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2월 통권 제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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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 책 깊이 들여다보기]
내 안의 몬스터를 만나는 험난한 여정

권혁준 | 2016년 02월

최근에 출간된 청소년소설을 몇 권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 주로 동화와 아동소설을 읽고 비평문을 써왔기 때문에 청소년소설을 차근차근 읽은 것은 오랜만이다. 청소년 독자를 위한 문학이 따로 존재하는지 조차도 의심스러웠던 10여 년 전의 상황과 견주어 본다면 최근의 우리 청소년소설 분야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보인다. 청소년의 성이나 폭력 등 극단적인 청소년 문제를 주로 다루었던 몇 년 전의 상황에 비한다면 주제도 장르도 다양해졌다. 특히, 청소년의 성을 판타지 형식으로 다룬 공지희의 『톡톡톡』이나 안데르센 동화와 서양 민담을 새롭게 쓴 구병모의 『빨간 구두당』 등은 주제의 깊이와 문학적 형상화 수준 등으로 볼 때 우수한 일반 문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외국의 청소년소설은 어떨까. 그쪽 분야에는 독서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데, 최근에 아주 매력적인 소설 한 편을 만났다. 우리 청소년문학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아 그 의미와 가치를 꼼꼼히 살펴보려 한다.

한밤중에 찾아오는 몬스터

몬스터는 자정이 막 지나자마자 나타났다. 어둠과 바람과 비명 속에 나타나는 몬스터, 창밖의 거대한 주목은 가지가 모여들어 얼굴이 되고, 입과 코, 눈이 되어 코너를 찾아온다. 코너는 이것이 악몽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방 안에 주목 잎이 가득하다. 코너는 지난 달 열세 살이 되었고, 암 투병 중인 엄마와 단 둘이 산다.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는 새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반에서 가장 똑똑하고 공부도 운동도 잘하는 해리와 그 추종자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코너를 괴롭힌다. 외할머니가 엄마를 간병하러 왔지만 코너는 정이 느껴지지 않는 신식 할머니를 싫어한다. 엄마의 병은 점점 심각해진다.

12시 7분만 되면 나타나는 몬스터는, 자신이 시간의 햇수만큼 많은 이름을 가졌으며, 길들일 수 없는 모든 것이라 한다.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면 오지 않는다는 몬스터가 코너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세 가지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네가 네 번째 이야기를 할 것이다. (중략)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 될 것이다. (중략) 너는 네 진실이, 네가 감추는 것이,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걸 안다.) (54~55쪽)

몬스터는 코너에게 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몬스터가 들려주는 세 이야기는 코너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이야기 속의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를 들어 보자. 코너가 살고 있는 마을이 오래 전에는 왕국이었다. 왕은 왕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거인과 용에 맞서 싸워 이겼으나 네 아들을 잃었다. 왕은 왕국과 유일한 핏줄인 왕손을 위해 젊고 아름다운 이웃 나라 공주와 재혼하였다. 왕이 죽자, 젊은 왕비가 사실은 늙은 마녀이며,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 늙은 왕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왕비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으며 선왕의 통치 방식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려 애썼다. 왕손이 성장해 왕위를 물려받기 1년 전, 왕비는 왕국을 완전히 차지하려는 속셈으로 왕손과 결혼하려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농부의 딸과 사랑에 빠진 왕손은 농부의 딸과 도망을 친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농부의 딸이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모두들 왕비의 소행이라고 생각했고 왕손은 ‘새 왕비가 내 신부를 죽였다!’ 라고 소리친다. 백성들이 왕궁으로 쳐들어가고 왕비는 쫓겨난다. 그러나 사실은 왕손이 농부의 딸을 죽이고는 왕비에게 죄를 덮어 씌웠던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가 끝난 후 코너는 묻는다.

