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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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밑줄 긋는 시간]
울지 말고 웃어 줘요

어유선 | 2018년 01월

민기는 반에서 힘이 있는 아이다. 그런 민기가 유령 놀이를 하자고 하자 아무도 반대하지 못한다. 첫날 민기는 유령이었지만 힘 있는 유령이었다. 아이들을 괴롭히고 두렵게 한다. 민기는 그 다음 유령으로 서준이를 지목한다. 반에서 가장 존재감 없고 아이들이 무시하던 서준이다.

서준이가 유령이 되자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서준이를 왕따 시킨다. 아이들이 서준이를 무시하던 이유는 서준이가 아이들 일을 잘 도와주는 착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민기는 그런 서준이가 특히 보기 싫다.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는 민기는 공부도 잘하고 힘도 세지만 계속 착한 형, 동생을 보살피는 형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무겁고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엄마의 관심도 동생에게만 향해 있다. 그런 민기에게 서준이의 착한 모습은 더욱 답답하다. 정말로 착한 의사가 될 것만 같은 서준에게 민기는 자꾸 삐딱하게 굴고 자신의 힘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서준이가 변한다. 갑자기 서준이가 활달해지고 말도 잘하고 발표도 곧잘 해서 선생님에게 칭찬도 받게 된다. 민기는 서준이가 진짜 서준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도 민기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서준이를 가짜라고 하는 민기에게 아이들이 수군거리고 선생님까지 민기를 벌세우는 상황이 된다. 민기는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나쁜 일이었는지,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차츰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서준이가 진짜 서준이가 아니고, 유령인 재희가 몸을 바꾼 것임을 알게 된다.

재희는 죽은 후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땅 위 하늘 아래 세상에 잠시 머물고 있던 유령이었다. 공부를 잘하던 재희는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엄마의 바람과 노력이 있었지만 재희도 그런 엄마에게 자랑스런 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성적이 떨어지고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곧 재희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그러나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재희는 하늘나라로 가기 전 엄마와 아빠를 한 번이라고 보고 싶었으나 죽은 사람은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집 근처 놀이터에서 엄마를 한 번이라도 볼 수 없을까 서성이다가 서준이를 보게 된다.

나무는 갈색이 아니라 검정색에 가까웠다. 수많은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지만 잎 하나 열려 있지 않았다. 나처럼 나무도 생명을 다한 것이다. 빛을 잃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라앉아 있던 꼬마의 눈동자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진짜 유령 재희는 가짜 유령 서준이를 만난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서 자기가 죽기 전 느꼈던 분위기를 느낀다. 유령인 재희가 해 줄 수 있는 건 서준이와 자기의 몸을 잠시 바꾸는 것이다. 재희가 서준이를 볼 수 있던 것도 서준이에게 짙게 깔린 죽음의 그림자 때문이었으리라. 서준이는 재희가 자신과 잠시 몸을 바꾸자고 하자 망설인다. 재희는 서준에게,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설득한다. 그래서 유령인 재희와 유령 같이 학교를 오가던 서준이는 서로 몸을 바꾼다.

손목의 숫자가 0이 되면 영원히 하늘로 떠나야 하는 재희는 서준이와 몸을 바꾸고 실로 많은 일을 한다. 우선 학교에서는 민기를 납작하게 만들고 민기도 부러워할 정도의 반짝반짝한 모습을 보여 준다. 집에서는 서준이 방을 서준이가 있고 싶던 공간으로 바꿔 준다.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서준이도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서준이 아빠와 이야기하면서 서준이에게 좋은 아빠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재희의 이런 노력은 서준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재희는 서준이를 위한 일을 하면서 공부에 치우쳐 모든 것을 자기 중심에서 보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

늘 피곤해서 눈이 충혈되어 있던 아빠가 생각났다. 시험 기간에 아빠는 거실에서 잠을 잤다. 방문을 열 때면 ‘뭐 필요해?’라며 벌떡 일어나던 아빠를 나는 감시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제야 또, 하나 알게 된다. 아빠 덕분에 공부하면서도 혼자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는 것을. 아빠 덕분에 든든했다는 것을.

