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9월 통권 제154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속 깊은 책 이야기

[나의 작품 나의 이야기]
나의 미영이

전미화 | 2015년 09월

『미영이』 이야기는 실존 미영 씨의 어릴 적 기억으로 만들어졌다. 내 이야기를 모티브로 잡고 진행할 때는 당시 상황이 정확하지 않아도 감정으로 이야기가 되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재해석할 경우는 다르다. 감정이란 늪에 빠지면 정작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모티브를 잡고 제목, 본문 글, 그림 순으로 작업에 임한다. 떠오르는 이미지로 이야기를 끌고 갈 재능이 없기에 글을 우선적으로 정리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업이 뒤죽박죽되고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계획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작업할 때는 이 순서를 지킨다. 그래야 시간에 따라 기획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출력해서 반복적으로 보고 또 보고 때에 따라 타인의 조언을 얻어 수정을 하기도 한다.

책에서 엄마는 어린 미영을 두고 집을 나간다. 갈 곳이 없었던 미영은 남의 집에 맡겨지고 그 후 엄마와 재회한다는 줄거리다. 제목이 ‘미영이’가 되기까지 여러 제목 후보가 있었다. 처음 제목은 ‘엄마는 나를 버린 걸까?’였다. 작업할 때 시작의 반이 제목인데 작업 중간에 제목을 교체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유는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내용이 추측된다는 점과 주인공인 미영보다 엄마에게 더 초점이 갈 수 있다는 의견, 직설 화법이 이 책과 어울리느냐는 질문이 나름 타당해서였다. 지금의 제목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 첫 제목이 주는 나만의 감정은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제목은 내 그림책 시작에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미영은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타인의 집에 맡겨진다. 나이는 대략 7~8세로 설정했지만 저학년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그 부분은 ‘글자를 틀리게 쓰는 내가 창피하다.’에 있다.) 예고 없이 떠난 엄마와 존재조차 없는 아빠. 부모의 부재는 미영의 부재와 같다. 왜 엄마가 떠났는지 왜 아빠가 없는지 왜 자신이 낯선 집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누구도 해주지 않았다. 모든 의문은 남겨진 미영의 몫이 돼 버렸다.

맡겨진 집에서 그림자처럼 지내는 미영은 가족도 무엇도 아닌 철저히 혼자가 된다. 책에서는 빠졌지만 미영이 낯선 집에서 보낸 첫날 밤에 화장실을 찾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캄캄한 밤, 화장실 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식구 중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미영은 어두운 복도를 지나 이 문 저 문을 열어 본 후 화장실을 찾는다. 이미 버려졌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알고 있는 미영은 어두운 터널을 혼자 묵묵히 걸어간다. 두렵고 서늘하고 공허한 기분을 미영은 누구보다 빨리 느꼈을 것이다. 이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미영이 부모나 환경에 대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그렇다면 미영 엄마는 어떠한가. 미영은 설거지 냄새가 몸에 밴 엄마를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날 엄마가 찾아오지만 설거지를 하던 미영은 재빨리 손을 뒤로 감춘다. 미영은 엄마가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반가움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들킨 것처럼 당황한다. 남루한 엄마 그리고 남의 집에 맡겨져 허드렛일을 하는 미영. 엄마와 미영의 상황은 다른 듯하지만 같다. 재회하는 모녀는 부둥켜안거나 기뻐 눈물 흘리지 않는다. 아마 엄마가 가족들과 얘기하는 동안 미영은 자신의 짐을 챙기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혼자 남겨질 강아지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엄마와 살 생각에 들뜨기보다는 창밖으로 자신만을 바라보는 귀찮기만 한 강아지의 밥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강아지가 이 집에서 천덕꾸러기란 걸 미영이 모를 리가 없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차갑고 단단한 엄마의 손은 앞으로 미영이의 현실이 될 수 있다. 엄마의 현실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냄새로 파악된다. 그러기에 미영은 자신을 버렸던 엄마에 대한 원망 대신 “엄마, 어디 갔다 왔어?”로 물어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용기를 내 엄마 손을 잡아 주는 미영. 어린 미영은 엄마를 위로해 주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 미영 씨는 어떠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결말을 맺은 건 부디 엄마가 미영의 마음을 헤아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제서야 느껴지는 엄마의 온기. 미영과 엄마와 제법 커진 강아지는 집으로 향한다. 도착한 집이 비록 단칸방이거나 반지하여도 모녀가 함께 살아가는 시작의 공간이 될 것이며 강아지도 가족 구성원으로 눈치 보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의도적으로 넣은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눈과 강아지이다. 눈은 시간이나 미영의 감정을 나타낸다. 처음 눈은 엄마가 돌아올 거라는 기다림의 눈이고, 중간에 내리는 눈은 엄마에 대한 원망과 포기의 눈이며, 마지막에 내리는 눈은 앞으로의 시간 즉, 엄마와 미영이 잘 살 거라는 희망의 눈이다. 눈을 중간 중간에 배치한 또 다른 이유는 책을 읽었을 때 감정을 다독이는 쉼표의 의미다.

강아지의 경우 첫 더미에서는 미영의 상황을 극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대상이었다. 원래는 ‘비싸고 귀한 강아지가 왔다. 모두들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한다’ 였다. 비교의 역할로 그리고 싶었지만 미영의 감정이 이입되는 존재로서 역할이 확장됐으면 하는 의견과 미영에게도 의지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조언에 의해서였다. 결과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이 단단하게 조여졌다.

간결한 글과 그림은 어떤 이야기를 그려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고 의도한 대로 글과 그림이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시작은 계획대로 할 수 있어도 과정은 혼자만의 씨름이고 매너리즘은 간간히 뿌려지는 조미료와 같다. 텍스트의 경우 그럴싸하고 어려운 말을 찾기보다는 간결하고 단순한 단어를 이용한다. 그림의 경우 글이 완성돼야 시작된다. 나는 그리는 실력이 뛰어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는 걸 안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림의 폭이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본다. 그림책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진정성 있게 그려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책은 우주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 위아래, 좌우가 없다고 본다. 내가 만든 그림책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덧없기도 하고 의미 있기도 한 그 중간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럴 때마다 나태함을 견제하고 겸손을 미덕으로 성실히 임한다면 아직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늘지고 비탈진 곳에서 위태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소외 받거나 인격적으로 공격 당하거나 무시 당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사회가 변화되고 먹을거리가 달라지고 외형이 번드르해진다고 해서 인간이 인간을 무시한 채 인간을 말해서는 안 된다. 내가 그리는 그림책이 삶을 일구고 값진 노동을 하는 단단한 사람이 보이는 그런 그림책이기를 바란다.
전미화 |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hills)에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눈썹 올라간 철이』 『씩씩해요』 『달려라 오토바이』 『미영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