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9월 통권 제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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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영향을 미친 과학]
피가 온몸을 돈다

김연희 | 2017년 09월

고대의 몸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

지금이야 피가 온몸의 동맥을 돌면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과 이산화탄소를 몰고 돌아와 심장과 폐를 한 바퀴 돌면서 깨끗한 산소를 공급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두 순환을 체순환과 폐순환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피가 순환한다는 점이 밝히는 단계를 거쳐야 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이 피의 순환은 16세기 이후에야 밝혀진 사실이다.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고대로부터 약 1500년 동안 서양 의학을 지배했던 갈레노스(Claudius Galenus, 129~199)의 이론을 극복해야 했다. 갈레노스는 4명의 로마 황제의 시의였고, 히포크라테스 이래 최고의 의학자로 꼽혔다. 고대 의학의 완성자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해부(물론 그는 죽은 개와 돼지로 해부했다고 주장함)를 통해 이론을 이룬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니까 그의 이론이 해부라는 관찰적, 경험적 행위를 통해 구축되었다는 믿음이 그의 이론을 수용하는 데에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업적으로 갈레노스는 16,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의학에서 신으로 군림했다.

갈레노스는 인체의 세 가지 주요 기능을 소화, 호흡 및 신경으로 구분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소화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음식을 섭취해 이를 분해하고 영양분으로 몸에 공급되는 과정이다. 갈레노스는, 호흡은 인체가 생명력과 열과 기운을 얻는 과정으로, 신경은 인간의 두뇌 및 정신 활동으로 구분했다. 그는 이 기능을 ‘감각’에 해당하는 영(soul 또는 spirit)으로 가정했다. 소화에 의한 영양분은 ‘자연의 영’(natural spirit), 호흡에 의한 생명력은 ‘생명의 영’(vital spirit), 그리고 정신 활동은 ‘동물의 영’(animal spirit)으로 명명했다.

갈레노스는 이 세 가지 영의 생성, 전달과 작용으로 인체의 구조와 작용을 설명하는 체계를 구성했다. 그는 ‘소화’ 체계를 음식물이 몸에 들어와서 위와 장을 거쳐 간에 이르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간에서 ‘자연의 영’인 피로 바뀌는데 이 자연의 영은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들어오면서 ‘호흡의 체계’로 이행이 시작된다. 정맥을 통해 심장에 들어온 피(자연의 영)가 허파에서 전달된 공기 가운데 가장 정수만을 받아 ‘생명의 영’으로 바뀌고, 이 ‘생명의 영’이 동맥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되어 생명력, 기운, 열 등으로 소모된다고 설명하였다. ‘신경의 체계’는 ‘생명의 영’이 정확하게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rete mirabile’라는 곳에서 ‘동물의 영’이 되어 뇌에 이른 후, 신경을 통해 온몸에 전달되어 소모되는 체계라고 구분했다. 이처럼 각각의 체계는 세 가지 영이 생성되는 곳에서 연결되며 몸 안 어디에선가 모두 사라진다. 이 세 영은 모두 시작과 끝이 있으며, 서로 다른 특징과 기능을 가졌다. 즉 완전히 분리된 체계였던 것이다. 이 영들을 전달하는 정맥, 동맥, 신경도 완전히 분리된 조직이었다.

이런 갈레노스의 설명 방식 역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자연철학 체계와 유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모든 운동은 생성과 소멸이 있고, 시작과 끝이 있다고 했으며 이는 몸 안에서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세 영과 유사했다. 무엇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생명을 삼혼(생혼, 각혼, 영혼)으로 각각 식물의 영, 동물의 영, 인간의 영을 말했는데, 갈레노스는 인간의 몸을 분류하는 데 삼혼을 빌려왔던 것이다.

고대의 이론과 믿음이 깨지기 시작하다
 
갈레노스는 간에서 피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생명의 영이나 동물의 영과 같이 자연의 영인 피도 몸 어디선가 모두 소모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이 동물을 직접 관찰하고 해부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543년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는 자신이 스스로 행하고 관찰했던 해부학적 사실을 통해 갈레노스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갈레노스가 200가지 이상 잘못 관찰했다고 지적했는데, 대표적으로 자연의 영이 생명의 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심장 우심실과 좌심실 사이의 ‘격막 구멍’이 없다는 것을 들 었다. 또 좌심실과 동맥에 피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관찰 결과는 좌심실에서 피(자연의 영)가 생명의 영으로 바뀌고 이것이 동맥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이 된다는 갈레노스 체계의 주장과도 맞지 않았다. 그리고 허파에서 심장으로 오는 허파정맥(pulmonary vein)에도 피가 있다는 것을 관찰했는데, 이 역시 갈레노스에 의하면 그 속에는 허파에서 심장으로 전달되는 공기만 있어야 했다.

