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2월 통권 제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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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고릴라 아저씨의 제멋대로 그림책 읽기]
화면 변화, 독자와 밀고 당기기

김중석 | 2016년 02월

그동안 그림책에 쓰인 그림의 재료나 특성을 통해 그림책을 읽어 보았다. 한 달 동안 숨고르기를 하고 이제 새롭게 그림책 읽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한 권의 그림책을 접할 때 한 장 한 장을 넘겨 가면서 다음 페이지를 궁금해 하고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지, 주인공은 어떤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인지 같이 호흡하며 읽는다. 이때 주인공이 크게 보이기도 하다가 아주 작은 모습으로 구석에 있기도 하고 아예 화면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이런 화면의 변화를 통해서 작가는 독자와의 밀당(?)을 하게 된다. 서로의 밀고 당김이 기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긴장감이 없다면 독자는 지루함을 느끼고 책장을 덮어 버리고 말 것이다.

작은 손톱그림으로 다시 그려보며 작가는 어떻게 그림의 흐름을 만들었는지 알아보겠다. 두 권의 책을 짝지어 읽어 보겠다. 소재의 공통점이 있을 수도 있고 재료의 유사성이 있을 수 있는, 이왕이면 한 권은 우리 그림책, 다른 한 권은 외국 그림책을 같이 놓고 읽어 보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

김병하 작가의 『강아지와 염소 새끼』를 집중적으로 읽어 보겠다. 이 작품의 글은 권정생 선생이 열다섯 살 즈음에 지은 시라고 한다. 선생님이 작고하신 후 발견된 이 시에 김병하 작가의 그림이 입혀지면서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많은 작품이 주목받았던 ‘시그림책’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어서 더욱 관심을 받았던 책이다. 개구쟁이 강아지와 우직한 염소 새끼는 한바탕 장난을 치다가 제트기 소리에 놀라 좀 전의 일은 잊고 서로 다시 뭉쳐서 잘 지내는 소동을 재미있게 담아내고 있다.

첫 장면부터 찬찬히 살펴보겠다. 장면 1을 보자. 어디선가 “염소야 염소야 나랑 노자야.”라는 소리가 들린다. ‘노자’는 ‘놀자’라는 뜻이다. 화면에는 놀라서 왼쪽을 바라보는 염소의 표정만 보인다. 누군가의 소리가 글로만 적혀 있다. 장면 2에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보인다. 바로 강아지다. 염소 새끼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귀찮은 모습이다. 귀로 눈을 덮어 버리고 뒤돌아 엎드려 있다. 현실에서의 염소는 이런 동작을 할 수 없겠지만 염소 새끼의 귀찮아 하는 마음을 재밌는 동작으로 표현했다. 장면 3에서는 강아지가 본격적으로 괴롭힌다. 염소 새끼의 등에 올라탄 강아지는 염소의 귀를 잡아당기며 같이 놀자고 조른다. 염소는 귀찮아도 너무 귀찮다.

이쯤에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염소와 강아지의 표현 방법이 너무 차이가 난다. 염소는 유성콘테로 밀도 있고 꼼꼼하게 칠을 했다. (뒤쪽 해설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런 설명 참 좋다.) 그에 비해 강아지는 크로키 하듯 가볍게 파스텔로 슥슥 그렸다. 염소는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을 단단한 밀도로 채워져 있지만 강아지는 손가락으로 찌르면 구멍이 날 만큼 가볍고 경쾌하다. 작가는 강아지의 가볍고 경쾌한 성격을 크로키 하듯 그리려 했다고 한다.

