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통권 제179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 책 깊이 들여다보기]
어린이는 항상 이긴다

김유진 | 2017년 10월

뻔한 듯 뻔하지 않은

똥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른인 나는 그 이야기가 그리 재밌지도 상쾌하지도 않거니와 배설 행위에 흥미 있어 하는 유년 독자의 특성에 기댄 게으른 접근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쿵푸 아니고 똥푸』 역시 반가운 제목은 아니었다. 문학상 수상작씩이나 되는 작품이 또 똥 이야기라니 싶었다. 하지만 반드시 똥이어야만 했고 다른 똥들과는 달랐다.

“어이, 친구! 수수께끼를 내지! 어느 마을에 얼굴이 하얀 사람하고 검은 사람하고 노란 사람이 살고 있었어. 이 사람들이 싸는 똥은 무슨 색일까?”

탄이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어요.

“똥이니까 똥색!”

“딩동! 그래, 얼굴이 무슨 색이건 누구나 똥 색은 다 똥색이라고.”(「쿵푸 아니고 똥푸」 본문 16쪽)


똥색을 빌려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이 논리만으로도 똥 이야기를 가져 온 이유는 충분히 설득력 있다. “달빛 아래에 흑인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라는, 인종 차별에 관한 한 소설 제목이 지닌 서정성, 상징성과 맞먹는다. 동화의 문학성이 넘실대는 비유다.

이 동화에서 똥은 단지 우스개 소재가 아니라 주인공 탄이의 절망이자 희망이다. 엄마가 필리핀 출신인 1학년 탄이는 아이들과 다른 외모에 주눅 들어 있으며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조차 하지 못해 실수를 한다. 그러나-아니, 그래서-탄이는 똥푸맨을 만나고 집안의 거름 농사를 할 수 있게 된다. 수확이 잘 된 덕에 엄마는 탄이와 함께 십 년만에 필리핀을 방문한다. 절망이던 똥이 희망으로 반전된다. “때로 멋진 일은 너무나 슬픈 날 찾아온답니다.”라는 이야기의 시작처럼.

이 희망은 거저 주어진 희망이다. 탄이가 똥푸맨을 다시 불러내기 위해 밥을 잘 먹고, 농사를 위해 똥푸맨과 딸기밭 고랑을 지렁이처럼 기어 다니기는 했지만 결국 똥푸맨이 가져다 준 희망이다. 어린이여서 똥푸맨을 만났고 어린이여서 희망을 건네받았다. “산다는 건 백만 사천이백팔십아홉 가지의 멋진 일을 만나게 된다는 뜻”이란 말처럼 농촌 다문화 가정의 탄이에게 필요한 희망이 주어졌다. 어린이 독자 역시 똥푸맨을 만나 희망을 건네받을 것이다.

「라면 한 줄」 역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익숙한 모티프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하수구 시의 모든 시궁쥐들이 거부하던 막중한 임무가 시궁쥐 소녀(?) ‘라면 한 줄’에게 주어진다.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 약자가 어떻게 강자에게 대적할 것인가 하던 궁금증은 참으로 올바르고 신이 나는 결말로 완벽하게 충족된다. 애꾸눈 고양이 또한 인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먹이를 찾아 헤매는 약자였기에 약자끼리의 연대를 통해 서로 공생을 꾀한다.

엄마의 과보호로 넓은 세상에 나아가지 못하던 ‘라면 한 줄’이 아빠에게 물려받은 용기와 엄마에게 전해 받은 자장가의 힘으로 ‘진짜, 완전, 엄청 대단한 라면 한 줄’이 되는 이야기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지극히 평범한 모티프에서 나왔다. 오늘날 어린이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바닥난 듯 보여도 “요스요스 야호 쥬스쥬스 야하”라고 외치면 늘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할 거라는 용기를 주기에 충분하다.

비극인 세상에서 끝내 웃는

익숙한 듯 보이는 이야기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이 동화의 놀라움은 동시대에 어울리는 적절히 명랑한 감각과 문어체에서 완전히 탈각한 속도감 있는 문체가 뒷받침되어 있다. 탄이, 미지, 라면 한 줄 등 인물을 작명하는 센스는 물론이고 똥푸맨의 ‘휴지 망토’ ‘갑티슈 망토’ 설정에 나타난 상상력, “만두 꼭지처럼 코를 움켜잡으며”라는 묘사 등 작품 곳곳에 반짝이는 구슬들이 서사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며 깜박인다. “엄마와 나는 라면 한 줄을 양쪽 끝에서부터 먹기 시작해. 오물오물 먹다가 가운데서 만나면 엄마는 내 입에 마지막 조각을 쏙 넣어 줘” 같은 문장은 사랑스럽고 애틋해 자꾸만 읽고 또 읽게 된다.

