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통권 제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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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그림책 이야기 방식 읽기]
전쟁의 공포 없는 세상에서

김영욱 | 2017년 11월

‘전쟁’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낯선 말이 아니다. 우리는 60여 년 전에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했고, 또 남과 북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다. “나는 폐허의 군산을 떠나 폐허의 명동으로 왔다.” 고은 시인은 전쟁 직후의 풍경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의 고향 군산항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작전 지역을 숨기기 위한 미 공군기의 폭격으로 파괴됐다. 전후의 명동도 잿더미와 다름없었다. 고은 시인은 “지금도 여의도 63빌딩이나 강남 거리를 지나갈 때면 대형 건물이 폐허로 바뀌는 듯한 환영에 시달린다.”며 “폐허는 내게 불치병”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전쟁’은 끝없는 상처이며 지울 수 없는 기억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쟁의 상흔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그 어떤 전쟁도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리틀 로켓맨’에게 보여 주고 싶은 그림책

일부러 누런 갱지를 사용한 것 같은 『로켓보이』의 표제지 펼친 면에는 ‘한낮에도 별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라는 헌사가 적혀 있다. 무심하게 넘겨 버릴 수도 있는 한 줄의 말이지만, 먼저 읽은 책 뒤표지 지은이의 말이 이내 마음에 걸린다. 그것은 작가가 이 그림책을 그린 동기에 해당할 텐데, 옮겨 적자면 이렇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때인 1950년 6월 25일, 그때 우리 아빠 나이는 열한 살이었습니다. 아빠는 로켓을 만들어 높이 날려 보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난 이 부분을 읽자마자, 요사이 항간에 회자되는 ‘로켓맨’이 떠올랐다. 전쟁 발언을 서슴없이 터트리는 미국 대통령이 ‘로켓맨’으로 부르는 북쪽의 한 남자. 그는 로켓에 미사일을 실어 쏘아 올리는 끔찍한 실험으로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는 이다.

물론 이 그림책은 로켓을 좋아하는 순수한 소년의 꿈마저 빼앗아 가 버릴 뻔한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만들었다. 하여, 책의 표제지 쪽으로 돌아가 똑같은 글귀를 마음으로 읽어 본다. ‘한낮에도 별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란 전쟁의 걱정 없이 평화롭게 자신의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들로 읽힌다. 오해에 대한 염려를 접고, 이제 누런 갱지에 오로지 연필 채색으로 그려진 그림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서서히 읽어 본다. 무명 바지에 검정 고무신을 신은 까까머리 소년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려는 동작들이 좌우 펼친 면에 전개된 바로 뒷장 왼쪽 면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모습이, 오른쪽 면에는 그가 날린 종이비행기가 날아가는 하늘 풍경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무동력의 종이비행기가 바람결을 타고 항해하는 하늘 저쪽 끄트머리에는 비행기 다섯 대가 날개를 쫙 펼치고 다가오고 있다.

아무런 설명도 없는데도,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긴장감은 ‘폭풍 속의 고요’란 표현을 실감할 정도로 강력하다. 비행기 등장의 암시대로 이어진 그림에는 전쟁의 포화로 아수라장이 된 마을을 담고 있다. 피난 짐을 짊어지고 허겁지겁 떠나는 사람들 위로 저공비행을 하며 폭탄을 투하하는 전투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 장, 길바닥에 쓰러져 누운 엄마 품을 떠나지 못하고 울고 있는 헐벗은 어린애와 그 모습을 돌아다보는 주인공의 시선이 쓸쓸하기만 하다. 또 한 장을 넘기면 피난 기차에 서로 먼저 오르려고 허둥거리는 피난민들의 긴박감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작가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오로지 연필 그림만으로 아무 것도 챙겨오지 못한 궁핍한 피난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가령, 미군 트럭을 쫓아가는 철부지 아이들, 미군 병사를 둘러싸고서 ‘김미 쪼꼬레트’라며 손바닥을 벌렸을 어린 것들로 잠시나마 긴장감을 풀어놓는가 싶더니, 달이 뜨고 밤이 되자 포대기에 어린 동생을 들쳐 업고서 앞서가는 누이와 형을 뒤쫓아 가던 소년이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실루엣으로 담겨진다. 그런데 이 장면을 눈여겨보면, 소년의 손에는 요즈음도 구하기 만만찮은 군용 망원경이 들려 있다. 그렇다고 어디에서 얻었는가를 따져 묻는 건 이 그림책 읽기에 방해가 되니, 잠자코 다음 장면으로 따라가 보려 한다.

