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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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 책 깊이 들여다보기]
다시, 새 동네에서

김유진 | 2018년 01월

문학 환경이 변하고 있다. 실은 변한 지 꽤 되었지만 아동문학 장에서는 이제야 완전히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눈치다. 예전만큼 책이 팔리지 않는 상황을 더 이상 일시적이고 회복 가능한 일로 보지 않는 듯하다. 일반 문학과는 좀 달리 교육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아동문학은 독서교육, 독서운동 부흥이나 교육정책 변화로 잠시 반짝 달라질 수 있겠지만 뉴미디어 시대에 문학으로서의 정체성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지난 12월 1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밝힌 ‘제1차 문학진흥기본계획’(2018-2022)에는 문학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이 발표됐다. 새로운 사업들과 아울러 ‘우수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 ‘아르코 창작 지원금 사업’ ‘우수문학도서 선정 지원 사업’ 등 과거 정부에서 폐지, 축소된 제도가 부활됐다. 아동문학 장에서도 손들고 반가워할 일이겠다. 그중 우수문예지 지원 사업은 광고료와 구독료만으로 운영이 어려워 후원 독자를 구하고 폐간까지 고민해야 했던 대다수 문예지에게 큰 희망을 불어넣을 것 같다.

여러 아동문학 문예지의 어려운 사정을 멀리서나마 보아 온 바로는 지원 사업의 확대 재개가 우선 반갑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원금과 후원금으로 명맥을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일반 문학에서는 『세계의 문학』 『문예중앙』 『작가세계』 등 오래되고 전통 있는 문예지를 폐간, 휴간했고 『문학 3』 『릿터』 『악스트』 등 문예지를 창간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국문학사에서 거의 백 년간 문예지는 줄곧 문학 작품을 발표하고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주요 매체였으나 이제는 새로운 역할과 소명을 발견해야 한다고 인지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독립 잡지와 웹진 창간을 비롯한 일반 문학 장에서의 실험적인 시도는 아동문학 장을 돌아보게 한다. 독립 잡지들은 등단과 작품 발표로 구성되던 문예지의 작동 원리와 문학 권력을 내려놓은 채 등단 제도를 운영하지 않거나 등단 작가와 미등단 작가를 구별하지 않고 작품을 싣기도 한다. 기존의 ‘문학’을 의문하는 시선은 당연히 작품에서도 이루어져서 장르 관습을 파괴하고 작품 발생 토대를 재조정해 보는 다양한 시도도 있었다. 이에 반해 많은 아동문학 문예지들은 여전히 기존 운영 방식이나 편집 체계에서 별반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위기의식을 느끼되 이를 혁신으로 돌파할 능력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문예지가 지원금으로 잠시 더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번다는 게 마른 논에 물 대는 일만큼이나마 의미를 지니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 글이 실리는 지면이 월간 『열린어린이』의 마지막 호이다 보니 마냥 작품 이야기만 할 수는 없어 쓸모없는 서두가 길었다. 16년이나 발행해 온 서평지가 막을 내리는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지난 2년간 고정 필자였던 애정을 빌미로 외람되게 밝히자면, 숙고 끝에 내려졌을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말하고 싶다. 하나의 문을 닫고 새 문을 열며 맞이할 새 길에서 어린이·청소년문학의 미래가 즐겁게 펼쳐지길 희망한다.

마지막 지면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김민경의 연작동화집 『우리 동네에 놀러 올래?』이다. 이 작품은 전복적인 상상이나 실험적 형식 시도로 눈길을 끌지는 않는다. 이 작품의 장점은 역설적이게도 그다지 새롭지 않은 데 있다. 출판 시장의 위기, 문학의 위기에서 많은 작품이 저마다 화려한 새 옷을 입고 독자 ‘고객님’의 눈에 띄어 보려고 하는 마당에 유행이 지난 듯한 옷을 단정하게 입고 앉아 있다. 유행이 지난 것이 아니라 유행을 타지 않는 옷이라는 듯한 자신감으로. 마치 문학에서 유행이 어디 있냐고 말하는 듯이. 그 자신감에서 오늘날 문학의 위기를 헤쳐 나갈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실 끝을 잡고 따라가 보고 싶었다.

연작동화집이란 작품 형식도 꽤 오랜만이다. 어린이문학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는 둘 중 하나다. ‘스토리텔링’ 시대에 넘쳐나는 이야기 사이에서도 쉽고 재미나게 빠져들 수 있는 긴 이야기나, 그래도 문학이니 문학성을 증명하자며 굵은 메시지를 담은 짧은 이야기. 연작동화는 이 둘과는 좀 다르다. 연작동화집은 각 단편으로서의 완성도와 아울러 단편의 합이 ‘1+1=2’ 이상이 되어야 하는 까다로운 형식이다. 부분으로서도 흠 없고, 부분의 합은 더 큰 감동과 깨달음을 요구하니 그다지 만만치 않은 치밀하고 정교한 작업이다. 게다가 이 동화집은 인물이나 시점을 변화시키는, 익숙한 연작 형식도 아니다.

