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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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 나의 이야기]
할머니 집에 살았던 메리

안녕달 | 2018년 01월

저희 할머니 집 넓은 마당에는 종종 메리들이 살았습니다. 할머니가 영어를 하시는 것 같진 않았지만, 키우는 개는 꼭 메리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메리는 개 이름으로 흔했습니다.

저는 개를 한 번도 키워 본 적이 없었지만 개를 무척 좋아해서 아는 사람 집에서 개를 키우면 그 개를 예뻐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 집에서 키우는 개는 저에게 애교를 조금 부리다가도 금방 다른 사람이 오면 휙 하고 돌아서서 저를 섭섭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시골 할머니 집 개들은 달랐습니다. 명절에만 저를 보는데도 지칠 줄 모르고 저에게 덤벼들어 쓰다듬어 주길 바랐습니다. 목에 단 방울의 딸랑딸랑 소리, 꼬리에서 나는 탁탁 소리 그리고 묶인 쇠사슬에서 나는 철컹철컹 소리가 정신없을 정도로 저를 반겨 주었고 한 번도 휙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전 할머니 집 개들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메리』라는 책에 나오는 메리는 데리고 온 첫날부터 봐서 제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메리입니다. 정말 책에서처럼 할아버지가 하신 “강생이 한 마리 키아자.”라는 말 한마디에 아빠가 옆 동네에서 강아지를 데려왔습니다. 책과는 다르게 다 큰 제가 꽤 나이 든 아빠와 함께 유난히도 여기저기 안 쓰는 물건이 널려져 있는 할머니 집 잡동사니를 모아서 이상하게 생긴 메리의 집을 마당 한 켠에 만들어 줬습니다.

그 다음날 저는 할머니 집을 아직 어색해 하던 작은 메리와 산책을 나갔습니다. 작은 메리는 처음에 어색해서 엉거주춤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신나게 뛰어다니더니 갑자기 저를 쳐다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엉덩이를 바닥으로 내리면서 똥을 누었습니다. 저를 쳐다보며 짓던 그 곤란한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그 후로는 마음속으로나마 메리는 제가 키우는 개였습니다.

다음 명절에 갔을 때 메리는 여느 시골 개들처럼 쑥쑥 자라서 커다래져 있었습니다. 커다란 메리가 저에게 달려오면 제가 넘어질 정도로 무거웠고 제가 커다란 메리를 쓱쓱 쓰다듬으면 신나서 흔드는 메리의 꼬리가 바닥에 부딪혀 탁탁탁 소리가 날 정도 힘이 세졌습니다. 그런 커다랗고 귀여운 메리를 위해 전 부지런히 명절 상에서 고기를 숨겨다가 갖다 주었고 줄에 매어 있는 메리를 산책 시켜 주려고 쇠사슬 줄을 철컹철컹거리며 잡고 나갔다가 전과 달리 크고 힘센 메리에게 끌려 여기저기 온 논밭을 속속들이 누비다 완전히 지쳐서 돌아왔습니다.

