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통권 제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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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통하는 세계]
지역, 도시 그리고 어린이 문화

한명희 | 2014년 12월

한국의 어린이 문화 공간은 어떤 상태일까? 서울 도심 한복판, 사직동에는 한국 최초의 어린이도서관인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어린이공공도서관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여 어린이공공도서관 건립 운동으로 이어졌다. 여러 지자체와 시민들의 힘으로 현재 그 수가 80여 개에 이르렀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은 전국에 유일한 어린이공공도서관으로서 역할을 했다.

최근 정부가 사직단 복원을 위해 주변 시설을 철거하겠다고 밝히면서 수십 년 동안 많은 시민에게 유년의 놀이터였던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이 없어질 위기에 놓였다. 1995년 한국 최초로 문을 연 한 사설 어린이 박물관은 공공 어린이 복합 문화센터의 위탁 운영을 맡으면서 2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수많은 어린이의 기억과 역사가 담긴 어린이도서관을 허물면서, 과연 사회의 문화와 역사를 진정으로 복원한다고 할 수 있을까? 어린이 문화 공간의 공공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고,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까?

필자는 그림책 기행을 하면서 어린이 문화를 도시의 자부심으로 여기고 보존하며 발전시켜 가는 몇몇 도시를 만났다. 이번 호에서는 수십 년 동안 그 역사를 이어가는 도시의 어린이 문화 공간을 소개하면서 한국 어린이 문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도시의 모습, 보스턴 공원과 보스턴어린이박물관

보스턴은 하버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등 미국을 대표하는 대학이 모여 있는 대학 도시로 유명하다. 보스턴은 다양한 역사와 문화 공간을 지니고 있지만, 그중에서 어린이와 관련하여 보스턴 공원과 어린이박물관도 널리 알려져 있다. 보스턴 공원은 보스턴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 중 하나이다. 이곳이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림책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보스턴 공원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책 『아기 오리들한테 길을 비켜 주세요』는 보스턴의 책이라고 할 만큼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 그림책에는 보스턴 곳곳의 풍경은 물론, 이곳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기 오리’는 도시에 함께 사는 동물이면서, 동시에 어린이이기도 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도시 사람들에게 아기 오리, 어린이는 자칫 잊기 쉬운 존재이다.

이 책에서 바쁜 도시 사람들은 작은 아기 오리떼를 발견하고 그들을 위해 잠시 발길을 멈춘다. 바쁘게 달리던 차들마저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이 안락한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준다. 아기 오리들이 도착한 안락한 집은 바로 보스턴 공원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도시 사람들이 잠시 멈춰 서서 아기 오리떼를 기다려주는 것은 작은 배려를 넘어서 존중을 의미한다. 공원에는 여전히 많은 오리가 살고 있다.

1941년 출간된 이 책으로 보스턴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1978년부터 보스턴 시는 매년 봄, 어린이를 비롯한 가족들이 참여하는 오리떼 퍼레이드를 연다. 오리의 모습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아이들은 공원과 도시 중심가를 줄지어 걷는다. 그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를 읽고 보스턴 공원을 찾는 아이들을 위해 1987년 오리떼 조각상이 공원 안에 설치되었다. 조각상이 설치된 이후 어린이는 물론 많은 관광객이 이 오리들을 만나러 보스턴 공원을 찾는다.

아기 오리떼 만큼 어린이들에게 매력적인 이 도시의 상징은 보스턴어린이박물관이다. 보스턴어린이박물관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어린이박물관인데, 필자가 방문한 2013년은 보스턴어린이박물관이 꼭 100주년 되는 해였다. 보스턴어린이박물관은 1913년 지역의 과학 교사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여성교육협회에서 힘을 보태 열었다. 이곳에서는 무엇이 박물관인지, 어떻게 모든 연령의 어린이들이 스스로 경험을 통해 알아갈 수 있는지에 주목하고 어린이를 위한 즐거움과 교육에 관한 박물관의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고자 했다. 또한 자연물, 책, 그림, 도표, 슬라이드 자료 등을 모아 어린이와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박물관은 지역의 많은 어린이,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공간을 옮기다가, 1975년 당시 비어있던 울 창고에서 더 크고 다양한 기능을 포함한 어린이박물관으로 문을 열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유리 안에 보관, 전시되는 기존의 박물관을 탈피하여 흥미로운 것들을 직접 경험하여 알아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박물관이기에 이곳을 찾은 아이들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만지고, 쌓고, 당기고, 뛰고, 노는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발견한다. 이는 단순히 과학적 경험만이 아니라 언어, 예술, 세계 문화, 자연 등을 포함한다.