다시 장면 4로 가 보자. 염소가 오른쪽 화면에 가득 채워져 있다. 무척 화가 났다. 정면을 바라보며 달려들 듯이 한쪽 발은 출발 준비 중이다. 이 장면부터는 염소의 목줄이 어떻게 놓여 있는지를 계속 관찰하면서 읽어봐도 재미있다. 이제 곧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장면 5에서 염소는 조그마한 뿔로 강아지를 향해서 뛰어 오르고 있다. 강아지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다. 하지만 개구쟁이 강아지가 아닌가? 장면 6에서 여유롭게 염소의 공격을 피한다. 염소는 구석으로 꼬부라진다. 이때 염소의 넘어지는 장면 표현도 기가 막힌다.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모습이 화면을 꽉 채우면서도 역동적이다. 장면 7에서 염소는 제대로 뿔(?)이 났다. 왼쪽 화면에는 염소의 화난 모습이 세 가지의 동작으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 화면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염소가 강아지를 바짝 뒤쫓고 있다. 이렇게 한 화면에 한 인물의 여러 모습을 그릴 때는 리듬감이 중요하다. 양쪽 발이 땅에 닿은 상태, 양쪽 발을 곧추세우고 공격하려는 자세, 역동작에 걸린 성난 염소의 모습이 리듬감을 가질 때 화가 최고조에 달한 염소로 표현이 극대화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장면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화가 바짝 난 염소가 강아지를 향해 달려가지만 염소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목줄에 묶여 있는 신세다. 앞으로 나아가려다가 실패한 염소의 표정이 익살스럽고 재미있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염소의 동작도 화면을 더욱 단단히 만들고 있다. 목줄은 긴장감이 있지만 너무 팽팽하지는 않다. 목숨이 위험해 보일 수도 있는 표현이기에 느슨하게 그렸다고 생각해 본다.

이제 주도권은 강아지에게 넘어왔다. 장면 9에서 염소는 팽팽한 줄에 묶여 있고 강아지는 이런 염소를 맘껏 농락한다. 염소는 줄만 없다면 로켓처럼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 동작이다. 장면 10에서는 네 개의 화면으로 나누어서 둘의 관계를 그려냈다. 화가 난 염소, 자포자기한 듯한 염소, 줄을 잡아당기려는 염소, 그러다 드디어 염소를 묶고 있던 막대기가 뽑혀 버렸다.

장면 11은 글이 없다. 하지만 어떤 장면보다도 재미있다. 염소를 묶고 있던 막대기를 가운데 두고 염소와 강아지 모두 놀란다. 화면이 정지해 버렸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또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장면 12의 왼쪽에서는 또 다시 반격을 준비하는 염소의 동작이 보인다. 몸을 곧추세우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강아지는 당황했다. 왼쪽 장면에서 수직으로 몸을 세웠던 염소는 오른쪽 장면에서는 수평으로 몸을 낮추고 달려간다. 강아지는 ‘강아지 살려!’라는 표정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수직과 수평으로 염소를 표현한 이 장면은 그 중간 과정을 그리지 않았지만 역동적인 화면을 만들어 냈다. 작가의 역량이 보이는 세련된 장면이다. 이제 추격전이다!

장면 13과 장면 14는 염소와 강아지의 추격 장면이다. 장면 13에서 염소는 죽어라 달려간다. 강아지도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화면의 아래쪽은 거의 하얗게 비워 두고 있다. 그 다음 장면은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강아지의 표정이 살아났다. 염소도 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잡아도 그만, 못 잡아도 그만 이제는 서로가 재밌는 잡기 놀이를 하는 모습이다. 하늘색이 바뀌었다. 장면 13에서 푸르던 하늘이 그 다음 장면에서는 보랏빛으로 감돈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아지와 염소의 거리도 더 멀어졌다.

장면 15에서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져 있다. 갑자기 어디선가 제트기가 나타나 하늘을 날고 있다. ‘쏴~ 우르르릉’ 강아지와 염소는 이게 웬일인가 싶어서 깜짝 놀라 달려간다. 장면 16에서는 제트기가 지나갔다.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포개져 있다. 서로 감싸며 돌봐주고 있는 것이다. 장면 17에서 둘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골대가리 다 잊어버렸다.”라고 쓰고 있다. 골대가리는 ‘골난 대가리’라는 뜻이다. 그동안의 소란은 다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아이들처럼 동물들도 오늘의 난리 통은 잊어버렸다. 그냥 한나절 재미있게 놀았을 뿐이다.

