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9월 통권 제154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책 너머 세상 읽기

[살며 그림책 만나며]
나와 달님, 그리고 우리들의 한가위

이숙현 | 2015년 09월

달님에게 눈코입이 있다면 『호랑나비와 달님』 앞표지처럼 이런 모습일까. 가느다란 눈썹, 지그시 내려다보는 눈동자, 아주 높진 않지만 오뚝한 콧날… 무엇보다 달님의 얼굴 표정을 매듭짓는 것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살짝 올라간 얇은 입술의 꼬리. 눈썹에서 시작한 눈길이, 그윽한 눈두덩 사이 날렵한 콧등 타고 내려와 옅지만 살짝 붉은 입술 한가운데 닿았다가 사뿐히 날아올라 입 꼬리에 머물면, 뭐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편안한, 아주 보드랍고 따스한 달님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달님 뺨을 스치는 숱한 선들이 여러 겹의 마음으로, 차가울 것 같은 달빛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표지를 펼쳐보니 달님 눈빛 머무르는 곳이 나타난다. 오동통한 애벌레들 가운데 고개 들어 위를 바라보는 애벌레 한 마리. 달님 눈동자가 애벌레의 특별한 눈에 가 닿는다. 보이지 않는 대각선이 연결된다. 사이를 세로로 가르는 책등, 그 속에 박힌 ‘호랑나비와 달님’ 제목 글자, 그리고 분홍이 더 많이 들어간 살구색. 앞뒤 면지를 가득 채운, 화사한 살구색이 가운데서 빛난다, 달님처럼.

나는 한가위 전날 태어났다. 밤 아홉 시에서 열 시 사이였으니까, 달님은 분명 하늘 어딘가 떠 있었을 거다. 달 뜬 밤에 태어나서인지, 나는 달이 좋다. 달님만 보면 힘이 난다.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이 즐비하고 어디를 가든 환한 등불이 가득한 서울에 살 때는 미처 몰랐다. 그때 나는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지 않았던 것 같다. 굳이 고개를 들어 달님을 바라보지 않아도 눈앞이 훤하다고 여겼으니까. 내 마음 어둔 곳 알아차리고 가만히 들여다볼 짬이 별로 없었다. 낯선 곳으로 떠나와서야 올려다보게 된 밤하늘. 달은 밝고, 멋지고, 아름다웠다. 한동안은 달님만 보면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까닭을 알 수 없이, 비죽비죽 눈물이 새어 나왔다. 좀 지나서는 달님만 보면 마음에 주름이 펴진 듯 기분이 좋아지고 새로운 기운이 솟았다. 가만가만 바라는 것들을 속삭이기도 했다. 달님은 어떤 말이든 들어주었다. 나는 수없이 속삭였고, 숱하게 바랐다.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호랑나비도 손을 모으고 마음을 다해 말한다.

“달님, 제가 낳은 알들이 무사히 나비가 되게 해 주세요.
저는 머지않아 세상을 떠나야 한답니다.
제 알들을 돌볼 수가 없어요. 달님, 아름다운 달님,
불쌍한 엄마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달님은 처음에 난처해한다. ‘알이야 스스로 깨어나 제 힘으로 자라’는 거고, ‘달님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니까. ‘다정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네려던 달님은 호랑나비가 이내 사마귀에게 붙들려 잡아먹힌 것을 알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마음 쓴다. 애벌레를 살펴본다. 잊어버리자, 하면서도 자꾸 눈길을 주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해한다. 그러나 많던 애벌레는 단 한 마리만 남고, 그마저 잘못 될까 가슴 졸이고 애태우며 마음을 보내는 달님. 애벌레는 고치를 짓고, 달님은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때까지 고치가 무사하기를’ 빈다. 드디어 찾아온 봄, 고치가 움찔거리더니 ‘까뭇한 벌레가 쑤욱’, 고치에서 빠져나온 벌레가 천천히 날개를 편다. 후르륵!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아름답다. 내 마음도 날개를 단 것처럼 호랑나비와 함께 날아오른다. ‘달님 얼굴에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 마음, 알 것 같다.