그리고 재희는 엄마와 마지막 이별을 한다. 재희가 떠난 후 재희 엄마는 서준이를 만나고 서준이 모습을 눈여겨보며 서준이가 왕따가 아닌지 걱정한다. 그리고 재희 엄마는 그토록 재희가 먹고 싶던 엄마의 쿠키를 준다. 재희는 그립던 엄마를 만나고 엄마의 쿠키를 먹으면서 그때는 듣지 못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서준의 모습을 한 재희에게 엄마는 미소를 짓고 엄마의 웃음을 마주한 재희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자신에게 보내는 엄마의 위로가 재희에게 느껴지는 순간, 재희는 엄마가 더 이상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준이를 만나면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보느라고 조금 늦어졌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엄마, 나한테 엄마는 최고였어요. 내가 생각날 때는 울지 말고 꼭 웃어 줘요.

진짜로 유령이 될 뻔했던 서준이는 다행히 재희를 만났다. 재희와 몸을 바꾼 후 진짜로 유령이 되어서도 서준이 한 일은 거의 없다. 나가지 않는 것, 만나지 않는 것, 가만히 자기를 위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동안에 민기는 서준이를 찾아 나서고 방관자였던 서영이도 서준이에게 쪽지를 보내고 민기를 좇아 서준이를 찾는다. 유령이 된, 또 한 명의 서준이였던 재희는 서준이가 하고 싶던 말과 일을 해 준다. 왕따인 아이, 고립과 외로움에 죽고만 싶은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문제는 우리이고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한다. 반에 왕따가 있다면 그 아이를 왕따로 만든 것은 소수의 몇 명이 아니라 반 전체 아이들이다.

강사는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거나 왕따를 당할 때 ‘멈춰!’라고 소리를 지르라고 했다. 소리를 지르면 도와줄 다른 아이들이 있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민기에게 ‘멈춰!’라고 말하지 않는다.

소영이는 그런 현실이 이상하다. 그깟 유령 놀이 하나 제대로 못하는 서준이 답답하고 말 한마디로 왕따를 시킬 수 있는 민기가 미우면서도 무섭다. 언니에게 물어봤지만 가만있으라는 말을 들을 뿐이다. 서준이, 민기, 재희, 그리고 소영이의 시점에서 번갈아 전개되는 이야기는 서준이의 두려움, 서준이가 왕따를 당하는 과정의 이야기보다 더 자세하게 소영이와 민기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영이와 민기도 그런 의미에서 유령 같은 아이들, 유령이 되어 있는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이 더 이상 가만있지 않아야 이 현실이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왕따 당하는 누구의 이야기가 아닌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왕따를 시키는 아이와 그 주변에서 그걸 바라보는 아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아이들도 상처받고 합리화하고 그리고 비뚤어진다. 이 작품에서 선생님은 전면에 나와 있지 않지만 어쩌면 이런 문제의 많은 부분을 선생님이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를 묻고 있다.

5학년 3반 담임인 장영주 선생님은 지난 주말 메일을 하나 받았다.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메일에는 선생님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만 신경을 쓴다’라든지, ‘심부름도 공평하게 시켰으면 좋겠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맨 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 소리를 잘 들어 보세요!’

죽음을 생각할 정도의 고통 앞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동화 『유령 놀이』. 여태까지 많은 동화를 읽었지만 뒤로 갈수록 더 힘이 있는 동화를 만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유령 놀이』의 마지막은 ‘미안해’로 기억될 거 같다. 자기의 고통을 넘어서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그리고 함께 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 낸 미안하다는 말이 마음을 콕콕 찌른다.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1위이고 10년 새 청소년 자살률은 두 배로 높아진 현실에서 새해를 맞는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 보듬고 감싸 온 어린이문학과 그 문학의 둘레에서 일해 온 모든 분들과 함께 새해를 맞는다. 송구영신이다.
어유선 | 대안학교 배움터길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은 뒷동네도서관과 마을도서관에서 함께 하는 도서관 마을을 꿈꾸면서 일하고 있습니다.