다음 장면에서 염소의 주인 아저씨가 나타나서 해질녘의 마을로 데려간다. 물론 강아지도 같이. 그림 작가 김병하는 이 장면에서 권정생 선생을 모시고 왔다. 주인 아저씨는 권정생 선생이고 이 마을은 평소 선생이 사시던 안동 조탑동 마을의 모습이다. 김병하 작가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고 한다. “어릴 적 해질녘의 시간은 묘한 시간이었어요. 더 놀고 싶은데 밥 먹으라고 부르시던 엄마의 목소리는 안도감을 주기도 하고요. 더 놀고 싶은 마음과 안정감 사이의 시간, 이 시간을 저는 좋아해요.” 집집마다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나온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집이 있다는 사실은 작은 위로가 되었다. 엄마가 나를 부르고 이제 편히 쉴 수 있다. 강아지와 염소 새끼도 집으로 향한다. 장면 19에서는 반대편 방향에서 동네를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붉은 지붕의 작은 집에 선생님과 강아지와 염소 새끼가 있다. 그 뒤로는 낮에 뛰어 놀던 작은 언덕이 있다. 초승달이 떠 있고 화면 속에서는 말한다. “다 잊어버렸다.”

김병하 작가는 이 책의 작업을 위해서 권정생 선생이 생전에 머무시던 안동시 조탑 마을과 성주에 있는 염소 농장을 취재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흰 염소를 모델로 작업을 했는데 표현에 어려움이 있어서 검은 염소로 모델을 바꾸어 그렸다고 한다. 검은 염소와 흰 염소는 그냥 털의 색만 다른 것이 아니라 모습에서도 서로 차이가 많다고 전했다. 수많은 드로잉을 통해 자연스러운 염소와 강아지의 모습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함께 읽어 볼 만한 책을 찾아보았다. 일차원적으로 생각나는 책은 다시마 세이조의 『염소 시즈카』였다. 아, 염소를 생각하니 이 책이 생각나다니! 염소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강아지와 염소 새끼』와 『염소 시즈카』는 표현 방식에서 전혀 다른 책이다. 하지만 찬찬히 읽다 보니 서로가 통하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이제 두 책을 비교하며 살펴보겠다. 다시마 세이조 선생도 나의 페이스북 친구지만 자세한 인터뷰를 하진 못했다. 내가 일본어를 전혀 못하기 때문이다. 아쉽다.

『염소 시즈카』는 굉장히 두꺼운 그림책이다. 그래서 일단 멈칫하게 된다. 이렇게 두꺼운 그림책을 언제 다 읽어?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글이 그리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림도 시원시원하다. 작가는 염소 시즈카를 직접 키우며 염소가 부린 소동, 성장, 출산 등 함께한 기록을 그림책으로 남겨 두었다.

작가는 후기에 인상적인 말을 한다.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만 그리면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을 다 전할 수 없어요. 거짓말을 약간 넣어야 진실을 전할 수 있지요. 시즈카에게 인세를 한 푼도 주지 않은 것은 역시 내가 만들었다는 생각 때문이지요.”라고 말이다. 실제로 경험했던 일을 책으로 만들 때의 가장 큰 함정은 경험과 표현 사이의 차이에서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를 때이다. 이 지점을 선생은 분명하게 제시해서 리얼리티와 극적 재미를 동시에 가진 그림책으로 만들어 냈다.