『호랑나비와 달님』은 새로운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나게 한다. 사진과 그림을 오려붙인 콜라주 기법으로 호랑나비와 애벌레를 마주하는 시선에 생기를 불어넣고, 상상이 필요한 달님의 얼굴은 수많은 선들로 다채로운 마음을 보여 주며 깊이를 더한다. 특히, 조각조각 나누어 그린 그림을 이어 붙인 장면들로 시간의 경과를 표현하는 방식이 낯설면서도 새롭다. 작가는 이로써 달이 차고 기울면서 변화하는 모습과 더불어 달라지는 달님의 마음 상태를 나란히 보여 주기도 하고, 애벌레들이 다양한 위험에 놓여 순식간에 잡아먹히게 되는 찰나를 아슬아슬하게 보여 주기도 하며, 고치 짓는 애벌레의 안간힘을 섬세하게 보여 주기도 한다. 또, 고치를 둘러싼 땅에서 벌어지는 위험한 순간들과 하늘에서 이를 내려다보며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처럼 마음 쓰는 달님의 얼굴을 조각조각 잘라, 사이사이 나란하게 붙여놓은 장면은, 보는 이에게 달님의 마음을 여실히 전한다.

무엇보다 애벌레들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반갑고, 상징(애벌레=아이들)처럼 다가왔다. 아이들이 노는 장면은 틈틈이 나오는데, 다시 맞은 봄, 고치에서 호랑나비가 나올 때도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바탕에 그려져 있다. 그리고 호랑나비가 하늘로 날아오를 때, 땅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차며 날아다닌다. 호랑나비 날개 끝에는 오려붙인 하늘과 달님, 탱자 열매… 사랑의 시간들이 가득하다.

『호랑나비와 달님』 그림책에는 ‘살아가는 존재들은 자신을 지켜보는 눈길에서 전해 오는 따스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 글 작가와 ‘달님을 마음에 담기도’ 하고, ‘달님의 마음에 싣기도’ 한 그림 작가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새삼 밤마다 나를 보아주던 달님이 고맙다. 내가 지치고 힘들 때, 달님처럼 어두운 마음 구석구석 밝은 빛 은은하게 쏘아주고, 바닥에 가라앉은 밝은 기운 들썩거리게 해준 벗님들도 떠오른다. 모두 고맙다. 덕분에 글을 쓰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 참말로 고맙다. 나 또한 살면서 누군가에게 달님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날마다 마주하는 달님이지만 앞으로 달님의 얼굴을 가만히, 더 자세히, 올려다보게 될 것 같다.





이달에는 일 년 중 가장 밝은 보름달을 만나는 한가위가 있다. 한가위가 다가오면, 아이들과 우리는 보름달에 대해 이야기한다. 달님에게 빌 소원을 떠올리고 보름달 그림에 나만의 소원을 적어 넣는다. 그러면 밤마다 아이들이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본다. 달님을 찾는다. 달님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조잘조잘 달님 이야기를 한다. 달님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우리는 달라지는 달의 모양부터 보름달에 비는 소원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물론, 아이들이 신나게 이야기하는 것은 보름달에 비는 소원. 다섯 살 아이들은 ‘구름까지 키 크고 싶어요’처럼 자기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면 여섯 살, 일곱 살 아이들은 ‘우리 가족 잘 살게 해주세요’, ‘엄마 아빠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같은 가족 이야기도 한다. 일곱 살 아이들은 ‘동물원 사육사 되게 해주세요’, ‘검은 띠를 달게 해주세요’처럼 콕 집어 자신의 꿈, 특별한 바람을 적어 넣기도 한다. 교실마다 아이들 소원이 박힌 보름달이 걸리는 한가위. 선생님들은 한가위 그림책들을 찾는다.

해마다 유치원에서 한가위 잔치 마당을 벌이며 만난 그림책으로는 『솔이의 추석 이야기』가 가장 오래 되었다. 한동안 『솔이의 추석 이야기』 그림책으로 한가위 맞을 채비를 하고, 한가위 이야기를 마무리할 정도로 각 반마다 오래 곁에 두고 보았다.