아이는 밤이면 잠자리에 누워서도 망원경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낮이면 궤짝이 책상인 임시 학교에서 수업을 받지만, 하늘을 나는 꿈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 철로를 걸으면서도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고, 하늘을 나는 그림을 그리던 피난지에서의 생활 중, 버려진 대포 위에서 놀다 폭탄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폭탄을 가지고 놀다 혼이 나는 장면이 이어지던 낮 장면이 돌연 달밤을 배경으로 바뀐 지점부터 아이는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바뀌었고, 아이의 팔짱에는 제법 그럴싸한 로켓이 들려 있다. 전쟁 중에도 포기하지 않은 꿈의 실현일까, 아니면 못 이룬 꿈에 대한 미련이 판타지로 전개된 것일까? 어느 쪽이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석연찮아, 마지막 책장까지 덮고 나서 다시 한 번 뒤표지의 작가의 말에 시선을 고정해 본다. “전쟁은 아빠의 꿈을 빼앗지 못했어요.” 과연 그럴까?

핵폭발에 대한 경고

십여 년 전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군의관으로 파병된 친구가 가져온 사진 두 장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한 장에는 머리를 빡빡 민 열 살 정도의 사내아이가 군용 막사 사이로 고개를 내민 모습이 담겨 있었고, 다른 한 장에는 한쪽 벽이 완벽하게 허물어진 건물에서 그 또래의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눈은 겁먹은 듯 동그랬고, 차림새는 꾀죄죄했다. 군의관 친구는 군용 막사 사이로 고개를 내민 소년을 잘 보라고 했다. 과연 한 쪽 팔이 잘려 나가고 없었다. 나는 궁금하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허물어진 건물에서 수업을 받던 아이들은 어떤 꿈을 품고 있었을까. 고백컨대 오랫동안 그들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 공포와 폐허를 상상하지 않는 쪽이 나의 일상을 살기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마저도 불안한 상상을 완전히 제거하고 무사태평으로 지낼 수 없게 되었다. 핵 실험이나 핵탄두 미사일 같은 듣도 보도 못한 무기 이야기가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 줘야 하는지 나로서도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조금이나마 마음의 큰 동요 없이 핵무기의 파괴력을 알려 주고, 그렇기에 핵무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서 내가 꺼내든 조심스러운 카드는 한 권의 그림책이다. 만화풍의 그림책을 많이 발표한 레이먼드 브릭스답게 『바람이 불 때에』 역시 만화풍이다. 그는 전통적으로 그림책에 허용되는 지면의 수가 32쪽인 점에 한계를 느끼고, 자신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상세히 전달할 수 있게끔, 한 면을 작은 칸으로 분할하여, 많게는 스무 개의 삽화로까지 쪼개어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레이몬드 브릭스가 태어난 시절과 이 그림책이 나온 시간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34년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피난 가는 뼈아픈 체험을 했다. 연합군의 승리로 세계 대전이 끝났지만,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온 뒤로도 브릭스는 자신이 겪은 전쟁과 원자 폭탄이 투하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게다가 『바람이 불 때에』가 영국에서 처음 나온 1984년 즈음에는 세상이 핵폭탄 때문에 끝장날 거라는 불안감이 팽배한 시절이었다.

이야기는 영국의 어느 시골 마을이 배경이다. 주인공인 노부부는 정년퇴직을 하였지만, 부지런히 신문을 읽고, 도서관에서 정보를 얻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어느 날, 이 부부는 핵폭탄이 터질 거라는 불길한 소문을 듣는다. 정부가 나눠 준 지침서대로 집 안에 대피소를 만드는데, 이를테면, 문짝을 뜯어 바람을 등지게 세우고, 나무판자를 구해 가림막을 설치하는 식이다. 그런 다음 비상식량과 비상 약품을 마련하고, 지하실에는 비상 식수까지 준비해 둔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대비했지만 거대한 핵폭탄은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터지고 부부는 폐허 속에 격리되고 만다.

이미 세계 대전을 겪고 삶의 온갖 어려움을 헤쳐 나온 이 노부부에게 핵폭탄의 위력은 단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갔다.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방송도 없고, 옆집의 인기척마저 느껴지지 않자 노부부는 점점 불안해진다. 어떤 식이로든 결단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부는 밖으로 나온다. 그러자 노쇠했던 몸에는 빠른 속도로 방사능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점점 기력을 잃고 숟가락을 들 힘마저 잃어버렸지만 이 노부부는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데, 그림책에 담긴 내용이라고 보기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책장을 덮고 두 눈을 감는다. 레이먼드 브릭스는 방사능에 오염되어 죽음으로 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통해서 핵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그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투영된 그림책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눈에 선하다.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밥 딜런의 대표곡 「blowing in the wind」의 구절들도 귓가에 맴돈다.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요?” 가사처럼 바람만이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가슴이 답답해진다. 핵폭탄이니 전쟁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을 목소리 높여 떠들고 있는 자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김영욱 | 서울에서 태어나 교육학과 영문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아동문학과 문화콘텐츠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월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일했고, 어린이책 기고가로 활동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동화 『책벌레 대소동』, 에세이 『그림책, 음악을 만나다』가 있고, 옮긴 책으로 『우리는 핀볼이 아니다』 『알 카포네의 수상한 빨래방』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