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통권 제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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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 읽기 신나는 교실]
얘들아, 말은 곧 그 사람의 얼굴이란다

최규철 | 2015년 12월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온 지 스물여섯 해다. 늘 호기심이 많고 힘이 넘치는 아이들이지만 말 한 마디에 상처 받는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고 치자.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금도 참 예쁘시네요.” 틀림없이 아주 환한 얼굴로 좋아할 것이다. 오롯이 칭찬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지금은 참 예쁘시네요.”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잠깐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을 것이다. 앞의 두 문장은 낱글자 하나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오죽하면 조상님들은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겠는가? 사실 이 속담에 대해서 믿음을 갖고 있다면 우리의 말글살이가 이렇게까지 험악하고 거칠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삶의 환경이 어떤가 하는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말이 그렇게 중요하고 종요로운 것이라 말하고 싶을 뿐이다. 교사로 사는 것은 어쩌면 말로서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말을 뒷받침하는 본보기 삶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말글살이를 보면 우리의 삶이 팍팍해졌음을 알 수 있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우리는 부드럽게 말한다. 그런데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올라올 때는 거친 말과 욕이 튀어 나온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욕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왜 그런 욕을 했을까 하는 후회가 몰려온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난다. 이런 말글살이는 자신의 삶을 가꿔주지 못한다. 말이란 우리의 삶을 담아두는 그릇이기에 그렇다.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을 하나씩 바꿔가도록 하고 있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

첫 번째는 날마다 하는 ‘인사’라는 말이다. 아직도 학교 행사에 인사 대신에 차렷, 경례를 하는 풍경을 본다. 일제 강점기에 했던 그 무시무시한 경례를 아직도 학교에서, 교실에서 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이 경례란 말과 더불어 그때의 잘못된 정신이 지금도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말이 바뀌지 않으면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두 번째 말은 ‘손뼉’이다. 유치원까지는 박수란 말을 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초등학교에 오면 그 좋은 손뼉을 버리고 박수를 가르친다. 이건 정말 선생님이 문제다. 그렇게 가르치니까 배우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은 박수를 버리고 손뼉을 치도록 했으면 좋겠다. 우리 학교 행사에는 ‘박수 주세요’ 대신에 ‘큰 손뼉 주세요’라는 말을 쓴다.

세 번째는 ‘금’이라는 말이다. 황금의 금이 아니고 놀이할 때 긋는 금이다. 집으로 안내장 보낼 때 ‘자르는 금’이라 쓴다. 보통 절취선이라고 쓰는데 아이들이 그 말을 알지 못해서 그냥 자르지 않고 낸다. 이제는 안내장에 절취선 대신에 ‘자르는 금’이라고 해서 보낸다. 그러면 아이들이 잘 잘라서 낸다.

아이들과 함께 2학기 국어 배움을 짤 때 ‘말’을 열쇳말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사투리 배움과 온작품 읽기를 함께 하기로 했다. 먼저 사투리가 우리말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느껴보기 위해서 사투리를 톺아보고 발표하도록 했다. 자기가 배우고 싶은 고장의 사투리를 찾아서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고장을 발표한 사람끼리 모여서 사투리 연극을 하도록 했다. 아이들의 흥미는 높아졌고 꽤 재미있는 수업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온작품 읽기로 말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골랐다. 바로 앤드루 클레먼츠의 동화 『프린들 주세요』이다. 아이들이 한 바닥씩 돌려가면서 책을 읽었다. 154쪽 정도 되는 두께여서 네 시간 정도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읽고 나서 맨 처음 한 것은 역시 인상 깊은 장면이나 말을 찾아보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닉을 도와준 그레인저 선생님과 관련된 장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만큼 큰 울림이 있었다는 것이다.

- 언어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그레인저 선생님)

-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 왔어. 그래서 나는 영원히 변함없는 가치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애써왔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금방 낡은 것이 되고 말지. 하지만 언어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중요한 것이란다.(그레인저 선생님)

- 사람은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볼 수는 있지만 그것을 늦추거나 막거나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려고 했지.(그레인저 선생님)

이제 아이들이 함께 하고 싶은 활동을 들어 보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장면 연극을 하자고도 하고 두루마리 퀴즈, 시장에 가면, 만약에 ○○했다면, 이런 활동도 하자고 한다. 『프린들 주세요』란 동화가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이기에 우리도 새로운 말을 만드는 놀이를 하자고 한다. 그것 참 재미있겠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 먼저 줄거리를 간추리고자 시장에 가면 놀이를 바꾸어 ‘프린들에 가면’으로 놀이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말한 말들은 이렇다.

