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9월 통권 제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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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그림책 만나며]
오, 괜찮은데? 오, 괜찮구마!

김봄희 | 2017년 09월

작은도서관에서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여러 번 진행해 보았지만 책 속 주인공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작업만큼 흥미로운 프로그램도 흔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으로 접한 주인공을 손으로 만지고 안을 수 있는 실체로 만나는 경험이 어디 흔한 일인가. 해마다 한두 번씩 이렇게 마법에서 풀려나오는 주인공들을 만나는 일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큰 만족감을 선사한다. 정말 놀랍고 신기한 일은 책 밖으로 빠져나온 주인공들 얼굴이 하나같이 끄집어낸 사람을 쏙 빼닮았다는 점이다. 본인을 빼닮은 책 속 주인공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책문화예술가인 박쥐 샘과 함께 책 속 주인공들을 책 밖으로 끄집어내 보기로 했다. 그중 첫 작품이 바로 고구마구마 고리 인형이다. 작품을 만들기 전에 『고구마구마』 책을 먼저 읽어 보기로 했다.

책 표지에는 다양한 고구마들이 등장한다. 밭에서 고구마를 한번쯤 캐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고구마는 모양도 생김새도 제각각이고 고르지 않다는 걸 말이다. 고구마구마에 나오는 고구마 역시 제각각이다. 손 하나가 고구마 줄기를 잡고 쑤욱 뽑는다. 줄레줄레 딸려 나오는 고구마들. “둥글구마. 길쭉하구마. 크구마. 작구마. 굽었구마. 배 불룩하구마. 털났구마. 조그맣구마. 험상궂구마. 참 다르게 생겼구마.”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하는 말들. “맞구마 맞구마.”

이 고구마들을 쪄 보고 구워 보고 튀겨도 본다. 말캉한 찐고구마, 구수한 군고구마, 고소하고 바삭한 튀긴 고구마들이 각자 자기가 더 맛있다고 뽐을 낸다. 이때 아이들의 고구마 취향도 함께 드러난다. 각자 먹어 본 고구마 얘기로 한참 동안 얘기꽃을 피운다. 그 끝은? “배고프구마. 쪄 먹고 싶구마. 구워 먹고 싶구마, 고구마 튀김이 최고구마.” 다음 장으로 넘기니 속이 노란 고구마가 쫘악 펼쳐진다. “모두모두 속이 빛나구마!” 어떻게 해도 빛나는 고구마들이다. 눈빛을 빛내며 책을 쳐다보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어 본다. 어떻게 해도 빛나는 아이들이다.

빛나는 고구마들이 잔치를 연다. 기왕 잔치를 열었으니 맛있게 먹자고 한다. 그런데 배가 빵빵해지면서 ‘빵’ 방귀를 뀌고 마는 고구마 하나. “독하구마!” “쓰러지는구마!” 여기저기서 아이들도 ‘빵빵’ 터진다. 배를 움켜쥐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이제 끝이구마.” 작은 고구마 하나가 물에 가라앉아 있다. 지금껏 다양하게 활약을 해 온 작은 고구마다. 튀긴 고구마에게 아팠겠구마 위로해 주고, 목멘 고구마에게 음료수를 갖다 준 정 많은 작은 고구마.

진짜 이렇게 끝일까? 뒷장이 궁금해 고개를 들이밀던 아이들이 큰 소리로 외친다. “싹났구마!” 다행이고 다행이다는 표정들을 하고선. 이게 그림책의 반전이며 희망이다. 마음 졸였던 아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주는 맛. 뒷 면지 역시 앞 면지처럼 온통 보랏빛 고구마 잎이 쫘악 펼쳐져 있다. 작은 고구마의 생명력과 끈끈한 줄기의 이어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 책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책을 덮고 나서 이어지는 기나긴 말놀이 여행. 책을 본 사람이라면 안 해 보곤 못 배기는 일명 ‘구마’ 이어가기 놀이가 고구마 넝쿨처럼 쭉쭉 뻗어가는구마.

