. 젊은 주인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는 사람이었다. 왕을 위해 황금 궁전의 아름다운 공주를 데려오는 것쯤은 오히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진정 어려운 것은 자신의 충심이 주인의 오해를 낳게 될 일들이었다. 멋진 말을 죽이고 예복을 불태우는 일, 나아가 왕비 가슴에서 피를 빨아내는 일은 주인의 기대나 욕망에 반하는 일이었다. 오해와 미움을 사고 죽음을 자초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일을 한다. 자기 온몸이 돌로 변해서 굳어지는 것을 무릅쓰고서. 왜냐하면 그는 충성스런 요하네스였으므로.

요하네스를 보면 곁에 이런 시종을 하나 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충신을 곁에 두는 것은 꽤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그는 걸핏하면 나를 막아서고 힘들게 하는 존재이므로. 그는 내가 가고 싶어하는 길을 막아서며, 나의 사랑하는 물건을 손상시키고 사랑하는 이에게 손을 댄다. 그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한 일이려니 하고 믿으면 될 일이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저 왕이 그러했듯이 벌컥 화를 내면서 그를 가두고 없애려 들 것이다. “이건 도대체 어쩔 수 없어!” 이러면서.

저 요하네스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은 한 명의 진정한 친구이다.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는 친구. 심지어 오해 속에 버림받을 것을 무릅쓰면서까지 험한 일을 대신해 주는 친구. 늘 나를 바른 길로 이끌려고 바른 말을 해주는 친구. 때로 귀찮거나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친구 하나만 있다면 삶은 온전히 지켜질 터이니 얼마나 고맙고 복된 일일까.

요하네스에게서 진정한 친구를 연상하면서 ‘나한테 그런 친구가 있는가’, 생각하던 나의 머리가 문득 띵해지고 말았다. 나한테는 과연 그런 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친구가 있다. 나를 일깨워주는 또 다른 나. 그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바로 우리 안에 있다. 저 깊은 곳에서 나를 일깨워주는 그 무엇. 양심(良心), 초자아(超自我; superego). 그렇다, 참 자아.

이야기 앞쪽으로 돌아가서 요하네스가 마지막 방문을 막아서는 장면과 만나보자. 방문 안에 있는 공주의 초상이 무엇이기에 요하네스는 그것을 막아서는 것일까? 이야기는 황금 궁전의 공주를 한번 보면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한번 휘말리면 헤어날 수 없는 아름다움이란 금할 수 없는 유혹의 상징이라 할 수 없다. 강력하고 위태로운 함정. 그래서 요하네스라는 이름의 초자아는, 냉철한 이성은 그 길을 막아서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의 힘은 강렬한 유혹을 마침내 이기지 못한다. 요하네스를 밀치고 방안에 들어선 왕, 이제 길은 일사천리다. 공주로 표상되는 욕망을 향한 거침없는 달음박질! 기적과도 같이 공주를 얻으니 세상이 다 제 것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함정은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적갈색 말과 화려한 예복, 그리고 신부의 가슴…. 이들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마구 치닫는 욕망과 화려한 도취감, 그리고 배타적인 소유욕 등을 상징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요하네스가 나서서 애써 그들을 제어하려 하지만 그 모두를 이길 수는 없었다. 왕은 질투를 동반한 독점적 소유욕 앞에서 결국 무너지고 만다. 그게 다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제 요하네스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왕은 이미 자기 욕망의 함정 속에 빠져든 터다. 어떤 시늉을 하든, 진실의 목소리는 더 이상 그의 귀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요하네스는 그렇게 돌이 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구원의 기회가 온다.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돌이 된 요하네스를 차마 버리지 않고 곁에 두고 있던 저 사람, 진심으로 그가 되살아나기를 소망한다. 본 모습을 되찾기를. 그러자 그 진심에 요하네스가 응답한다. 그가 주문한 것은 아주 가혹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자식들의 목을 잘라서 피를 내라는 것.

이 주문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면,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는 자기를 죽일 만큼의 희생과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눈물을 삼키고서 그 일을 해내자 죽었던 요하네스가 살아난다. 그리고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난다. 내 손으로 버린 나의 소중한 분신이 훌쩍 되살아난다. 죽었다 살아났으니 진짜 삶의 시작이다. 요하네스와 자식들은, 참 자아와 삶의 가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늘 내 안에 머물면서 나를 지켜주는 요하네스. 내가 그를 믿지 않고 외면할 때 그는 돌이 되어 어둠의 침묵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어디에 있는지? 그가 활짝 웃으며 모습을 드러내나게 하려면, 결단이 필요하다. 나를 통째로 버리는 아픈 결단이.

참 자아의 또 다른 표상, ‘수정 구슬’

이제 우리 이야기는 「수정 구슬」로 넘어간다. 『그림형제 민담집』 최종판의 끝에서 네 번째 자리(197번)를 차지하고 있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와 처음 만날 때부터 나는 그 핵심 화두가 ‘참 자아 찾기’라고 단정했다.

옛날에 한 마녀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 자식들의 힘을 두려워한 마녀는 맏아들을 독수리로 만들어 바위산으로 보내고 둘째 아들을 고래로 만들어 바다 속에 살게 했다. 위험을 느낀 셋째 아들은 집을 나와 길을 떠났다. 그의 발걸음은 황금 태양의 성에 갇힌 공주에게로 향했다. 공주를 구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으나, 그는 기꺼이 그리 하고자 했다. 문제는 태양의 성으로 가는 방법이었는데, 뜻이 있으니 길이 열렸다. 거인들에게서 빌려 쓴 마법의 모자가 순식간에 그를 성으로 옮겨주었다.

