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2월 통권 제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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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나의 작품 나의 이야기]
『강냉이』에서 내가 그린 것

김환영 | 2016년 02월

제목을 잡아놓고도 내 그림을 내가 말하려니 좀 멋쩍습니다. 일목요연하게 말할 자신도 없어요. 일목요연이라니, 대관절 어떻게 해야 ‘일목요연’할까요? 과연 9년이란 시간의 기억이란 게 믿을 만할까요? 실은, 작업 과정을 다시 말하다 보면 생각들이 멋대로 과장되거나 삭제되어 거짓말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나온 궁리가, 그 시간들의 마지막 치 그러니까 막바지 ‘작업 일기’의 일부라도 내보이는 일은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날짜가 뒤죽박죽인 까닭은 생각과 상황들이 뒤죽박죽이었기 때문이에요. 읽는 이들을 위해 글 자리를 다시 잡고 불필요하거나 어색한 문장들은 빼거나 바로잡았습니다.



화구를 챙겼다. 쌀 4킬로그램을 사고 된장, 간장, 고추장과 밑반찬 몇 가지를 싣고 홍천 골짜기에 들어왔다. 홍천이긴 해도 내면이란 데는 동쪽에 보이는 백두대간 구룡령만 넘으면 바로 양양이다. (중략) 이곳 환경은 완벽하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걱정이었는데, 오두막 옆에서 농사짓는 부부가 아주 일찍 올라오기 때문에 늦잠 잘 수가 없다. 땡볕에서 일하는 그네들보다 부지런하진 못할망정 손가락질 당하지는 말아야 한다.

여기 와서 가장 큰 성과는, 그동안 내가 어디서부터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는지를 명확히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얼마나 많이 맴돌았는지 짐을 푸는 데 같은 장면의 그림들이 여기저기 수도 없이 튀어나왔다. 그러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졌다. (2015. 6. 4.)

아침 먹고 그리고, 점심 먹고 그리고, 저녁 먹고 그린다. 그리다 지치면 잔다. 방이 하나니까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그림 그리다 그 옆에 자리 펴고 누우면 된다. 단순하니까 편하다. 아침엔 해가 불러 눈이 떠지고, 추우면 아궁이에 불 때고, 자정 즈음이면 말 시키는 것들 없으니 잔다.

길찾기…. 길찾기의 어려움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주 전쯤, 설핏 희망이 비쳤다. 그 길을 따라가 보겠다. 이게 10년 만인가. 명암이니 원근법이니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들을 죄다 버릴 것이다. 그동안 그려왔던 그림과 결별할 것이다. 그 끝이 무엇인진 나도 모른다. 두려움이 왜 없을 것인가. 하지만 신나게 망치고, 망치면 다시 그리면 된다. (2015. 6. 6.)

2015년 5월 2일부터 채색을 시작했다. 전에 그리던 방식과 다르게 아크릴 물감을 거칠게 다뤄 보고 싶어서 북북 그렸다. 밑그림을 연필이 아닌 물감으로 바로 그린 일이 통쾌했다. 최대한 단순한 절차여야만 최초의 느낌이랄까 생생한 날 것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밑그림이 결정되면 복잡하게 생각지 말고 물감을 풀어 바로 그려나가 보았다.

한 달 만에 더미에 채색을 거의 마쳤다. 세로 판형으로 그렸는데, 그려진 장면들을 보자니 가로 판형이 낫겠다 싶다. 세로 판형은 서정성을 드러내기에는 적당한 판형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개념적 인식을 드러내기에는 세로 판형이 좋겠지. 그건 그렇고, 조금 뚜렷해진 생각은, 그동안 내가 잘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려왔던 건 아닌지, 그래서 결국 너무 조심스러워져 매번 그림한테 져버린 건 아닌지 하는 점이다. 그림에 어떤 ‘룰’이 생기면 그것들이 나를 옥죄어 종국에는 ‘그럴 듯해 보이는 그림’ 쪽으로 내 몸을 잔뜩 짓수그린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 싸움에서 진 그림이라니…. 그래서 결국 그림조차 꼴 보기 싫어진 것 아닌가. ‘나도 그림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그림을 나는 좋아했던 것 같다. 잘나든 못나든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제 느낌과 제 감정을 생생하게 살려 그린다면, 그 자리에는 많은 생명들이 모여들 것이다. 새들과 벌, 나비, 풀벌레와 별자리들이…. (2015. 6. 10.)

