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통권 제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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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현대 영미 아동문학 살펴보기]
로리 할츠 앤더슨 (1961~)

유영종 | 2015년 12월

로리 할츠 앤더슨은 현대 미국 청소년문학을 주도하는 작가입니다. 그림책부터 시, 논픽션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썼지만 『말해 봐』(1999), 『윈터걸스』(2009)처럼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앤더슨은 성, 폭력, 약물 중독, 학교와 가정에서의 다양한 압력 등 청소년들이 매일 대면하는 혼란스러운 현실을 솔직하게 다루었습니다. 앤더슨은 종종 두려움이나 주위의 압력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10대 청소년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줍니다.

앤더슨은 청소년소설 작가로 나서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말합니다. 평탄하지 못한 청소년기를 보냈고 그래서 자신의 10대 시절을 돌아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앤더슨이 중학교를 들어갈 무렵 평범했던 가정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감리교 목사로 대학교에서 사목을 하던 앤더슨의 아버지는 1960년 말 미국 사회와 대학교에서 큰 갈등을 일으켰던 베트남 전쟁 문제를 두고 교단과 충돌했습니다. 감리교 교단의 입장과 달랐던 앤더슨의 아버지는 결국 목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부모님은 알콜 중독에 빠져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됩니다.

갓 중학교에 들어간 앤더슨은 가족이 처한 상황을 살필 여유나 균형 감각이 없었습니다. 종교와 세상에 대한 반감을 갖고 왜 자기에게 이런 불행이 일어났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난한 동네에 있는 낡은 아파트로 이사하자 반항심은 더욱 커졌고, 익숙한 동네와 친구들을 떠나와 외로움과 소외감도 느꼈습니다. 게다가 열세 살 때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고3 남학생에게 성폭행까지 당했습니다. 고학년의 남자 친구가 있으면 새 학교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사귀었는데 나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앤더슨은 이 일을 부모님께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복잡한 집안에 더 큰 문제를 불러올까봐 침묵을 지켰던 것입니다. 이런 자신의 경험을 첫 번째 청소년소설인 『말해 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앤더슨은 이 소설을 통해 침묵이 최선의 대응 방식이 아니라며 피해자들에게 크게 소리치라고 조언합니다.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수치심이란 딱지를 붙여왔기 때문에 이 엄연한 범죄가 오랫동안 금기시된 주제가 되었고 몰래 지속되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폭력이 끔찍한 경험이고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할 중대 범죄임을 큰 소리로 알려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서도 앤더슨은 가족이나 학교에서 위안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큰 키 때문에 교실 뒤쪽에 앉아야 했던 앤더슨은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었고 선생님들의 관심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학교생활에도 문제가 많아 한 상담 선생님은 앤더슨이 대학이 아니라 감옥에 가게 될 거라는 악담까지 했습니다. 청소년기를 돌아본 앤더슨은 속마음을 어른들하고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후회합니다. 당시는 아무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다행히 몇몇 어른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고, 앤더슨은 자신에게 믿음을 준 어른들 덕분에 그 힘든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다며 감사해 합니다.

대학 졸업 후 거의 1년을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던 앤더슨은 출산과 함께 가정을 꾸리는 데 전념합니다. 그러다 출판사에 보낸 그림책 원고가 출판 계약으로 이어지며 어린이문학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평탄치 못했던 청소년기의 경험들은 앤더슨이 독자들에게 호소력 있는 작품을 쓰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앤더슨은 『윈터걸스』를 자신이 쓴 청소년소설 중 가장 어두운 작품이라고 부릅니다. 식이 장애, 특히 거식증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데, 앤더슨의 대부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고립된 상태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날씬한 아이가 되기로 결심하고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살을 빼는 주인공을 주위에서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주인공은 날씬해야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음식물 섭취를 극단적으로 거부합니다. 앤더슨은 거식증이 단순한 병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그 밑에는 소외에 대한 불안, 사회와 주위 사람들의 잘못된 기대가 깔려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마른 몸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문화 때문에 청소년들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신체 이미지와 음식물 섭취에 대해 그릇된 자의식을 갖게 됩니다. 『윈터걸스』는 주인공이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태에서부터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상태에 이를 때까지의 힘겨운 여정을 차근차근 따라갑니다. 이를 통해 앤더슨은 밖에서 볼 때는 불평할 것 전혀 없어 보이는 10대 청소년들의 내면에 특별한 불안감과 공허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알려 줍니다.

앤더슨은 실험적 기법을 통해서도 주인공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혼란스러움을 보여 줍니다. 1인칭 관점에서 서술하는 이 작품에는 인터넷 블로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처럼 문장이나 단어에 선을 그어 지운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기법을 통해 앤더슨은 주인공의 정상 자아와 거식증을 앓는 자아가 서로 상대의 생각을 고쳐가며 갈등함을 드러냅니다. 또 생략 부호, 같은 말의 반복, 그리고 백지로 남긴 부분들을 통해 주인공이 겪는 내면의 혼란과 두려움을 독자들이 시각적으로 대면할 수 있게 만듭니다. 앤더슨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마약이나 술의 위험에 대해서는 경고하지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식이 장애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 대해 쓸 필요를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를 포함한 두 명의 의사와 함께 『윈터걸스』의 원고를 검토했습니다. 혹시나 독자들이 이 작품을 다른 사람들 몰래 살 빼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로 이용할까봐 걱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앤더슨은 이 작품에서 식이 장애에 매력적인 면이란 전혀 없고 공포와 끔찍함만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고 자신합니다.