아이들은 책에서 본 고구마 중 기억에 남는 고구마 하나씩을 종이에 그려 보기로 했다. 꼭 본 것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내가 생각한 또는 만들고 싶은 다양한 고구마를 그려도 됐다. 그런데 혜지가 고구마를 그려 놓고 영 자신이 없다. 자꾸 뒤로 감춘다. “괜찮구마. 이걸로 만들어도 되겠구마.” 혜지는 계속 도리질이다. 다시 그리겠다고 해 놓고선 손을 놓고 있다. 처음 그렸던 고구마로 만들기를 결정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혜지까지 결정을 하자 각자 종이에 그린 고구마를 천에 옮겨 그렸다. 흥미롭게도 천은 두 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탄 고구마 천과, 안 탄 고구마 천으로. 자신의 고구마 취향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고구마 선에 맞추어 천을 오린 다음 본격적인 바느질이 시작됐다. 바늘에 실 꿰기도 어려워하는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하면 되니깐. 다 꿰맨 친구들은 솜 구멍에 솜을 넣었다. 점점 고구마 속이 빵빵하게 차올랐다. 속이 꽉 찬 진정한 고구마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눈을 붙이고 얼굴을 꾸미니 아이들 얼굴이 고구마 인형 속에 다 담겨 있다. 절로 웃음이 났다. 고구마 인형 한 번 보고, 아이 얼굴 한 번 보고. “와 네 고구마 둥글구마.” “네 고구마는 길쭉하구마 너 닮았구마.” 특별한 꾸밈없이 소박하고 어쩌면 투박하기까지 한, 그래서 더 정이 가는 고구마 인형들. 서툰 바느질로 삐뚤빼뚤 꿰매고 눈을 붙이고 생명을 불어넣은 고구마들을 가리키며 아이들은 깔깔댔다. 혜지도 공들여 꿰매 만든 고구마 인형을 보여 주며 비로소 얼굴이 환해졌다.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혜지가 고민했던 것처럼 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하고 싶지만 딱히 더 잘할 자신도 없는 상태에 빠지곤 한다. 이렇게 무언가를 시작하면서 자꾸 자신 없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옆에서 “그 정도면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해 준다면 어떨까? 큰맘 먹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 스타일을 바꿨는데, 옷을 새로 샀는데 남들의 시선을 고민하고 있을 때, “오 괜찮은데?” 이렇게 한마디 추임새를 넣어 준다면 어떨까? 『괜찮아 아저씨』에 나오는 아저씨처럼 말이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신감이 불끈 솟지 않을까?

표지 속 괜찮아 아저씨는 초록 모자를 쓰고 있다. 모자에 노란 오리 한 마리가 둥지를 틀고 앉아 있다. 아저씨는 그래도 괜찮다는 듯 눈도 입도 활짝 웃고 있다. 면지로 넘어가니 초록 모자가 꽃 속에 떨어져 있다. 노란 오리 둥지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시작하는 장면에서 궁금했던 오리 둥지의 단서가 보인다. 어미 오리인 듯 보이는 노란 오리가 앞장서서 아저씨를 쫓아가고 알에서 깨어난 듯 보이는 새끼 오리들이 그 뒤를 따라 걷고 있다. 행복한 웃음이 절로 나는 장면이다.

그런데 다음 장면부터가 심상치 않다. 모자를 벗은 아저씨 머리카락이 열 가닥뿐이다. 아저씨는 아침이면 세수를 하고 머리 모양을 만든 다음 이렇게 말했다. “오, 괜찮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저씨 머리카락은 차츰 줄어간다. 새들이 포르르 날아와 한 올 물고 가고, 거미가 매달려 흔들대다 또 한 올이 쏘옥 빠진다. 곰이랑 시소를 타다, 토끼랑 경주를 하다, 돼지랑 물놀이를 하다 쏘옥쏘옥~. 하지만 아저씨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머리카락이 한 올씩 빠져나갈 때마다 그에 걸맞은 머리를 하고 난 다음, “오, 괜찮은데?” 라고 말한다.

함께 책을 보던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큰 소리로 입을 모아 외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점점점 커져 가는 것이 신기했다. 마지막 남은 머리카락이 쏘옥 빠져나가 머리카락이 한 가닥도 남지 않았을 때도 끝까지 “오, 괜찮은데?”를 외쳐 주는 사람들. 마치 괜찮아 아저씨에게 힘을 주기라도 하려는 듯.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아 있지 않은 괜찮아 아저씨가 꽃밭으로 들어갔다. 뭔가 조몰락조몰락. 뭘 하는 것일까 궁금해 하며 다음 장으로 넘겼는데 화관을 쓰고 웃고 있는 장면이 쫘악 펼쳐진다. 앞에 나온 동물들도 한 번 더 화관을 쓰고 등장한다. 우리는 한마음이 되어 바락바락 큰 소리로 외쳤다. “오, 괜찮은데?”

괜찮아 아저씨를 만나며, “괜찮은데?”를 함께 외쳐 보며 우리 마음도 덩달아 조몰락조몰락 썩 괜찮아졌다. 책을 덮고 나서도 절로 이런 말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 “오, 괜찮은데?”

언젠가는 박쥐 샘을 꼬드겨 괜찮아 아저씨도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자신 없고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괜찮아 아저씨를 꺼내 들고 아저씨가 전해 주는 위로의 말 한마디를 전해 듣는다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았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의 마법에 걸려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가 괜찮아 아저씨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순간순간 꺼내 놓고 싶은 말.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 “오, 괜찮은데?” “오, 괜찮구마!”

그림책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꽤 괜찮은 세상 풍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이런 말 한마디씩 입에 달고 살아 보자. 꽤 괜찮은 하루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봄희 | 고양시 책놀이터 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책으로 소통하며 지냅니다. 가끔씩 공기놀이나 딱지치기, 산가지 놀이도 하며 아이들의 숨통이 되고자 합니다. 아이들 웃음소리로 넘쳐나는 도서관 만들기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