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통권 제1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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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책 읽기 신나는 교실]
얘들아, 그림 감상하자!

이지혜 | 2017년 12월

잠시 저의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려 합니다. 그 시절,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던 과목이 하나 있습니다. 필기시험 성적보다도 실기 성적이 훨씬 중요한 과목! 바로 ‘미술’입니다. 어린 마음에 그림을 잘 그리거나 손으로 뭔가를 뚝딱뚝딱 잘 만드는 친구들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제 손이 그 친구들의 손과 뭐가 다른 걸까, 하는 엉뚱한 의문을 품기도 했지요. 하얀 도화지 위에 멋진 수채화를 완성해 내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내가 못하는 미술은 싫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주 사소한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을 찾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접하게 됩니다. 예술 분야의 책들도 포함되지요. 최근에는 아이들에게 감성적 소양을 키우도록 이끌어 주는 예술 분야의 책들이 참 많이 출간됩니다. 담긴 내용들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재미도 더해져 있습니다. 제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아이들 책 덕분이었습니다. 미술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읽다 보니 저도 모르게 조금씩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 덕에 여행을 가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을 만들곤 하였습니다.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게 관심을 갖고 보았던 책 중, 최근에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이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 만난 화가들』이에요.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한 아이가 화가들을 만나는 방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화가들을 만나지는 않겠죠? 주인공인 하나라는 아이가 그림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마치 환상 동화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림 속으로 들어간 하나는 당시 화가들이 그림을 어떻게 그리게 되었는지, 화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도 하나와 함께 화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 생생한 기분이 듭니다.

우리에게 명화라고 잘 알려진 그림들이 있지요. 그런데 아무리 유명한 그림이라고 해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모두 다 파악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그림에 대한 설명서를 찾아서 읽는다거나 요소를 하나하나 파악하며 분석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러한 설명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림을 즐기는 데에 방해가 되거나 그림을 이해하기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지요.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잘 이끌어내고 있는 책이라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들까지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참 좋습니다. 저 역시 중학생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수업을 진행하였는데요. 그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 볼까 합니다.

오늘의 수업에서는 다양한 명화를 즐기고 감상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잡고 진행됩니다. 미술 관련 책을 읽고 수업을 진행할 때에 이론 중심으로 따라가거나 그림에 대한 설명 중심으로 질의응답을 먼저 하다 보면 아이들이 그림 자체를 감상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에 나왔던 그림이 아닌 다른 여러 가지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놀이를 함께합니다. ‘그림 제목 맞히기’를 하면서 수업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이지요. 처음에 그림을 보여 줄 때에는 아무런 귀띔을 주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을 감상하고 제목 붙이기를 합니다. 그럼 아이들은 그림에서 보이는 물건이나 사람을 제목으로 짓기 시작하지요. 그 방법으로 제목을 맞히지 못한 아이들은 그림 속 상황을 보면서 제목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림 제목을 바로 알아맞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림을 감상하는 데 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제목일지 추리하는 동안 그림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느낌과 생각을 더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그림 제목 맞히기를 하고 난 후에는 책에 나온 내용들을 짚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책을 잘 읽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기 때문에 책에 나왔던 명화들을 함께 보면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를 들면, 가장 처음 등장한 화가 브뢰겔 선생님과의 이야기 속에서는 바벨탑이 무너지게 된 까닭 등을 묻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바벨탑은 무엇일지, 아이들과 생각을 나누어 봅니다. 어떤 아이는 공부하는 것이 바벨탑을 쌓는 일 같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열심히 하는 데 어렵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 아이의 말에 다른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마냥 어리다고만 여겼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다들 공부에 대한 생각이 많구나,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바벨탑과 자신들의 공부를 연결할 정도로 생각이 꽤 많이 자란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합니다. 책에 나온 르네상스를 알려 주기 위해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미술사를 굵직하게 분류하여 간단히 짚어 주고 시기별 대표작들을 하나씩 감상하며 흐름을 익힙니다.

이제는 다시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림에 ‘나만의 별점 주기’를 해 보는데요. 사실 똑같은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감상하는 것은 모두 다릅니다. 그런 점을 아이들이 직접 느끼면서 자신들만의 감상평을 서로 공유해 보기 위해 마련한 시간입니다. 책에 나온 그림들 중 가장 평점 차이가 컸던 그림은 마그리트의 그림이었습니다. 「언어의 배반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본 아이들은 5점부터 1점까지 다양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5점을 준 아이는 마그리트의 기발함에 큰 점수를 주었다 하고, 1점을 준 아이는 그림 자체가 파이프인데 제목이 말도 안 된다며 박한 점수를 주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똑같은 그림을 보고 서로 다르게 느끼기도 함을 확인하는 것이 아이들도 꽤 재미있었나 봅니다.

책에 나오지 않은 다른 그림들을 몇 가지 더 찾아서 함께 보았는데요. 책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의 일률적인 점수를 받은 비운의 그림이 있었으니… 바로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입니다. 도무지 어떤 점이 좋은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이들, 대부분 1~2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에 대한 설명도 찾아보면서 왜 명화로 인정을 받는 것인지 이해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4명 이상의 아이들이 있을 때, 이런 놀이를 활용한다면 다양한 그림을 감상하면서 서로의 시각 차이도 알아보고, 그림에 대한 관심도 높일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이날의 마지막은 ‘그림을 보고 상상하며 글쓰기’를 해 보기로 합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그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창가의 남자」를 찾았습니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 어쩐지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들지요. 사실 『그림 속에서 만난 화가들』도 화가들의 그림들을 연결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 활동 역시 책의 구성 방식과 이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저마다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완성한 글은 각자 소리 내어 읽습니다. 오늘만큼은 아이들도 다른 친구들이 쓴 글에 대한 호기심도 큽니다. 똑같은 그림을 보고 어떻게 다른 상상이 펼쳐지는지 꽤나 궁금한 모양입니다. 아이들의 글은 실로 재미있고 놀랍습니다. 뒷모습의 남자를 형사로 가상해 글을 쓴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이 남자를 살인자로 상상해 쓴 아이도 있습니다. 혹은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남자의 마음을 상상한 아이도 있습니다. 또 한 아이는 겉멋에 들린 아저씨의 아침 일과를 재치 있게 풀어내기도 합니다. 하나의 그림을 놓고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다니! 아이들 모두 그 어느 때보다도 흥미진진한 표정입니다.

수업의 마무리로 글쓰기를 하기 전,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화가’란 어떤 사람인지 정의를 내려 보라고 하였지요. 어떤 아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죠.”라고 답하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그걸 우리에게 전하는 사람이에요.”라고 합니다. 또 한 아이는 “화가요? 우리도 될 수 있어요. 우리도 그림을 그리잖아요.”라며 씩 웃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우리도 화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으니 제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 스트레스 받고 서글펐던 학창 시절의 기억이 스르르 녹아내려 갑니다. 아이가 해 준 그 말에서 위안을 받았나 봅니다. 비록 그 시절 제가 그렸던 그림 점수는 낮았을지라도, 저도 그림을 그린 화가였겠지요? 평가와는 별개로 말이지요. 오늘도 아이들의 말 한 마디에 제가 더 많은 힘을 얻게 됩니다.
이지혜 |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책도 사랑합니다. 책을 통해 소통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꿈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