“그러니까 훌륭한 왕손은 살인자이고 사악한 왕비는 마녀가 아니었다는 말이군. 그게 이 이야기의 교훈이야? 내가 외할머니에게 잘해드려야 한다는 게?” (중략) 내가 너한테 착하게 살라는 교훈을 주려고 시간과 땅을 벗어나 걸어왔다고 생각하나? (90쪽)

몬스터의 암시에도 코너는 여전히 이야기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몬스터는 두 번째 이야기를 들려준다. 150년 전 일이다. 이 지역에 공장이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 병은 잘 고치지만 탐욕스런 약제사가 살고 있었다. 가난한 환자에게도 도저히 치를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요구하고 미신이나 마법을 사용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마을의 목사는 설교 시간에 그를 비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의 사랑하는 두 딸이 병에 걸렸다. 백방으로 애써도 효과가 없자 목사는 약제사를 찾아와 무릎을 꿇는다. 약제사가 묻는다. “당신이 믿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소?” “딸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포기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소.” 그날 밤 목사의 두 딸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 두 이야기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이야기들은 코너의 진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첫 번째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두 번째의 이야기를 듣고도 코너는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판단하지 못한다. “이해가 안 가. 이 이야기에서 그럼 누가 좋은 사람이야?” 첫 번째 이야기 끝에 제기했던 코너의 물음은 두 번째 이야기에도 해당한다. 이에 대한 몬스터의 대답도 두 이야기에 모두 적용된다.

항상 좋은 사람은 없다. 항상 나쁜 사람도 없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 (91쪽)

첫 번째 이야기의 왕비와 왕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왕비가 왕을 독살했다는 것과 마녀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소문에 불과하며, 왕비는 선왕의 통치 방식에 따라 나라를 잘 다스렸다. 그러나 왕국을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 손자와 결혼하려고 한다. 한편, 왕손은 사랑하던 농부의 딸을 죽였다. 그리고 그 죄를 왕비에게 뒤집어씌워 왕국에서 내쫓았다. 그러나 왕이 된 다음에는 나라를 평화스럽게 잘 다스렸고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 인물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약제사는 탐욕스럽고 불친절했지만 병을 잘 고쳤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살아간다. 반면에 목사는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딸을 목숨보다 더 사랑했지만 자기 딸이 죽을병에 걸리자 목사로서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 할 믿음을 포기했다. 그런데, 몬스터는 코너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이에 대해서는 세 번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자.

코너의 진실은 무엇인가

코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한사코 감추려 하는 그 진실이란 무엇인가. 그 실마리를 찾으려면, 해리의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해리는 그를 추종하는 아이들과 함께 코너를 괴롭힌다.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교사 몰래 코너를 폭행하는 해리는 표면적으로 볼 때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간교한 악당처럼 보인다. 그러나 해리를 단순히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또래 친구로 읽는 것은 이 텍스트에 대한 피상적인 독서에 불과하다. 해리의 행위는 몬스터의 출현과 몬스터가 들려주는 세 번째 이야기와 관련지어 읽어야 한다. 해리가 코너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은 코너가 악몽을 꾸기 시작했을 때였다. 해리는 ‘해리만 볼 수 있는 비밀스런 표식이 코너에게 새겨지기라도 한 것처럼’, ‘철이 자석에게 끌리듯 해리를 코너에게 끌어당기는 표식이’(33쪽) 있는 것처럼 코너에게 다가온다. 코너를 괴롭힐 때도 다른 아이들은 손도 못 대게 한다. “코너와 나 사이에는 어떤 말 없는 약속이 있지. 코너는 나만 건드리는 거야. 그렇지?”(99쪽) 코너와 해리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은 세 번째 이야기와 연결된다.

옛날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중략)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염증을 느꼈다. (중략) 그 사람이 실제로 보이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195쪽)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했다는 말이다. 세 번째 이야기의 이 장면은 코너의 상황과도 일치한다. 코너가 몬스터와 함께 외할머니의 응접실을 때려 부순 뒤 외할머니나 아버지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선생님들도 질문을 할 때 코너는 건너뛰고 다른 학생들을 지명한다. 어른들은 곧 엄마를 잃을지도 모르는 코너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다. 그래 분노할 만하지, 코너의 마음을 이해해 줘야지, 라고 생각한다. 이 무렵 해리가 코너에게 말한다. “이제 네가 안 보여.”(194쪽) 그리고 괴롭히지도 않는다.

