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2월 통권 제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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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우주와 자연과 사람이 이끌리듯 만나다

남민희 | 2016년 02월

살다보면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그럴 때면 저는 바다로 갑니다. 동해 바다가 펼쳐진 정동진을 가장 좋아하지만, 너무 멀다 싶을 때는 서해안도 좋아요. 너른 바다를 보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지요. 처음 듣는 음악도 좋아요. 낯선 여행지에서 듣는 낯선 리듬과 선율만큼 짜릿한 것도 없거든요. 마치 다른 세계에 초대된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죠. 그때 신비로운 광경이 제 눈을 사로잡았어요. 수많은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고 있었어요. 마치 작고 까만 점들이 리듬을 타며 춤을 추는 것 같았지요. 철새들이 하늘을 종이 삼아 그림을 그려가는 걸 한참동안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어요.

이 책의 주인공인 큰뒷부리도요새는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비행하는 새입니다. 해마다 북극의 겨울을 피해 이동하지요. 북쪽의 알래스카에서부터 남쪽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무려 11,000킬로미터를 날아갑니다. 도요새는 북쪽 서식지로 되돌아가는 길목에서 동남아시아, 특히 한국의 서해 주변 습지에 머물러요. 먹이를 구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지요. 습지는 철새들이 머나먼 여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먹을거리와 쉴 곳을 제공하기에 철새들에게 꼭 필요한 곳이랍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제가 본 그 철새들이 흰점박이도요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도요새의 여정을 보여 주고 있어요. 얼핏 철새의 여행 이야기만 담고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섬세한 눈길로 도요새의 여정을 따라 가다 보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란 것을 알 수 있어요. 저는 책 속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발견했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희망’입니다. 첫 장을 펼치면 남자아이가 침대에 누워 있어요. 침대 옆에는 휠체어가 놓여 있네요. ‘아, 나도 날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유심히 보면, 도요새의 모든 여정에 이 남자아이가 등장하는 걸 알 수 있어요. 바닷가에 휠체어를 탄 남자아이가 망원경으로 도요새 무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지요. 도요새들은 긴 여행 끝에 다시 그 바닷가로 돌아와요. 바닷가에는 여전히 남자아이가 있고요. 그런데 무언가 달라졌어요. 휠체어는 사라지고 목발을 들고 있는 거예요! 작가는 작은 그림 요소를 통해 병세가 호전되어 가는 남자아이의 희망찬 미래를 암시하고 있어요.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를 부러워하던 남자아이는 이제 두 발로 땅을 디딜 수 있지요.

두 번째 이야기는 ‘재미’입니다. 호주 출신의 영화 제작자이자 작가인 제니 베이커는 콜라주 기법으로 그림을 완성했어요. 깃털과 모래, 합성수지와 왁스, 채소와 물감, 찰흙 등 여러 자연 재료와 인공 재료를 사용했지요. 그림이 입체적이라 푸른 바다와 물결이 눈앞에 펼쳐진 듯하고, 도요새들은 책 밖으로 날아오를 것만 같아요. 생동감 넘치는 색감은 마치 실제 자연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지요. 또한 작가의 재치 넘치는 그림 배치가 마음에 들었답니다. 하늘을 나는 도요새의 모습과 비행기가 판박이처럼 느껴지도록, 한 면에 나란히 배치한 것이지요. 구석구석 숨은 그림을 찾는 재미도 있답니다. 한번 자세히 살펴보세요.

세 번째 이야기는, ‘인간의 이기심’입니다. 도요새들은 구름 아래로 내려와 먹이와 쉴 곳을 찾지만 기억하고 있던 곳들이 예전과는 달라졌어요. 폐수가 흐르는 강, 굴착기가 있는 공사 현장, 까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공장, 널브러진 쓰레기를 어두운 잿빛으로 표현하여 무분별한 간척 사업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비판하고 있지요. 첫 장의 바닷가에는 없었지만 마지막 장의 바닷가 저 멀리 보이는 공사 현장은, 지금도 여전히 간척 사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나만의 몽환적인 감성에 사로잡혀 도요새들이 ‘춤을 춘다’고 보았지만, 어쩌면 도요새들은 쉴 곳을 찾지 못해 날개가 찢어질 듯 고통스럽고 절박하게 날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옵니다.

해마다 온 세상을 가로지르는 수백만 마리의 새와 바다 생물들, 그리고 지구상 모든 동물들과 인간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품길 바랍니다.
남민희 | 열린어린이에서 편집 일을 하며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우주와 자연과 사람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함께 어울려 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