그 시절 엄마 아빠가 할머니 집에 간다고 하면 언제나 저는 할머니의 안부보다 메리가 잘 있는지 물어보고 메리에게 고기 갖다 주라고 신신당부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개를 무서워하는 저의 엄마조차 저의 요청에 참외를 깎아서 얼른 메리 밥그릇에 놓고 오곤 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전 게을렀기 때문에 메리 이야기로 콘티를 짜 놓고 딱히 더미로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아빠가 할머니 집에 갔다 왔다는 말에 메리가 잘 있냐고 물어보니 메리가 새끼를 세 마리 낳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만든 콘티에서도 메리는 새끼를 세 마리 낳는데 실제로도 메리가 새끼를 세 마리를 낳았다고 들으니 신기해서 그제서야 콘티를 더미로 만들어야겠다 마음먹고 난생 처음 혼자 할머니 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는 가까이 살지 않았고 제가 살가운 성격도 아니고 해서 할머니와 말을 해 보거나 명절 이외에 제가 따로 찾아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혼자 할머니 집에 가는 게 어색했지만 대문에서부터 메리는 언제나처럼 소란스럽게 꼬리를 흔들며 저를 반겨 줬습니다.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셨던 할머니는 뜻밖의 손녀의 방문에 부지런히 저에게 고기를 먹이고 저는 부지런히 그 고기를 상 밑 왼손으로 숨겨서 들고 있다가 밖에 있는 메리에게 가져가 먹였습니다. 제가 몰래 메리에게 고기를 주다가 할머니에게 들키면 고기 자꾸 주면 다른 거 안 먹으려고 한다고 저에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흘리는 말 속에 메리가 뭘 해 주면 좋아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메리와 새끼를 보러 간 거였는데 그날은 할머니도 보였습니다. 명절에는 할머니가 저에게 말을 거시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그날 할머니는 저에게 잔소리도 대차게 하시고 한평생 농사일을 하느라 투박해진 손으로 메리 집에서 눈도 못 뜬 새끼들을 한 마리 한 마리씩 툭툭 꺼내며 “귀엽지?” 하고 자랑도 하셨습니다. 그날의 할머니는 동네 할머니들과 화투를 치러 마을 회관에 나가셔서 해가 져서야 돌아오시는 그런 여느 시골 동네 할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명절에 제가 다시 할머니 집에 갔을 때는 메리와 메리의 새끼들이 모두 같이 꼬리를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사이 메리의 새끼들이 많이 자라 분주하게 마당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메리의 움직임도 부산스러운데 그 주변을 발발거리는 새끼 강아지 세 마리까지 더하니 마당이 한층 더 소란스러웠습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대신 분주하게 말썽을 피우며 돌아다니는 강아지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토실토실한 강아지들을 툭툭 거칠게 쓰다듬기도 하며 살뜰히 밥을 챙겨 주고 계셨습니다.

그때 그린 더미는 여러 출판사에게 거절을 당하고 얌전히 제 홈페이지에 있다가 저의 첫 책 『수박 수영장』이 나온 후에야 전에 그린 여러 더미들과 함께 출판사와 계약이 되었습니다. 계약이 된 후 수정을 하면서 그림을 다시 그렸습니다. 더미를 그릴 때는 메리가 할머니 집에 있었는데 책을 만들기 위해 다시 그림을 그릴 때는 메리가 할머니 집에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래서 메리가 웃는 모습을 그릴 때면 종종 슬퍼졌습니다.

지난 추석 할머니 집에 갔을 때 메리는 없지만 메리의 집을 봤습니다. 필요 없는 물건도 그대로 놓아두시는 할머니 덕에 메리의 집은 늘 그랬듯이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 옆에선 커다란 호박이 줄줄이 달려 메리의 집 주변을 온통 뒤덮고 있었습니다. 메리를 처음 데리고 오던 날 메리 오빠라서 곰배 붙이면 안 된다고 들었던 옆집 빨간 개는 할머니 옆집에 여전히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메리 오빠도 많이 늙어 집 대문 앞에 개조심을 써 붙여야 할 정도로 사나웠던 예전의 늠름함을 잃고 제가 빤히 쳐다봐도 전과 다르게 크게 짖지도 않고 시큰둥하게 저를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습니다.

할머니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뒷집 마당에는 딱 메리만 한 하얀 개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이사를 온 그 집 할아버지가 문을 나올 때마다 손자에게 까꿍 하듯이 마당에 개를 보며 장난을 걸며 다채로운 표정을 지으셨고 그때마다 그 집 개의 신난 방울 소리가 요란스럽게도 들렸습니다. 그 집 할머니는 그 집 개에게 큰 소리로 잔소리를 하면서도 졸졸 따라다니는 개의 밥그릇에 밥을 바지런히 챙겨 주고 들어가시곤 했습니다. 그 집 마당을 가만히 창문으로 지켜보면서 그렇게 시골에 있는 개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 받았으면 했습니다.

『메리』는 시골집 개에 관한 제 추억이 담긴 책입니다. 어떤 분은 이 책에 나온 시골에서 개를 키우는 방식에 관해 불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종종 할머니 집에 단단히 매여 있던 메리를 풀어 주고 싶어 했고 겨울이면 메리가 밖에서 춥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책은 개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고 제가 시골에서 보던 사랑스러운 개에 대한 추억과 개에게 남는 음식을 먹이고 개를 마당에서 키우던 세대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개를 사랑하는 모습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메리』를 읽으며 어른들은 어릴 때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갔던 기억과 그곳의 사랑스러운 개를 떠올리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 정서를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안녕달 | 물 흐르고 경치 좋은 산속 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저 멀리 바닷가 마을 학교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했습니다. 그림책 『수박 수영장』 『할머니의 여름휴가』 『왜냐면…』 『메리』를 쓰고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