황금 태양의 성에서 만난 공주는 소문과 달리 추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거울에 비춰진 공주의 모습은 한없이 아름답고 애처로웠다. 공주는 자기를 구하려면 수정 구슬이 필요하다고 했다. 샘가의 사나운 들소와 싸워 이기면 그 죽은 몸에서 불새가 날아오를 것이며 불새의 빛나는 알 속에 수정 구슬이 노른자처럼 들어있을 것이라 했다. 불새를 괴롭혀 알을 떨어뜨리게 하되 알이 땅에 닿으면 안 된다 했다. 땅에 닿으면 모든 것이 타버리고 수정 구슬도 녹게 될 것이라 했다.

젊은이는 산에서 내려와 들소와 맞섰다. 힘든 싸움 끝에 칼로 들소를 찔러 죽이자 그 몸에서 불새가 나왔다. 불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려 할 적에 독수리로 변해 있던 큰형이 날아와 불새를 마구 쪼았다. 불새의 알이 땅으로 떨어져 불길이 일어나려 할 적에 고래로 변해 있던 작은형이 세차게 물을 뿜어서 불을 껐다. 젊은이가 불새의 알을 찾아서 살펴보니 껍질은 깨졌지만 수정 구슬은 무사했다. 그가 마법사를 찾아가 구슬을 내밀자 마법사는 힘을 잃고 항복했다. 젊은이는 성의 왕이 되었고, 형들은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공주가 찬란한 모습으로 젊은이 앞에 섰다. 둘은 기쁨에 가득 차서 반지를 교환했다.

이상이 「수정 구슬」의 사연이다. 세상의 모든 흉포한 마법을 깨고 행복을 기약하는 찬란한 수정 구슬이라니. ‘절대 반지’를 연상시키는 놀라운 보물이다. 그런 보물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 그 구슬은 실상 우리 모두에게 있다. 어딘가 하면 우리 안의 깊고 깊은 곳에. 앞서 말했던 바, ‘참 자아’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가히 의미 있는 존재라 할 수 없는, 그러나 그것을 얻으면 세상 모든 것을 가지게 되는 그 무엇, 나의 진정한 자아.

저 수정 구슬을 얻는 일은, 존재의 진정한 가치와 만나는 일은 무척 힘들고 험난한 과업이었다. 사나운 들소로 표상되는 동물적 본능[수성(獸性)]과 싸워 이겨야 했으며, 시뻘건 불새로 표상되는 불타는 열정을 제어할 수 있어야 했다. 뜨겁고 빛나는 열정은 수정 구슬을 배태하고 있지만 그것을 한순간에 태워버릴 수도 있었다. 그 구슬을 얻기 위해서는 독수리 같은 매운 용기와 고래의 물보라 같은 차가운 이성이 필요했다. 그 위태롭고도 아슬아슬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마침내 참다운 자아와 만난 저 사람, 세상의 당당한 주인공이 된다. 일컬어 왕. 그 존재에서 우러나는 빛은 세상 모든 어둠을 훌쩍 걷어낸다. ‘마법’이라는 이름의 얄팍한 거짓이나 흉한 폭력 따위는 더 이상 인간을 우롱하지 못한다.

이야기는 수정 구슬을 얻기 위한 젊은이의 싸움을 단 한 번의 일인 것처럼 말한다. 물론 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실제의 삶에서 저 들소와의 싸움은, 그리고 불새와의 싸움은 하고 또 해야 하는 무엇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평생에 걸쳐 끝없이 이어가야 하는 힘겨운 싸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수정 구슬이 없다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도 또 내일도 기꺼이 그것을 찾아 나서야 하는 일이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은 그 수정 구슬이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것을 원한다면, 진정으로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면 저 구슬은 어느새 우리 손 위에서 찬란히 빛나게 될 것이다.

[어린이책 읽기 모임 같은 데서 옛이야기에 깃든 상징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설명을 듣고 보면 그렇구나 싶은데 이야기만 봐서는 모르겠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는 것이다. 아이들도 무심하게 이야기를 넘길 텐데 무언가 해석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아이들이 이야기와 제대로 만나다 보면 어느새 그 속에 깃든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제대로 된 만남’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직접 말해보기도 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영 어렵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하곤 한다. 일일이 다 설명해 주는 건 아니더라도 살짝 맥을 짚어주는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저 수정 구슬은 도대체 무얼까? 그걸 얻기 위해서 왜 들소랑 싸우고 불새랑 싸워야 할까?” 이렇게 물음을 던지고 아이와 함께 답을 찾아보는 것이다. 옛이야기 속 상징을 헤아려보는 것은 즐겁고 유익한 일이다. 상상력과 논리력을 키우는 데 이만한 일이 따로 없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그림 형제 동화집』(루보미르 아날라우프 그림, 그림 형제 글, 김선미 옮김, 파랑새, 2006)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신동흔 |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였고, 설화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건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조상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구비문학 연구와 고전 재해석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한겨레 옛이야기 시리즈를 기획했으며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 『살아 있는 우리 신화』 등 펴낸 책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