프린들에 가면
닉-교실-만년필-그레인저-자넷-가제트-열대 섬-존-교장 선생님-반성문-디버 선생님-빨간 사전-피트-수퍼-크리스-프린들-감동-편지-비밀 요원-에이버리-선물-사무엘 존슨-버드-닉 엄마-주디 모건-포가-5학년-박사-펜-금빛 만년필-데이브-발표-테드벨-낱말 전쟁-541쪽-앨리스-가게 아주머니-급식-소비자-단체 사진-링컨 초등학교-볼펜-과갈라

인물과 일, 느낌까지 여러 가지 말들을 쏟아낸다. 이제는 이 말들을 넣어 문장으로 만들어 보도록 했다. 그렇게 줄거리를 되돌아본다. 아이들이 만든 문장을 옮긴다.

링컨 초등학교 5학년 닉이 펜을 프린들로 바꾸다.
데이브가 541쪽을 펴고 거기에 있는 낱말을 발표하다.
그레인저가 만년필을 들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3학년 선생님은 디버 선생님이고 4학년 선생님은 에이버리 선생님이다.
교실에 있는 편지를 교장 선생님이 펼치자 그것은 반성문이었다.
앨리스에게 가제트가 와서 보았더니 그것은 낱말 전쟁이었다.
우리는 소비자가 되어 가게 아주머니에게 볼펜을 샀다.
닉 엄마가 크리스에게 금빛 만년필을 샀다.


그런 다음 『프린들 주세요』 새 낱말 놀이를 즐기기로 했다. 이건 우리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놀이다. 먼저 프린들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새로 만들고 싶은 말들을 만든다. 우리가 많이 쓰는 말을 새롭게 고쳐 보는 거다. 이미 만들어진 말이나 비슷한 느낌이 드는 말은 뺐다. 그렇게 몇 개의 말을 골랐다.

여기에 올라온 말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 말이 바로 후르링이라는 말이다. 본디 쓰는 말은 우유다. 이 말을 세상에 소개해야 한다. 우리는 벽보를 만들기로 했다. 상황을 만들어 학교 친구들이 관심을 갖길 바라면서 학교 곳곳에 붙였다.

조심 조심 조현초
오늘 우리 반 어떤 애가 후르링을 터트려서 교실에 냄새가 아휴~ 아주 고약해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후르링을 터트리지 말고 늘 조심하세요.

이 벽보를 붙이자 여러 어린이가 관심을 갖는다. “선생님, 후르링이 뭐예요.” “이거 4학년 2반이 붙인 거지? 그런데 후르링이 뭐야?” 우리는 당연히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속으로는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벽보를 붙였다.

이제 조금 후르링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시작한다. 그럴 때쯤 우리는 후르링의 정체를 밝혔다.

‘4학년 2반이 『프린들 주세요』 온작품 읽기를 하고 나서 한 놀이였고 후르링은 우유라는 말이다.’ 라고 말이다. 한바탕 소동은 지나갔지만 아이들은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프린들 주세요』 이야기처럼 온 나라에 퍼져 나가지는 못했지만 말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생각할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리고 책 읽는 재미를 한 가지 더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바람은 충분하다. 아직도 『프린들 주세요』 읽기는 진행 중이다. 다음 시간에는 뭐할까?

올해 온작품 읽기가 막바지에 다달았다. 우리의 마지막 온작품 읽기만 남아 있다. 두꺼운 책이지만 한해를 달려온 아이들의 힘을 믿는다면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때 쉽게 포기하고 싫증내는 아이들이지만 이야기에 빠져서 두 시간 동안 꼬박 돌려 읽기 하는 모습을 보면 이건 또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 한 번의 감동을 더 느껴볼 생각에 지금도 마음이 설렌다.
최규철 | 양평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비석치기, 죽마타기, 공기놀이도 하면서 신나게 놀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따뜻한 이야기의 느낌을 교실에서 되살리고픈 소박한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