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1월 통권 제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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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현대 영미 아동문학 살펴보기]
로이스 로리(1937~)

유영종 | 2015년 01월

얼마 전 영화화되며 더 유명해진 『기억 전달자』를 쓴 작가 로이스 로리는 그림책부터 청소년소설까지 다양한 독자를 대상으로 작품을 써 왔습니다. 오랫동안 작가로 활동했기 때문에 쉽게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작품이 다양합니다. 로리의 작품에는 발랄한 10대 소녀 아나스타샤의 성장기부터 성당에 사는 신앙심 깊은 작은 생쥐들의 한판 소동, 상상력이 뛰어난 꼬마 이야기꾼 구니 버드의 학교생활처럼 우습고 재밌는 이야기도 있지만 죽음, 전쟁, 안락사, 암울한 미래처럼 어린이문학에서 한동안 외면해 온 까다로운 주제를 다룬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로리는 이런 다양한 작품들이 모두 관계의 중요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언니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감을 다룬 첫 작품 『그 여름의 끝』부터 일관되게 우리가 다른 사람들 또는 세상 모든 것들과 긴밀히 연결된 삶을 살아간다는 내용을 강조했다는 것이지요.

로리가 관계의 중요함에 대해 깨닫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가족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치과 의사였던 로리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군에서 장교로 근무했습니다. 남편도 해군 장교였고요. 비행기 추락 사고로 잃은 아들 하나도 공군 전투기 비행사였습니다. 가족들이 군인이었기 때문에 로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까이서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작품들을 통해 종교, 인종, 문화의 차이에 상관없이 우리의 삶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해,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길 바랐던 것입니다. 로리는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비극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로리의 대표작 두 편은 기억과 기록의 중요함을 강조함으로써 이 중심 주제를 드러냅니다.

