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3월 통권 제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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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을 읽어요]
우리나라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는

박미영 | 2015년 03월

겨울방학이라 무슨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흥미로워할지 고민하다가 고른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제 곧 5학년이 될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떻게 반응할까 몹시 궁금했다. 2주에 걸쳐 집에서 짬짬이 책을 읽어 온 아이들은 대체로 그림이 참 재미있다고 했다. 앤서니 브라운 그림작가의 그림책을 종종 봐서인지 그린이의 이름만 보고도 몹시 반가워했다.

“이야기는 어땠어?” “신기했어요.” “특이했어요.” “재밌는데 이해가 잘 안가는 장면도 좀 있어요.” “나도 그랬는데….” “모자장수랑 앨리스랑 겨울잠쥐랑 토끼랑 얘기할 때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갔어요.” “말장난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러게. 어떤 장면은 순 말놀이하는 거 같지? 정말 제목대로 ‘정신없는 다과회’였어.”

“실제로 작가가 이 이야기를 만들게 된 배경이 세 명의 꼬마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즉석에서 지어낸 거래.” “와, 천재다!” “책 뒤쪽에 나와 있잖아. 이 글을 옮긴 사람이 쓴 글에. 안 읽어 봤구나.” “아, 본 거 같아요. 책 앞쪽에 시 같은 글에도 나와요.” 언제나 책을 꼼꼼하게 읽어 오는 지영이가 얼른 대답한다. 내용만 겨우 읽어 온 아이들을 위해 옮긴이의 글을 한 명이 소리 내어 읽어 보게 하고, 책 맨 앞장은 내가 천천히 읽어 주었다. 내친김에 이 글을 쓴 작가 루이스 캐럴이 어떤 사람인지, 옮긴이가 누군지도 알려 주었다. 마침 집에 옮긴이가 쓴 『캐릭터는 살아있다』 책이 있어서 보여 주고, 앨리스에 관한 내용을 찾아 일부 들려주었다. 그림작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워낙 잘 알고 있어서 건너뛰고.

“요한인 이야기가 재밌다고 했는데 어떤 장면이 좋았어?” “눈물바다에서 헤엄쳐 가는 장면이요. 그림에 보면 앨리스가 동물들이랑 같이 헤엄치고 있잖아요.” “우리, 그 장면 다시 한번 볼까?” 서로 먼저 찾겠다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와, 고릴라도 있어요.”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에는 꼭 고릴라가 나오더라.” “맞아요. 저도 많이 봤어요.” “전 애벌레가 담배 피우는 장면이요. 말도 안 되긴 한데 너무 웃겨요.” “전 모자장수랑 토끼, 겨울잠쥐가 앨리스랑 이야기하는 장면이 재밌었어요. 이해가 잘 안가긴 하지만.” 매번 조용히 다른 아이들이 말하는 걸 듣고만 있는 하진이에겐 늘 내가 먼저 말을 건다. “하진이는?” “…거의 다 재밌었어요. 근데 영화로 봤을 때는 앨리스가 컸는데 책에 나온 앨리스는 너무 작아서 좀 놀랐어요.” “아, 영화에서는 어른이 된 앨리스가 다시 토끼굴에 들어가서 겪는 모험담이지 아마.” “네. 어릴 적 앨리스도 조금 나와요.” “영화는 어땠어?” “책보다 영화가 좀 더 재밌었어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은 장면을 일일이 찾아 소리 내어 읽어 보고, 말놀이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찾아서 읽어 보았다. 뭐니뭐니해도 그림이 있는 장면에선 아이들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앨리스가 토끼굴로 떨어질 때 책장에 놓인 물건들을 보며 “헐, 사람이 다리만 있어요.” “열쇠가 불타고 있어요.” 대단한 걸 찾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인다. 역시 아이들이다. 내가 설렁설렁 보고 놓친 부분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걸 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숨은그림찾기가 시작되었다. 공작부인이 안고 있는 아이가 돼지로 변하는 장면이나, 엘리스 목이 한없이 길어졌다 짧아지는 장면, 웃는 체셔고양이가 나타났다 점점 사라지는 장면, 바다가재가 물고기와 춤추는 장면, 카드 여왕과 신하들…. 한 장면 한 장면을 천천히 들여다보니 마치 우리가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새로운 그림들이 새록새록 눈에 들어왔다. 그림이 몹시 강렬해서 행여 아이들의 상상력이 방해받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아이들은 이야기와 그림을 따로 놓고 보지 않는 듯했다.

