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8월 통권 제1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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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로 전하는 음악 세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박은경 | 2016년 08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소설 제목도 있지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세 명의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서른아홉 살의 실내 장식가 폴과 그녀의 오랜 연인 로제, 그리고 폴을 사랑하는 스물다섯 살의 청년 시몽이 나오지요. 자유를 갈망하는 연인 로제와 달리 엄친아 청년 시몽은 폴에게 다가와 열정적인 사랑을 토로합니다. 은사인 슈만의 부인이자 열네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에게서 은근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탓일까요. 시몽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이 담긴 편지를 보내 그녀를 콘서트에 초대합니다. 이 물음으로 폴은 상념에 잠기게 되고, 어느덧 물음표가 말줄임표로 바뀝니다.

오늘은 브람스의 피아노 소품집 작품 119의 첫 곡을 연습해 보았습니다. 브람스는 1893년 자신의 60세 생일에 이 곡을 클라라 슈만에게 보냈고, 그녀는 ‘회색의 진주’라고 격찬했습니다. 은은하고 고상한 회색빛 진주처럼 한 음 한 음이 아름다운 곡이지요. 클라리넷의 슬픈 음색을 연상시키는 선율을 들으며 저는 문득 상념에 빠졌습니다. 브람스와 클라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평생 우정의 관계였을까? 아니면 연인 관계이기도 했을까?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질문입니다. 브람스가 클라라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20세의 나이로 음악가 슈만 부부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슈만은 즉시 브람스의 천재성을 알아보았고, 자신의 음악평론지에 그의 빛나는 미래를 예측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슈만은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이때부터 브람스는 클라라와 그의 많은 자녀들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40년이 넘는 동안 이들의 관계는 지속되었고 클라라가 죽은 다음 해에 브람스도 세상을 떠납니다.

브람스의 음악은 우수에 찬 선율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의 음악이 가을에 특히 사랑받는 이유도 고독에 잠기게 하는, 그 우수 때문이겠지요. ‘F.A.E.’는 독일어로 ‘Frei Aber Einsam’의 약자이며 뜻은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입니다. ‘F.A.E.’는 원래 브람스가 좋아했던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의 좌우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아힘을 위해 바이올린 소나타 일명 「F.A.E.」를 만든 까닭으로 브람스는 오늘날 자유인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브람스적인 자유라 함은 어떤 틀 안에서 감정의 격류를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브람스는 이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내면의 정열을 불태우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브람스 음악의 음색은 불에 그을린 은 같다 하기도 하고 떫고 중후하다고도 표현합니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라는 구절과 묘한 앙상블을 이루는 멋스러운 표현이지요.

브람스는 1833년 5월 7일 북독일의 항구 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브람스는 콘트라베이스 주자의 장남으로 태어났지요. 브람스는 7세에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의 재능은 놀랄 만큼 나날이 발전하여 음악 천재라는 칭찬을 받았지요. 하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밤에는 술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일로 가계에 보탬을 주었습니다. 1850년 무렵부터 차차 작품 발표도 시작했으며, 몇 년 후 바이올린의 대가 요제프 요아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아힘의 소개로 당시 음악계의 제왕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리스트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1853년 20세의 청년 브람스는 요아힘의 소개장을 갖고 슈만을 방문하게 됩니다. 브람스는 스스로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를 슈만 부부 앞에서 연주하였지요. 슈만은 『음악신보』에 그의 천재성을 소개했습니다.

“… 드디어 그가 왔다. 요람의 여신과 영웅이 보호하는 가운데 나타난 멋진 젊은이다. … 신의 소명을 받은 사람 중의 하나라고 찬탄할 만한 모든 징표가 그에게 있었다. … 최고의 천재성을 보여 준 그는 분명 통찰력이 있었는데 다른 천재성도 그의 겸손 속에 들어 있었다. … 그는 아마 상처도 받을 것이지만 온갖 영예와 월계관도 쓰게 될 것이다.”

클라라는 그날 일기에 ‘넘치는 듯한 창조력, 깊은 정감, 훌륭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첫 만남의 인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클라라가 죽기까지 만 43년의 세월 동안 관계가 지속됩니다. 둘 사이에 오고 간 편지만 해도 8백 여 통에 이릅니다. 클라라는 브람스보다 열네 살 연상이었는데요. 브람스는 그의 부모님의 경우를 생각했을까요? 브람스의 아버지는 24세 때 41세의 어머니와 결혼했습니다. 브람스가 클라라를 그리워하는 마음에는 그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까지 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지요.

