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통권 제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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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나의 작품 나의 이야기]
현실과 표현 그리고 상상의 경계에서

김은영 | 2017년 10월

올봄에 출간한 『우주에서 읽는 시』를 포함해서 등단 이후 지금까지 모두 7권의 동시집을 출간했습니다. 1990년대까지는 한 권의 동시집에 한 세계를 깊이 있게 담아내고자 하는 생각이 짙었습니다. 주된 소재가 농촌 어린이들의 현실이었고, 진정성을 바탕으로 깊은 울림을 주는 동시를 쓰고자 하였지요. 하지만 중첩되는 소재들, 닮은 전개 방식 등 식상함을 극복해 내는 게 저의 과제였습니다.

2000년대 초부터 농촌 지역을 떠나 도시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면서 제 동시의 소재나 표현 방식도 조금씩 바뀌게 되었습니다. 농촌 정서와 농촌 사람들, 그리고 자연에서 도시 정서, 도시 사람들의 삶으로 시선이 조금씩 옮아간 것이지요.

그런 과정에서 자연이나 농촌 서정, 사회 현실, 어린이들의 삶과 유희, 새로운 표현과 상상,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탐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제 동시집 한 권에는 여러 시세계가 담기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도시를 떠나 다시 농촌 마을에 살게 되었습니다. 농촌 생활을 하지만 예전 농촌 생활과는 같지 않겠지요. 그래서 현실 어린이들의 삶에 주목하면서도 시인으로서 새로운 소재나 표현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도 간절합니다. 일곱 번째 동시집 『우주에서 읽는 시』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사회 현실, 어린이들의 삶과 유희, 새로운 표현과 상상 등 시인으로서의 고민과 삶의 편린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현실과 정서

현실 어린이들의 삶과 정서에 주목하고 형상화해 내는 일은 아동문학가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고민입니다. 과거와 같이 메시지 중심이거나 함께 울어 주는 방식은 지금 어린이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요. 더군다나 요즘 동시인들 사이에는 메시지를 품은 현실주의 동시를 ‘타파해야 할 낡은 동시의 전형’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지요.

그렇다고 현실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동시인으로서 어린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사회 모순과 억압에 대해 눈을 감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개성 있게 그려내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시인의 목소리를 감추고 어린이들이나 독자가 시인의 의도를 찾아낼 수 있도록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우주에서 읽는 시」 「소와 트럭」 「괴물 학교」 「외계인과의 대화」와 같은 작품 들에 그런 생각이 녹아 있다 하겠습니다. 이는 드물고 희미해지는 리얼리즘 동시, 현실주의 동시에 대한 몸부림, 또는 회복의 기대가 섞인 끈질긴 고집이라고 여겨 주면 좋겠습니다.

백 년 뒤 사람들은/ 시를 읽지 않는다.// 우주여행 다니느라/ 시집 한 권의 감동을/ 알약으로 먹는다.// 진공 포장한 고농축 알약/ 일 년에 한 알만 먹으면 끝이다.(「우주에서 읽는 시」 전문)

출판 시장의 불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이니 동시집이나 시집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더군다나 4차 산업혁명 시대, 사람이 해왔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우리 인간의 풍부한 감성과 정서는 어떻게 될까? 시인으로서 이만저만 고민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주선에서 살더라도 시집을 읽자고 말하는 대신 “한 알만 먹으면 끝”이라고 역설적인 표현을 한 것입니다.

소야,/ 트럭 타고 어디 가니?// 하늘나라도/ 짐칸에 서서 가니?(「소와 트럭」 전문)

도축장으로 실려 가는 소, 짐칸에 실린 소는 생명이 아닌 화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소에게는 힘든 노동 착취였을지 몰라도 논밭을 갈고 달구지를 끌던 옛날이 더 행복했을 겁니다. 지금도 이따금 트럭에 실려 가는 소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애잔한 마음이 입니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송아지라면 우시장이나 소를 기르는 농가로 가겠지요. 어미 소는 트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요? 이 밖에도 「나비와 할아버지」와 「꽃집 할머니」는 삶의 이야기고, 「평화는 어디에」는 현실 비판에 무게를 둔 작품입니다.

한편, 지금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어린이들의 행동이나 말을 관찰하여 쓴 작품들도 담았습니다. 발견이나 울림이 적은 소소한 일상 이야기, 대화체 남발, 불만이나 투정의 내용을 담은 생활동시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학교생활 이야기도 다르게 접근하고, 시상 전개도 진술 방식에 기대지 않으려 했습니다.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면서 운율을 살리고자 시어의 반복과 변화, 대비 효과를 고려해서 대구도 사용하였습니다. 독자들이 따분하지 않게 노래나 놀이, 이야기 형식으로 쓴 작품들이지요. 「잡기 놀이」 「봄 산책」 「집중과 소중」 「선생님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방법」 등을 그런 작품으로 꼽을 수 있겠지요.