1543년에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와 다른 해부학적 관찰 사실을 『인체의 구조에 관해서(De Corporis Humani Fabrica)』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이 책에는 새로운 상세한 해부도도 함께 실었는데, 굳건했던 갈레노스의 의학 체계를 무너트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의 출판과 같은 해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던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도 출판되었던 것은 흥미로운 우연이다.

피가 그렇게 많이 만들어질까?

베살리우스의 책으로 공부한 사람들 가운데 특히 영국의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는 눈에 띄는 발견을 했다. 그는 당시 의학 교육에서 탁월했던 이탈리아 파두바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을 접했다. 그는 갈레노스의 기본 개념인 세 개의 영이 서로 분리된 채 각각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된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된다는 세 개의 영의 양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그 가운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연의 영인 피를 중심으로 사고했다.

하비는 맥박이 한 번 뛸 때마다 방출되는 피의 양을 아주 작게 잡아서 약 7g 정도로 잡았다. 그리고 맥박이 뛰는 횟수도 아주 작게 잡아서 30분에 1000번 정도로 잡았다. 이렇게 아주 작게 잡아도 30분 동안에 심장으로부터 방출되는 피의 양은 약 7kg이나 되고 1시간에 14kg정도, 하루에는 300kg이 넘었다. 이런 많은 양의 피가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몸무게는 이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그렇다면 이같이 많은 양의 피가 매일 음식물로부터 새로 생성이 된다는 것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영양분은 제외하고라도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물을 마셔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심장으로부터 나간 피가 소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인가 재활용될 수 있게 전환되어야 했다.

또 하비는 피가 흐르는 방향이 있다고 생각했고 간보다 심장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심장에서 피가 온몸으로 보내지고 심장으로 다시 온몸의 피가 모여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가정들이 온몸에서 실제 행해지는 과정임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이 실험은 위험하지만 간단하기도 한 실험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맥에 가는 철사를 집어넣어 한 방향으로만 쉽게 들어감을 보였다. 더 나아가 그는 가는 줄로 팔을 동여매어서 동맥과 정맥의 흐름을 모두 중단시키기도 했다. 팔은 점차 차가워졌고 이 줄 위의 동맥이 피로 가득 차서 고동치는 것을 보았다. 다음에는 정맥은 그대로 막은 채로 두고 동맥은 자유스럽도록 줄을 풀어 주기도 했다. 이때 피가 팔을 통해 흘러감에 따라 급히 따뜻한 느낌을 느꼈다. 하지만 팔이 자주색으로 변하면서 정맥의 줄 아래 부분이 눈에 띄게 부풀어 올라온 것도 보았다. 이것은 피가 동맥으로부터 아직 줄로 엮인 정맥으로 건너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피가 동맥을 통해 손끝으로 갔다가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 주었다.

이런 실험을 통해 하비는 심장을 지나면서 피가 순환한다는 사실을 밝혔고 이를 1628년 『심장과 피의 운동에 대해서(De motu cordis et sanguinis)』라는 책으로 발표했다.

피는 돈다

피가 돈다는 생각은 하비가 당시 각 대학에 만연해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로서의 경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는 베살리우스와 같은 해에 발표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에 반대하는 지적으로 세련된 수많은 학자들이 있었고, 하비 역시 그들로부터 교육받았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운동을 설명하는 등속원운동에 대한 믿음은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간에, 심지어 태양 중심설을 열렬히 주장해 당시 강력한 교회와도 맞섰다고 알려진 갈릴레오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원운동은 단지 우주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생명에 중요한 물도 이런 원운동, 순환운동을 했다.

실제로 하비는 그의 글, 『심장과 피의 운동에 대해서』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믿음으로 순환운동을 뒷받침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체에서 심장을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여겼고, 이 점은 하비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로 하여금 심장을 중심으로 한 피와 순환 이론을 생각하기 쉽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여러 지점에서 발견된다. 비교해부학(comparative anatomy)과 발생학을 중요시 했다거나 모든 생명체가 최종적 목적을 향한다는 목적론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거나 하는 점들이 그 예이다.

하비가 보수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였기에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 듯 심장을 중심으로 피가 돈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하비가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당시의 의학은 갈레노스의 체계를 붕괴시키는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체계와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김연희 | 서울대학교에서 한국과학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 역사 속에서의 자연 이해와 자연 이용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양 과학과 우리 전통 과학이 만났을 때의 이해 방식에 관해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 『강은 어떻게 흘러가나』 『고종 시대의 과학 이야기』 『경복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