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통권 제145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속 깊은 책 이야기

[우리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
귀신
――—한도 많고 사연도 많은 가여운 넋

서정오 | 2014년 12월

어릴 적, 겨울밤에 식구들이 호롱불 밑에 둘러앉으면 으레 귀신 이야기 한 자리쯤 나왔다. 밤만 되면 우는 처녀귀신 이야기, 물 건너는 사람 잡아당긴다는 물귀신 이야기, 둔갑을 밥 먹듯이 하는 여우귀신 이야기…, 그러다 보면 지난 그믐날 밤 건넛마을 개똥이 어머니가 뒷간에 가다가 정말로 귀신을 보았다더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귀신 이야기는 단연 인기였다. 학교 오가는 길이나 동구나무 아래에서 아이들끼리 이야기판이 벌어지면 ‘내 다리 내 놔라!’ 하는 산삼귀신 이야기나 ‘그게 나다!’ 하는 뼈다귀귀신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나왔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분위기부터 달라서 다른 이야기들을 압도했다. 열 번 스무 번도 더 들어서 어느 대목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지 달달 외울 정도였으면서도, 들을 때마다 놀라고 가슴 졸였던 ‘이야기판의 왕초’가 바로 귀신 이야기였다.

요새는 많은 사람들이 더운 여름철에 귀신 이야기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옛날 사람들은 오히려 겨울밤에 귀신 이야기를 더 즐겼다. 화롯가에서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때 바람결에 문풍지 우는 소리라도 들려오면 분위기가 으스스해지는 게 썩 그럴싸했다. 귀신 이야기는 긴긴 겨울밤에 심심함을 달래기에도 아주 그만이었다. 요새 와서 여름철에 귀신 이야기가 성행하는 것은 ‘납량’이라는 일본식 풍습이 대중매체에 실려 상업화된 결과로 보인다.
 
귀신은 구미호와 함께 무서운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손님이다. 달밤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스르르 나타나는 처녀귀신 이야기를,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 안 들어 본 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왜 귀신 이야기를 즐기는 것일까? 아마도 그 낯설음과 신비로움이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또한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 신비하고 야릇한 존재는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옛날부터 귀신은 모르는 것이 없고 못 하는 일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뭐든 신통방통하게 잘 알아맞히는 것을 일러 ‘귀신같다’고 했고, 그런 사람을 가리켜 ‘귀신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또 도무지 모를 일이 생기면 ‘귀신도 모를 일’ 또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했다. 귀신조차 몰라서 곡을 할 정도니 사람이 어찌 알겠느냐는 뜻이다.

귀신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야기의 주요 소재였다. 우리가 잘 아는 『삼국유사』에도 귀신 이야기가 꽤 있는 바, 그 중 하나가 비형 이야기다. 줄거리인즉 옛날 신라 사량부 마을에 도화라는 여인이 살았는데 남편이 죽자 임금이 그이를 찾아왔다. 그 임금은 이미 이태 전에 죽은 진지왕의 혼령이었다. 도화는 부모 허락을 얻어 그 혼령과 인연을 맺고 아들을 낳으니, 그 아이가 바로 비형이다. 그러니까 비형은 사람과 귀신 사이에서 태어난 ‘반 사람 반 귀신’쯤 되는 존재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비형은 철이 들자 궁궐에 들어가 살았는데, 밤마다 궁을 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새벽녘에야 들어왔다. 이상히 여긴 진평왕이 사람을 시켜 뒤를 밟았더니 황천 언덕에 가서 귀신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었다. 왕이 시험 삼아 비형더러 개울에 다리를 놓으라고 일렀더니, 귀신들을 부려 하룻밤 새 다리를 놓았다. 그래서 그 다리 이름을 ‘귀신다리’라 했단다.

또 비형과 어울려 노는 귀신 무리 중에 길달이라는 이가 있어 임금이 궁궐에 데려다가 나랏일을 보게 했더니, 처음에는 잘 하다가 곧 싫증을 내어 도망가려고 했다. 임금이 그것을 괘씸하게 여겨 비형으로 하여금 잡아 오게 하여 벌을 주었다. 사람인 임금이 귀신을 잡아다 벌주다니 뭔가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한 묘한 재미를 준다. 옛날 사람들 상상력은 이처럼 자유분방했다.
 
『삼국유사』에는 선화공주에게 장가든 마퉁이(서동)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에도 귀신이 나온다. 선화공주가 마퉁이와 혼인한 뒤 남편이 마 캐던 곳에 가 보니 금덩이가 산더미만큼 쌓여 있었다. 공주는 그것을 신라의 궁궐로 보내고 싶었지만 보낼 방도가 없어 고심 끝에 지명법사에게 부탁했다. 지명법사는 귀신을 부려 하룻밤 새 그 많은 금덩이를 죄다 궁궐로 날랐다는 얘기다.

말로 전하는 옛이야기에도 귀신은 어김없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경우 귀신은 뭔가 안타까운 사연을 품고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테면 ‘아랑 전설’에서 아랑은 억울하게 죽은 한을 풀기 위해 밤마다 고을 원이 있는 동헌에 나타난다. 하지만 갈려 오는 원마다 아랑의 겉모습을 보고 기절해 버리는 바람에 그 사연을 밝힐 길이 없었다. 다행히 아주 담 큰 사람이 원으로 와서 사연을 듣고 한을 풀어 준 덕분에 아랑은 편안히 저승에 들게 된다.

