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통권 제145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즐거운 책 읽기

[이 달의 책 이야기]
그들이 마음껏 뛰노는 세상을 꿈꾸며

김영환 | 2014년 12월

재래시장에서 야채 가게를 하던 집에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 추억 속 한 켠에는 늘 시장 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개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녀석은 ‘이쁜이’입니다. 흰색 털에 갈색 얼룩 반점을 가진 개 이쁜이는 너무나 영리하고 정도 많아 오래도록 우리 가족과 함께 하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랐기에 이 친구가 자신의 수명을 다하고 열 살이 넘어 우리 곁을 떠나버렸을 때는 가족 모두가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가게에 딸린 작은 방 마루 밑에서 새끼를 낳아 정성스레 핥고 빨며 돌보는 이쁜이의 모습에서 어미의 자식에 대한 무한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처음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시장을 떠도는 쥐들을 막기 위해 고양이도 우리집을 든든히 지켜주는 존재였습니다. 어떤 동물보다 깔끔하게 자신을 돌보는 고양이는 자신이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집을 떠난다고 하여 ‘영물’이라고도 한다죠. 이쁜이가 가게 마루 밑에 새끼를 낳았을 때, 고양이는 텔레비전 아래 방구석에 새끼를 낳은 적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강아지와 새끼 고양이들이 서로 엉켜서 놀기도 하고 서로 제 어미를 착각하여 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한 구경거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개와 고양이가 시장 통을 뛰어 다닐 때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생선 내장을 던져주기고 했고, 정육점 아저씨는 고기를 던져주며 개와 고양이를 가끔 포식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우리집 강아지, 옆집 고양이가 아니라 그야말로 시장 사람들이 함께 키웠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앞집 고양이와 뒷집 고양이, 우리집 이쁜이가 옆집 개와 눈이 맞아 사랑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마음껏 뛰어 놀며 먹을 것도 천지에 널려 있는 시장 골목은 개와 고양이에게는 천국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시골에 가지 않으면 마음껏 뛰어 노는 개와 고양이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애견센터의 진열장에 갇혀 버린 개들은 마음껏 짖을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고양이들은 거세를 당하기도 하고 가족처럼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다가 어느 순간에는 매몰차게 버려지기도 합니다. 이제 그렇게 버려진 개와 고양이들은 도시의 밤거리에서 쓰레기봉투를 헤집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아파트 단지의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는 불청객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복과 편리만을 생각하여 필요할 때는 끔찍한 사랑을 퍼붓다가 귀찮아지면 내다버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버림받은 가족이라고 여길 동물들의 마음이 어떨까 상상을 해 봅니다. 개와 고양이들이 사람과 말은 통하지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지내는 것을 볼 때 말입니다.

『악당의 무게』에 등장하는 수용이의 친구 ‘악당’도 예전에는 귀여움과 사랑을 받던 강아지였을 터입니다. 지금은 산 속에서 살고 있는 한 마리 들개의 처지이지만, 누군가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붉은 스프레이로 얼룩진 옆구리는 악당이 버림받았을 때 받은 상처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수용이도 약한 몸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소외를 받은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 친구들 앞에서 악당과 맞선 것을 계기로 새 학교의 친구들로부터 비로소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 악당과 수용의 연대는 비로소 시작됩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안고 있는 약자들의 연대를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무고한 사람을 물었다는 누명을 쓰게 된 악당을 위한 수용과 친구들의 눈물겨운 싸움은 흡사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약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의 싸움을 생각나게 합니다. 자신의 억울한 입장을 말할 수 없는 악당처럼 우리 사회에도 자신들의 억울한 처지를 호소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력과 돈을 가지고 자신이 휘두른 폭력을 숨기고 악당에게 누명을 씌워 현상금까지 내건 황사장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탐욕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모습과 꼭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수용이와 친구들의 진실을 위한 싸움은 멈추지 않습니다. 아버지에게 악당이 저질렀다고 하는 사건의 진실을 전해 듣고 비로소 용기를 내지만 이를 밝혀내기 위한 발걸음이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거대한 권력과 자본을 향한 약자들의 싸움이 쉽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악당을 지켜 내기 위한 싸움은 악당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그 싸움에서 수용이와 친구들은 결코 진 것이 아닙니다. 악당을 산에 묻으며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을 선생님과 함께 시작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록 악당은 죽었지만 눈을 부라리며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악당이 늘 수용이를 지켜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 못하는 동물이더라도 그들이 가진 고유한 생명은 귀한 것이라는 울림이 들려옵니다. 본디 자연의 주인은 이름 없는 풀과 나무, 꽃들, 그리고 그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던 벌레들과 동물들이 아니었을까요. 본디 자연의 주인이었던 그들의 자리를 사람들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황폐하게 만들고 그들의 삶터마저 빼앗아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탐욕에 의해 길들여지고 버려지는 동물들이 가진 생명의 고귀함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악당은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깜장 병아리』는 한 마리 병아리의 눈을 빌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보게 하는 유쾌한 이야기입니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외톨이가 될 수도 있는 깜장 병아리는 오히려 당당하게 처음부터 자신이 병아리라는 것을 주장하여 다른 노랑 병아리들을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다수자와 다르게 태어난 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여 다수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발상은 사뭇 신선함을 뛰어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만큼 우리들이 소수자에 대한 고정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깜장 병아리처럼 소수자가 처음부터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를 둘러보아도 깜장 병아리의 존재를 찾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다수의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의 편견과 차별 때문에 주눅 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하나의 민족의 자손이라는 ‘신화’가 자리 잡아 온 탓에 특히 민족과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두 개의 문화와 사회적 배경을 익힐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언어를 배울 수 있고, 두 개의 문화를 익힐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멋진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것도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와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싶기 때문일 테니까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피부색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흑인과 백인,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 잘 사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에 따라 위, 아래로 서열을 매겨 차별을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같은 민족이라면서도 중국 동포, 북한 동포와 같이 2등 국민, 3등 국민 취급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가거나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던 사람들의 후손인 재일조선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해방이 되고 7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지금 재일동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일본 사회가 과거에 저지른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다시 옛날로 되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본 사람들이 과거에 조선인들을 멸시하고 차별했던 것을 되풀이하는 듯 재일동포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증오 시위가 버젓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센진은 돌아가라!’는 구호를 비롯하여 죽이자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조선 사람들 수천 명이 근거도 없는 유언비어 때문에 학살된 일을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재일동포들이 처한 어려움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도 있지 않을까 되돌아봅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단지 다수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도돌이표는 흔히 무언가 진전도 없이 되풀이되는 것에 비유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 보면 도돌이표가 있어 비로소 그 노래가 풍성해지고 완전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악당과 깜장 병아리가 바로 이 도돌이표와 같이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록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도 없고 소수자의 위치에 처해 있지만 그들이 있어 우리 사회는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악당과 깜장 병아리가 마음껏 뛰노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김영환 |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의 끝에 희생되신 분들과의 만남이 인연되어 일본에서 5년 동안 평화운동을 배우며 일했습니다. 서울의 평화박물관을 거쳐 지금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일합니다. 강제연행, 야스쿠니 신사와 같은 과거사 문제 해결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꿈으로 삼아 즐겁게 일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