“노래가 나오는 데는 꼭 뮤지컬을 보는 것 같아요.” “반짝 반짝 작은 벌 아름답게 미치네. 콩떡하늘에도 호떡하늘에서도 반짝 반짝 작은 벌 아름답게 미치네.” 자연스레 한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들. 나도 따라 흥얼거리니 은근히 재밌다. “이상한 나라에서 엘리스가 만난 사람이나 동물들은 어땠어?” “말도 안 되죠. 그런 사람들이 어딨어요?” “카드가 어떻게 사람들로 변신해서 움직이고 말도 하는지 희한해요.” “다 말이 안 통해요.” “그지, 참 이상한 사람들이지. 근데 이상한 나라에서만 그럴까? 여기서도 말이 안 통하거나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잖아.” “많이 있었던 거 같은데 생각이 잘 안 나요.” “음, 엄마한테 뭘 물어보면 엄마는 아빠랑 얘기하느라 대답을 안 해줄 때가 많아요.” “어른들은 거의 다 그래요. 누나들도 그렇고요.” “「세상에 이런 일이」나 뉴스를 보면 신기한 일도 많고 이상한 사람들도 되게 많이 나오던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TV에서 본 것, 어디선가 들은 이상하다 싶은 이야기들을 앞다투어 쏟아내느라 입이 쉴 새가 없다.

이렇게 해서 또 살짝 삼천포로 빠져 헤어나올 줄 모르는 아이들. 좀 미안하긴 하지만 이야기는 다음에 또 하기로 하고 그림을 보며 느낀 거, 떠오르는 생각,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들을 글로 적어보자고 했더니 시를 지어도 되냐고 한다. 시도 좋고 노랫말을 만들어도 좋으니 감상을 자유롭게 표현해보자고 했다.




지영이가 쓴 시를 읽다가 속으로 뜨끔했다. 왜 ‘매일 죽고 죽이는 우리나라’라고 했을까? 뉴스에서 봤다는 끔찍한 사건이 계속 맴돌았나 보다. 발랄한 요한이는 노래가 나오는 부분이 뮤지컬을 보는 것 같아 재밌다고 하더니 9행시를 짓고 나서 노랫말까지 살짝 바꾸고는 계속 노래를 흥얼거렸다. 우리 모임에 유일한 남자인 승현이는 몇 줄 쓰고는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어쩔 땐 아주 기발한 글을 써서 우리를 웃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건 아주 가끔이다. 하진이는 책이 두꺼워서 읽을 엄두가 안 나는지 영화로도 봤고, 명작 전집으로도 읽었다는 걸 강조하길래 책이랑 영화랑 어떻게 다른지 읽어 보고 얘기해 달라고 했더니 책을 다 읽어 왔다. 영화에서 본 앨리스가 사람 같았다는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진이가 애니메이션으로 착각할 정도로 영화가 무척 환상적이었나 보다. 글을 다 쓴 아이들은 자기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보고 서로가 쓴 글에 대해 한마디씩 해주기도 했다. 아이들이 쓴 글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아이들은 한번쯤 이상한 나라에 가보고 싶단다. 혼자선 조금 무서울 것 같은데 앨리스는 엄청 씩씩하고 혼잣말도 잘하는 데다 자기에게 충고를 잘하는 아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너네랑 앨리스랑 엄청 닮았거든. 꼬마 앨리스는 “지금까지 너무나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라고 말한다. 아이들도 엘리스처럼 거침없이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낯선 것을 무조건 밀어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박미영 | 수다쟁이 빨간머리 앤을 좋아하고, 앤처럼 사람들이랑 수다 떨며 노는 걸 좋아합니다. 동네에서,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재미난 책을 읽고 알콩달콩 옥신각신 지내는 지금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