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2월 통권 제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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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너머 세상 읽기

[근대 과학 기술로 만나는 서울]
개화
――국가에서 처음으로 신학문을 가르치다

김연희 | 2016년 02월

덕수궁 돌담길에 꽤 크고 중후한 건물이 서 있습니다. 화강암으로 만든 큰 돌집입니다. 지금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이용되는 건물입니다. 굵직굵직한 전시회가 끊이지 않고 열리는 곳이지요. 미술관으로 사용하기 전에는 대법원 건물로 썼습니다. 그전 식민지 시기에는 일제 법원, 또 그전에는 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식민지로 전락하기 전, 그러니까 1880년대에 이 터에는 독일영사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거슬러 그전에 이 건물에는 육영공원이라는 학교가 있었지요. 이른바 사대문 안에 있던 터이고 궁 바로 옆에 있어서 활용이 적지 않았던 곳입니다.

국립 근대학교가 세워지다

육영공원은 학교입니다. 글자 그대로 ‘영재를 양성하는 학교’지요. 영어로는 ‘Royal School’, 혹은 ‘Royal College’로 불렸습니다. 그러니까 왕실에서 지은 학교입니다. 이 학교의 운영을 위해 조선 정부는 해마다 6천 냥을 지출했지요. 육영공원은 1886년 세 명의 미국인 선생님의 가르침 아래 35명의 학생들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육영공원의 미국인 선생님들은 미국에 파견되었던 조선 정부의 외교 사절단이 미국 정부에 요청해서 머나먼 조선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 번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1884년 일어난 갑신정변 때문에 늦어진 것도 있지만, 미국 정부가 선생님들을 흔쾌히 주선하기에 조선은 너무 멀었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미국의 관습이나 사회적 여건과도 너무 다른 곳이었어요. 조선 정부는 여러 번 미국 정부에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길 요구했고, 미국 정부는 마침내 기독교 선교의 뜻을 품은 세 명의 젊은이들을 주선해 주었지요. 그들이 바로 길모어(G. W. Gilmore), 헐버트(H. B. Hulbert), 벙커(D. A. Bunker)입니다. 이들은 미국 뉴욕의 유니언 신학교 졸업생들이었고, 그전에 각각 프린스턴, 다트머스, 오베린과 유니온 대학을 거쳤습니다.

육영공원에 온 선생님들은 교과서로 쓸 여러 책들을 미국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말은 고종 임금과 조선 정부가 수집해 보관하고 읽었던 중국어 번역본 책을 육영공원에서 사용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조선에 온 이 선생님들은 조선어뿐만 아니라 한문에도 익숙하지 않았지요. 그들은 이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을 하며 이 학교가 대학으로 발돋움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학생들의 육영공원 생활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받으려고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이들은 15세 이상 20세 이하의 젊은이들로 대부분 명문대가의 자제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과거 급제를 중심으로 둘로 나뉘었습니다. 이미 급제해 관원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을 모은 반이 좌원입니다. 오로지 학생들만 모은 반이 우원입니다. 처음 학교가 시작되었을 때 좌원이 13명, 우원이 22명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좌원 6명, 우원 14명을 더 선발했고, 1889년에는 우원만 57명을 더 뽑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영어로 수업을 했습니다. 이들에게 영어 공부를 시킨 조선 정부는 ‘(외국과) 교섭하는 의식을 상세하게 알고 통상할 때의 규칙을 분명하게 알게 된 연후에 외국으로부터 기만을 당하거나 그들의 계책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지니고 있었습니다.

알파벳도 모르던 학생들은 학교에 입학한 후 매우 빠르게 영어를 배웠다고 합니다. 한문 공부를 하던 탁월한 암기 실력으로 영어를 놀랄 만큼 빠르게 익힌 것이라고 선생님들은 평가했지요. 미국식으로 정한 3개월의 긴 여름방학 동안 영어 단어를 잊을까봐 학생들은 5일마다 나와서 시험을 보기도 했습니다. 방학 동안만 시험을 본 것이 아닙니다. 달마다, 계절마다, 해마다 시험을 보았고 또 3년마다 시행되는 시험도 보아야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임금과 세자 앞에서 시험을 보기도 했어요. 그렇게 보면 육영공원 학생 생활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배웠나

영어 단어를 알게 되면서 곧 학생들은 자연과학과 수학을 영어로 공부하기 시작했지요. 그들은 ‘격치만물(格致萬物)’이라는 과목에서 의학, 천문, 농리(農理), 기기(機器), 동물 같은 서양 근대과학과 기술을 공부했습니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도 읽었지요. 그들은 얼음으로 뒤덮인 극지방, 낙타를 타고 건너는 사막, 정글이 펼쳐진 열대 지방, 이집트의 카멜레온, 아프리카의 코뿔소 등을 책으로 만났습니다. 또 소금을 얻는 방법, 벌집의 구조, 아마와 같은 여러 상업 작물의 재배 방법, 조선술 발달사와 증기기관 등을 배웠어요. 육영공원에서 공부한 100여 명의 학생들은 새로운 근대 학문과 과학 기술 지식을 만나고 익혔습니다.

