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통권 제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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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마음속이 시원한 이야기

박고은 | 2017년 11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요즘 날씨 덕분에 차를 아주 맛있게 마시고 있습니다. 날이 갑자기 변해 우울한 마음도 차를 마시며 달래곤 하지요. 이번 달 소개할 책에는 고려 시대에 마셨던 다양한 차가 나옵니다. 우리나라가 예전부터 차를 즐겨 마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어리지만 당차고 멋진 주인공도 나와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고려와 몽골 사이 전쟁의 기운이 돌던 무렵, 진의의 아버지인 고려 최고의 상인 홍상진이 사라졌습니다. 인삼 밀매를 지휘한다는 누명을 쓰고 관원들에게 쫓기던 차, 그를 쫓던 관원이 아닌, 매복해 있던 정체불명의 자객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춘 것입니다. 사랑하는 딸과, 출산을 앞두고 있는 아내를 두고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아버지가 실종된 뒤, 진의에겐 여러 가지 일이 물밀 듯 밀려왔습니다. 사기꾼부터 없어진 계약서와 어린 객주를 시험하는 새로운 거래 제안 등 진의가 혼자 헤쳐 나가기에는 너무도 벅찬 상황이 이어집니다. 보석에, 비단옷 차려입고, 맛나고 별난 음식을 먹으며 아버지의 귀한 딸로 어리광이나 부리며 살던 진의에게는 너무나도 큰 시련이 주어진 것이지요.

이야기에서 처음 눈길이 간 부분은 고려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배경이 되는 벽란도는 황해도 예성강 하류에 있던 국제 무역항으로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무역을 했던 곳입니다. 우리나라가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서양에 알려진 것도 이때부터였지요. 이런 고려의 상징적인 장소를 글 속에 살려 내고, 고려의 돈인 해동통보와 음식 등을 서술하여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고려의 특별한 공연인 수희는 그 행사의 모습이 자세히 서술되었습니다. 공연 속 아기 부처님이 태어나는 장면에서 황제와 황후는 물론 강변의 구경꾼들도 모두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는 표현은 고려가 불교 국가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실제 인물인 최우, 김윤후, 테무게 옷치긴 등을 적절히 등장시켜 이야기의 실감을 높였지요.

두 번째로는 장사의 기본 정신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요즘 뉴스에 파동이란 단어가 많이 보입니다. 우라늄 생수, 살충제 달걀 먹는 것부터, 생리대, 가습기 살균제 등 생활 전반의 위험한 소식이 많이 전해집니다. 인물 중 홍상진과 그와 반대되는 김자명의 장사 정신을 보며 요즘 상황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았습니다. 김자명은 돈을 더 잘 벌기 위해서는 뭐든 하는 사람입니다. 김자명의 아들 강주는 “상도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면 그게 바로 상도야.”라고 말을 하지요. 이런 생각 때문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반대로 홍상진은 몽골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어린 딸과 임신한 아내를 두고 위험한 길에 오르게 됩니다. 어떤 이가 홍상진에게 묻지요. 장사꾼이 무슨 이문이 남는다고 이런 일을 하냐고요. 홍상진은 “장사꾼이라면 남는 장사를 해야지요. 밑지는 장사를 해선 안 됩니다. (중략) 장사꾼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요? 이문이 제일 크니까요. 평화가 주는 이문이 제일 큽니다.” 이런 생각으로 장사를 하여 고려 최고의 장사꾼이 된 홍상진입니다. 홍상진의 경영 철학은 우리 시대에도 꼭 필요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14살 소녀 진의입니다. 진의는 아버지가 없어진 직후에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절에 가는 길에 호랑이와 큰 스님을 만난 후 깨달음을 얻게 되지요. “견, 불, 부처를 본다. 내 마음에 모신 부처를 본다. (중략) 네 속에는 약으로 못 고치는 바보도 있고 부처님도 있단다. 누구를 불러 낼 거야? 누가 네 삶을 이끌게 할 참이야?” 이후 진의는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살게 됩니다. 작가는 진의를 새끼 호랑이 모습과 교차해 가며 서술합니다. 진의는 ‘조무래기 계집아이’, ‘호랑이 새끼인 줄 알았던 고양이’의 모습을 보이다 어엿한 ‘새끼 호랑이’가 되어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으로 성장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진의는 더러운 개경의 물에 발을 씻고는 간지럼 증상에 시달리다가 무스타파가 준 고약을 바르고는 간지럼 증상이 없어졌지요. 『벽란도의 새끼 호랑이』는 저에게 무스타파의 고약 같은 책이었습니다. 텔레비전을 틀면 터져 나오는 뉴스,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의 모습 등에 간지러웠던 마음을 홍상진의 올바른 마음과, 진의의 멋진 성장이란 고약으로 발라 줘 마음속이 시원해졌습니다.
박고은 | 열린어린이에서 편집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어린이 책을 보는 눈을 기르고 좋은 어린이 책을 만들기 위해 차근차근 배움을 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