1990년 뉴베리 상을 탄 『별을 헤아리며』는 유대인 학살이라는 창피하고 고통스러운 과거사를 기억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로리가 친구인 안네리제 플라트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덴마크는 1940년 국경 넘어 공격해 온 독일군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곧바로 항복했습니다. 자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지요. 어쩔 수 없이 항복하였지만 그 후에 사람들은 나치 정권에 암묵적으로 저항하며 덴마크의 주권을 지키려 노력하였습니다. 덴마크 왕은 1942년 반유대인 법을 통과시키라는 강요를 거절하며 나치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지지하는 연설을 해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감금되기도 했지요. 그런 현명한 국왕과 용기 있는 국민들 덕분에 덴마크에 살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으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별을 헤아리며』는 10살짜리 소녀 안네마리의 눈에 비친 유대인 학살과 덴마크 국민들의 저항 운동에 대해 들려주고 있습니다. 전쟁이 오랜 기간 계속되며 유대인들에게는 점점 더 커다란 시련이 다가옵니다. 살던 곳에서 쫓겨나 격리 수용되기도 하고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기도 합니다. 안네마리의 유대인 친구인 엘렌의 가족에게도 그런 위험이 닥치지요. 나치 정권에게 박해 받던 유대인들에게 세상은 자유를 찾아 건너야 했던 밤바다처럼 “너무 차갑고, 너무 넓고, 너무 잔인한 곳”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달리 덴마크 사람들은 나치 정권 아래서도 큰 불편을 겪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종교도 인종도 달랐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고통 받는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탈출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다 자신의 목숨을 대신 잃기도 했지요. 이렇듯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을 도운 것은 나를 넘어 우리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별을 헤아리며』는 유대인 학살을 다룬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조금 특별합니다. 몇몇 개인의 영웅적인 행동을 그린 것이 아니라 한 국가의 국민 전체가 한마음이 되어 유대인들을 도운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안네마리의 가족과 다른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보여준 용기를 기록한 이 작품은 전쟁의 공포가 세상을 휩쓸지라도 고통 받는 사람들과 연대함으로써 인간의 긍지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런 의미는 이미 제목에도 들어 있습니다. 제목에 나오는 별은 유대인들이 몰래 탈출할 때 떠 있던 밤하늘의 별들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치 정권이 유대인들의 가슴에 달게 했던 노란 별 표식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두운 시절을 밝힌 용기 있는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치 정권이 숨기려 했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비밀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엄청나고 비극적인 사건이라 수많은 영화, 소설, 예술 작품의 소재로 쓰이게 되었지요. 『별을 헤아리며』가 뉴베리 상을 받자 일부에서는 나치 정권이 패배한지 이미 수십 년이 지났는데 유대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또 다시 할 필요가 있는지 묻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들이 아직까지 이 참혹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해 들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픈 과거를 되돌아보는 걸 그만두면 좀 더 평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지는 않을까요? 1994년 뉴베리 상을 받은 『기억 전달자』는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3년 『태양의 아들』이 출간되며 『파랑 채집가』 『메신저』와 함께 4부작으로 완결된 『기억 전달자』는 기억을 중요한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기억 전달자』의 주인공 조너스가 사는 미래 사회는 얼핏 보기에 이상적인 곳처럼 보입니다. 조너스의 마을에서는 아무도 굶주리지 않으며 의식주에 있어 누구나 평등한 대우를 받습니다. 인종적, 성적, 종교적 편견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12년의 잘 짜여진 교육 과정이 끝나면 모두가 각자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곳에서 사회의 유지 발전에 한몫을 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조너스의 마을에서는 아무도 견디지 못할 고통으로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손가락을 다치는 것 같은 육체적 고통은 효과적인 진통제로 바로 진정 시킬 수 있고, 감정의 혼란이나 정신적 고통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제한 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조너스의 공동체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기억을 조정하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기도 하지만 어쩔 때는 일부러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요. 자발적인 망각을 통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피하려는 자기 방어 장치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아픈 기억을 잊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마음이 좀 편할 것 같기도 하지요. 그래서 홀로 굶주림과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기억을 전달 받은 조너스는 이런 기억들을 왜 품고 있어야 하는지 묻습니다. 그러자 기억 전달자는 기억이 지혜를 가져다준다고 대답합니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를 위해 교훈을 얻고 지혜로움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역사와 같은 과거의 기억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조너스의 마을 사람들도 ‘먼 과거 속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 버리지는 못합니다. 대신 한 사람을 지정해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인류의 역사를 기억하는 역할을 맡기지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 기억을 바탕으로 적절한 조언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먼 과거부터 이어져 다양한 인류의 기억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지혜만이 아닙니다. 공유된 기억이 있어야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난을 모르는 사람은 굶주림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고,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상실의 아픔을 알지 못합니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상상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유된 기억은 공감과 동정심을 일으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조너스의 마을 사람들은 공유된 기억과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억 전달자는 홀로 기억을 품는 것이 힘든 까닭은 고통이 아닌 외로움 때문이라고 말하지요.

전달받은 기억을 나눌 길이 없는 조너스는 마을 밖의 ‘다른 세계’로 떠날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혼란에 빠질 것을 걱정한 기억 전달자가 마을에 남겠다고 하자 “우리 두 사람은 더 이상 마을 사람들을 돌볼 필요가 없어요.”라며 같이 떠나자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개를 숙입니다.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이 느낄 고통을 이미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 환희, 슬픔, 공포같이 먼 과거부터 전해내려 온 기억을 통해 인간의 공통된 감정을 이해하게 된 조너스는 자기 혼자만 생각하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들의 삶도 함께 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불행히 우리가 사는 사회도 조너스의 공동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사회도 어떤 기억들은 빨리 잊어버리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미래를 지향하며 나가는 것이 옳다며 과거를 돌이켜 보는 걸 그만두라고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덮으려 과거의 기억을 지워 버리거나 왜곡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위안부 사건이나 유대인 학살처럼 명백한 역사적 사실조차도 꾸며낸 이야기라며 음모론을 퍼트리는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별을 헤아리며』와 『기억 전달자』는 다른 시대, 다른 문화, 다른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공감하고, 연대하고, 서로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강조합니다. 17세기 영국 시인 존 단의 말처럼 인간은 아무도 외로운 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영종 | 인하대학교 영문과 교수입니다. 영미 아동문학과 미국 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디고잉』에 ‘시, 말의 사원에서 즐겁게 소통하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기의 야구노트』 『불새처럼 일어나』 『크라신스키 광장의 고양이들』 『아미티지 가족의 지루하지 않은 월요일』 등을 번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