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5월 통권 제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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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시들어가는 아이들

김수영 | 2014년 05월

우리나라의 조기유학은 허용 첫해인 2000년 4,397명을 시작으로 2006년 29,511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초등학생의 해외유학은 불법인데도 2000년 705명에서 2006년 13,814명으로 급등하였다. 2006년 정점을 찍은 후 조기유학은 점차 감소추세에 있으나 초등학생 감소폭은 중•고등학생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학부모들이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자녀를 해외로, 해외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성공했을까? 그리고 행복했을까?

최은영의 『빨간 꽃』은 조기유학을 다녀온 뒤 학교에 적응 못하고 자꾸만 움츠러드는 아이, 지우의 아픈 심리를 생생하고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밝은 성격에 공부도 곧잘 하던 지우는 4학년 때 엄마와 캐나다로 조기유학을 떠난다. 지우는 낯선 땅에서 의사소통도 자유롭지 않아 몹시 외롭고 무서웠지만 유학 비용을 보태기 위해 종일 일해야 했던 엄마는 지우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지우를 점점 무시하고 놀려대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지우는 감정조절 안 되는 날카로운 아이, 의기소침하고 자신감 없는 아이로 변해갔다.

지우는 간신히 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학교가 캐나다에서처럼 똑같이 외롭고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친구들은 차가웠으며, 4학년 때 단짝이었던 은채마저 지우를 외면했다. 게다가 엄마는 유학을 다녀왔으니 다른 친구들이 보란 듯이 성적이 월등해야 한다고 매일매일 지우를 다그쳤다. 결국 사회시험을 보던 날, 지우는 한 문제도 풀지 못한 채 잠들어 버린다. 빵점을 맞고 나니 아이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지우를 피했다. 사회 수업을 위한 모둠과제가 주어졌지만 모둠에서는 지우를 밀어내고 싶어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스스로 조사해서 자료를 만들어보겠다는 작은 의지를, 이번에는 엄마가 꺾어버린다. 잘해야 되니까 엄마가 알아서 다 해주겠다는 것이다. 지우는 점점 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이가 되어가고, 국어 시험시간에도 잠이 들면서 또다시 빵점을 맞게 된다. 지우의 병명은 스트레스에 의한 기면증, 지우는 엄마와 함께 소아 청소년 정신과에서 심리치료를 받으며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다.

생각해보면 지우는 그렇게 여린 아이가 아니었다. 유학을 가기 전에는 은채보다도 더 활달했고, 캐나다에서 캐시가 한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흉을 보고, 바보라고 놀렸을 때도 싸움닭처럼 덤비던 당찬 아이였다. 자신의 모둠과제를 대신해 주려는 엄마에게는 ‘내가 할게요.’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 지우가 왜 기면증에 걸렸을까?

지우는 캐시에게 모욕당하고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 고군분투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때 딱 한사람, 아빠의 얼굴이 떠오른다. 전화기 저편에서 나는 아빠 목소리에 지우는 울어버리고 말았다. 곧이어 전화한 엄마는, 한국은 한밤중이라면서 앞으로 아빠한테 전화하고 싶으면 물어보고 하라며 끊어버렸다. 그때 엄마가 지우를 다독여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힘들어도 기댈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지우는 너무 일찍 알아 버렸다.

유학에서 돌아온 후, 엄마의 관심은 온통 지우에게 쏠렸다. 캐나다에 있을 때와 딴판으로 변한 엄마 모습에 지우는 ‘관심이 필요한 것은 그때’였다고 되뇐다. 사실 엄마의 관심이 집중된 곳은 지우가 아니라 지우의 성적이었다. 그렇기에 엄마는 지우가 돌아와서도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어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지우가 시험 시간에 잠이 들어도, 빗속을 헤매고 나서 몇날며칠 앓아누워도 엄마는 그저 억울할 뿐이다. “나만큼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면서. 그런 엄마 옆에서 지우는 병들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유학을 떠나고, 그중 상당수 아이들이 상처만 입고 돌아온다. 부모는 막대한 교육비 때문에 허덕이고, 아이들은 감당 안 되는 과한 학업량과 외로움 속에서 시들어간다. 그 모든 것이 많은 학부모들의 왜곡된 자식 사랑 때문이다. 빵점짜리 시험지의 빨간 비를 하나하나 꽃으로 바꾸면서 이제 더 이상 빨간 비로 젖어있지 않겠다는 지우의 다짐이 참 애처롭다. 부모의 바람대로 아이가 최고의 명문학교에 진학하고 최고의 엘리트로 성공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김수영│어린이 책이 좋아서 어린이 책을 읽고 쓰고 강의하는 일을 합니다. 동화미디어 창작 박사과정을 마쳤고, 라디오 동화작가로도 일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