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통권 제180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 너머 세상 읽기
더불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더불어 책 읽기

[우리의 밑줄 긋는 시간]
동물원과 고양이

어유선 | 2017년 11월

우리 집에는 이제 네 살 된 고양이가 있다. 나는 이 녀석과 정이 듬뿍 들었다. 아이들이 생기며 내가 챙겨야 하는 존재가 생겼을 때의 낯설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챙기지 않아도 될 때의 허전함으로 바뀔 즈음 내게 찾아온 존재였다. 녀석은 집안 어디든 나를 쫓아다닌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있으면 세탁기에 올라가서 빨래를 내려다보고, 빨래를 널고 있으면 그 옆에 오도카니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늦잠을 자면 머리맡에 앉아서 내 얼굴을 느긋하게 쳐다보고 있다. 아침밥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손을 내밀면 나의 손을 피해 껑충 뛰며 거실로 달아나 버린다.

아베 히로시는 어릴 때 잡히지 않는 여치를 잡는 비법은 자연 속에서 여치를 기다리는 것임을 깨달았다. 여치와 고양이가 같을 순 없겠지만 고양이도 그렇다. 잡으려고 하면 잡히지 않는다. 풀쩍 뛰어 달아나면 그리 넓지 않은 집에서도 고양이를 잡기가 쉽지 않다. 상 밑에서 소파 밑으로 그러다 풀쩍 책장 위로 올라가 버린다. 그렇지만 내가 가만히 있으면 그 녀석은 내 옆에 다가와 자리를 잡는다. 털을 고르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 가릉거리다가 발로 꾹꾹 밟아 주는 꾹꾹이도 해 준다. 그렇게 자리를 잡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꼼짝 앉고 아른아른 꿀 같은 잠에 빠진다. 봄은 고양이라고 이야기한 시처럼.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그런데 그 녀석과 살면서 정이 들었다. 동물 한 마리를 키우면서 길에서 만나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함께 내 마음에 들어왔다. 갸우뚱거리는 그들의 고갯짓이 마음에 남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먹이를 찾고 낯선 것들의 냄새를 맡고 그리고 친구와 짝을 찾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그들의 존재는 아베의 말대로 온통 그 자체로 생명임을 느끼게 한다.

아베 히로시는 25년 가까이 동물원에서 사육사로 일했다. 이 책은 그가 사육사가 되기까지, 사육사가 되어 만난 동물과 동물원의 이야기,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잠시 키우고도 그렇게 동물이 생명임이 알게 되는데 아베는 25년을 동물들을 돌보았다. 그림에 대한 욕구가 많은 그였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그들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동물들이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웠으리라. 단순히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생동감, 생명력을 만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재수를 2년 하고도 결국 대학을 가지 못했다. 그러나 공부하는 법을 배웠고 외삼촌의 철공소에서 일하며 연장을 소중히 하는 법과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여치를 다가오게 하는 비법을 터득한 그에게 의미 없는 삶의 순간은 없었다. 도서관에 다니며 혼자서 그림 그리는 법을 공부하고 사육사가 되기로 마음먹게 된다.

변함없이 도서관에는 다녔다. 그 즈음에는 화집이나 기법에 대한 책뿐 아니라, 논픽션에서부터 소설까지 폭넓은 장르의 책을 읽었다. 거기에서 여러 가지 것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체험과 인생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독서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비로소 생각했다.

변두리의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 일하면서 아베는 동물들에 대해, 그리고 동물원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했다. 생명을 만나고 그 생명을 책임지고 그 생명에게 더 나은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것이다. 가만히 기다리는 것, 관찰하는 것, 사색하는 것의 힘을 알고 있었다.

선배들은 젊었고, 동물원에서 일한 경험도 적었다. 누구나 모색 중인 상태였다. 역사가 있는 동물원은 경험도 실적도 많고, 그곳 ‘동물원의 철학’도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젊은 사육사가 아이디어를 내도,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이러저러한 것을 저렇게 하고 싶은데…”하고 말하면, “자, 자네가 해 봐.” 하고 제안한 사람이 책임지고 해 보게 하는 곳이었다. … ‘우리 자신의 동물원을 지금부터 만들어 간다’라는 마음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사육사와 동물원이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었다.