많은 반짝임 가운데서도 이 동화가 가장 특별한 점은 여느 좋은 작품들이 으레 그렇듯 동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비추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부터가 어른인 걸까?

어른이 되고 싶은 아홉 살 미지는 분명히 정해 두었다. 껌을 씹을 때 딱딱 소리가 나거나, 큰길에서 손을 흔들었는데 택시가 서거나, 스마트폰 게임을 아무리 해도 엄마 아빠가 본체만체하거나, 자기 앞으로 온 택배 상자를 받게 된다면! 바로 그때부터가 어른인 거라고.(「오, 미지의 택배」, 본문 35쪽)

아홉 살 미지는 “언제부터가 어른인 걸까” 묻지만 실은 동화란 “아홉 살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를 물어야 한다. 아홉 살은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과 어떻게 다를까. 이 동화에서 미지는 “학교에선 친구들이 잘 놀아 주지 않는 인기 없는” 아이다. 유일한 친구인 강아지 봉자는 일 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때 아홉 살 미지에게 일어날 수 있는 건 뭘까. 미지는 어떻게 살아갈까.

동화에서 봉자는 미지에게 택배를 보낸다. 택배 상자의 흰 운동화를 신고 미지는 마구 달린다. “하늘나라 봉자마을”에서 미지는 봉자를 만나 눈물겹게 이야기를 나눈다. “봉자는 하늘나라에서도 미지가 너무 걱정이 됐대. 내가 없다고 매일 울진 않을까? 이젠 공놀이도 안 하고 혼자 방에만 있진 않을까?” 봉자가 미지를 불러 미지의 상실을 위로한다. 봉자와의 만남은 30분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담 미지는 앞으로 또 어떻게 상실을 극복해야 할까?

“미지야, 나 곧 다시 세상에 태어날 거야.”
“그럼,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야?”
미지 눈이 공만큼 커졌다.
“어디서 태어나는데? 내가 꼭 찾아갈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어. 내가 무엇으로 태어나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
“그럼…… 우린 어떻게 만나?”
미지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음…… 그래! 새로 핀 벚꽃한테 사랑한다고 해 줘.”
“응?”
“내가 벚꽃으로 태어날지도 모르잖아.”(「오, 미지의 택배」, 본문 52~53쪽)


그렇게 미지는 유모차에서 울고 있는 아기에게, 길고양이에게, 빗방울에게, 개미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것을 약속한다. 현실로 돌아온 미지는 다음날 아침 학교 가는 길에 본 벚꽃에게 먼저 사랑한다고 말한다. “학교에도 사랑해야 할 게 많이 있었다.”며 학교를 향해 뛰어간다.

세상은 비극이다. 미지가 봉자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고, 탄이가 자신의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듯 어린이도 비극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동화들은 어린이의 세상에는 비극이 없는 양, 어린이는 비극을 모르는 양 말한다.

하지만 이 동화는 비극의 한가운데서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 방법을 어린이에게 일러 준다. 「오, 미지의 택배」는 미지와 봉자의 사랑과 헤어짐을 가슴 아프게 보여 주지만 끝내 이야기한다. “사랑이 항상 이긴다”고. 봉자와의 사랑으로 미지는 세상을 한 걸음 더 사랑하며 상실을 메꾸어 갈 것이다. 「쿵푸 아니고 똥푸」는 밑바닥의 절망이 희망으로 반전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라면 한 줄」은 사랑하는 이들이 불어넣어 준 용기만 있다면 상상치 못한 삶의 지평이 열릴 것을 암시한다.

어린이에게, 특히 유년의 어린이에게 동화의 세계와 소설의 세계 중 어느 편을 보여 주는 것이 온당하냐 하는 질문은 이 동화 앞에 무의미해 보인다. 이 동화는 어린이에게도 끊임없이 비극은 일어나지만 우리가 똥푸맨과 봉자를 부르는 한 삶이 비극만은 아니라고 답한다. 그것을 동화 혹은 소설 어느 하나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현실은 갈수록 여기저기 포화가 빗발치는 비극이 되어가고 비극을 살아가는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그 어두움을 보여 주길 두려워한다. 혹은 반대로 비극에 잠기고 지친 채로 비극만을 보여 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봉자를 찾던 미지처럼 흰 운동화를 신고 숨차게 달려갈 수 있기에 비극 속에서도 울음을 멈출 것이다. 울음을 멈추고 비극을 끝낼 것이다.
김유진 | 동시와 평론을 쓰며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칩니다. 인하대에서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과 평론 부문을 수상했고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