이처럼 우리 나라 귀신은 그 모습이 사납고 모질다기보다 슬프고 애처로운 쪽이다. 귀신이 무섭다고 하는 것도 본성이 무섭다기보다는 사람이 지레 그 모습에 놀라 무서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을 품고 나타나도 누군가 그 한을 풀어 주면 고마워하며 고분고분 저승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귀신이며, 이것이 서양 이야기에 나오는 유령과 다른 점이다. 서양 유령은 산 사람을 괴롭히는 악당이거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어쨌든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리 귀신은 그렇지 않다. 그 속을 헤아려 주고 달래 줄 가여운 넋일지언정 악에 물든 혼령은 아닌 것이다.
 
우리 나라 귀신이 대개 여자, 그 중에서도 처녀 모습으로 나타나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한을 풀 길 없어 저승에 들지 못하고 이승 언저리를 헤매는 불쌍한 처지를 나타내자면 남자보다 여자, 그것도 나이 어린 여자가 제격이었던 것일까. 우리 조상들이 귀신에게조차 억울한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그만큼 모두가 한 많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귀신은 그 종류도 가지가지다. 젊어서 죽은 말명귀, 어려서 죽은 태자귀, 오다가다 객지에서 죽은 객귀, 굶어죽은 아귀, 물에 빠져 죽은 물귀신, 불에 타 죽은 불귀신, 눈도 코도 없는 달걀귀신…, 그뿐이 아니다. 몽달귀는 장가 못 간 총각귀신이요 손각시는 시집 못 간 처녀귀신인데, 이 둘을 혼인시키는 것을 ‘귀혼’이라 했다. 또 이야기귀신은 이야기가 한 곳에 갇혀 생긴 귀신이요, 엽전귀신은 돈이 오래 묵어서 된 귀신이다. 모름지기 이야기와 돈은 온 세상에 훨훨 떠돌아 다녀야지, 갇혀 있으면 못 쓴다는 옛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옛사람들은 종종 이야기 속에 억울한 사연을 품은 귀신을 내세워 사람들을 깨우치기도 했다. 이를테면 ‘눈 먼 선비’ 이야기에서 주인공 선비는 과거 길에 길갓집 처녀에게 크게 신세지고 부부 인연을 맺는다. 나중에 과거에 급제하면 반드시 찾아오리라 언약하고 떠난 선비는 그 뒤 몇 해가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날마다 정화수 떠 놓고 서방님 장원급제를 빌던 처녀는 기다림에 지쳐 낭군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찾은 남편은 이미 다른 아내와 혼인한 몸이었다. 게다가 자기 안위만 생각한 나머지 찾아온 색시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문전박대를 당한 색시는 한 맺힌 글 한 줄 남기고 연못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넌들 네 죄를 모를쏘냐, 낸들 네 죄를 모를쏘냐. 바위처럼 굳은 언약 지푸라기 되었구나. 아무개 벼슬아치 눈이나 머십시오.” 그 죽은 넋의 한 때문에 남자가 눈이 멀었음은 물론이다.

‘신립 장군 전설’에서도 비슷한 한풀이가 이어진다. 젊어서 나들이에 나선 신립은 하룻밤 묵은 주막에서 밤에 자기를 찾아온 주막집 처녀를 무안을 줘 내쫓는다. 그뿐 아니라 그 부모에게 알려 톡톡히 망신까지 준다.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처녀는 끝내 자기 집 대들보에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 업보는 평생 신립을 따라다닌다. 신립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다가 목숨을 잃은 것도 그 귀신의 한 맺힌 복수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남을 무참하게 만들지 마라는 옛사람의 가르침이 담긴 이야기다. 또 이 이야기에는 본성을 철저하게 억압당하는 여성들 처지와 뛰어넘지 못하는 신분의 벽 같은 옛사람들 삶의 생채기도 담겨 있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렇듯 우리 옛이야기 속 귀신은 싸워 이겨서 없애버려야 할 ‘적’이 아니라 그 맺힌 한을 풀어 주고 다독여야 할 우리 ‘이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귀신을 물리쳐야 할 때도 싸우기보다는 잘 달래어 스스로 물러가게 하였다. 무당이 굿을 할 때도 귀신은 달래서 쫓으려 했지 결코 잡아서 없애려고 하지는 않았다. 귀신조차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본 우리 조상들의 따스한 마음씨가 느껴지는 듯하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무덤이 들썩들썩 귀신이 곡할 노릇』(김지민 그림, 정혜원 글, 파란자전거, 2012)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서정오 |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984년 『이 땅의 어린이 문학』에 소년소설을 발표하면서 동화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특히 옛이야기를 다시 쓰고 들려주는 일에 애쓰고 있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글쓰기연구회,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회원이며 대구에서 ‘옛이야기연구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동안 쓴 책으로 『교과서 옛이야기 살펴보기』 『옛이야기 세상 이야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이야기 1, 2』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