그러다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그림책이 나왔을 때 참 반가웠다. 제목도 좋고, 옥토끼들이 강강술래 하는 표지도 아름다워 어른들과 아이들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만나곤 했다. 그 뒤로 『분홍 토끼의 추석』 『달이네 추석맞이』 그림책도 새로 나와 이제는 한가위 그림책이 풍성해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그림책은 옥토끼가 주인공이다. 옥토끼는 그 옛날, 추석 하루 전날로 우리를 데려가 추석 맞는 풍경을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알려 준다. 이 책은 옥토끼가 밤송이를 주워드는 첫 장면부터 그림이 남다르다. 색과 방향, 굵기가 다른 여러 선들이 모여 마법처럼 입체감, 생동감이 살아나는 형상을 빚어낸 것이다. 그림 작가는 수많은 선들로 토끼 얼굴의 털을 생생하게 표현함은 물론, 음식에서 피어나는 냄새, 가마솥에서 새어나오는 연기, 성묘하러 간 조상 무덤 앞 잔디들을 실감나게 보여 준다. 이처럼 독특한 그림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송편 빚기처럼 음식 준비부터 올게심니, 차례 지내고 성묘하기, 반보기, 소놀이, 달 보고 소원 빌기, 강강술래까지 추석 이야기를 알차게 담아 들려준다. 글이 좀 긴 편이라 대여섯 살 아이들에게 읽어 줄 때는 그림 이야기에 맞춰 나름 간추려 읽어 주기도 했다.

『분홍 토끼의 추석』 그림책은 또 다른 토끼, 분홍 토끼가 주인공이다. 달나라 계수나무에서 떡방아를 찧다가 절굿공이를 떨어뜨린 분홍 토끼가 조각구름 징검다리를 건너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내려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절굿공이를 되찾아 다시 달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는 분홍 토끼의 이야기가 하나의 줄기를 이루고, 분홍 토끼가 보고 듣는 이야기-달동이, 해동이 추석 지내는 이야기가 또 하나의 줄기를 이루어 두 줄기의 이야기가 같이 엮여 있다. 귀여운 분홍 토끼가 달나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은 익살스런 그림이 더해져 특별한 즐거움을 안겨 준다. 소놀이, 줄다리기처럼 놀이가 펼쳐지는 풍경 속에서 분홍 토끼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분홍 토끼는 추석 날 밤 ‘연못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황금빛 달을’ 마주하는데 마침 떨어져 내린 조각구름을 타고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로 돌아간다. 달동이가 두 손 모아 빌며 바라보는 보름달 속에는 분홍 토끼가 신나게 절구를 찧고 있다. 분홍 토끼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번지는 그림책이다.

『달이네 추석맞이』 그림책에는 여자아이 달이와 달이랑 동갑이면서 오빠인 체 하는 큰집 아들 해준이가 나온다. 달이가 까불대장 해준이랑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며 추석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머니 할아버지네 집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아이들이 재미나게 만날 것 같다. 특히, 이 책에는 ‘한가위 씨름 대회’ 풍경이 펼쳐진다. 지난 단오 잔치 때 즐겼던 씨름을 한가위 잔치하며 한 번 더 해보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씨름 대회 장면이 나와 있어 반가웠다.

올해도 한가위 송편 빚고, 전래놀이 즐기며, 아이들과 차례상 차려 감사하는 마음 나누는 한가위 잔치를 벌일 예정이다. 한가위 그림책 만나며 한가위 잔치를 즐길 수 있어 좋다. 그림책과 나란한 경험을 나눌 수 있어 기쁘다. 곧 다가올 한가위 날, 어김없이 휘영청 떠오를 보름달 아래 우리 아이들은 어떤 소원을 빌까. 나는 달님 아래 두 손 모으고 무엇을 바라게 될까. 보름달 바라보며 비는 우리들의 소원들이 모두 모여, 세상이 달빛처럼 밝고 환해지는 시간들로 둥글게, 둥글게, 이어지면 좋겠다. 그렇게 이루어진다면 정말 좋겠다.
이숙현 | 경북 구미, 오래된 아파트 한 가운데 이야기 숲 옆구리에 끼고 있는 곳, 금오유치원에서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소중한 인연 엮으며 이야기 짓고 지냅니다. 여럿이 함께 그림책 보고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월간 『어린이와 문학』을 통해 동화 마당에 나왔으며, 지은 책으로 『초코칩 쿠키, 안녕』 『선생님도 한번 봐 봐요』 들이 있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