브람스는 30세 즈음부터 빈에 머물렀습니다. 후반생 35년을 이 음악 도시에서 보낸 것입니다. 브람스는 데트몰트 궁정의 합창단, 함부르크의 여성 합창단을 지휘하기도 하지요. 어머니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쓴 대작 「독일 레퀴엠」의 성공으로 브람스의 명성은 널리 퍼져 갔습니다. 1879년에는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그에게 명예 철학 박사 학위를 수여하자, 그는 그에 대한 답례로 그 유명한 「대학 축전 서곡」을 바쳤습니다. 빈에서 활동한 브람스는 오스트리아 황제로부터 레오폴트 훈장을 받기도 하지요.

1896년 클라라가 위독하다는 비통한 소식을 접한 브람스는 40시간 동안 달려 클라라에게 갔지만 결국 임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브람스는 클라라의 죽음을 누구보다 비통해했습니다. 그러고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가장 위대했던 가치였으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탄식했다 합니다. 클라라가 세상을 떠난 뒤 브람스의 건강도 눈에 뜨이게 쇠약해졌고, 결국 이듬해 4월 브람스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해는 빈의 중앙묘지, 베토벤과 슈베르트 사이에 나란히 안장되었습니다. 성공한 낭만파 작곡가답게 브람스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빈의 아파트에서 검소한 생활을 했고 남는 돈은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썼습니다. 사람들은 브람스의 죽음을 몹시 슬퍼했으며 고향 함부르크에서는 정박 중인 모든 배에 조기를 달았다고 합니다.

유명한 지휘자이자 리스트의 사위이기도 했던 한스 폰 뷜로는 브람스를 바흐, 베토벤과 더불어 독일 음악의 위대한 3B라고 꼽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엄격한 고전주의적 형식 속에 낭만주의적 감정을 담아 ‘신고전주의’라고도 합니다. 그는 낭만주의 시대에 모차르트, 베토벤의 고전적 전통을 계승하여, 변화를 추구하는 바그너와 ‘낭만주의의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양극을 이루기도 했지요. 초기 그의 작품에는 안개에 싸인 듯한 고향 함부르크의 차분함과 생애를 물들였던 사랑의 고뇌로 미묘한 어두움이 깔려 있었지요. 하지만 브람스의 음악은 빈을 음악의 주거지로 삼은 후부터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빈 왈츠, 헝가리적 리듬, 독일 민요 등을 그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지요. 또한 잦은 이탈리아 여행과 남독일, 오스트리아 휴양지에서 작곡하면서 그곳의 소박하고 명랑한 서정적 음향을 음악에 담습니다. 남쪽 독일의 도시 바덴바덴은 온천 휴양 도시로 유명합니다. 브람스는 아예 이곳에 집을 구해 살며 곡을 썼는데요. 이 집은 브람스 박물관으로 남아 있습니다.

브람스의 작품 중에서 피아노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그는 많은 것을 피아노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브람스는 먼저 소나타를 작곡하고 다음엔 변주곡, 그리고 말년에는 성격적 소품에 마음을 담았습니다. 인터넷에서 ‘브람스 안마 의자’라는 광고를 본 적 있는데요. 안마 의자 이름이 음악적이라 눈길을 끌었지만, 피아니스트의 관점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깊고 풍부한 브람스적인 음향을 창출하기 위해서 피아니스트는 마치 안마 의자에 앉은 것처럼 팔을 늘어트리고 온 몸에 긴장을 풀어 피아노 건반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는 듯한 주법이 필요합니다. 팔이 무척 길었던 브람스는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죠. 그는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남겼습니다. 작품 1, 작품 2, 작품 5, 세 개인데요. 20세 전후에 작곡했으므로 패기가 넘치는 곡들입니다. 이 중 작품 5 바단조가 가장 많이 연주되는 소나타입니다.

브람스는 변주곡에도 큰 재능을 보였습니다. 작품 35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기교적으로 대단히 어렵습니다. 작품 24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는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과 함께 피아노 변주곡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초연은 그해 클라라 슈만에 의해 함부르크에서 이루어졌지요.