오랫동안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왔지만 생각까지 그랬던 건 아니다. 마음은 늘 먼 곳을 떠돌았으나 그림으로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인상만을 좇는 것에 그치곤 하였다. 내가 대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겹이 많다. 형상과 본질 사이에도 겹겹의 벽이 있다. 형상과 본질은 다르다.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일에 나는 더 본격적일 필요가 있다. 사실적인 재현력이 예술적 능력이라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기술일 뿐 자체로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매번 나는 재현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물론 나는 안다. 그림이라는 것이 이성이나 논리를 배반하고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그리고 그동안 내 손에서 탄생한 그림들을 무조건 재현의 울타리로 가두는 일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재현과는 다른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보인 것도 아니다. 예컨대 공간에 대한 문제라거나 색채에 대하여 ‘주관적이고 의식적’으로 천착한 것도 아니었다. (2015. 6. 14. 돌아와서)

그림은 대상의 외관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을 그리는 일이다. 미술은 비언어적인 재료를 언어로,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2015. 6. 15.)

• 편집자와 통화 내용

- 이야기 흐름이 더미와 달라졌다.

- 마지막 장면 바꾼 것은 좋은데, 굳이 현실을 보여 줄 필요가 있을까? 망가진 옥수수를 보여 주는 것보다 장면 1에 나오는 마을 전체를 모호하게 보여 주면?

- 이 시의 울림은 잿더미 옥수수가 아니라 희망 아닐까? 아이가 품고 있는 희망을 남겨 주면 좋겠다. 옥수수의 생존(가능성)을 모호하게라도 남겨 두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희망을 닫는 것은 너무 폭력적이야! 아이의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현실을 해석해서까지 보여 줄 필요는 없지 않나?

• 내 생각

- ‘해석된 표현’과 ‘모호함’은 매우 다르다. 마지막 장면들은 완성할 때까지 계속 생각해 봐야 할 가장 중요한 장면들이다. ‘전쟁의 비극’과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부분을 제대로 표현하는 일이야말로 이 책의 ‘생명줄’이 될 것이다. (2015. 6. 15.)

생각해 보니 내 무의식 속에 권정생이 살고 있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 들어와 살게 된 데에도 권정생이 있었다. 나는 도싯내기였고 시골 살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내가 권정생의 동화를 한 편도 그릴 수 없었던 까닭은 말 그대로, ‘그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시골에 들어와 산 지 16년째다. 이제 나는 계절의 변화에 대하여, 풀꽃과 소소한 작물에 대하여, 아침과 저녁, 새벽빛과 저녁놀, 밤하늘의 은하수와 언제나 그 자리에 버티고 섰는 정자나무가 눈과 마음에 익다. 나의 갈증은 필력 따위가 아니다. 물리적이고 현실적이며 생동하는 자연의 감각들이었다!

『강냉이』를 그리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16년 전이면 나는 결코 이 작품을 그려내지 못했을 것이란 점이다. 나는 촌구석의 저녁이 어떻게 오는지 알 수 없었고, 옥수수를 타고 오르는 메꽃과 지긋지긋한 한삼덩굴을 떠올릴 수 없었다. 흙의 실감을 모르니 그럴듯해 보이는 색을 팔레트에서 찍어 발랐을 것이었다. 밤이면 저들끼리 두런거리는 나무들의 말들도 눈물처럼 반짝이는 별빛들도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 그림들은 제대로 된 그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저 화려하고도 천박한, 생명에 반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도시를 떠나, 버려지다시피 한 시골 마을의 빈 집에 들어와 환호작약했던 까닭을 이제 나는 안다. 이제 내 그림은 바뀌어 나갈 것이다. (2015. 6. 12.)

그림은 문학과 다르게 ‘물질태’로써 자신을 드러낸다. 거친 선을 살리고 싶어 트레팔지나 필름에도 그려 보았지만 결과를 얻지 못했다. 결국 남아있는 고급 종이에 크고 거칠게 그려 보았다. 그러나 내가 자주 쓰는 종이는 복사지나 막종이들이고, 내가 가장 익숙하고 편한 종이 또한 그렇다. 결국 고급 종이에 그린 그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푸 그림을 망치다가, 나는 더미를 들고 춘천의 한 화방으로 차를 몰았다. 그림이 가득 그려진 더미를 보여 주며 이 종이가 어떤 종이인지 화방 주인에게 물었다. 그는 종이를 몇 가지 꺼내더니 그 중에 한 장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켄트지였다. 결국 나는 켄트지 20여 장과 이와 비슷한 판화지 10여 장을 사들고 나왔다. 왕복 4시간의 시간과 기름 값과 통행료를 합하면 종이 값의 몇 갑절을 쓴 셈이다. (2015. 6. 18.)

