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2월 통권 제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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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 책 깊이 들여다보기]
아까시를 아카시아로 피우려면

김유진 | 2015년 02월

여기, 도축장 근처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도축장이라면 천운영의 소설집 『바늘』에서 마장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여전히 선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변두리』의 첫 장은 그것으로 상쇄되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

수원과 수길 남매는 학교 가기 전 이른 아침 도축장 인근 가게에서 선지를 한가득 사 온다. 열두 살 아이가 선지 들통을 들고 다니는 것만도 어찌 보면 처연한 풍경일 텐데 아이들은 도로 한가운데서 들통을 쏟고 짐승의 피로 뒤범벅되기까지 한다. 그런데 또 그 아이는 그걸 부끄러워하기에 앞서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배불리 먹을 기회가 사라진 게 안타까워 선지와 내장을 쓸어 담는다.

오늘의 진실, 내일의 거짓

도축장이라는, 그리 아름답고 평화롭지만은 않은 자신들의 세상에 눈을 뜨며 아이들은 성장한다. 수원은 도축장에 생계를 붙이고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세상을 알 만한 나이다. 그러나 동생 수길은 아빠가 거짓으로 만들어 들려주는 환상을 아직 그대로 믿는 어린 아이다.

소랑 돼지가 늙어서 죽으면 도살장으로 실려 와. 죽을 때가 된 소랑 돼지도 도살장에 와서 평화롭게 눈을 감지. 그러면 도살장 카우보이들이 죽은 동물에게 묵념을 해. 그러고 나서 부위별로 나눠 파는 거야. 죽은 동물도 기쁠 거야.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니까.(12쪽)

현실을 감추어 두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던 어린 아이도 언젠가는 자라게 마련이다. 수길은 병원 옥상에서 담 너머 도축장의 충격적인 풍경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 그제야 아빠는 사실대로 말한다.

우리 도축장에선 말이다, 동물을 최대한 덜 아프게 죽이려고 노력해. 망치로 이마 한가운데를 때려서 한 번에 기절시킨 다음에 도살해. 기절한 다음이라 아픈 것도 모르고 죽지.(193쪽)

지금껏 아이의 믿음은 거짓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알게 된 것이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도축장의 살풍경 속에서도 동물의 목숨을 다룬다는 자각은 존재했다. 무엇보다 그건 또 다른 목숨인 가족의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다. 아이가 믿은, 평화로운 목장 같은 도축장은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눈으로 확인한 도축장의 풍경 역시 또 한 번 무너져 내렸다. 진실의 이면은 계속 밝혀진다.

유은실의 작품은 우리가 진실이라 믿는 것들에 의문을 갖게 해왔다. 대표작 『멀쩡한 이유정』의 「할아버지 숙제」에서 가족들에게 떳떳할 수 없던 ‘주정뱅이’, ‘노름꾼’인 할아버지들의 삶은 
다른 시선으로 해석된다. ‘주정뱅이’ 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잃은 동생을 오래도록 그리워하는, 마음 여린 사람으로 이해할 여지가 생긴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잠시라도 그 슬픔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는지도 모른다. ‘노름꾼’ 할아버지는 막내딸을 무척 예뻐하던 마음 따뜻한 사람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변두리』는 오늘의 진실이 거짓일 수 있다는 것, 내가 알고 믿는 바가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현실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끊임없이 진실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설득한다. 유년동화를 제외한 유은실의 작품에는 삶의 진실을 끊임없이 밝혀 가는 길을 어린이 독자들에게 보여 주려는 강한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 그것이야말로 문학 본연의 의무이자 가능성이 아니겠냐마는 유은실만큼 이를 작품 전면에 내세우는 이도 그리 흔치 않다. 이것이 바로 유은실 동화의 현실 인식이며 어린이 독자에 대한 작가의 태도다.

최근작 『일수의 탄생』에서 논란이 된 결말 부분도 이러한 작가 의식에 따른다. 어머니의 의지에 맞추어 살다가 용케 붓글씨로 생계를 꾸리게 된 주인공 일수, 가업인 중국집 운영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친구 일석. 언뜻 제 갈 길을 찾은 듯 보이는 두 청년은 대뜸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하며 일상을 떠난다. “전에는 모든 게 분명했는데, 요즈음은 분명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라는 일석의 말처럼 타인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진실을 찾고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다. 나만의 시선으로 삶과 마주해 줄기차게 자신과 세상을 발견하는 과정이 바로 성장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변두리와 중심의 자리 바꾸기

『변두리』에서 현실의 이면을 바라보며 진실에 다가갈 수 있던 까닭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버거운 삶이기 때문이었다. 삶을 견디고 살아내기 위해서는 현실을 새롭게 규정하고 해석해야만 했다. 수원의 엄마는 먹고살기 위해 도축장 옆으로 이사 온 일을 맹모삼천지교에 비유하며 아이들에게 역설한다.

