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2월 통권 제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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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진심이 담긴 얼굴이기를

이지혜 | 2016년 02월

명언은 할아버지의 열 가지 가르침을 한 줄 한 줄 입으로 읊조렸다. 눈을 감고 열 번, 스무 번 읊다 보니 어느새 열 가지 가르침이 한 줄로 정리돼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올랐다. 잘 쓰려는 욕심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을 꾸밈없이 드러내라. (본문 150쪽)

좋은 책을 만나 그 안에 담긴 좋은 문장을 마주하게 되면 습관처럼 그 문장을 곱씹어 보기 마련입니다. ‘아, 좋다!’라는 감탄에 한 번,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을 쓰지?’라는 호기심에 두 번, ‘꼭 기억해야지’라는 다짐에 세 번, 물론 세 번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좋은 책은 곁에 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꺼내서 다시 읽어 봅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 아이들을 현혹시킬 만한 놀 것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학교 문구점 앞이나 오락실에서 하는 게임 정도가 고작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심심할 때면 책을 읽었고, 어느새 작가들처럼 글을 잘 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소망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았습니다. 글을 잘 쓰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보니, 이는 평생의 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처럼 글을 쓰는 데 있어 큰 고민에 빠진,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바로 북촌의 소문난 악동 명언이입니다.

명언이는 서당에 앉아 있는 시간이 그저 지루하기만 합니다. 이날도 친구들을 부추겨 수업을 대략 마무리 짓고 놀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명언의 속을 꿰뚫어 본 봉학이 훈장님께 명언이의 행실을 일러바쳤고, 명언이는 그만 혼쭐이 났습니다. 평소 자신의 아버지를 서생이라 얕잡아 본 봉학이었기에 명언은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봉학이를 제대로 골탕 먹이리라 다짐하였고, 그 결과 봉학이는 큰 창피를 당한 데다가 다리까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앞에 불려 가게 된 명언은 호되게 혼이 날 거라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명언에게 색다른 제안을 합니다. 앞으로 아버지의 그림자가 되어 언제, 어디든 따라다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다니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매를 맞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명언은 그 말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명언이는 그렇게 아버지의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명언은 아버지께서 봄놀이를 가든, 오랜 벗을 만나러 가든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고,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아버지의 깊은 뜻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아버지는 명언에게 직접적인 가르침을 주기보다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생각의 장을 열어 주었습니다. 볼품없는 나귀를 타기 싫다고 툴툴대는 명언에게 말이 아닌 나귀를 택한 선비의 마음을 느끼도록 하였고, 초가삼간 서재를 세운 최 진사댁에서 우연히 만난 막둥이를 통해 학문에는 귀천이 없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명언이 고행이라고만 여겼던 아버지의 그림자 역할은 어느새 즐거움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명언에게 어느 날 커다란 고민이 하나 생겨 버립니다. 명언의 형수가 아기를 가져 드디어 조카가 생기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조상님들께 그 소식을 고할 때 명언이 축문을 써야 한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제대로 된 글을 써 본 적 없는 명언에게 축문을 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명언에게 할아버지는 ‘작문요람’이란 제목의 책 한 권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안에는 글쓰기를 위한 열 가지 가르침이 담겨 있었고, 그 가르침을 열 번, 스무 번 읊조린 명언은 ‘순수한 마음을 꾸밈없이 드러낸’ 자신만의 축문을 완성하기에 이릅니다.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이야. (본문 154쪽)

명언의 진심이 담긴 축문을 들은 아버지가 명언에게 건넨 말입니다. 정약용 선생이 『다산시문집』에 남긴 생각과 통하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명언에게 건넨 저 말에는 명언이의 축문이 좋은 글이라고 칭찬한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글을 쓰게 된 명언이 잘 성장하고 있음을, 명언의 아버지가 꿰뚫어 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북촌의 악동 명언이가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기 위한 밑거름을 제대로 다진 것을 보니 저도 덩달아 기쁜 내색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명언이의 이야기와 좋은 글에 푹 빠졌나 봅니다.

이제 저도 이 글을 마무리하렵니다. 그리고 가만히, 제 얼굴은 어떤지 깊이 생각해 봅니다. 진심이 담긴 얼굴이기를 바라봅니다.
이지혜 |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어린이 책도 사랑합니다. 대학원에서 독서교육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며, 올해는 좋은 글을 적어 두는 새로운 습관을 가져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