주인공 여자 어린이는 이름마저도 순정. 남동생 이름은 순모다. 주변에는 아파트촌도 빌라촌도 있지만 순정이 가족은 오래된 주택가에 산다. “우리 동네에는 아줌마도 많고 아저씨도 많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 제일 많다.” 공간 배경과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는 첫 문장이다. 동화집의 첫 번째 동화 「쥐와 고양이」는 순정이 집 부엌에 쥐가 들어오자 동네 할아버지에게 부탁해 쥐를 잡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런 동네를 왜 말하려고 하며 왜 놀러 오라고 할까. 어떻게 독자들에게 놀러 갈 마음을 불러일으킬 작정인가.

동네를 찬찬히 훑으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작품 순으로 살펴보자면 「쥐와 고양이」에서는 아파트와는 달리 쥐가 들락거리는 순정이 집이라는 공간과 쥐를 잘 잡는 ‘앙드레 할아버지’라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순정이가 사는 동네를 대략 비춘다. 이어 「엄마의 아파트 타령」은 근처 아파트로 출근해 유치원 어린이를 등원시키는 일을 하는 엄마의 생활과 살기 편한 아파트로 이사 가기 원하는 엄마의 소망을 드러내며 순정이 동네라는 공간을 작품에서 주목할 주제로 부각시킨다. 「빨간 고추 소동」에서는 한 동네 이웃으로 서로 소통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 드러난다. 뒷산 텃밭에서 빨간 고추를 따 소꿉놀이하던 순모가 손으로 얼굴을 만져 화끈거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앙드레 할아버지’와 동네 어르신들의 친절하고 따듯한 도움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다. 「네가 그런 게 아니야」에서 닭뼈를 먹고 죽은 새끼 고양이 이야기는 「우리 집에 처음 온 농어」에서 아빠가 낚시해 온 농어를 잡아먹은 길고양이 이야기와 연결된다. 온 동네 주민들이 모여 다음날 나눠 먹으려고 했던 농어를 길고양이가 먼저 먹어치웠다.

단편이 하나씩 진행될수록 독자는 순정이 동네를 차츰차츰 들여다보게 되고, 알게 되고, 빠져들게 된다. 아파트라는 공간으로 단절된 삶, 동네의 복원과 이웃 간의 소통은 어린이문학이 줄곧 해 온 이야기이고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아닌 변두리 주택가에 머무는 시선 또한 새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 동화집에는 독자의 손을 살며시 잡고 천천히 이끈다. 그 손길을 매몰차게 뿌리칠 수 없는 잔잔한 힘이 있다.

나는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풀이나 꽃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또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화단을 꾸며 놓은 사람도 처음 보았다. 하얀 옷을 입고 머리카락도 하얀 앙드레 할아버지가 갑자기 도사님처럼 보였다.

“화단이 꼭 고양이들 놀이터 같아요.”
“놀이터? 허허허, 듣고 보니 그렇네.”
앙드레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웃었다. 웃을 때는 그 큰 눈이 실처럼 가늘어지면서 얼굴에 주름이 가득 잡혔다. 주름진 할아버지 얼굴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길고양이지만, 할아버지가 키우시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내 말에 앙드레 할아버지가 고양이들을 보며 말했다.
“키우긴, 한동네 같이 사는 거지.”(본문 26~27쪽)


고양이를 위한 꽃밭을 만든 ‘앙드레 할아버지’, 도둑을 막기 위해 옥상에 설치한 가시 철조망에 고양이나 새가 다칠까 염려하는 순정, 순정의 말을 확인한 후 철조망을 해체하는, 그리고 낚시한 물고기를 늘 놓아주고 오는 아빠, 재산, 학군, 사회 시선 때문에 그악스럽게 아파트란 성벽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게 아니라 단지 생활의 편리라는 이유로 아파트를 선망하는 엄마. 이 작품의 힘은 어른이건 어린이건 위악적인 인물이 활보하는 요즘 동화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순한 인물들에게서 나오는 힘이기도 하다.

한때 동화에서는 평면적으로 선한 인물이 많았고 그 인물들은 결국 교훈적인 주제를 말하기 위한 마네킹에 불과했기 때문에 요즘 동화들이 애써 선한 인물을 피하려는 건 안다. 하지만 위선과 정반대의 위악으로 정형화된 인물 또한 허수아비처럼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나와 가족뿐 아니라 이웃에게, 그리고 길고양이와 뭇 생명에게 마음을 여는 선한 인물들이 살아갈 만한 선한 동네의 모습을 맑게 확인할 수 있게끔 그리는 작업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기본에 충실’은 늘 오히려 더 어렵다. 문학이 예전과는 달라진 시대에 그래도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다면 ‘기교’와 아울러 ‘기본’을 잃지 않는 데 있지 않을까. 오늘날 동화에서는 ‘기교’에 집중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색이 대부분이고 ‘기본’이 가장 외면당하는 듯싶어 더욱 그렇다. 어린이문학의 ‘기본’은 어린이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왜, 어떻게 들려주어야 하는가에 있다고 본다. 그러한 고민이 부족한 채 그저 가볍게, 화려하게 부유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이 지면의 마지막 장을 자칫 낡아 보이는 이 작품을 가져와 마무리하는 이유다.
김유진 | 동시와 평론을 쓰며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칩니다. 인하대에서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과 평론 부문을 수상했고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