가장 브람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서정미의 극치를 보여 주는 피아노 소품집들은 말년에 작곡되었습니다. 작품 116, 117, 118, 119가 그들입니다. 브람스는 관악기 중 클라리넷과 호른의 음색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밝고 화려한 트럼펫보다는 트롬본에 더 애착을 가졌구요. 그는 이들이 지닌 음울하고 그윽한 색조를 사랑한 것이지요. 피아노 소품집에는 이런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때로는 클라리넷의 음색처럼 애절하게, 또 때로는 호른의 사운드처럼 부드럽게 울려 주기도 합니다. 물밀듯이 격정적으로 밀려오는 화음들은 마치 트롬본의 중후한 떨림처럼 가슴으로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가라앉은 어두운 내면, 고뇌의 탄식을 표현하기도 하며 소박하고 목가적인 심정을 노래하기도 하지요.

슈만과 브람스는 독일 낭만 피아노 음악의 거장들이지요.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지만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로 매력을 발산하는데요. 독일에서 즐겨 먹던 슈니첼(Schnitzel)을 가지고 두 작곡가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슈니첼은 독일, 오스트리아의 고기 요리이며, 밀가루, 빵가루, 달걀 등을 섞어 고기 표면에 바르고 기름에 튀긴 요리입니다. 후에 이것이 일본에 전파되어 현재의 ‘돈가츠’로, 한국에서는 이 요리가 현재의 ‘돈가스’로 자리매김하게 되지요.

슈만의 음악은 브람스보다 훨씬 젊음의 생기가 가득차 있지요. 그의 피아노 음악 대부분은 20대 때 작곡되었기 때문일까요? 슈니첼의 종류 중 예거슈니첼(Jägerschnitzel)에 비유해 봅니다. 예거슈니첼에서 ‘예거(Jäger)’는 사냥꾼이라는 뜻입니다. 오래 전 사냥의 나라인 독일 사냥꾼들이 멧돼지를 잡아 산에서 버섯을 캐서 함께 넣어 먹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거슈니첼은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식감, 담백한 소스 덕분에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편입니다. 예거 소스는 버섯, 사워크림으로 만들어지지요.

브람스의 음악은 슈만보다 형식적인 세련미와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는 그가 빈 고전파의 도시에서 그들의 형식을 추구했던 탓이겠지요. 그래서 브람스 음악을 비너 슈니첼(Wiener Schnitzel)에 비유해 봅니다. 비엔나라는 의미의 ‘비너(Wiener)’와 ‘슈니첼’의 합성어입니다. 비너 슈니첼은 따로 소스를 사용하지 않고 레몬즙을 뿌려 먹으며 황갈색으로 튀긴 송아지 고기 위에 한 조각의 노란 레몬이 올려져 있습니다.

빈을 방문했을 때 피그뮐러(Figlmuller)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피그뮐러는 1905년 창업한 비너 슈니첼 전문 레스토랑으로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합니다. 접시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큰 피그뮐러의 비너 슈니첼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진 기억이 납니다. 여기에 브람스의 왈츠가 흐른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지요. 식사를 마치고 빈 중앙공원에 있는 브람스의 묘지를 산책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브람스는 아침마다 아주 진하고 독한 블랙커피를 마셨다고 합니다. 저도 지금 한 잔의 블랙커피를 마시며 다시 한번 물어봅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유롭지만 고독한 F.A.E.의 음악 브람스! 이 질문에 저는 완전 예스입니다. 그슬린 은과 같은 브람스 음악의 색채는 그 은근한 매력이 절절합니다. 중후한 깊이와 넘치는 격정의 폭은 들으면 들을수록, 연주하면 할수록 빠져듭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은 소설 제목이 물음표가 아니라 말줄임표임을 강조했습니다. 소설에서 여주인공 폴은 청년 시몽을 떠나 오래된 연인 로제에게로 돌아가며 끝을 맺습니다. 이 소설은 여성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택할 것인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는데요. 아마도 클라라는 둘 다를 가진 것 같습니다. 당대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요 여섯 자녀의 어머니. 뜨겁게 사랑했던 남편 슈만. 평생을 돌봐 줬던 브람스의 내조. 모든 것을 가진 그녀가 너무나 부럽네요.
박은경 | 선화예고와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길에 올라 만하임 음대와 뷔르츠부르그 음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영산아트홀 초청 젊은 연주자 독주회 시리즈, 헨델 서거 250주년 기념 음악회, 예술의 전당 리사이트홀 쇼팽 리사이틀 등의 연주회를 하였으며, 현재는 백석콘서바토리와 계원예고에 출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