몬스터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보이지 않는 사람은 결심한다. 저들이 나를 보게 만들 것이다. 어떻게 보게 했을까. 그 사람은 몬스터를 불렀던 것이다. 몬스터가 들려주는 세 번째 이야기는 코너와 해리의 사건과 겹쳐지면서 서술된다. 코너는 몬스터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리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코너의 몬스터도 거대한 주먹을 뻗어 해리를 날려 버린다. 코너는 소리친다. “내가 안 보여?” 코너는 몬스터가 해리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자기 손으로 느낀다. 몬스터가 주먹을 날릴 때 코너는 자신의 손에서 통증을 느낀다. 몬스터는 바로 코너 자신인 것이다. 몬스터가 들려주는 세 번째 이야기는 옛날에 살았던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이자 바로 코너의 이야기이다. 왜 해리는 코너를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대했을까. 그리고 코너가 몬스터와 하나 되어 해리를 날려 버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를 보라고 강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코너 오말리. 엄마 때문에 모두들 불쌍하게 생각하는 아이, 자기가 다른 존재나 되는 것처럼, 자기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고고한 척 다니는 아이.” 해리가 말했다. 독기가 서린 목소리였다. (중략) “벌을 받고 싶어 하는 코너 오말리. 벌을 받아야 하는 코너 오말리. 대체 무엇 때문이야? 네가 감추고 있는 끔찍한 비밀이 대체 뭐야?” (201~202쪽)

해리는 진실을 숨기면서 위장된 행동을 하고 있는 코너의 속마음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있다. 코너는 해리의 질문이 너무 아프다.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무의식 속의 죄책감을 해리는 적나라하게 파헤치려 하기 때문이다. 해리가 강요하는 진실을 정면으로 대면하기가 너무도 두려운 것이다.

해리의 말을 듣고 독자는 이제 코너의 진실에 한 발 다가선다. 코너는 오래전부터 엄마가 병을 이겨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기다리는 걸 견딜 수 없어서, 그게 나를 이렇게 외롭게 만드는 걸 더 견딜 수가 없어서’ 엄마의 마지막이 어서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코너는 그것이 너무도 죄스럽다. 이런 마음은 본인 자신이 인정하기가 너무도 죄스럽기 때문에 무의식 저편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도록 꾹꾹 눌러놓고 있다. 코너는 이런 마음을 숨기고 위장하기 위해,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알아 달라고 떼를 쓰며, 과도하게 슬퍼하고 분노한다. 엄마와 외할머니와 아빠를 속이며,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해리는 바로 이런 코너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를 질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리와 몬스터는 코너의 진실을 드러내려 애쓰는 동지이기도 하다.

몬스터는 어떤 존재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되돌아가서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리고 몬스터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몬스터는 코너에게 이 이야기들을 왜 들려주었는가. 몬스터의 이야기는 코너가 말해야 할 진실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몬스터는 코너에게 어떤 존재인가. 몬스터가 들려주는 앞의 두 이야기 속 인물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물이다. 이 인물들에 대한 몬스터의 설명은 우리 약한 인간들의 보편적인 본성이다.