미국 선생님 가운데 한 사람인 헐버트는 조선말을 배우는 데에 열심이었어요. 그는 조선에 온 지 6개월 정도 지나서 조선어로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큰 부담이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요. 그는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식물학과 생리학, 화학과 같은 자연과학 분야를 스스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국문으로 『사민필지』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어요.

이 책은 태양계와 지구, 지구의 오대양 육대주를 설명하고, 세계 속의 조선을 보여 준 자연지리 및 인문지리 책이었습니다. 일식과 월식, 구름과 비, 눈, 바람, 천둥 번개, 안개 등도 설명했어요. 물론 이 내용들이 모두 처음 소개된 것은 아니고 다 올바르게 설명한 것도 아니지만 조선에 온 지 불과 4년 만에 자연 현상을 근대 과학적 방식으로 해석한 한글 책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헐버트가 이 책을 준비하면서 이 내용들도 강의했을 것이라 여겨지는 점도 또 하나의 의의입니다.

나쁜 학교, 게으른 학생?

학생도 열심이었고 선생님들도 열심이었지만, 이 학교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학생들의 학습 태도, 특히 좌원의 학생들은 결석이 잦았기 때문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좌원은 이미 관원이고 정부 업무를 보던 사람들로, 일이 바쁘면 학교에 올 수 없었어요. 이런 사정을 감안해서 이들은 3일에 한 번만 출석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꾸기도 했지요. 고종은 학생들이 병을 핑계로 결석하는 일이 일어나면 부형이나 그 학생을 천거한 사람도 엄히 다스리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어요. 하지만 병을 빙자해 결석하는 일은 아마도 매일 학교에 가야 한다는 수업 방식이 부담이 되어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소함은 곧 없어졌다고 합니다. 교사였던 헐버트는 학생들이 매우 열심히, 성실하게 학업에 임했다고 전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했던 우원의 학생들은 아침 6시 기상, 7시 아침 식사, 12시 점심 식사, 6시 저녁 식사, 밤 10시 취침의 일과를 보내며, 오전 오후 각각 3시간씩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는 학교가 문을 연 지 서너 달이 지나자 학생들이 아침마다 출석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규칙적으로 생활한다고 평가했어요. 그리고 걱정스럽던 학생들조차 완벽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 매우 고무되었다고 누이한테 편지를 보냈습니다. 관원으로 결석이 잦은 좌원 학생들에게 불만이 많았던 길모어조차 우원 학생들의 열성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육영공원이 훌륭하고 원활하게 운영된 것은 아닐 겁니다. 바쁜 업무로 결석이 많았던 좌원의 학생들만큼이나 선생님들도 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조선의 휴일은 물론이고 일요일, 성탄절, 추수감사절 심지어 미국 독립기념일 같은 미국의 휴일에도 쉬었고, 일요일이 공휴일과 겹치면 그 다음날도 쉬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난방이 안 된다고 휴업하고, 미국에 갔다 온다고 장기간 쉬었어요. 심지어 학기 중에 일본이나 중국을 여행하기도 했지요.

선생님들의 보수가 적지 않았던 만큼, 성실하지 못하다고 학생들만 탓하는 것은 문제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임시 교사로 있었던 미국인 선교사 기포드(D. L. Gifford)는 육영공원 관리들의 횡령 운운 하며 학교 운영을 나쁘게 평가했어요. 이런 부정적 평가에는 선교가 힘든 나라에서 힘들게 일을 했음을 강조하려던 의도가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이 미개할수록, 그들의 상식이 통하지 않을수록, 그들의 선교 작업들이 더 빛을 발한다는 계산이 녹아 있었던 것입니다.

육영공원이 영어학교로 바뀌다

근대 대학교를 꿈꾸던 육영공원은 영어전문교육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전환의 결정적인 이유는 재정 문제였습니다. 물론 고위 관리의 방해, 좌원의 불성실한 수업 참여, 교사의 불성실과 교사 봉급의 연체 등으로 육영공원의 운영이 쉽지 않아진 탓도 컸습니다. 벙커의 계약 만기로 1895년 육영공원은 관립영어학교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학교는 1891년 독일공사관에 터를 내주고 현재 서울의 수송동 82번지로 이사를 한 후이기는 했습니다.

이제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하게 되면, 이곳을 드나들며 영어 단어를 외우고 영어로 수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하던 옛 육영공원의 학생들을 떠올려 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 본문에 사용한 사진들은 문화재청 자료를 사용하였습니다.
김연희 | 서울대학교에서 한국과학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연구 교수로 있습니다. 한국 역사 속에서의 자연 이해와 자연 이용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양 과학과 우리 전통 과학이 만났을 때의 이해 방식에 관해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과 『강은 어떻게 흘러가나』 『고종 시대의 과학 이야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