앤더슨이 10대 청소년들이 경험하고 있는 심각한 현실 문제에 대한 소설만 쓴 것은 아닙니다. 앤더슨은 오랫동안 미국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미국의 민주주의 실험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사건들을 독자들에게 알리려 노력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맨발로 희망을 쏘다』(2008)입니다. 2008년 전미국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09년에는 스콧 오델 수상작으로 선정된 『맨발로 희망을 쏘다』는 미국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열세 살짜리 흑인 노예 소녀의 목소리를 통해 1776년 영국 군대가 뉴욕 시를 공격한 사건을 들려줍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앤더슨의 다른 주인공들처럼 강인하면서도 마음이 따듯한 인물입니다. 자유에 대한 약속을 여러 번 배신당하면서도 관대함을 잃지 않은 이 주인공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려는 백인 등장인물들과 대비를 이룹니다. 이 주인공은 견디기 힘든 어려움 속에서도 동생과 주위 인물을 보살피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노예제로 몸은 묶여 있지만 영혼과 정신은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맨발로 희망을 쏘다』는 단순한 역사 이야기를 넘어 한 소녀가 공정하지 못한 사회 구조를 헤쳐 나가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독립전쟁이란 역사적 배경은 독자들에게 주인공이 느끼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앤더슨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했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 때문에 『맨발로 희망을 쏘다』를 쓰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18세기 필라델피아 시에서 유행했던 전염병을 다룬 『열병의 계절』(2000)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던 앤더슨은 충격적인 정보를 발견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영웅이었던 프랭클린이 흑인 노예를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호기심이 생긴 앤더슨은 영국 식민지 시대와 독립전쟁 시기의 노예제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뉴욕 시민 중 1/5이 노예를 소유했으며, 독립전쟁도 흑인을 포함해 모든 미국인들에게 자유를 주려고 의도했던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앤더슨은 18세기 말 영국인들과 미국인들이 흑인 노예를 대했던 태도와 방식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역사 수업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앤더슨은 미국이 노예제의 오욕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그렇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앤더슨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그려내기 위해 각 장의 첫 부분에 구식 활자체로 당시의 다양한 역사적 문서를 인용했습니다. 주로 미국 독립전쟁에 사상적 바탕을 제공했던 토마스 페인의 『상식』, 다양한 정치 소책자, 신문 기사, 일기, 편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도망 노예에 걸린 현상금 공지, 흑인 노예들이 매사추세츠 주지사에게 보낸 해방 탄원서, 토마스 제퍼슨이나 벤자민 프랭클린 같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노예를 짐승처럼 생각했던 증거를 드러내는 글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글들을 인용함으로써 앤더슨은 여태껏 침묵 되거나 주목 받지 못했던 사실들을 전면에 드러냅니다. 여기에 작품 속 이야기를 더해 독립전쟁에 노예를 포함해 학교에서 배웠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 줍니다.

미국인들은 독립전쟁을 거의 신화화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다고 앤더슨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사람 중 반이, 그리고 첫 의회 의원들의 1/3이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이들이 헌법을 만들 때 모든 미국인에게 자유를 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앤더슨은 이런 진실이 미국 건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낭만적인 관점을 유지할 수 없게 할 것임을 압니다. 하지만 독립전쟁의 이상인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들의 잘못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론가들은 『맨발로 희망을 쏘다』가 미국 독립전쟁에 대해 도발적인 시각을 드러낸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진실을 들려주는 앤더슨의 용기를 높게 여깁니다. 18세기 말 미국은 새로운 민주 국가의 탄생이라는 경이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지만 결코 이상적인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앤더슨은 과장하거나 숨기지 않고 이런 사실을 솔직하게 들려줍니다. 소수의 목소리를 잠재우며 좋은 점만 보여 주는 것, 그리고 역사를 단순화 시켜 긍정적인 면만 부각 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앤더슨은 미국이 수백만 노예의 희생 위에 세워진 나라라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랑스럽지 못했던 역사를 직시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야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앤더슨의 작품에서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쟁에 대한 시사점도 찾을 수 있어 보입니다.

앤더슨은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청소년소설을 써왔다고 합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목표고, 다른 하나는 공적인 목표입니다. 앤더슨은 작품을 통해 스스로 위안을 얻으려 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혼란스런 감정들을 건설적이고 치유적인 것으로 바꾸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쓰기 과정에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들을 생각해 스스로 성장하려고도 시도합니다.

이런 개인적인 목표에 더해 앤더슨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위안과 도움을 주기를 기대합니다. 앤더슨은 청소년들이 세상을 어렵고 힘든 곳으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회복 능력을 믿고 있습니다. 앤더슨은 청소년들이 계속 상처받더라도 결코 패배하지 않는 용감한 아이들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환경에서 어려운 현실에 맞부딪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려고 합니다. 아직 젊은 작가인 앤더슨의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유영종 | 인하대학교 영문과 교수입니다. 영미 아동문학과 미국 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디고잉』에 ‘시, 말의 사원에서 즐겁게 소통하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기의 야구노트』 『불새처럼 일어나』 『크라신스키 광장의 고양이들』 『아미티지 가족의 지루하지 않은 월요일』 등을 번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