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1월 통권 제1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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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서평

[열린청소년 서평]
우주를 꿈꾸는 시간, SF

한미화 | 2014년 01월

그건 우주에서 날아오는 건 아닐까. 읽다가 보다가 듣다가 온 몸을 휘감으며 쏟아지는 기쁨 말이다. 대개 일정하게 집중하고 있을 때 이런 희열이 찾아온다.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이야기에 빠져들 때 종종 이런 순간을 경험하는데 일종의 ‘서사 중독’이 아닐까 싶다. 특히 보르헤스나 마르셀 푸르스트의 소설보다는 다카노 가즈야기의 추리물이나 필립 K. 딕의 SF 등 장르적인 소설을 읽을 때 한층 강하다. 이야기성이 풍부한 소설 가운데 아직껏 소수가 즐기는 분야가 있다. SF다. 이야기의 재미도 크지만 읽고 나면 청량감도 대단하다.

SF는 Science Fiction, 즉 과학소설이라 부르는데 한때는 공상과학소설이라고도 했다. 1970~80년대에 나온 일본책을 중역해 소개한 ‘어린이 회관 문고’처럼 SF가 어린이용으로 인식된 탓이다. 하지만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라 과학소설이라 고쳐 불러도 국내에서는 아직 SF를 ‘읽는’ 독자는 드물고 ‘본’ 사람은 많다. SF 걸작들이 꾸준히 영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 「블레이드 러너」 「페이첵」 등의 영화는 모두 필립 K. 딕의 SF가 원작이다. 2013년 겨울에도 올슨 스콘 카드의 베스트셀러 SF 『엔더의 게임』이 상영 예정이며,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나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도 영화로 제작 중이라고 한다. SF에 담긴 인간의 상상력을 영상으로 보여줄 만큼 기술력이 발전한 덕에 전에 없이 SF 영화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까닭이다.

영화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봐줄 수 있어도, 여전히 과학소설은 싸구려 대중소설이라는 선입견이 알게 모르게 존재한다. SF가 1920~30년대 미국에서 펄프 픽션으로 자리 잡으며 대중화된 탓도 있고 장르소설에 대한 선입관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데 최근 청소년문학에서 과학소설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배미주의 『씽커』(창비, 2010), 구병모의 『피그말리온 아이들』(창비, 2012), 『방주로 오세요』(문학과지성사, 2012), 듀나의 『아직은 신이 아니야』(창비, 2013), 여기에 1950년대 말 무렵 과학소설을 창작했던 고 김낙원의 『금성 탐험대』(창비, 2013)까지 복간되었다.

만약 인간이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니게 된다면

SF는 과학적 지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미래에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들려주는 소설이지만, 미래라는 시간 조건만 있을 뿐 종류는 다양하다. 오드리 니페네거처럼 사랑을 말할 수도 있고, 아이작 아시모프처럼 미래 은하 제국의 대 서사시를 만들 수도 있으며, 조지 오웰이나 올더스 헉슬리처럼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그려낼 수도 있다. 요즈음의 청소년 SF 역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삼았을 뿐 작가마다 독특한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생태주의 소설에 가까운 배미주의 『씽커』는 자연과 멀어진 삶을 미래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경고한다. SF의 덕목 중 하나인 참신한 아이디어가 풍부한 작품이다. 신(新)아마존에 살고 있는 동물의 의식에 접속(싱크)하여 그 동물의 감각을 고스란히 느끼는 ‘씽커’라는 게임이 독특하다. 또 소설집 『파란 아이』(창비, 2013)에 실린 배명훈의 단편 「푸른 파 피망」은 경쟁과 견제를 일삼는 어른과 달리 본능적으로 평화를 찾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따뜻하고 코믹한 SF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청소년을 위한 주목할 만한 SF을 손꼽으라면 단연 로이스 로리와 듀나의 소설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듀나의 『아직은 신이 아니야』는 만약이라는 가정법으로 미래를 시뮬레이션한다. 모두 11편의 단편이 연작 형태로 엮이어 있다. 연작소설이 그렇듯 각각의 소설은 독립적이지만 종내는 모두가 연결된 장편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소설집은 「우리 모두의 힘」이라는 단편으로 시작한다. 처음 「우리 모두의 힘」을 읽을 때만 해도 소녀들의 백일몽인가 싶었는데 이어진 단편을 하나 둘 읽어가다 보면 점차 확장되는 세계에 그저 놀라게 된다.

핵폭탄이 낙제한 대학원생이라도 만들 수 있을 만큼 평범해진 미래가 배경이다. 인종 차별, 종교 갈등 때문에 폭죽놀이 하듯 핵폭탄이 터진다. 비슷하게 북한에서도 핵폭탄이 터지고, 그때 인간 자신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초능력이 돌연 생겨났다. 때는 2026년이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읽을 수 있고, 정보와 지식까지 빨아들일 수 있는 정신 감응자, 물건이나 자기 몸 심지어 우주선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염동력자,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치유자, 이런 능력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배터리 등의 돌연변이들이 생겨난다. 이제 인간은 힘들게 공부할 필요도 없고, 늙고 죽지도 않는다. 소설은 대체 왜 이런 초능력자들이 생겨났는지, 그들의 능력이 어떻게 다른지, 별스런 능력이 만들어낸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될지를 단편 하나마다 조금씩 확장해가며 보여준다.