“내장이랑 선지, 이런 부산물이 소에서 제일로 좋은 것이다.”(중략)
“살코기는 껍데기야. 살도 갈비뼈도 내장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라고. 우리 황룡동에서는 허접스러운 껍데기를 먹을 필요가 없지. 우리가 만날 먹는 이게 바로 소의 알맹이 아니냐.”
엄마는 배에서 손을 떼곤 결연히 내장국을 가리켰다. 팔다 남은 내장과 버려진 배춧잎을 넣고 끓인 내장국이 엄마의 숙고 끝에 당당히 선택된 거라니! 그 순간만큼은 엄마가 내장 허드렛일을 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았다.(33쪽)

수원의 엄마는 살코기와 내장의 지위를 바꾼다. ‘정육(正肉/精肉)’인 살코기는 ‘껍데기’가, ‘부산물(副産物)’인 내장과 선지는 ‘알맹이’가 된다. ‘알맹이’(안)와 ‘껍데기’(밖)가 뒤바뀔 때 그들의 ‘변두리’ 삶은 어쩌면 ‘중심’이 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첫꽃날’의 의례로 소중한 ‘아카시아’를 아이들이 일제 식민 잔재인 ‘아까시’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은 ‘아카시아’를 본래의 이름인 ‘아까시’로 되돌리며 격하시킨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아까시’는 ‘아카시아’여야만 한다. ‘아카시아’일 때 강인한 생명력이 아름다움으로 긍정되기 때문이다. 수원이 웬만한 어른보다 힘이 센 캐릭터로 긍정되듯이 말이다. (수원을 보면 『나도 편식할 거야』, 『나도 예민할 거야』의 씩씩한 주인공 정이가 떠오른다.)

이러한 자리 바꾸기는 수원과 수길의 ‘이산가족 놀이’에서도 재현된다. 수원은 자신을 피아니스트 엄마와 교수 아빠를 둔, 부자 동네에서 사는 병약한 아이로 상상한다. 부모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어린이의 공상은 프로이트가 말한 전형적인 ‘가족 로맨스’다. 하지만 이는 ‘껍데기’를 ‘알맹이’로, ‘아까시’를 ‘아카시아’로 바꾸는 것과는 다르다. 변두리를 중심으로 놓는 상상은 현실의 전화(轉化)이지만 부모를 부정하는 공상은 현실의 미화다. ‘가족 로맨스’는 결국 아동기를 지내며 극복되어야 할 공상인 것이다.

수원은 열두 살의 봄, 아동기의 공상을 넘어 비로소 현실로 발을 내딛는다. 낭만적인 공상을 뒤로 하고 전복적인 상상의 힘으로 현실을 받아들인다. ‘껍데기’를 ‘알맹이’로, ‘변두리’를 ‘중심’으로 다시금 바라보는 것이다.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었다. 어쩌면 수원성도 포클레인으로 다 부수고 아파트를 짓고 있는지 몰랐다. 다시는 동구 밖 과수원 길 노래를 부르지 않을 거라고, 이산가족 놀이도 하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황룡동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살 거라고, 나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219쪽)

수원은 중심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변두리인 자신의 세상을 중심으로 만든다. 수원의 다짐은 작가의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전복의 문학

『변두리』의 저자 소개는 “1974년 생. 서울 변두리에서 자랐다.”라는 두 문장이 전부다. 작품 첫 머리는 “내 삶의 중심, 변두리에게.”라고 되어 있다. 변두리에서 살았던 이력을 말하고 자신의 삶의 중심이 바로 그 변두리에 있다고 밝히는 건 이 작품이 작가의 생애와 매우 밀접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작가의 다른 책들에 실린 작가 소개와 머리말을 꿰맞춰 보면 작가는 독산초등학교를 다녔고 구로공단역 주변에서 오래 살았다. 지금은 정육점 거리로만 남아 있는 독산동 도축장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것이 『변두리』의 배경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여느 작품보다 자전적 이야기에 가깝다. 주인공 수원이 작가적 분신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멀쩡한 이유정』의 서문에서 작가는 변두리 동네에 살면서도 다른 아이들의 처지보다는 나았던, 그러나 여전히 완전하지는 않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백한 바 있다.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지낸 경험이 어쩌면 삶의 이면에 대한 예민함을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유은실의 작품은 늘 그 근원에서 나온 듯 보였지만 근원 자체를 이야기한 것은 『변두리』가 처음이다. 작가가 ‘변두리’에 자신의 삶의 중심이 있다고 선언한 것처럼 말이다. 작품 해설에서 김진경은 이를 ‘원체험’ ‘원형’이라고 언급한다.

정통적인 자전적 소설들은 사건이나 구성의 긴밀성보다는 일상의 미세한 인식들을 치밀하게 파고드는 데 치중한다. 『변두리』가 서사의 유려함과 완결성에 집중하는 대신 기억과 감정의 조각들을 충실히 표현하고 정리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인 듯싶다.

『변두리』가 말하듯 변두리에는 삶의 이면을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주변과 중심, 안과 밖을 뒤엎는 상상이 가능하다. 중심과 변두리를 가로막는 옹벽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다는 생각들이 점점 확고해져가는 요즘이기에, 더욱 문학은 변두리가 중심이 되는 상상을 보여 주어야 한다. 수원이 저 먼 동구 밖 과수원이 아닌 자신의 터전에서 자기를 찾은 것처럼 말이다.

흔히 청소년을 ‘주변인’이라고 말하듯 어린이와 청소년은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서 늘 변두리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아동청소년문학이 변두리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김유진 | 인하대에서 한국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며 동시와 아동청소년문학 평론을 씁니다.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과 평론 부문을 수상했고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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