동물원이 과연 필요한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동물원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프로젝트를 만들며 동물원을 변화시킬 연구를 하고 보고서를 열심히 만들어 두었다. 기회가 왔을 때 보고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변두리 동물원은 마침내 세계적인 동물원이 되었다고 한다. 아베와 사육사들이 향토의 동물들을 보호하는 동물원을 만든다는 아이템도 좋았지만 놀랐던 것은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풀려는 사육사들의 노력이다. 단순히 월급 받는 직장이라고 생각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들, 동물원의 시멘트 바닥에 흙을 깔고 나뭇잎과 짚을 깔며 도서관을 만들어 공부하며 좀 더 나은 동물원, 동물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로서 동물원의 역할을 찾았다.

보고 배우고 공부할 뿐만 아니라 사육사는 삶의 진리를 이해해야 한다. 아베가 막 사육사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아베를 가르쳐 주던 선배 사육사가 코끼리의 엄니에 찔려 즉사했다. 엄니에 염증이 생겨 엄청 고통을 느끼던 코끼리가 순간적으로 사육사의 등을 찌른 것이다. 아베는 충격을 받았고 동물원에서 삶과 죽음이 공존함을 느끼게 된다. 사육사가 하는 일은 단순히 동물들의 먹이를 주고 똥오줌을 치우는 일만이 아니다. 사자나 호랑이, 늑대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살아 있는 토끼를 던져 줘야 한다. 또 그걸 위해 토끼를 기르는 사육사도 있다. 사육사들은 열심히 토끼를 키우는 임시 사육사에게 차마 그 말을 못한다. 마침내 그 사실을 알게 된 임시 사육사는 울면서 토끼를 내 준다. 호랑이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산 토끼를 사냥할 수 있어야 한다. 사육사는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생명의 순환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상에 남았던 죽음이 있다. 시베리아늑대의 죽음이다. 짝이 죽어 버리자 존은 밥도 먹지 않고 기운을 잃어 갔다. 눈빛이 꺼져 가고 점점 약해졌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날이 계속되었다. 10년 넘게 존을 돌본 시지에가 출장으로 동물원을 이레쯤 비우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담당 사육사가 없는 바로 그날, 그 동물이 죽는 일이 곧잘 생긴다.
“이번 출장으로 존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존의 모습은 정말로 괴로워 보였다. 움직이지도 않고, 먹지도 않았다. 괴롭게 “하아하아.” 숨만 쉴 뿐이었다. 일주일이 지나 출장에서 돌아온 시지에는 가장 먼저 늑대 우리로 갔다.
“존, 잘 있었어?”
시지에가 말을 걸자, 존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끙.” 작은 소리를 내고는 안심한 듯이 죽었다.


늑대를 그렇듯 의지하게 만든 사육사의 존재도 대단하지만 죽음의 고통을 이겨 낸 늑대의 의연함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아베는 책 마지막에서 자신의 화실에 있는 낡은 통을 이야기한다. 낡은 통에는 끝이 뭉툭해지고 짧아져 더 쓸 수 없게 된 몽당연필들이 담겨 있다. 그는 그 연필들을 소중하게 모아 두었다. 생명을 키우고 보살피고 지켜본 사람들은 존재의 소중함을 안다. 버리는 것, 없어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모든 것은 결국엔 사라진다. 그렇기에 길 위의 작은 생명들, 곤충들, 꽃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귀하다.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돌아오면 고양이는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밖에서 살아야 하는 동물을 집 안에서 키우는 건 불쌍하지 않냐고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고양이를 키우며 나는 가끔 길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다. 겨울이 오고 있기에 조금은 더 잘 먹어야 그 긴 겨울 추위를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길 위의 생명들이 어찌나 춥고 배고프게 살고 있는지 그 짧은 시간에도 너무 많이 알아 버렸다.

동물들의 삶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그 생명을 지켜 줄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세상의 평화가 절실하다.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 후 그 지역 동물들이 어떤 죽음을 맞았는지, 살아 있는 동물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생각만 해도 두렵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핵과 전쟁의 위협이 한층 현실감을 갖게 된 지금 후손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던 기성세대들의 노력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 대답을 『아베 히로시와 아사히야마 동물원 이야기』가 다 들려줄 수는 없겠지만 어둡고 험난한 미래를 살아가는 방법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이 책은 힘껏 이야기하고 있다.
어유선 | 작은도서관에서 오랜 동안 활동했으며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었습니다. 현재는 뒷동네도서관 운영위원으로 마을도서관을 꿈꾸며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