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2월 통권 제159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더불어 책 읽기

[도서관과 가까워지는 도서관 이야기]
전설과 예언이 깃든 고대 도서관

송경진 | 2016년 02월

도서관과 판타지적 상상

도서관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 중에는 유난히도 판타지적인 이야기가 많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은 차치하고도,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기괴한 노인에 의해 도서관에 갇혀 버린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하루키의 『이상한 도서관』, 앞집 할머니의 소녀 시절 환영과 함께 문 닫힌 도서관 안에서 마법의 책을 찾아 헤매는 소년 기욤의 이야기를 다룬 귀뒬의 『도서관에서 생긴 일』, 사라진 책들만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을 무대로 고대의 문서에서부터 현대의 유명 작가 원고까지 어떤 이유로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사라진 글들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알렉산더 페히만의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등은 모두 판타지적 상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왜 그럴까? 사람마다 나름의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도서관이 품고 있는 책들이 방대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책들은 여러 나라의 여러 작가들이 쓴 책들이며, 최근에 쓰인 책뿐만 아니라 한 세대를 넘어 오래 전 세상에 나온 책들까지 다종다양하다. 요즘의 공공도서관만을 떠올려서는 이러한 사실에 공감하기가 다소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표하는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대영도서관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서인 『코덱스 시나이티쿠스』뿐 아니라 루이스 캐럴이 손으로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최초 원고가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좀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도서관에 판타지적 상상을 부여하는 기원은 오랫동안 금지된 성역으로 존재했던 도서관의 역사와 더 관련이 깊다. 오늘날에야 누구나 원하는 책을 쉽게 빌리고, 좋아하는 작가와 이야기 나누고, 함께 영화도 보는 도서관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19세기 미국에서조차 도서관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매튜 배틀스의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라는 책에는 백인 가톨릭 신자의 대출증을 빌려 마치 글을 모르는 흑인이 백인의 심부름을 온 것처럼 하여 종이에 읽고 싶은 책의 제목을 적어 가서 책을 빌려 읽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후에 소설가가 된 그의 이름은 리처드 라이트였다.

그보다 앞선 중세나 고대의 도서관은 훨씬 더 이용자를 제한하는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그것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일부 계층에 한정되어 있었고, 책이 흔하지 않아서 책을 가질 수 있는 사람도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또한 책에 담긴 내용을 독점하거나 금지시키는 일련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언과 저주를 담은 책들

특히 고대의 경우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까닭에 종교적인 교리가 곧 국법이 되고, 예언과 신탁에 의지한 통치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도서관이 대부분 왕실이나 신전에 딸려 있었고 책의 내용도 신탁과 예언의 기록, 종교 의식 등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라이오넬 카슨의 『고대 도서관의 역사』에 소개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왕궁터에서 발굴된 점토판 내용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BC 17~13세기까지 존재했던 히타이트 왕국의 수도 하투사스는 이집트 앙카라 남동쪽에 유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방대한 양의 점토판들은 공식 행사, 전투에 참여하는 지휘관에게 보호의 주술을 거는 의식, 불길한 예언의 해석을 위한 의식 등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것들이 많았다. BC 668~627년까지 아시리아를 통치했던 아슈르바니팔 왕이 세운 도서관은 그 전의 어떤 도서관보다 컸으며, 그 후 3세기 반 동안 최대 규모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유적지에서 발굴된 점토판에는 ‘왕의 명상’을 위해 도서관이 세워졌다는 기록으로 보아 왕 개인을 위한 도서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도서관의 자료 중 단연 많은 것은 예언에 관한 기록물이었고, 그 다음으로 의식, 주술, 기도 등 악마를 물리치고 신의 도움을 구하는 종교와 마술에 관한 문학 작품이 많았다.