「루카스 에크보리 정신 개조 캠프」나 「LK 실험 고등학교 살인 사건」은 이런 종류의 SF가 즐겨 다루는 신계급사회 문제를 지적한다. 정신 감응력자가 ‘갑’인 세상이 도래하자 정신 감응력자를 만드는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열린다거나, 좀 더 우월한 초능력과 열등한 초능력이 있어 결국 미래도 지배와 피지배 계급으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작가의 사고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돼지치기 소녀」, 「하필이면 타이탄」 같은 단편에 이르면 남아도는 에너지를 소비하기 위해 우주로 진출한 인류와 외계 생명체로까지 시공간이 넓어진다. 대체 작가가 어떻게 소설을 끝낼지 걱정되기 시작할 정도로 사고가 무한 확장된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마지막까지 읽어야 전모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쯤 되면 어른들이 물을지 모른다. 대체 시간도 없는데 왜 그런 허무맹랑한 소설을 청소년이 읽어야 하느냐고. 물론 안 읽어도 그만이지만, 집에서 학교로 다시 학원으로 종종 걸음 치는 게 삶의 전부일까. 때로 그런 쳇바퀴를 벗어나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 가보면 어떨까. 그 공간 속에서 우리는 의문과 마주한다. 인간에게 신과 같은 전지전능한 초능력이 생긴다면 과연 행복할까, 불행할까? 인간에게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독심술 능력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독심술이 생기자 사람들은 더 이상 진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사랑은커녕 혐오한다. 또 초능력의 대부분은 서로를 학살하는 데 사용한다. 이러니 인간에게 뜻하지 않게 찾아온 초능력은 재앙이다. 그러니 듀나의 소설을 읽으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간에게 유토피아가 있다면

최근 시리즈의 마지막 4부인 『태양의 아들』이 출간된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도 놓칠 수 없는 빼어난 SF다. 『아직은 신이 아니야』가 디스토피아의 상상력으로 미래를 가정한다면, 『기억 전달자』는 얼핏 보기에 유토피아의 세계를 그려낸다. 『기억 전달자』의 상상을 ‘얼핏 보기에 유토피아’ 같다고 말한 건 이유가 있다. 작가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미래는 처음에는 정말로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 교육받고 직업을 선택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갖고 은퇴하기까지, 즉 태어나 죽을 때까지 소설 속 미래에서는 완벽한 사회 보장이 이뤄진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대학이 결정되거나 좋아하는 일과 무관하게 그저 직장에 다니는 대신 느리지만 오랜 시간 당사자를 지켜보고 재능과 적성을 살펴 직업을 결정하고 배우자를 정하고 자녀도 골라준다. 인간이 꿈꾸는 낙원, 유토피아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갈등과 분쟁이 없는, 공동 생산과 분배가 이뤄지는 사회 그래서 더 이상 노동에 시달리지 않고 사유 재산도 없는 곳, 주인공 조너스가 사는 미래다.

소설은 조너스가 열두 살이 되어 일반적인 직업이 아니라 기억 보유자로 선택되며 진실이 드러난다. 기억 보유자라는 직업이 필요하다는 건, 미래 사회는 개인이 자기가 겪은 일을 기억할 뿐 과거로부터의 기억은 사라진 사회라는 뜻이다. 역사도 없고 당연히 책도 없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며, 뜻하지 않는 변화를 일으킬 만한 요소를 제거한 탓이다. 날씨나 색깔 심지어 감정까지 없애면 인간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조너스는 기억 보유자 훈련을 받으며 지금껏 몰랐던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결국 자유를 선택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재미있지 않은가, 우리를 슬프게 하고 때로 불필요한 욕망에 시달리게 하게 하는 감정을 제거한다면, 인간은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렇듯 SF는 가정법을 이용해 미래를 만들고 과연 인간은 그 속에서 어떻게 될까를 상상하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읽고 나면 집, 학교, 국가를 넘어 사고력이 확장된다. 당연하게 인간의 조건을 성찰한다. 접근 방법은 다르지만 로이스 로리나 듀나의 고민은 결국 한 지점을 향한다. 인간이 불편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인간의 조건이야 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필수 조건이 아닐까 하는 질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만 있다면’ 혹은 ‘시험 문제의 답을 알 수 있다면’ 같은 상상은 누구나 해봤을 거다. 두 편의 소설은 바로 이런 상상을 구현해냈다. 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도 반대로 감정을 없애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오히려 터무니없이 불완전한 인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사랑이나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순간이 유토피아일지 모른다.
한미화│출판 칼럼니스트입니다.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도 합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책 읽기는 게임이야』 『잡스 사용법』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