사람은 복잡한 짐승이니까. 어떻게 여왕이 좋은 마녀이면서 또 나쁜 마녀일 수가 있는가? 왕손이 살인자이면서 구원자일 수 있는가? 약제사가 성질이 고약하면서도 생각은 바를 수 있는가? 목사는 생각이 잘못되었으면서 선할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게 되었을 때 더 외로워질 수가 있는가? (254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야기 속의 인물들처럼 선과 악 사이 그 어디쯤에 존재하며, 모순된 존재이기도 하다. 엄마가 떠나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엄마를 간절히 구하고 싶은 코너의 모순된 마음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너는 고통이 끝나기를 바랐을 뿐이다. 네 고통, 고통 때문에 네가 겪는 소외감을 끝내고 싶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이다. (253쪽)

코너가 그렇게 나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는 몬스터의 위로와 깨우침은 자기의 죄책감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또 왕비와 왕손의 이야기, 약제사와 목사의 이야기는 세상사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가르침도 준다. 몬스터는 코너에게 인생사, 세상사를 가르치는 스승과도 같다. 몬스터는 코너에게 인생의 지혜를 주고, 자신의 과업을 해결할 용기를 준다.

한편 몬스터는 치유의 역할도 한다. 코너의 집 뒷마당에 서 있는 주목은 약제사가 그리도 탐내던 약재였다. 엄마도 식물들의 신비를 믿으며 주목이 자기를 치료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코너도 주목의 치유력을 간절히 믿고 있다. 결국 엄마의 병이 낫지 않아 코너가 몬스터를 원망하며 울부짖을 때, 몬스터는 말한다.

나는 네 엄마를 낫게 하려고 온 게 아니다. 너를 낫게 하려고 왔다. (228쪽)


주목은 엄마의 병을 치유하지는 못했지만 코너의 아픔은 치유했다. 몬스터는 복잡한 존재다. 코너의 무의식이 불러낸 어두운 동반자이기도 하고, 스승이며 조언자이기도 하고, 자연의 정령이며 치유자이기도 하다.

진실한 자기 찾기의 험난한 여로

이 소설의 중심 주제는 무의식으로 밀어 넣어 버린 자신의 죄책감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 그러나 그 진실을 응시하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야만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음을 깨우쳐 주는 이야기다. 그러나 자기를 찾아가는 그 과정은 매우 험난하다. 몬스터가 왕비와 왕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의미를 설명해 주어도 코너는 이 이야기를 현실 문제로만 관련을 지으려 한다. 자신의 진실을 바로 보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나오는 악몽을 꾸고 나서 거실 마룻바닥의 옹이에서 돋아난 주목의 어린 가지를 칼로 파내는 행위도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거부하는 몸짓이며, ‘네가 안 보인다’는 해리에게 폭력을 휘둘러 자기를 보라고 강요하는 행위도 진실을 들키지 않으려는 자기 방어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실을 숨기려는 부정적인 의식을 간직하고 사는 것이 편안할 수는 없다. 두렵고 혼란스럽고 죄스러운 감정은 악몽으로 나타나고 결국 몬스터를 현실 세계로 소환하게 된 것이다.

청소년 시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릴 만큼 인생의 새로운 과업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시기이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가장 크게 고민하는 시기이다. 또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해 인간관계, 성과 사랑, 학업 문제 등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저질렀던 작은 실수나 부끄러움이 죄책감으로 저장되기도 한다. 반면에 이런 인생 문제를 해결할 판단력과 지혜가 부족하여 당황하기 쉽다.

이 소설은 육친의 죽음을 대하는 소년의 복잡하고 모순되는 마음을 긴박한 이야기로 풀어낸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의미를 읽어 내기는 만만치 않다. 겉 이야기 속에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고 겉 이야기와 속 이야기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그 의미의 실마리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텍스트의 넓은 빈자리를 채워 읽어 낸다면 그만큼 지적인 즐거움도 커지겠지만 전체적인 의미의 일관성을 쌓아가기 위해서는 주의 깊은 독서가 필요하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청소년소설이면서 인류 고전의 지위에 오른 작품이다. 우리 청소년소설도 인생의 보편적인 진실을 깊이 탐구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청소년소설도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권혁준 | 공주교대에서 문학교육을 강의하는 어린이문학 평론가입니다. 저서로 『아동문학의 이해』 『문학이론과 시교육』 『독서교육의 이론과 방법』 『살아있는 동화 읽기, 깊이 있는 삶 읽기』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