짐을 모두 차에 실었다. 밤에 고라니 목 쉰 울음소리만 들리던 곳이 사람 소리들로 어수선해졌다. 윗터에 집을 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무조건 구룡령 고개를 넘어 다른 곳을 찾았다. 상평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만나고 아야진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에게도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보여 주며 반응을 살폈다. 장면마다 인기투표도 해 보았다. 아이들이나 선생님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비슷한 장면에서 비슷하게 반응했다. 몰표가 나온 장면도 있었다. 피난 장면 한 켠에 서 있는 두 명의 군인이 뭐로 보이냐고 물었다. 한용운이요! 안중근이요! 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나는 군인을 빼기로 했다. (2015. 6. 20.)

안동에 가봐야지 싶어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차에는 화구들과 잡다한 짐들이 그대로 실려 있다. 할아버지 사시던 조탑마을 이곳저곳을 돌며 사진 찍고 지금은 오두막 평상에 앉아 나 혼자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어두워지니까 바람이 많이 불어 좀 춥다. 막걸리가 잘도 넘어간다. 환할 때 할아버지에게 인사드리고 가방에 넣어 온 그림을 한 장씩 넘기며 보여 드렸다. 띠살문 사이로 보이는 영정 사진에 눈을 맞추며. (2015. 6. 25.)

「강냉이」는 권정생의 시다. 그럼 내가 「강냉이」에서 하고 싶은 말은 무얼까? 이 문제가 마지막 장면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일상의 소중함과 전쟁의 무모함,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밑바닥 삶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 상실, 아이들의 소박한 꿈,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나는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것인가. 그래서 넌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데? 이 물음이 자꾸 내게 되돌아온다.

절애에서 마무리했으면 좋으련만, 작업은 끝나지 않았고 예정한 대로 짐을 꾸렸다. 이제 영월에서 두 달 정도 지내게 될 것이다. 이 결정을 하기 전까지 며칠을 길 위에서 떠돌았다. 기운 내서 다시 시작해야지. 평화야, 힘을 내! (2015. 6. 28.)

나는 끝까지 아이를 살려놓을 것 같다. 아이들은 살아갈 것이다. 생명은 다시 또 태어날 것이고 상처 속에서도 삶을 이어갈 것이다.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사랑은 이어질 것이다. (2015. 6. 29.)

요즘, 샤갈의 그림을 보노라면, 손이 꼬무락거리고 가슴에서 그림 그리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 화면 가득 숨어 있는 이야기들과 과감한 색상들과 색상들의 대비, 아이들처럼 어눌한 듯 자유롭기만 한 샤갈의 그리기와 유머가 내게 충동과 의욕들을 불러일으킨다. (2015. 7. 6.)

「강냉이」의 마지막 행, “인제쯤 셤지 나고 알이 벨낀데…”를 ‘전쟁’이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읽는 편집자가 있었다. 중요한 지점이다. (2015. 7. 7.)

편집주간과 담당 편집자가 그림을 보러 왔다. 더미를 가져가 앉혀보기로 했다. 애지중지 그림을 끌어안고 살다가 보냈더니 막연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2015. 7. 21.)

옥수수라고 하면 노랗게 익어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강낭알을 떠올릴 테지만, 안동 옥수수는 노랑이 아니라 토종 옥수수처럼 깜장에 가깝다. 깜장색 옥수수라니, 그걸 알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15. 8. 17.)

‘아름답다’는 건 ‘간절하다’는 뜻일 것이다. 간절하지 않으면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렇다면 자연은 왜 저토록 아름다운가. 사랑하기 위하여, 이 별에 살기 위하여, 자신들의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리라! 모든 아름다운 건 간절하며, 간절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2015. 8. 20.)



지난 일기들을 다시 뒤적거리자니, 평화를 말하는 일이,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이 고되고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가위 눌림과 싸우느라 무척이나 발버둥 쳤던 것 같아요. 평화라는 주제도, 새로운 그림으로 나아가려는 몸부림도 내게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 가위 눌림이 그림책에 눈을 뜨게 했습니다. 내가 만났던 모든 것들을 그림책으로 해볼 수 있겠구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했어요. 작업 일지에 적어 두었던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읽어 보며 글을 마칩니다.

- 팁 하나 : 『강냉이』 그림책을 뒤에서부터 읽으면 전쟁과 폐허의 땅에서 다시 평화로웠던 시절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김환영 |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별 생각 없이 출판 일을 시작했다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림책으로는 『나비를 잡는 아버지』 『호랑이와 곶감』 『강냉이』, 동화 『종이 밥』 『마당을 나온 암탉』 『해를 삼킨 아이들』 『과수원을 점령하라』 들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동시집 『깜장 꽃』을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