“빙 둘러앉아 잡기 놀이 해요./ 재빨리 돌아서 술래 자리에 앉아요.//… 낙타 낙타 메르스/ 마스크 마스크 메르스// 붙잡히면 안 돼요./ 걸리면 안 돼요.”(「잡기 놀이」 부분) 몇 해 전 중동호흡기증후군, 일명 ‘메르스’가 우리나라까지 번져서 온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무서운 전염병도 놀이의 소재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빙 둘러앉아 오리와 너구리가 되어 천진난만하게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잘못된 대처를 풍자하고자 하였지요.

“선생님,/ 우린 안 떠드는데/ 왜 자꾸 ‘집중’이라고 하세요?// 그럼 뭐라고 하지?// ‘소중’이라고 하세요./ 선생님 말만 하지 말고/ 우리 말도 소중히 들어 주세요.”(「집중과 소중」 전문) 이 작품은 학교 현장에서 아이와 있었던 경험을 소재로 하였습니다.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 시키려고 특정한 말이나 몸짓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사가 “집중”하면 아이들도 “집중” 따라하면서 자세를 바르게 하라는 약속인데 저학년일수록 많이 사용하지요. 그런데 1학년 아이가 교사의 허점을 지적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습니다. 아이한테 한방 먹은 것이지요. 이처럼 아이들은 어른들의 고정 관념을 뒤엎어 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새로운 표현과 상상

시인이 개성을 드러내는 방법은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어를 다루는 말법을 개발해 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새로운 소재를 발견하거나 좋은 시상을 얻었다 할지라도 묘사가 밋밋하거나 진술이 허술하면 독자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겠지요. 따라서 세상과 사물을 색다른 시각으로 보는 안목과 함께 독자의 마음에 이미지를 선명하게 그려 줄 수 있는 형상화 기법과 언어 감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늘 이에 한계를 느껴왔습니다.

이번 동시집에는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이미지로 강렬하게 드러나도록 비유나 묘사만으로 짧게 형상화하는 시도를 한 작품들을 실었습니다. 「별」 「공동묘지」 「부산 해운대」 「고드름」 「안개」 「배추모종」 「물고기와 사람」 「방울토마토」 같은 작품들이지요. 시는 비록 짧지만 의미는 넓고 깊게 담고자 했지요. 두세 줄 밖에 안 되는 시지만 수많은 문장으로도 담을 수 없는 고갱이만 붙잡고자 애를 썼습니다.

“별은/ 우주에 떠 있는 섬이다.// 밤마다 등댓불을 켜 놓는다.”(「별」 전문) 별을 소재로 시를 쓴 시인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내기 힘들지요. 별을 소재로 추억이나 사랑의 이야기 등 아름다운 서정을 노래한 작품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로지 비유와 묘사만으로 순간 포착한 별을 표현하였습니다. “땅이 임신했다/ 저세상으로 가는 생명들을.”(「공동묘지」 전문)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라고 하지요. 죽음도 저세상에서 보면 탄생일 수 있습니다. 묘지를 볼 때마다 일었던 고정 관념을 뒤엎고자 전복적 상상과 과감한 압축으로 시상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더위 고래를 피해/ 해수욕장에 몰려든/ 사람 멸치 떼/ 바글바글/ 바글.”(「부산 해운대」 전문) 해마다 휴가철이면 부산 해운대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는 뉴스를 듣곤 합니다. 거기서 시의 씨앗을 얻은 작품이지요. 무더위를 피해 해수욕장에 몰려온 사람들을 먹이 사냥을 하는 고래를 피해 얕은 해변으로 몰려든 멸치 떼로 환치시켜서 대비 효과를 높이고자 한 작품입니다.

동시는 내 삶의 거울

동시는 어린이들과 만나는 소통의 창구입니다. 교훈을 어린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들려주는 따분한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어린이만 재미있고 나는 재미없는 놀아 주기도 아닙니다. 어린이들과 함께 놀고 함께 느끼며 감정과 정서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한 편의 동시가 방이라면 동시집은 여러 개의 방이 모여 있는 집과도 같습니다. 어린이들이 와서 놀아 주길 바라며 지어 놓은 놀이터이기도 해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재밌게 놀다 가길 바랄 뿐입니다.

그런 고민이 깊어지면 동시는 내 삶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집이기도 하면서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합니다. 집이자 거울인, 새 동시집을 펴내고 나면, 그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면서,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듯 어딘가 무엇인가가 빠지거나 부족한 듯, 아쉬움이 남게 되네요.
김은영 |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했습니다. 동시집 『빼앗긴 이름 한 글자』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아니, 방귀 뽕나무』 『선생님을 이긴 날』 『ㄹ 받침 한 글자』 『삐딱삐딱 5교시 삐뚤빼뚤 내 글씨』 『우주에서 읽는 시』 등을 펴냈습니다. 현재 남양주 조안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