신이 내린 예언을 해석하고, 이에 따라 전쟁, 기근, 질병 등 나라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교적 의식을 집행하는 것이 고대 왕의 통치술이었던 만큼 왕에게 도서관이란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이 집약된 중요한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까닭에 왕실과 신전에 딸린 도서관을 드나들며 그 안에 소장된 책, 점토판을 열람할 수 있는 사람들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또 그러한 책들이 도서관 밖으로 나가는 것도 매우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나 책을 보거나, 책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빌려 갈 수 없도록 신들의 이름을 빌린 무시무시한 저주가 점토판에 새겨져 있었다.

카슨이 소개한 예에 따르면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의 점토판에 새겨진 아래의 문구들은 그 섬뜩한 경고를 보여 준다. “…누구든 이 점토판을 없애거나 나의 이름 대신 자신의 이름을 쓰는 자는 무자비하게 격노한 아슈르 신과 니릴 신이 그를 파괴하고, 이 땅에서 영영 그의 이름과 자손을 멸할 것이다.” “아누, 안투를 두려워하는 자는 이것을 결코 훔쳐 가지 않을 것이다.” “이 점토판을 가져가는 자는 샤마시가 그의 눈을 뽑아 낼 것이다.” “나부와 니사바가 … 그를 귀머거리로 만들 것이다.” “이것을 훔쳐 가거나 힘으로 빼앗거나 노예를 시켜 강도질한 자는 나부가… 그의 인생을 물처럼 흩뜨릴 것이다.”

이러한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책의 내용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자의 기원이 된 갑골 문자는 은나라 사람들이 짐승의 뼈나 거북이 등껍질로 점을 치고 무슨 내용의 점을 쳤는지를 기록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주나라는 왕실 도서관이 있었다고 기록된 가장 오래된 나라인데,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 따르면 이 시기 왕은 지상에서 하늘을 대리하는 천자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땅 질서의 주재자였다. 그러므로 주나라 왕실 도서관의 책 역시 통치와 관련된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것들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예언과 주술, 전설 같은 일화가 있을까? 바로 지난 1월호에 소개했던 책암석에 관한 전설이 그것이다. 『연경재전집』의 「필기류:난실담총」에는 ‘백제석실’이라는 제목으로 짤막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부여현에 백제에서 역사책을 숨겨 두었다고 전해지는 큰 암석이 있는데 이를 석실 혹은 책암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 책암의 문을 열려고 하면 천둥과 번개가 쳐서 감히 가까이 하기 어려운데 이는 백제 선왕의 영혼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리품과 필사로 확충한 장서

고대에는 서사 재료가 매우 제한적이고 책 매매라는 것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도서관의 장서는 일일이 손으로 써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도서관의 장서를 확보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왕의 절대적인 권력이었다. 왕들은 정복한 지역의 장서를 약탈하거나 수많은 필경사들을 동원해 책을 베껴 쓰게 하는 방식으로 장서를 확충해 나갔다.

고대 왕들의 책 수집에서 단연 화제가 되는 것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건립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대한 일화다. 이 이야기는 『고대 도서관의 역사』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젠틀 매드니스』 등 도서관과 책을 다룬 책에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세우고 세상의 모든 책들을 다 수집하고자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중에는 알렉산드리아가 무역항이었던 점을 이용해 항구에 정박한 배들을 수색하고 이 과정에서 책이 발견되면 압수하여 원본은 도서관에 소장하고, 대신 필사본을 돌려보냈다. 이처럼 다소 과격한 방법 이외에도 대리인을 파견해 온갖 종류와 주제를 포괄하는 책이란 책은 죄다 사 오도록 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이 방법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오래된 책들을 선호하는 바람에 왕들의 대리인이 오래된 필사본을 은밀하게 위조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세워졌던 BC 300년경은 이미 고대 역사가 상당히 진전된 시기였고, 초기의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통치와 문화에서 문자를 통한 지식의 체계화, 지식의 보존과 유통 창구로써 도서관의 발달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 이후의 도서관들은 이전의 고대 도서관들과는 또 다른 특색과 장서의 내용을 나타냈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회로 넘긴다.
송경진 | 이화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도서관과 관련된 연구와 저술, 강연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창작 동화 『하타리의 눈』이 있고, 『공공도서관 문 앞의 야만인들』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