이 책은 7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책의 발표 시기도 한꺼번에 한 것이 아니라 여러 번으로 나누어서 했다. 이것을 한 권으로 묶어도 훌륭한 책이 되었지만 각 장의 이야기만으로도 한 권의 그림책이 된다. 모든 장을 다루기에는 분량이 많으므로 여기에서는 첫 번째 장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

제 1장은 ‘아기 염소가 왔어’이다. 염소 시즈카, 아니 정확히는 아직 이름도 없는 염소가 왔다. 장면 1에서는 아기 염소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몸은 새하얗고 눈이랑 입이랑 코 둘레, 귓속만 분홍색인 귀여운 아기 염소’라고 표현하고 있다. 귀여운 아기 염소 그림이 있고 옆에 노란 나비가 있다. 장면 2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아기 염소를 데리고 오는 장면이다. 이 책은 일본에서 발행된 세로쓰기와 오른쪽으로 페이지 넘기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동작들이 왼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 주인공을 소개했다. 장면 3에서는 딸과 염소가 평화롭게 언덕에서 풀을 뜯어먹는 장면이 보인다. 장면 4에서 작가의 딸 나호코는 염소를 묶고 있는 줄을 놓게 된다. 뭔가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항상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여기서 염소의 동작은 어디서 본 듯하다. 『강아지와 염소 새끼』의 장면 7에서 보이던 염소의 동작과 우연히 닮아 있다. 이런 것을 찾아보아도 재미있다.

다음 장면에서 사건이 시작된다. 염소는 멈출 수가 없다. 이런 자유를 허락하다니! ‘겁도 없이’ 염소는 장면 6에서 이 자유를 놓치지 않고 계속 달려간다. 염소를 과장되게 그려서 시냇물도 단숨에 넘어 버리는 큰 염소로 표현했다. 그렇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장면 7에서도 계속 달린다. 시냇물을 지나 어느 집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 모퉁이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다정하게 차를 마시고 있다. 염소는 그곳으로 돌진하겠지! 그래 멈추지 마라!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 될지 우리는 구경만 하면 된다. 장면 8에서는 드디어 노인들의 일상으로 염소가 달려든다. 이때 노인들도 이 염소를 경계하지 않는다 “어이쿠, 귀여운 아기 염소가 들어왔구먼.” 이라고 염소를 반겨 준다. 장면 9에서 염소는 찻상에 뛰어 오른다. 장면 10에서 염소의 대소동이 최절정에 달한다. 바로 그곳에서 염소 똥을 시원하게 쏟아 버리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놀라고 아이는 울음을 터뜨려 버린다. ‘으앙~’

장면에서는 아무런 글이 없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염소와 아이를 데리고 왔다. 작가(당연히 다시마 세이조 선생)는 어쩔 줄 몰라하며 쩔쩔매고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괜찮다는 듯 반기신다. 시골 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전해오는 것 같다. 장면 12에서 염소는 우리에 갇혀 있다. 그 뒤로 나호코는 아기 염소가 아무리 울어도 풀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염소가 울어 대면 “조용~”이라고 불러서 자연스럽게 이 염소의 이름은 ‘시즈카’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어로 시즈카는 조용함이라 한다.)

두 책을 같이 읽어 보니 상반되면서도 닮은 듯한 부분이 많이 있다. 그림 표현에 있어서는 『강아지와 염소 새끼』가 담백한 수묵화 같은 느낌이라면 『염소 시즈카』는 유화 물감으로 그린 야수파의 거친 그림이 연상된다. 아름다운 시골을 배경으로 우리의 정서를 건드리는 부분은 서로 닮아 있다. 이 두 권의 책을 읽어 보며 작가가 표현하려는 그림과 특유의 리듬감을 발견하며 읽어 본다면 재미있는 그림책 읽기가 될 것이다.
김중석 |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미술 교육을 공부했습니다. 2003년 보림 창작그림책 공모전에서 우수상과 2013년 소년한국 우수도서상 일러스트레이션 부분상을 받았습니다. 『아빠가 보고 싶어』를 쓰고 그렸고 『나는 백치다』 『찐찐군과 두빵두』 『웨이싸이드학교 별난 아이들』 『엄마 사용법』 등 여러 동화책과 그림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요즈음은 ‘드로잉 그림책 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