이 박물관은 배움은 책상 위에서 읽기나 암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배움을 발견해 갈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박물관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공공 서비스라고 믿고 있다. 이렇게 보스턴어린이박물관은 기존에 권위만 내세웠던 박물관에서 어린이와 시민을 충분히 생각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박물관으로 박물관의 의미를 바꾸어 냈다. 이러한 공공 서비스를 100년 이상 유지해 오는 것만으로도 박물관의 영구적, 지속적, 공공적 소임을 다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축제와 예술의 도시 에든버러, 어린이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어린시절박물관(Museum of Childhood)

도시의 인구가 50만이 넘지 않는 에든버러는 매년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이다. 도시를 관광객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관광객이 이 도시를 방문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도시 곳곳에서 그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킬트를 입고 백파이프를 부는 남성, 향긋한 위스키, 체크 무늬 울 스카프 등 문화에서 쇼핑까지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도시만의 매력도 풍부하다.
 
최근에는 『해리포터』의 작가가 영감을 얻은 도시로도 유명해졌다. 작가가 집필했던 에든버러의 한 카페는 사람이 너무 많아 한 잔의 차를 마시기 위해 몇십 분을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1년 내내 열리는 다양한 축제 때문이다. 매년 8월 열리는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물론, 전 세계의 실험적 예술가들이 모이는 프린지 페스티벌, 에든버러 국제 영화제, 에든버러 책 축제 등 다양한 축제가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전 세계인을 이 도시로 이끈다.
 
축제의 도시 에든버러에서 빼놓지 않고 찾아봐야 할 곳 중 하나가 어린시절박물관(Museum of Childhood)이다. 1955년 문을 연 이 박물관은 앞서 소개했던 보스턴 어린이박물관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박물관이다. 보스턴어린이박물관이 놀이와 체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는 형태의 어린이박물관이라면 에든버러의 어린시절박물관은 어린 시절에 관한 다양한 아카이브를 보여주는, 그야말로 어린이 생활사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에든버러 의회의 의원이었던 패트릭 머레이(Patrick Murray)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모으고 보관해 왔던 어린 시절 장난감, 옷, 책 등을 통해 즐거움, 다채로운 특색과 매력,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이는 오로지 자신의 과거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과거에서 온 것이라고 믿었다. 어린 시절, 어린이의 삶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듯, 모든 사람의 어린 시절을 담고 있는 이 박물관은 18세기에서 21세기까지 어린이에 관한 다양한 사물, 이야기를 상시로 전시하고 있다.

나라와 문화마다 다른 모습을 한 인형들부터 각양각색의 기차와 자동차 장난감, 동물 장난감, 어린이 책, 책과 관련한 장난감, 여기에 어린이들의 의복과 학교생활을 보여줄 수 있는 소품과 연출까지 다양한 소장품들이 어린이의 시대적 삶을 보여 주고 있다. 모든 사람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이 박물관은 설립된 이후 많은 사람의 기부와 에든버러 시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과거를 보여 주는 컬렉션 전시만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의 현재를 보여 주는 전시도 바로 이곳을 통한다. 프린지 페스티벌이 그 매개이다. 1947년부터 시작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예술 축제로 알려진 프린지 페스티벌에 지역의 어린이들도 예술 활동으로 당당히 참여한다. 매년 ‘프린지 학교 포스터 대회(Fringe Schools Poster Competition)’가 열리기 때문이다.

1980년부터 시작된 이 대회에는 5세부터 16세까지의 학생들이 참여해 한 장의 포스터를 통해 그들의 예술적 상상력과 재능을 뽐낸다. 단순해 보이지만, 프린지 페스티벌 기간에 이 지역을 찾는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지역의 아이들로부터 프린지 페스티벌의 의미와 영감을 얻는다. 또한 이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종종 매년 프린지 페스티벌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쓰이기도 한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기간 도시 곳곳의 포스터, 현수막은 물론 홈페이지에도 아이들의 그림이 당당히 등장한다.

매년 여름 동안에 이 대회 수상작의 전시가 열리는 곳이 어린시절박물관이다. 예술에 관한 다양한 상상을 표현한 학생들의 포스터는 그 자체로 대단한 컬렉션이다. 소재, 기법도 다양하지만, 예술에 관한 아이들의 생각이 무궁무진함을 발견할 수 있다. 포스터를 통해 지역의 미래를 전망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축제의 의도는 단순히 한 도시뿐 아니라 나아가 전 세계 예술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예술성을 존중하는 축제이자 도시이기 때문에 지금의 성황을 누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외국 작가 초청에 열을 올리는 한국의 예술 축제, 정치와 경제적 상황에 늘 뒤편으로 내몰리는 한국의 어린이 문화와 역사를 보며, 어린이의 현재와 미래가 곧 한 사회의 현재와 미래임을 문득 깨닫게 된다.
한명희 | 그림책과 도서관에 파묻혀 여러 해 살았습니다. 지금은 여러 지역 동료들과 함께 ‘그림책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키워온 그림책에 관한 관심과 경험들을 앞으로 일 년 동안 『열린어린이』에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