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통권 제1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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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를 위한 임종길의 미술시간]
수묵으로 표현하기 2

임종길 | 2015년 11월

지난 시간 수묵과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이렇게 2회라는 짧은 시간에 수묵화 그리기를 다 얘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목표는 독자분이 이 시간을 통해 수묵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 한 번쯤 먹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려 보는 정도입니다.

우리 전통 음악, 전통 미술
 
조금 뜬금없지만 제 개인적인 얘기를 해봅니다. 지금은 가야금 곡이나 판소리, 대금 연주, 가사 같은 우리 전통 음악을 즐겨 듣지만 대학을 가기 전까지 아니, 대학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 전통 음악을 잘 알지도 못했고 어쩌다 텔레비전에서 전통 음악이 나온다 싶으면 느낌이 안 좋아 채널을 돌려 버리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1학년 어느 교양 영어 시간이었습니다. 개인 칸막이가 있는 랩실에서 헤드폰을 끼고 수업 중이었는데 잠시 쉬는 시간, 갑자기 헤드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교수님의 어떤 설명도 없이 그냥 음악 한 곡이 천천히 흘렀습니다. 툭툭 줄을 튕기는 소리가 어둠 저편에서 내 몸을 파고드는데 전율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게 뭐지?” 쉼표가 넉넉히 있는 높낮이 소리 하나하나는 어느새 리듬이 되고 바람이 되어 내 몸을 휘감는 듯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황병기 씨의 침향무라는 가야금 곡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었지요. 덕분에 운 좋게도 우리 전통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수묵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자주 접하지 않았고, 멋진 수묵화의 매력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여겨서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박물관이나 전시장에서 우리 전통 그림의 매력을 느껴보길 바랍니다. 그런데 사실 저도 한국화를 전공하지 않아서 그런지 딱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저도 우리 전통 그림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떤 작품이 나를 감동시켰나 하고 되돌아보면 지난 시간에 얘기했던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봤던 기억, 간송미술관에서 봤던 신윤복의 그림들, 국립박물관에서 봤던 고려 시대 「수월관음도」, 조선 시대 인물화 그리고 민화 정도입니다.

우리 전통 그림은 서양화처럼 화려하지 않아 그 매력에 다가가기 쉽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원인 중의 하나는 우리가 학창 시절에 미술사를 배울 때 서양 미술사는 큰 흐름과 세세한 부분까지 배우는 것과는 달리 우리 전통 미술사는 너무 도식적으로 배웠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오늘날 아마추어도 당당히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유를 미술사를 통해 얘기했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우리 미술사도 비슷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화가가 되려면 화첩을 보고 인물이나 사물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인물 그리는 법, 산수 그리는 법, 나무 그리는 법, 동물 그리는 법. 이렇게 그리는 법을 익혀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배웠던 화첩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우리와 안 어울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 지형과는 거리가 있고 중국 산 지형에 어울리는 산수화라든지 그림 속 인물이 중국 사람을 닮은 것도 그 이유일 것입니다. 가끔 그림 속에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물소가 등장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미술사에서 최고의 화가라 할 수 있는 겸재 정선이 우리 산천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산수화를 그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진경산수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생각하듯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렸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지난 시간 말씀 드렸듯이 동양에서 표현하는 방식은 지금 보이는 현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선 이전의 화가들이 화첩에서 표현하는 방식 그대로 산수화를 표현했다면 정선은 실재 보이는 풍광을 본인이 느끼고 인식한 대로 표현했다는 말이 옳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를 방문해 본 적이 있었나요? 내 경우 20년이 훨씬 넘어 학교를 다시 찾은 그때 초등학교 건물들이 많이 작아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분명 건물은 그대로인데 초등학교 당시는 건물들이 훨씬 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 학교를 그렸다면 인물에 비해 건물을 훨씬 크게 그렸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과연 실제 크기를 정확하게 비례해서 표현하는 것이 꼭 정확한(?) 그림일까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이 바로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 그림입니다. 2005년 북한의 금강산 관광과 함께 개성 시범 관광이 있을 때 개성과 함께 정선의 그림으로만 봤던 박연폭포를 직접 가 볼 수 있었습니다. 정선의 그림을 미리 접한 나로서는 부푼 기대감으로 폭포를 만났습니다. 박연폭포는 멋진 모습이었지만 그림 속 모습처럼 장쾌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갔을 때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의 양이 그림에서처럼 많지 않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미 박연폭포보다 몇 배나 큰 것들을 일상적으로 봐 왔던 나와, 조선 시대 당시 정선이 느꼈을 폭포에 대한 느낌은 달랐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정선은 폭포의 위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자신을 압도하게 만든 그 느낌을 그림 속에 담으려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전통적인 인물화 표현에 있어서 적용되었던 형체를 제대로 묘사함으로써 정신을 표출한다는 이형사신(以形寫神)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를 오늘날 미술에 적용한다면 사실적으로 그리려 하되 그리는 사람 개성 혹은 능력껏 그리면 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여유와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서양화나 한국화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다한 작가들이 만들어 낸 훌륭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쁨도 누리지만 우리 자신들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생산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 현대의 큰 흐름이기도 합니다.

아마추어로서 그림 그리기를 즐기신다면 먹에도 한 번 관심을 가져봤으면 합니다. 이번 주제는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먹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 봅시다.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선 연습은 필수입니다. 운동하기 전 스트레칭이라 생각해도 좋습니다. 옛 사람들은 벼루와 먹을 이용해서 먹을 가는 것부터 중요한 준비 단계로 생각했습니다. 천천히 먹을 갈며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이지요. 오죽했으면 먹을 가는 방법으로 사흘 동안 죽도 못 먹고 앓고 난 환자의 몸으로 먹을 갈아야 한다고 했을까요. 그만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림 그릴 준비를 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번 수묵으로 표현하기에서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는 것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지면을 통해 한두 가지를 소개한다는 것이 큰 의미도 없거니와 참고로 제시한 그림들을 보면서 먹으로 한번 놀아 보시기를 더 권합니다. 여기에 소개한 그림들은 미술 수업에 사용한 참고 그림이거나 학생들 그림입니다.

혹시라도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싶으시면 다양한 실용 책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군자 그리기, 수묵으로 화조화 그리기 등 분야별로 구체적인 방법이 소개되어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묵 담채화

한국화용 채색 물감은 따로 나와 있습니다. 가루로 된 것, 접시에 담겨져 있는 것, 돌로 된 것도 있고, 편리한 튜브용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안료에 아교가 섞여 있거나 아교를 섞어 사용합니다. 그렇게 사용하므로 일반 수채화와는 다르게 내구성이 좋고 겹쳐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채화 물감을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단, 그림 완성 후 배접할 때는 물감이 번질 수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맨 아래 쪽의 그림들은 학생들이 먹과 수채물감을 이용해서 자유롭게 그린 수묵 담채화입니다.

























































임종길 | 자연과 사람을 주제로 그림 그리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열두 달 자연과 만나요』 『두꺼비 논 이야기』 등을 펴냈으며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 『가랑비 가랑가랑 가랑파 가랑가랑』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녹색손’ 이름으로 꾸리는 자연 배움터 ‘도토리 교실’(cafe.daum.net/dotoliroom)에 오시면 더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